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밤 다채로운 클래식의 무대가 펼쳐진다. 경주챔버오케스트라(단장 신문식)의 제13회 정기연주회 ‘크로스 오브 클래식’이 오는 11월 3일 저녁 7시 30분 경주예술의전당 화랑홀에서 열리는 것. 이번 공연은 현악기만으로 구성된 스트링오케스트라 공연으로 김형석 지휘아래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와 소프라노 이민정이 협연자로 나선다. 이번 공연에서는 ▷모짜르트 ‘디베르티먼트’ 3번 1악장 ▷소프라노 이민정-‘오페라 박쥐’ 中 ‘친애하는 후작닝’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 전 악장 등 다양하고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다. 공연의 협연자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응수는 현재 한양대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찍이 유럽을 중심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한국에서 서울예고를 졸업한 후 빈 국립음대,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를 모두 수석 졸업했으며, 지네티 국제 콩쿠르 1위, 마리아 카날스 국제 콩쿠르 1위 등 국제대회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소프라노 이민정은 우리 지역 출신으로 서울대 음대 성악과 수석입학 및 수석졸업을 했다. 동 대학원 및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오페라과를 석사 졸업했다. 한국챔버오케스트라, 경북도립교향악단, 뉴코리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했으며, 현재 포항예고, 부산예고, 경북예고에 출강하며 후학을 양성하며 전문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신문식 단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들어하는 시기에 이번 공연이 경주시민들에게 위안을 전할 수 있는 공연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경주챔버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한 시민정서함양과 지역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6년 9월 14일 음악감독 신문식에 의해 경주지역 출신 20~40대의 현학이 전공자 중심의 젊은 연주자들을 주축으로 창단됐다. 2009년 1월 경북 비영리 단체로 등록, 2009년부터 경주시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으로 ‘경주시민오케스트라’와 2015년 창단된 ‘행복 브라스밴드’를 운영해 지금까지 정기연주회 10회, 찾아가는 음악회 5회 등 활발하고 꾸준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정기연주회, 가족음악회, 국립경주박물관 작은 음악회, 창작오페라 신라향가 시리즈, 청소년 협주곡의 밤 등 꾸준한 정기 공연으로 지역 무대에 서며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전석무료 / 문의 : 010-3525-5297
과거에 대한 동경, 회고의 정을 창작의 동기로 삼는 작가가 있다. 공간에 붓질을 덧댄 작품 ‘어떻게 하나요(2018)’는 유년 시절 어머니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기억을 배경으로 한다. 이신희 작가<인물사진>의 채워 넣기 ‘슬픔에서 위로로, 위로에서 공감으로’ 展이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 달에서 개막했다. 2020경주작가릴레이전의 네번째 주인공인 이신희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회고하는 작품 10여점을 선보인다.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존재는 다름 아닌 어머니다. 창작의 동기면서 동시 자기 내부로 향하는 일종의 귀로 역시 동일한 존재에 투사돼있다. 어머니가 해준 달걀 프라이, 그 정성과 사랑이 오브제에 머문다. 홍경한 미술 평론가는 평론 글에서 “이신희의 작업은 정직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유품으로 추정되는 여성 의류나 립스틱과 같은 물건들이 지시하는 것은 사실상 달걀 프라이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직접적이다. 이는 사물에 사적 특별함을 부여함으로써 평범하거나 일반적이었던 일상의 관점이 그 사물을 통해 더욱 명료한 사적 의미와 예술적 개념을 획득한다. 나아가 작가는 그것에서, 그러한 예술 행위 자체로 치유를 얻고 있다”고 평했다. 과거에 의미있었던 사물이나 기억을 주제로 현재 그것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작업한다는 이신희 작가는 “특정한 물건이나 형상을 보는 순간 그 시절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면서 “이런 기억을 지금의 관점에서 재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경주 출신인 이신희 작가는 지난해 단국대 조소과를 졸업한 신진작가로 2017년부터 경주환경미술협회 정기전 및 현대조각조형전, 단페스타, 솔고로스빛의나라전, 風, 시소 등 단체전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전시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경주를 대표하는 익스트림 퍼포먼스 ‘인피니티 플라잉’팀이 공연예술계에 응원을 전하고 코로나19로 멈췄던 공연의 재개를 알리는 뮤직드라마를 공개했다. 코로나19로 운영이 중단된 공연계의 재도약을 응원하기 위해 ‘인피니티 플라잉’팀이 뮤직드라마를 제작한 것. 이 영상은 ‘우리는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We will fly again)’를 주제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시행과 지역 내 감염증 확산 등으로 인해 공연을 멈추고 힘든 시기를 겪었던 ‘인피니티 플라잉’ 배우들이 공연이 없는 날에는 카페 서빙과 배달 대행, 세차장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현실 상황을 가감 없이 녹여내면서 공연업계 종사자들의 공감을 이끌고 배우의 꿈을 잃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상은 ‘인피니티 플라잉’을 운영하는 ‘페르소나’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다. ‘인피니티 플라잉(INFINITY FLYING)’은 넌버벌(무대사) 공연인 난타, 점프 등을 연출한 최철기 감독이 지난 2011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공연으로 제작한 ‘플라잉’을 업그레이드한 공연이다. 신라 화랑이 도깨비를 잡기 위해 시간의 문을 통해 21세기 경주로 넘어오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스토리에 태권도와 기계체조, 리듬체조, 비보잉 등 국가대표급 배우들이 치어리딩과 마샬아츠를 접목한 무대를 꾸민다. 특히 상설공연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로봇팔과 3D 홀로그램을 결합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경주를 대표하는 공연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인피니티 플라잉’팀은 지역의 감염 확산세가 안정됨에 따라 주말 공연을 재개했다. 경주엑스포 문화센터에서 토, 일요일 공연을 열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오는 31일에는 황리단길 황남밀면 맞은편 잔디밭에서 오후 1시 버스킹 공연도 진행한다. 황리단길 버스킹은 경주지역 하모니카 동호회 ‘하늬소리’와 협연으로 이뤄지며 아름다운 음악 선율과 배우들의 화려한 액션이 어우러지는 이색적인 무대로 1시간 동안 꾸밀 예정이다. ‘인피니티 플라잉’ 팀은 황리단길뿐만 아니라 보문관광단지 등 경주지역 곳곳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지속해서 펼치며 찾아가는 홍보와 경주시민, 국내외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공연은 주말과 공휴일 오후 2시 30분부터 진행되며 티켓 예매는 네이버, 인터파크 등을 통해 가능하다. 문의는 054-775-0815.
