즐겨찾기+ 최종편집:2019-10-18 오후 06:45:26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지금 서울에서는 첨성대 시와 술과 경주문인들의 숨은 이야기 향가, 천년을 뒤흔드는 새로운 발견 클래식 수다 문화관광해설사가 들려주는 숨은 경주 경주오디세이 경주의 풍광,우리의 기억들 나라를 지킨 숭고한 정신이 서린 우리지역 현충시설 손진은 시인의 詩間 안병렬 교수의 논어묵상 하성찬 전 교장의 경주이야기 오상욱 경주의 조선스토리 지난연재 종합
뉴스 > 종합

형산강! 물 길 따라, 이야기 따라[3]

형산강 부조장터에 남아있는 유공비 이야기
이종기 시민 기자 / 1396호입력 : 2019년 06월 27일

▶경주 유금리의 보부상 김이형 도접장 유공비

강동면 유금리 쪽 제산(弟山) 비탈에, 「좌상대 도접장 김공 이형 유공비」가 외롭게 서 있다. 유금리 주변은 형산강부조장터 중 「위 부조장」의 중심시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동해의 수산물과 경주, 안강 지역의 농산물은 물론, 육지 내륙의 담배, 피륙, 약재들까지 내려와, 조선 말기에 전국 3대 부조장(扶助場)의 하나로 그 명성을 떨쳤다. 이곳에는 200여명의 많은 보부상들이 모여들어 상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보부상(褓負商)은 봇짐장수〔褓商〕와 등짐장수〔負商〕를 합하여 일컫는데, 전자는 짐을 보따리에 싸서 들고 다니는 상인〔우상대〕이요. 후자는 지게에 짊어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좌상대〕들이라고 한다. 상인으로 장사를 하면서도 필요시 국가에 동원되어, 식량조달, 무기이송, 치안유지 등으로 조정이나 지방관청에 충성함으로써 국가의 보호아래 상권보호와 신분 안전을 유지해왔다.「도접장」은 도(道) 보부상들의 우두머리 계급 이름이다. 서울 (중앙)에는 ‘도수령’이 있고, 각 도에‘ 도접장’, 또는 ‘도반수’가 있어 막강한 이권과 권력을 쥐고, 전국의 보부상들을 지휘 통솔하며, 상행위 위계질서를 잡았다. 따라서 그 조직이 엄격한 규율체제로 전국 팔도사방에 세분되고, 권한 역시 막강했었다.

이 ‘김이형 도접장’ 비(碑)는 조선 고종4년(1864)에 세워진 것으로 가로 33 ㎝, 높이 86 ㎝, 두께 11 ㎝로 화강암 비석이다. 전면에 「左商帶 都接長 金公 以亨 有功碑」라 새겨있고, 총 48자의 칭송 글이 한시 형태로 음각되어 있으며, 뒷면에 건립연도가 새겨져있다. 한문으로 된 비문 글을 풀이하여 그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부조에 남긴 그대 은혜 크고 크도다. 그대의 덕은 인후하고, 성품 또한 유강하네. 그대 몸 땅에 묻히고, 남김이 없어도, 교역은 오늘도 이루어지나니, 상벌은 오히려 무겁고. 법규는 비로소 밝아 오네. 그대 이름 사해에 떨치고, 그대 책임 팔방〔8개 임방〕에 무거우니, 이 아름다운 돌에 이름 새겨 백세토록 영원히 그 향기 전하리”

이비의 주인공에 대해 상세히 전하는 바가 없으나, 그 공적과 인물됨이 출중했던 모양이다. 비문 해석으로 보면, 부조장에 남긴 공이 크다고 하니, 이곳 부조장활성화와 시장질서유지에 노력했고, 성품이 엄격. 강직하여 공사구분과 상벌이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죽어서 남김이 없다고 했으니, 재산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썼을 것으로 생각되며, 남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랫사람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 비는 8개의 임방(任房-시장관리사무소-)에서 그의 공적을 심사해 세운 유공비인 만큼, 옛 형산강 부조장의 중요한 역사적 증적(證跡)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제산 기슭에 서서, 형산강과 옛 부조장터를 내려다보고 있다.


▶연일읍 (중명리)의 현감( 縣監 )들의 공덕비

지금의 중명리는 형산강 ‘아래 부조장’의 중심 시장터였다. 소형산 아래 위치하여 당초 경주군 강동면 구역이었으나 행정구역 통합 시(1914년), 연일면에 이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노거수들이 몇 그루 있고. 「아랫 부조, 중명1리」라고 새겨진 마을 안내 석(石)이 우뚝 서있다. 그리고 그 우측에 선정비 2개가 앞쪽에 흐르는 형산강을 보며 나란히 서있다. 왼쪽은 「현감 조공 동훈 복시(復市) 선정비(1878년 2월)」로 32자의 한자가 새겨져있는데, 그 내용은, ‘시장거리를 옛 같이 만들고, 깃발과 점포들을 반듯하게 하여, 시장 분위기를 더욱 좋게 만들었으니 상인들이 축하하며, 노래 부른다’란 뜻이 라고 한다. 당시 연일현 부조장 일부시장이 폐쇄되었다가, 이를 재개설하는 데에 공이 많은 현감(조동훈)의 공적을 새긴 것이다. 다음은 「현감 남공 순원 선정비 (1887년 9월)」로, ‘모두가 평온하게 잘 살도록 마을을 다스리니, 주민들이 현감(남순원)의 덕을 칭송함을 이 비석에 새겨 영원히 남긴다’는 내용이다. 당시 아래 부조장의 융성과 그 형세를 알려주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되는 비석들이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이종기 시민 기자 / 1396호입력 : 2019년 06월 27일
- Copyrights ⓒ경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경주in스타
문화·행사
금요연재
포토뉴스
셔블&서울경주사람들
사설
칼럼
가장 많이 본 뉴스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31,499
오늘 방문자 수 : 21,568
총 방문자 수 : 1,370,089,587
상호: 경주신문 /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계림로 69 / 발행인·편집인 : 손동우 / 발행인 : 정학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동우
mail: gjnews21@hanmail.net / Tel: 054-746-0040 / Fax : 054-746-0044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다-01024
Copyright ⓒ 경주신문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