선덕여고(교장 권영라)가 학생이 면접관이 돼 면접문항을 개발하고 면접 태도까지 평가하는 ‘역할분담 대입 모의면접’을 진행해 관심을 모았다. 역할분담 대입 모의면접은 학생이 면접관이 돼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서 면접 문항을 개발, 모의 면접에 적용하는 것이다. 면접 의도에 부합하는 면접 문항의 개발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본인의 면접을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학년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이 학생부와 자기소개서를 기반으로 인성, 전공적합성, 학업역량, 발전가능성의 주제에 따라 질문 문항을 개발할 수 있는 ‘면접문항 개발 워크북’을 사례 위주로 정리해 제작했다. 권영라 교장은 “면접 전형에 있어서도 실시간 원격 면접, 동영상 면접 등 새로운 형태의 비대면 면접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3학년 교사들이 협력해 제작한 면접 워크북으로 학생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변할 수 있는 자기주도형 모의 면접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선덕여고는 각반별로 면접 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을 구비해 본인의 면접태도를 확인하면서 면접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고 있으며 각 대학의 비대면 면접 전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화중(교장 이병락)은 지난 25일 독도의 날을 기념해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준비한 ‘나라사랑 독도특별전’을 11월 10일까지 학교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독도 동아리’ 학생들의 평소 독도 관련 활동 결과물(만들기, 그리기 등) 100여점과 대형 독도 사진 30여점 등을 전시하고 있다. 올해는 고종 황제 독도의 날 제정 12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여서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에게 독도 사랑과 나라 사랑 마음을 고취시키고 있다. 문화중은 코로나19로 위축된 학생들에게 소규모 동아리 활동을 적극 권장해 창의적 사고와 적극적 활동 자세를 익히게 하고 있으며, 특히 ‘독도 동아리’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 학생과 교사가 함께 활동, 그 결과물을 전시하면서 활동의 성취감을 얻고 학생 전체가 나라 사랑 마음을 기를 수 있게 하고 있다. 동아리 장민희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독창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감정을 꼼꼼하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우리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이 성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독도 관련 활동을 하면서 독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아울러 학생들과의 관계도 친밀하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아리 대표 이서준 학생은 “친구들이 어울려 전시작품을 보면서 독도에 대해 친근감을 더 가지게 되었으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전했다. 문화중는 학생들에게 독도의 소중함을 알리고 독도에 대한 인식을 어릴 때부터 가질 수 있게 독도 동아리 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매년 여름방학에는 학생들에게 독도 탐방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인들에게 만엽집의 연구란 특히나 어려웠던 일 같다. 자료상 최초로 도전한 이들은 나시쓰보(梨壺) 5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 5인은 무라카미(村上) 천황의 명을 받아 궁전 안 나시쓰보(梨壺)란 전각에 모여 만엽집을 해독하였다. 그 해가 서기 951년이니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1069년 전이다. 이후에도 무수한 이들이 그 뒤를 이어 만엽집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만엽집의 완전 해독을 선언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천년이 넘도록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4516번가의 첫구절을 예로 들어 그들이 어디에서 막혔는지 살펴보자. ‘신년 애시애 파도파류(新年乃始乃波都波流)’라는 9글자가 첫 구절이다. 이 9 글자들을 다시 분류해 보면 ‘신년시(新年始)' 라는 3글자와 ‘애애 파도파류(乃乃 波都波流)'라는 6글자로 나누어진다. 신년시(新年始)는 ‘신년이 시작되었다’라는 의미를 가지지 않았나 비록 눈대중일지라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신년시(新年始)라는 글자 사이에 ‘애애파도파류(乃乃 波都波流)’라고 도저히 뜻을 알 수 없는 6글자가 섞여 있다는 점이다. 이들 6글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지가 첫 문장 해독의 관건이자, 만엽집 해독법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독자들께서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먼저 답을 알려드리고 설명하겠다. 만엽집 문장이지만 신라향가 창작법으로 찾아낸 답이다. 향가에서 문장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앞에서 언급한 ‘가다’+‘오다’--->‘가오다다’ 식으로 글자들을 섞는 방식이다. 답을 알고 보면 간단하다. 그러나 이것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은 이치다. 알고 보면 간단하지만 방법을 모르고 길을 찾으려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님을 뜻하는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인 연구자들은 문자 지옥 속에 빠진 개미들처럼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만엽집으로 가는 길은 높고도 험했다. 우선 만엽의 문자들은 갖가지 위장술을 쓰고 있었다. 푸른 나뭇잎 속에 숨어 있는 청개구리들처럼 보호색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또한 어미 까투리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다쳐 날개가 부러진 것처럼 푸드덕 거려 다가오는 천적들을 멀리 유인해내는 것처럼, 만엽의 문장들도 다가오는 연구자들을 자신의 실체에서 멀리 떼어 놓으려 교묘히 작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장치들의 도움을 받아 만엽집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진 오사카성처럼 결코 혼마루를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일본의 연구자들은 손톱이 빠지도록 만엽의 성벽을 부여안고 오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문자들의 보호색과 까투리 날개짓이라는 유인책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들은 고통 속에 저 아래 작은 점으로 멀어져 갔다. 지난 1000년간 만엽은 천전천승을 거두었다. 수없는 좌절 끝에 일본인들은 만엽가가 한문식으로는 해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들은 만엽의 한자들은 대부분 표음문자이고, 고대 일본어를 소리나는 대로 표기해 놓은 것이라고 결론 내려야 했다. 그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만엽을 풀어내고, 자신의 국민들에게 만엽이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정체성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만엽에 설치된 덫이 그들을 유도해낸 결과였지 실체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게 1000년이란 세월이 갔다. 만엽이 승리한 것이다. 역사의 시간이 흘러 일제 강점기가 되었다. 우리 땅에 온 일본인 학자들이 삼국유사란 책에서 신라의 향가를 발견하였는데 자기들의 만엽가와 외관이 비슷한 것에 주목하였다. 마치 향가를 연구하면 만엽집 해독에 무언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신라의 향가를 연구한 끝에 그들은 향가의 한자는 표음문자로서 고대 신라어를 소리나는 대로 써둔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지었다. 민족적 어려움에 처해 있던 우리에 앞서서 향가 25장을 모두 해독한 오쿠라신페이-소창진평(小倉進平) 경성제국대학 교수는 혁혁한 공을 인정받아 일본의 천황상을 받았고, 우리들은 민족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다. 소창진평(小倉進平)의 향가 해독법은 ‘기본적으로 고대 신라어를 소리가 나는 대로 써두었다’라는 논리를 골간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만엽집이란 기본적으로 고대 일본어를 소리 나는 대로 써둔 작품이다’라는 만엽집 해독법을 판박이한 이론이다. 우리 민족문화의 최고(最古) 원류에 대한 연구는 1927년 일본인들의 인문학 연구에 상처받은 채 시작되었다. 대다수의 우리 민족 연구가들은 ‘향가란 기본적으로 고대 신라어를 소리나는 대로 써둔 것이다’라는 일본인 해독법의 뼈대를 의심했으면 좋았을 것이나 그러지 않았다. 우리 향가연구 100년 전쟁은 우리가 여력 없이 어려웠던 시절 일본인들의 향가연구라는 포성 속에서 시작되었다. 맨 앞에 양주동 박사님이 서 계셨다. >>다음에 계속
경북남부문화재돌봄사업단(단장 진병길)이 문화재청상을 수상했다. 경북남부문화재돌봄사업단이 지난 22일 ‘함께 이룬 돌봄 10년, 같이 나갈 미래 100년’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된 문화재 돌봄 사업 10주년 기념식에서 전국23개 문화재돌봄사업단 가운데 유공 단체로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하게 된 것. 남부문화재돌봄사업단은 2016년 경주지진과 2017년 포항지진 그리고 올해 두 번의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문화재에 대한 신속한 피해복구를 위해 구성원 모두가 구슬땀을 흘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날 남부문화재돌봄사업단은 단체수상과 함께 정연택 경미수리팀장이 개인 유공 수상을 받았다. 진병길 단장은 “이번 성과는 경주시, 청송군 등 8개 시군의 주요문화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전문 인력과 기술력을 보유해 원형 보존을 목표로 문화재 상시관리체제를 확립하는데 지난 10년간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면서 “앞으로도 문화재 119로서의 소임과 역할에 더욱더 충실히 임하겠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한편 남부문화재돌봄사업단은 지역내 479개 문화재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경미한 훼손 문화재를 수리해 문화재에 대한 예방적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
지난 22일 국제로타리 3630지구 5개 로타리클럽 회원들은 10월 24일 세계 소아마비의 날을 기념하는 ‘생명 나눔 사랑의 헌혈 봉사 및 소아마비 박멸’ 캠페인을 개최했다. <사진> 이번 캠페인은 6지역 총재지역대표(대표 최대락), 7지역 총재지역대표(대표 이창희)를 비롯해 경주로타리클럽(회장 조봉래), 선덕로타리클럽(회장 이미선), 경주중앙로타리클럽(회장 김동한), 천마로타리클럽(회장 김홍섭), 알영로타리클럽(회장 김현숙)이 2020~21년도 공공이미지 확대 캠페인의 일환으로 공동 주최했다. 이날 캠페인에 참여한 로타리클럽 회원들은 경주역 광장은 이용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게 헌혈 동참을 홍보했다. 또한 10월 24일 세계 소아마비의 날을 기념한 소아마비박멸 활동도 함께 펼쳤다. 캠페인에 참석한 로타리 관계자는 “국제로타리에서 수십 년에 걸쳐 모금과 홍보, 의료 봉사 등을 통해 지구상의 소아마비가 99/9% 감소했다”면서 “국제로타리 3630지구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로타리안들은 생명을 앗아가는 몰아내고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자랄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되는 일에 함께하겠다”고 전했다.
조선은 유교의 역사이며 이는 과거제도로서 지탱돼 왔다. 그러나 고종 31년(갑오년, 1894년) 격동속에서 갑오경장을 맞아 고려 958년(광종 9)부터 이어진 과거제는 막을 내린다. 경주에서는 1894년 과거제 폐지 직전인 1891년에 조선시대 마지막 문과에 급제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수헌(脩軒) 최현필(崔鉉弼) 선생이다. 당시 갑오지사라는 말이 있을만큼 마지막 과거장이 매우 문란했으나 선생은 워낙 출중한 실력으로 당당히 급제한다. 조선조 개국부터 과거제가 폐지된 1894년 갑오경장까지 502년간, 경주에서 문과 급제자는 전체 70여 명 남짓하다고 한다. 수헌 선생 이외에도 문과 급제자들이 더러 나왔으나 선생만큼 많은 활동을 하고 저서를 남긴 이는 드물다. 선생은 족중 뿐 만 아니라 영남일원에서도 문명(文名)이 드높았다. 마지막 과거 급제자로 유일한 생존자였고 학문이나 덕망으로 존경받아 도산서원의 원장을 맡았는가하면, 타문중이라도 행사나 문제가 있을때는 언제나 주관하고 조정했으며 문회나 시회 등 유림과의 제반사에 명실공히 동량(棟樑)이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수헌문집 후기에서 손자 최상협은 ‘조부님께서 살고 가신 세대는 근세와 현대, 봉건과 개방이 상충하는 풍운기여서 급변하는 정세와 함께 가치관의 급격한 경도를 피부로 체험하신 시기였다. 망국의 비탄에 통곡하는 가난한 한 사람의 벼슬아치가 일체의 외장(外裝)을 벗어 던지고 자연에 귀의하여 그 고난의 세대를 수신하고 처세하면서 진정 선비답게 군자의 도를 어떻게 지키고 가셨나를 짐작할 수 있다’고 썼다. 선생은 숭혜전지 서문, 사마소 중건기, 근암문집 발문, 김유신 장군 재실 현판, 최씨 대동보 서문 등 수많은 글과 글씨를 남겼으며 유집으로 ‘수헌문집’이 있다. 경주 하동에 묘소가 있으며 수많은 글과 선생의 저술들이 아직 빛을 보지 못하고 쌓여있어 해제 및 연구가 시급해 보인다. 본 기사는 후손 최형대 선생((사)경주발전협의회 회장)이 제공한 ‘수헌문집(영인본, 1책, 1988년)’과 인터뷰, 조철제 경주문화원장의『경주문집해제(경주문화원, 2004, ‘수헌문집(脩軒文集)/ 최현필)』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수헌 최현필 1860년 현곡면 종동에서 출생하고 을사보호조약때는 사람 대하기가 부끄럽다하시고 이목과 내객이 많은 교리 피해 한촌(寒村) 구황리로 이주 수헌 최현필은 최동길의 후손으로, 1860년 현곡면 남사리 종동에서 최교수의 독자로 태어났으나 5세 때 큰아버지 종남(鍾南) 최하수의 후사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월성이씨였다. 자는 희길(羲吉) 호는 수헌(脩軒)이다. 뒷날 향교가 있는 교리에 옮겨와 살았는데 수헌문집 서문의 ‘교리사(校里肆)’가 그곳이다. 그러나 선생은 교리에서 다시 가족을 데리고 구황리로 가서 살았다고 한다. 구황리에 아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수헌문집에서 당시의 정황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신께서 급제하신데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말씀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짐작하건대 망국의 한과 사직하시고 하향하실때의 쓰라렸던 기억을 되씹기 괴로워 아예 묻어버리신 건지도 모릅니다. 또한 때가 아닐 때 등과(登科) 하신 것을 후회하시고 조신(朝臣)으로서 망국을 막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고민하셨습니다. 그래서 을사보호조약때는 사람을 대하기가 부끄럽다하시고 이목과 내객이 많은 교리를 피해 한촌(寒村) 구황리로 이주했습니다. 급기야는 한일합방의 비극을 맞자 더욱 깊숙히 보문리로 다시 이주해 일체 외부와의 접촉을 끊으시고 칩거하셨습니다’ 갑자년(1924)에 지은 사상재(泗上齋) 모성계안(慕聖契案)에서 그의 당시 주소는 내동면 보문으로 적었으나 만년에는 다시 교리에 돌아온다. -1894년 갑오경장 과거제 폐지 직전, 1891년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부정자에 올라...한일합방되자 의분으로 통곡하고 식음 폐하고 피 토하며 쓰러져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뚜렷하고 재주가 뛰어났다. 종남공이 글을 가르치자 한 번 읽으면 곧 외웠고 8세 때 능히 글을 지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13세 때는 사서와 삼경을 두루 읽어서 통했다. 16세때 경주부에서 실시한 백일장에 들어가 응시를 요청하자 부윤이 기특하게 여기고 허락했는데 잠시 후 그는 붓을 잡고 시권(과거응시자들이 제출한 답안지 혹은 채점지)을 제출하니 부윤이 크게 칭찬하고 이로써 재명(才名)을 크게 떨치게 된다. 또 효성이 매우 지극해 어버이를 섬길 때 조금도 뜻에 어긋남이 없었다. 종남공이 돌아가셔서 겨우 장례를 마치자 다시 본생(本生) 아버지 상을 입었는데 슬픔을 지나치게 하면서 상제를 모두 예법에 따라 행했다. 본래 매우 가난하여 집안의 여러 가지 일을 직접 주간했으나 독서를 거두는 일은 없었다. 경사는 물론 제자의 글을 두루 읽고 그 정수를 터득했으니, 마침내 1891년 문과에 급제한다. 후손 최형대 선생은 이즈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전해지기로는, 현곡에서도 재주가 뛰어나 교촌 최부잣집 인근에 살면서 최준 선생의 스승으로 역할했다고 합니다. 이는 ‘최준은 최현필에게 사사를 받고’ 라는 기록에서 연유합니다. 최준과 함께 서울 과거 시험까지 봐주기로 했는데 과거를 함께 보자는 제안으로 선생도 응시했고 대과(문과)에 급제한 것입니다. 당시, 경주에서 급제자가 나왔다고 하니 당연히 최부잣집인 줄 알았으나 최현필 선생이셨습니다. 최부잣집에서 미리 준비해 둔 잔치음식은 흔쾌히 옮겨서 전부 수헌 선생댁으로 보내주었다지요” 급제한 후 선생은 승문원 부정자에 오른다. 그러나 갑오년(1894) 이후 세상이 날로 어지러워지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독서와 과농(課農)으로 자신을 위한 계책으로 삼는다. 1905년 일본이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 박탈하는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그는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하고 크게 탄식한다. 마침내 1910년 나라가 망하자 그는 의분으로 통곡하고 밤낮으로 식음을 폐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큰 잔으로 몇 잔의 술을 들이마시고 제갈량이 지은 ‘출사표’를 한 번 외운 뒤, 피를 몇 사발 토하고 쓰러졌다. 이후로 두문불출하고 스스로 몸을 삼갔다. 나라 잃은 신민(臣民)으로서 동지 몇 사람과 같이 후학을 가르치고 강학을 개설해 학문에 더욱 힘쓰게 했다. 1918년 고종이 승하하자 두문절식하고 곡위(哭位)를 차려두고 성복하여 슬퍼했고 국장 때 유신(遺臣)으로 달려가 통곡했었다. 고별의 예를 치뤘던 것으로 선생의 그 절통한 한을 상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88년 드디어 '수헌문집(脩軒文集)' 간행 돼... 시(詩) 455, 서(書) 106, 서(序) 59, 기(記) 56, 발문과 상량문 등 46, 제문과 축문 등 91, 행장과 유사 등 42, 묘갈명 105편 수록 수헌 선생은 평소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서두르지 않았고 세상의 명리나 사물에 마음 두지 않았다. 선조에게 제사 지내면 그 효성을 다했고 자제를 가르칠 때 재능과 분수에 따라 알맞게 지도했다. 어버이 장례 때 산송(山訟, 묏자리 다툼)이 일어났는데, 그는 지극한 효성과 슬픔으로 상대를 감동시켜 해결했다. 그러므로 그는 명망과 덕이 높아서 당시 사람들의 기문, 상량문, 묘갈명 등 천유(闡幽, 숨겨 있는 좋은 행실을 천양함)의 글이 그의 의해 지어진 것이 많았고 이를 얻은 사람들은 영예로 여기며 간직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앞서 남들의 간청에 따라 남긴 글이 매우 많았으나 그의 사후 이들 유고를 정리하지 못했다. 해방과 혼란, 그리고 민족상잔이었던 한국전쟁 등으로 사회는 극도로 혼란했고 그러는 사이 수헌의 유고는 점차 흩어진다. 수헌의 둘째 아들 최영우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유고를 수합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모은 글을 시(詩), 서(書),제문(祭文) 등으로 분류하고 초서는 읽기 쉬운 필체로 바꿔 써 모두 8권으로 묶었다. 간행을 서둘러 마침내 1984년 6월 경주향교 명륜당에서 수헌문집발행발기회를 조직하고 아직 수합되지 않는 유고를 모으며 활동했으나 1987년 최영우가 죽은 뒤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에, 수헌의 손자 최상협이 직접 필사하면서 주간하고 1988년 드디어 '수헌문집(脩軒文集)'을 간행하기에 이른다. 문집에는 시(詩) 455, 서(書) 106, 서(序) 59, 기(記) 56, 발문과 상량문 등 46, 제문과 축문 등 91, 행장과 유사 등 42, 묘갈명 105편이 수록되어 있다. 조철제 경주문화원장은 “그러나 이 속에 수헌의 학문적 사상을 읽을 수 있는 잡저(雜著)나 기행문, 시국에 관한 글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더구나 일정 때의 참담한 현실과 통분의 탄식, 저들에 대한 불의를 명종(鳴鐘)한 글이 분명 있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러한 글을 더 발굴해야 할 것이지만 우선 그의 여러 저술에서 그의 학문적 세계를 논구(論究)하는 일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권위 떠난 진실한 선생의 위상은 장례기간이 한 달을 넘는 유림장으로 증명돼...동리 전체가 장례에 매달릴 정도 문집에서 손자 최상협은 “매일같이 찾아오는 그 많은 문객들을 대하시는 모습이나 중인, 상민, 하인, 노비에 이르기까지 따뜻하게 미소지으며 추호도 차별이 없으셨습니다. 또 중인 신분의 사람들이 글을 청해도 기꺼이 내리셨습니다. 명절때면 그들이 다투어 찾아와 뜰아래에서 문안을 드리는 모습은 어느 양반댁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집에서만 볼 수 있는 흐뭇한 광경이었습니다”라며 선생의 인품을 회고했다. 모든 권위를 떠난 진실한 선생의 위상은 장례 광경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당시 매우 존경받는 유림이었으므로 장례기간이 한 달을 넘는 유월장으로 장사를 지낼 정도였다. 향년 78세로 귀천한 진정 군자의 대왕생이었는데 교리의 객택사랑은 한 달 남짓 조객들의 숙소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동리 전체가 장례에 매달릴 정도였다고. 장례행렬은 교리에서 첨성대를 지나 반월성을 끼고 안압지, 불국사역이 있는 소정까지 삼십리정, 거기서 불국사행 도로를 따라 하곡까지 형형색색 수백의 만장들을 휘날리며 영구를 인도했다고 전한다. 조철제 문화원장은 “수헌 선생은 평소에 존경했던 분입니다. 선생의 생애 당시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시대 전통이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대두되는 시기였습니다. 각 문중은 억압받다가 개방이 돼 새로운 가문의 양상이 펼쳐지는 한복판을 사신 분이셨지요. 경주에 계셨고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나 억울할 정도로 자신의 포부를 다 펼치지 못하셨지요. 구한말 한일합방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선비의 지조, 체통과 유학적 전통을 지키기가 어느 시대보다 어려웠을 것이고 자신의 사상을 글을 통해 웅변한 듯합니다. 무너져가는 전통사회 양상을 지키려했던 경주의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지역 최대 숙원사업 중 하나인 희망농원 환경개선 사업을 위해 국민권익위원회를 비롯해 대구지방환경청, 경북도, 경주시, 포항시가 함께 힘을 모았다. 경주시는 지난 28일 시청에서 국민권익위 주관하는 관련 기관 기관조정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낙영 경주시장, 이강덕 포항시장, 주대영 대구지방환경청장, 김용원 희망농원 대표, 서호대 경주시의회 의장을 비롯해 도·시의원, 희망농원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참석자들은 희망농원 현장을 방문해 현안 사항 브리핑과 주민 의견 청취를 통해 열악한 주변 환경 문제점을 공유했다. 희망농원은 일급 발암물질인 슬레이트로 인한 문제와 함께 닭 사육장의 분뇨, 생활하수 방류 문제가 민원의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닭 사육장의 축분과 생활하수 방류는 형산강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평상시 희망농원 1일 축분 및 생활하수 처리량은 2000여톤으로 시 에코물센터(하수종말처리장)로 연계돼 처리된다. 하지만 우수기나 장마철이면 우수와 축분, 하수가 동시에 유입돼 처리가 불가능해진다. 처리 안 된 우수와 축분, 하수는 신당천에서 형산강으로 유입돼 각종 민원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강제이주 당시 정부에서 지어준 닭 사육장과 주택이 아직까지 무허가 건물로 남아있어 수리도 어려운 상황이다. 시는 1979년 보문관광단지 개발 정부 정책에 따른 강제로 이주 한 후 40여 년간 열악한 환경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센인 집성촌 ‘천북 희망농원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 민원을 제기했다. 지역 최대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시는 올 3월 희망농원 주민대표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에 취약한 정주환경 개선 및 인권 보호 위한 민원을 전달했다. 국민권익위를 비롯해 경북도, 포항시, 대구지방환경청 등과 함께 수차례에 걸쳐 현장 확인과 주민 면담을 진행해 왔으며 이를 통해 기관조정 회의에 이르게 됐다. 이번 기관조정의 핵심은 희망농원 지원을 위한 중앙부처의 법적 근거 마련이다. 현재 한센인 포함 112세대 16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주거지와 집단계사는 폐슬레이트(1급 발암물질)로 지어져 철거와 노후 침전조·하수관거 재정비를 위해 관계기관 역할조정과 국비 210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조정안을 살펴보면 시는 ▲노후 집단 닭장(450동) 및 폐 슬레이트 철거 ▲노후 침전조 및 하수관거 정비 등 우선 해결을 위해 내년 상반기까지 기본정비계획을 수립, 천북면·희망농원·시의회·전문가 등 공론화 ▲노후 주택정비 등 거주 여건 개선 ▲친환경 농작물 재배 등 일자리 및 농가 소득 창출 기반 마련 ▲한센 요양원 등 복지시설·생태공원 등 주민 편익 공간조성을 포함한 종합정비계획을 단계적으로 수립·추진하는 것이다. 경북도는 희망농원 내 노후 집단 닭장(폐슬레이트 포함) 철거, 침전조 및 하수관거 정비 등 시설개선 사업이 원만히 추진될 수 있도록 예산지원 등을 협력하기로 했다. 포항시는 노후 침전조와 하수관거 재정비 등을 통해 형산강 수질오염 개선을, 대구지방환경청은 하수관거 정비사업 관련 국비 예산 확보해 우선 지원될 수 있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로 했다. 전현희 위원장은 “이번 조정안은 40년간 고통을 받아온 주민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모두의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당시 정부가 지키지 못한 약속을 이제야 이행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돼 기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조정안은 법적 효력을 가진다. 조정안에 담긴 내용이 이행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김용원 희망농원 대표는 조정안이 작성되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김 대표는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400명이 넘는 주민이 이제 160명으로 줄었지만 이제라도 약속이 지켜져 다행이라 생각한다”면서 “희망농원이 한센인 거주지역의 새로운 모델이 되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희망농원 환경개선 사업을 위해 앞장선 주낙영 시장은 “강제 이주 후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주민들은 무허가 건물에서 오염에 노출되고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의 삼중고에 시달려 왔다”면서 “모두가 힘을 모아 민원을 해결하려 노력했기에 이번 조정안이 가능했다. 조정안이 이른 시일 내에 시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등 축제, 연등 행렬 같이 연등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 중 하나잖아요. 이 문화를 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연등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연등을 직접 만드는 ‘천년의 빛’은 동국대학교 불교미술학과 선·후배 7명(심재담, 김광한, 남궁혜옥, 최세윤, 최소이, 배인호, 이휘관)이 연등이라는 우리의 문화를 일상에서 쉽게 즐길수 있도록 연등을 만드는 팀으로 결성했다. 천년의 빛 팀은 경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업을 고민하던 중 황룡사에서 연등이 관등됐다는 내용에 이끌려 연등을 선택했다. 연등은 다양한 주제로 제작이 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에서부터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인물, 상징적 건물 등을 연등으로 제작해 도시의 밤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천년의 빛 팀은 정식으로 창업을 하기 전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부산 영도구, 구미 대둔사, 방과 후 수업, 해인사 연등전수교육 등 타 지역 행사뿐만 아니라 교육적인 부분까지 다양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멤버들은 천년의 빛으로 뭉치기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연등을 만들어서 행사에 지원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어요. 그런 멤버들이 뭉쳤으니 개인이 해오던 활동의 영역이 팀의 영역으로 넓혀졌어요” 천년의 빛 팀은 비록 연등으로 창업했지만 팀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연등 문화를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연등 제작과 함께 연등제작 교육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특히 방과 후 수업을 통해 어린아이들에게 연등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고, 연등을 만드는 수업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우리 팀의 목표가 ‘연등이라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자’여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연등을 제작하는 방법을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수업으로 진행했고, 타 지역의 사찰에서도 연등을 제작하는 교육을 다니고 있습니다. 팀의 리더인 심재담 대표는 불교미술학과에 강의도 하고 있을 정도로 연등에 대한 열정이 남다릅니다” 전국적으로 연등을 제작하는 유명한 업체는 5~6곳 정도가 된다. 지역에서도 연등행렬이나 연등축제에 사용된 연등들이 타 지역 업체에 의뢰했을 정도로 연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실력있는 업체가 많지 않았다. 천년의 빛 팀이 생김으로 이제는 경주를 잘 아는, 경주의 이야기를 잘 살릴 수 있는 경주지역의 연등 팀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활동해왔지만, 아직 팀으로서의 활동이 많이 부족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할 수 없는 경주지역에서만 가능한 연등을 제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고민에 뺏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한 번의 도전은 과감하게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포기하지 않는 끈기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진출(인물사진·79) 전 국회의원이 지난 23일 도청 화백당에서 열린 경북도민의 날 기념 ‘자랑스러운 경북도민상 시상식’에서 지역사회발전부문 도민상을 수상했다. 임 수상자는 경북도 발전을 위해 나눔과 봉사를 설천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남다른 열정과 사랑을 펼쳐 이번에 경북도민상을 수상하게 됐다. 임 수상자는 지난 15대, 16대 경주에서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6대에는 국회 여성분과위원회 상임 위원장을 지내는 등 여성의원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임 수상자는 정계에서 물러난 뒤에도 지역발전을 위해 고견을 아끼지 않는 등 지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자랑스러운 경상북도민상’은 경북도가 매년 10월 23일 경북도민의 날을 기념해 각 분야에서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경북도 명예를 드높인 훌륭한 도민을 발굴해 시상하는 상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을 알리고 탈핵세상을 위한 대한민국 방방곡곡 가져가라 핵폐기물 캠페인단이 경주에서 모였다. 캠페인단은 지난 26일 경주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준위핵폐기물 반출 약속을 이행과 맥스터 공론화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들은 “다가오는 11월 20일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무효 확인 등 소송 재판이 개최된다”면서 “사용후핵연료 관련 시설인 맥스터가 유치지역에 건설돼선 안되다.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주지역 맥스터 공론화는 조작의 결과물이다.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공론조작의 전 과정이 반드시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들은 기자회견 후 경주역을 시작으로 팔우정, 신라대종, 신한은행을 거쳐 다시 경주역까지 돌아오는 거리 행진을 펼쳤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하면서 지자체의 문화정책 일환으로 전국적으로 공공미술관 설립이 늘어 나고 있다. 공공미술관은 공립미술관이라고도 불리며 지자체가 설립·운영하는 비영리 목적 미술관이다. 시민들에게 전시와 교육을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정부가 1991년 제정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하면 ‘미술관이란 문화, 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 조각, 공예, 건축, 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하는 시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미술관은 크게 국립미술관, 공립미술관, 사립미술관, 대학미술관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이중 공립미술관은 전국 64개(경북도내 5개) 가운데 경주는 경주예술의전당 내 ‘알천미술관’과 경주엑스포 공원 내 ‘솔거미술관’ 두 곳이 존재한다. 현재 경주는 두 공립미술관 모두 전시, 교육, 체험, 연구 등 외형적으로는 신라천년의 고도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근시안적 정책에 따른 지역미술관의 정체성 모호함, 안일한 운영체계 등 공립미술관으로 공공성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한국근현대미술 중심지인 경주의 위상 제고를 기대하며 타지역 공립미술관 운영 사례들을 바탕으로 경주 공립미술관의 운영 현황을 살펴보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공립미술관이란 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의 준말로 인문사회계 또는 자연 이공계 박물관과는 상이한 성격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문화예술 공간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제3조 박물관·미술관의 구분에 의하면 미술관은 그 설립·운영 주체에 따라 국립 미술관, 공립 미술관, 사립 미술관, 대학 미술관으로 구분하며, 공립 미술관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운영하도록 정의돼 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미술관(박물관)이란 예술, 역사, 과학, 기술에 관한 수집품 및 식물원, 수족관 등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자료·표본 등을 여러 가지 방법을 가지고 연구해 공공의 오락과 교육을 위해 공개 전시함을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는 항구적인 비영리 기관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관인 ‘이왕가미술관’ 국내 미술관의 역사는 1936년 덕수궁 내에 위치한 이왕가미술관으로부터 시작된다. 1933년 덕수궁 석조전에는 일본 근대 미술품이 전시되기 시작했다. 이는 고종이 덕수궁에서 승하한 뒤 비어 있던 궁궐을 공원화하면서 일본 근대 미술품을 전시했던 것. 일본에서 대여해 온 일본 회화작품과 공예품이 교체 전시됐으며 1936년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설계로 석조전의 서쪽에 2층 전시공간을 건축해 그해 6월 창경궁 이왕가박물관에 소장 전시하던 조선 고미술품을 옮겨와 석조전과 신관을 통합해 이왕가 미술관으로 명명했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이왕가미술관은 수장고와 8개의 전시실, 강당 등의 시설을 구비했다. 이왕가미술관은 문화가 없는 조선에 미술을 진작한다는 목적으로 덕수궁에 설치됐지만 실제로는 일본 근대 미술품을 전시함으로 당대 일본 문화를 보여줬다. 아울러 창경궁의 이왕가박물관의 조선고미술품을 덕수궁으로 옮겨와 전시함으로 조선은 과거의 문화를, 일본은 당대의 문화를 보여줘 식민통치를 공고화시키는 역할도 했다. 삼국시대 이후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품은 도자기, 회화, 조각, 공예품, 조선출토 중국 도자기 등이 있었으며 미술관의 소장품은 약 1만2000여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공예 전문가 중 평의원을 학예직으로 선출해 전시를 진행했고 도록이 발간된 구색을 갖춘 미술관이 탄생한 것이다. 1946년 3월 이왕가미술관은 해방과 함께 덕수궁 미술관으로 개칭됐으며 1969년 그 소장품이 국립박물관에 통합됐다. 1968년 8월 23일 국립 현대미술관의 직제가 제정되면서 경복궁 내 전시관에서 개관, 덕수궁 석조전 개조 작업을 시행한 결과 1973년에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이때의 미술관은 수집, 연구, 보존 등의 기능은 할 수 없었으며 전시 기능만을 수행했다. # 글로벌 시대 발맞춰 나가는 공립미술관 -미술품의 가치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전시 미술관으로 역할 공립미술관은 대중들에게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는 장소의 제공과 동시에 기회를 부여한다. 전시는 물론 교육과 체험 등이 형성되는 공간으로서 지역민들에게 폭넓고 다양한 미술관의 기능을 부여하고 있으며, 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시킬 수 있다. 시대가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교육의 수준은 높아지고 다양한 여가활동이 부각되고 있다. 이와 함께 미술관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술관의 기능은 미술품을 수집하고 보관하며 연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전시함으로 완성이 된다. 그것은 작품에 대해 관람객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가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접하는 관람객은 개개인의 기호에 맞는 요소들을 학습하고 수용한다. 지역의 특성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종합적인 성격의 미술관을 지양할 필요가 있는 공립미술관의 경우 지역 작가들의 작품 창작 활동과 표현 공간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지역작가의 전시기능은 지역의 사립 갤러리나 전시실 이용으로 대처할 수 있다. 지역의 공립 미술관은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공간적 특성과 역사성을 기반으로 한 주제별 전문 미술관을 장려하고 있다. -모두를 위한 문화 지향하는 복합문화공간의 역할 21세기, 미술관의 활동이 동적으로 전환되면서 소장품에 대한 관리보다는 활용방안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미술관은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며 교육활동이나 관련 공연예술을 유치함으로써 미술관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미술관 활동을 구분하면 전시, 교육 및 강연, 워크숍, 연구, 정보제공, 출판, 공연예술, 회원 운영, 자원봉사, 서비스 공간제공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고 미술에 문화에 대한 이해 능력을 높여 문화도시로 나아가려는 문화 행정의 중요한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술관은 예술인들과 예술을 필요로 하는 관람객이 만나는 동시에 미술교육과 체험이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문화 촉매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화는 개인과 사회, 국가를 지탱하고 끌어가는 원동력이므로 그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화공간은 모두를 위한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공간을 이용하는 문화 활동의 주체 및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관람하는 객체가 한데 어우러져 융합이 이뤄져야 가능하다. #삶의 의식과 시선 넓혀주는 공립미술관 박물관의 한 분야로서 출발한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수집한 미술품을 보관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설립됐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술 문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인류의 귀중한 대표적 문화유산을 수집·보존·조사·연구 및 전시를 행하는 사회적 기관이 됐다. 미술관의 우선적인 책무는 소장한 작품의 관리에서 시작되지만, 미술품에 따르는 분류와 진열, 보수작업뿐 아니라 작품의 내용에 대한 그 가치를 자리매김하기 위해 전문적 연구 활동을 행해 그 결과를 학술적으로 다룬다. 그리고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도 그 중요성을 소개하고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 활동을 한다. 다시 말해 미술관이 과거 특권계층의 전유물을 과시하기 위한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대중의 요구와 기호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대중 개개인이 주체가 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미술 문화를 창출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립 미술관은 설립자의 취향이 강하고 대체로 소규모이기 때문에 지역 활성화를 위한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경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지역문화예술이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은 배제할 수 없다. 지역민들의 세금에 의해 운영되는 공립미술관은 지역의 공동체적 문화형성에 있어 핵심적인 의미를 갖고있다. 사회의 전통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타지역과의 문화적 의사소통 창구로서 삶의 의식과 시선을 넓혀 대외적으로는 지역의 문화적 긍지를 심어주고 지역 내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민의 향수권 기회 확대 등 문화 복지 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난 16일 출범한 맥스터 증설 민관 공동협의기구의 위원을 재선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영태 의원은 5분 발언에서 “협의기구 위원구성과 선정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해 출범식을 가졌는지 전혀 모른다”면서 “특히 원전에 관한 경주시장 자문기구인 원전범시민대책위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의논 없이 협의위원들을 구성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한 의원은 “이전 맥스터 증설 주민수용성 공론화 과정을 이끌어갈 지역실행기구 위원 선정 때도 공정성 논란에 휩싸여 신뢰를 잃었다”며 “급기야 공론화 과정의 공정성을 주문하던 지역 환경단체 등이 지역실행기구 위원 구성과 관련해 재구성을 요구하며 참여를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은 경주시청에서 재검토위의 재구성과 지역실행기구 구성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재검토위원회 책임자들이 고소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협의기구 위원을 구성하면서 시민의 대의기관인 시의회조차 선정기준이나 사전 논의 없이 담당부서에서 마음대로 선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는 주권자인 시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또 “월성원전 최인근에 거주하는 양남지역 주민들은 협의기구 참여 자체를 거부한 상태에서, 동경주 지역에만 지나치게 치우쳐진 협의위원 구성은 원전피해에 있어 인접 지역으로만 축소 해석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시의회 몫인 2명의 의원들도 사전 설명이나 의논도 없이 구성했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한 의원은 “월성원전에 관한 사업은 경주시민과 시청, 한수원 간 상호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며 “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깜깜이 선정하면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공정성을 믿어 달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 의원은 “협의기구 구성에 관한 기준과 규정을 명확히 밝히고, 그 기준과 규정에 의해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위원을 재구성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순옥 의원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경주시 저출생 문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5분 발언을 통해 “현재 우리가 당면해 있는 저출생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기존 대응방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경주시가 앞장서서 저출생 위기대응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경주시 저출생 극복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제안했다. 먼저 김 의원은 다자녀의 정의를 셋째에서 둘째로 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경주시는 매년 저출생분야에 예산을 120억원 이상 투입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며 “한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하는 ‘합계출산율’이 전국 0.92명, 경상북도 1.06명, 경주시의 경우 0.94명으로, 경북 23개 시·군 중 최하위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김 의원은 “경주시 합계출산율이 1명도 채 안 되는 현 시점에서 경계에 있는 정책대상자를 지원하는 것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자녀가 1명인 사람이 2명을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2명인 가정이 세 자녀 가정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경주시가 셋째가 아닌 둘째 자녀부터 다자녀로 조례를 개정해, 둘째출생 가정부터 다자녀혜택을 부여해 줄 것을 제안했다. 김 의원은 또 출산 자녀수에 따른 공무원 인사 가점부여 제도를 확대 운영할 것도 제안했다. 현재 경주시는 2020년 1월 출생 이후부터 3명은 1점, 4명은 2점 등 공무원 다자녀 가점을 적용하고 있다. 김 의원은 “각 지자체가 다른 도시에서 인구를 가져오는 풍선효과의 단순한 인구증가 정책이 아니라 지자체가 앞장서서 출생을 장려해 인구를 늘리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된다”며 “공무원 조직부터 솔선수범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만큼 셋째부터 적용하고 있는 다자녀 공무원 인사 가점을 첫째부터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의원은 마지막으로 경주시가 경주의 미래를 위해 보다 더 획기적으로 출생을 위한 정책개발과 전폭적인 예산 편성을 당부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가하고 있는 폐아이스팩에 대한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왔다. 서선자 의원은 5분 발언을 통해 폐아이스팩 수거함 설치와 재활용 방법 홍보 등이 필요하다며 이 같이 요구했다. 서 의원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생활 속 거리두기와 개인방역이 강조되면서 주민들의 생활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비대면 비접촉 방식이 사회생활 전반으로 도입된 것이며, 대표적인 예로는 식품의 구매 형태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직접 구매보다는 온라인 구매 증가에 따라 일회용 쓰레기도 많이 배출되고 있다”며 “마트나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지 않고 배송을 받다보니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스팩 사용량도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비대면 온라인 쇼핑 증가로 일회용품이 급증해 쓰레기 배출량에 늘어남과 동시에 아이스팩 또한 쓰레기로 배출되고 있다는 것. 서 의원은 “고흡수성 수지와 물을 혼합해 만드는 아이스팩은 얼음보다 2~3배 냉기가 지속되지만 폐기가 쉽지 않다”며 “전국적으로 아이스팩의 80%가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로 배출되고 15%가 하수구에 버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 의원은 “버려진 아이스팩이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가 해양오염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어패류를 통해 미세 플라스틱이 밥상에 오를 수 있으며, 하수구가 막힐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이스팩을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냉찜질용 또는 전자렌지에 가열해 온찜질용팩으로 재활용하거나, 용기에 담아 방향제 오일을 첨가해 방향제로 쓸 수 있고, 화분 위에 놓아 보습을 유지하는 등 아이스팩 재활용 방법을 설명하기도 했다. 서 의원은 “아이스팩 재사용으로 쓰레기 감량과 환경오염, 자원낭비를 줄일 수 있다”면서 “아이스팩 재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재활용 방법 등에 관한 내용의 홍보 또한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서 의원은 “아이스팩 수거함을 경주시가 제작해 각 읍면동 주민센터와 아파트에 비치해 수거하고, 신선 식품을 판매하는 전통시장이나 반찬 배달 등에 재사용할 수 있도록 순환 재사용의 플랫폼을 생성해야 한다”며 “또 이를 통한 새로운 일자리 또한 창출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경주시가 체류형 관광활성화와 관광소비지출을 올리는 등 부가가치 높은 관광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동해 의원은 5분 발언에서 먼저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매출의 80%에 해당하는 쇼핑을 하는 ‘2:8 법칙(파레토의 법칙)’을 들며, 모든 산업에서 고부가가치의 경제적 효과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의원은 “경주는 홍보자료 등을 통해 연간 12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고 홍보하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실제 경기 상황, 도시위상을 볼 때 그에 따른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서 “1980년대까지 국민 누구라도 관광 일번지하면 무조건 경주를 꼽았지만, 지난 30여년동안 글로벌 관광시대로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관광경주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맞춤화된 가족단위 관광객이 찾는 곳, 쇼핑과 먹거리가 있는 젊은이들의 관광지, 야간관광문화가 있는 도시를 만들지 못하면 또 한 번 5대 관광 거점도시 탈락과 같은 수모를 겪을 것”이라며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언제 또 닥칠지 모르고 타 지자체는 물론 외국에서도 새로운 관광 상품의 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우려가 앞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의원은 “지금부터라도 질적인 성장 즉 고부가 관광, 인당관광소비율을 높이는 관광정책으로의 전환이 우선적으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일 관광보다는 다양하고 고부가가치 있는 야간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고 상시운영토록 해 체류형 관광도시로 발전시키는 정책이 절실하다”면서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과 동부사적지에 정기적 신라고취대 행진과 월정교, 동궁과월지로 이어지는 야간 관광콘텐츠 발굴도 시너지 효과를 한층 높일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도시야간경관 조명에 대한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며 빠른 시일 내 친환경적이고 품격 있는 야간경관가이드라인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많은 예산이 들겠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목한 주·야간 정기시티투어의 운행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동해 의원은 “이 같은 체류형 관광활성화와 인당관광소비지출을 높이는 정책과 과감한 투자만이 경주 경제와 관광도시의 위상을 찾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학교법인 원석학원 이사회가 서라벌대 총장으로 학교 통합을 추진하려는 천종규 교수를 선임하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서라벌대 노조 입장에선 학교 통합은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원석학원은 지난 23일 총장 공모 절차를 통해 제4대 총장에 천종규(47) 교수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신임 총장 임기는 오는 11월부터 4년이다. 천 신임 총장은 2009년 경북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2010년 서라벌대 교수로 부임했다. 서라벌대 교수·학습지원센터장과 학술정보원장, 대학평가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방사선과 교수로 장단기발전계획 재수립 TF팀,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이사회는 총장 공모에 지원한 13인을 대상으로 서류심사를 거친 최종 후보자 3인의 발표와 면접 등을 통한 민주적인 절차로 천 후보자를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라벌대 총장이 선임되자 학교 구성원들은 입장문을 내고 반발에 나섰다. 서라벌대 교원노동조합과 직원노동조합, 총학생회, 총동문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총장 선임은 구성원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경주대와의 통합은 서라벌대 구성원의 반대로 이미 무산된 바 있지만 선임된 천 총장은 경주대와 서라벌대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임 천 총장은 학교 발전 계획서에서 서라벌대와 경주대의 통합을 최우선 방향으로 선정했다. 발전계획서에 따르면 통합이 혁신과 생존의 최고 수단으로 교육부 대학구조개력의 정책방향과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라벌대 구성원들은 “통폐합을 학교 발전계획으로 제시하는 것은 구성원의 의견을 무시하고 폄훼하는 것이다”라며 “대학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하는 것은 총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법상 4년제 대학과의 통폐합은 전문대의 폐교를 말한다. 전문대 총장으로 입후보하면서 대학통폐합을 말하는 것은 우리 대학을 없애자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들은 만약 경주대와 통합이 될 경우 재정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했다. 서라벌대 구성원들은 “이미 경주대는 13개월 급여가 밀려있을 정도로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인 반면 서라벌대는 지난해까지 수익을 낼 정도로 안정적인 구조였다”면서 “만약 통폐합이 된다면 서라벌대 교수와 직원들은 안정적 급여를 보장받을 수 없으며 직장을 잃을 가능성도 크다”고 주장했다. 학교 통폐합에 대해 신임 천종규 총장은 학교 발전을 위해 방안 중 하나임을 강조했다. 천 총장은 “서라벌대학의 발전을 위해 여러 방안 중 하나로 통폐합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구성원이 원하지 않는다면 통폐합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성원들의 반발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제 서라벌대학도 변해야한다”고 말했다.
애매한 감사결과 발표에 갈등만 증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