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상사 황윤석 대표는 평소에도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봉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지역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한결같이 봉사하는 아내를 늘 봐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가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계속 보다 보니 어느샌가 아내의 열정에 제가 보조를 맞춰주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자원봉사센터에서 활동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몇 번 하다가 관두겠지’하고 생각했는데 너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아내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오니 저 역시도 자원봉사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가장으로서 자원봉사하기를 위해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고, 대신 자원봉사자들에게 할인을 해주는 가맹점으로써 자원봉사자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고 싶어 자원봉사자 할인가맹점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역의 많은 자원봉사자분들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 목욕봉사, 사랑의 밥차 같은 걸 많이 봐왔습니다. 비록 조금이지만 자원봉사자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자원봉사자 할인가맹점을 하게 된 게 즐겁습니다” 대양상사는 양정로 340(용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자카드를 제시하면 현대자동차 정품 부품의 5%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흑백사진으로 경주의 근대 끝자락과 현대를 복원하는 일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더구나 경주에서 1세대 사진가로 살았던 최원오(崔元伍, 1917~1999) 선생의 작품들이라면. ‘경주문화(제25호)’에 실린 ‘낚시하는 사람’은 이미 경주에 널리 알려진 사진이다. 그러나 그 작품이 경주의 1세대 사진작가 최원오 선생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최원오 선생은 자신의 삶을 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으로 ‘사진’을 선택했지만 많은 이들과 교감하면서 울림이 되어 숱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전설로 남아있다. 선생은 1917년 경주에서 태어나 ‘별천지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일생을 사진 작업과 지역사회 문화발전에 기여했다. 일찍이 공보부가 주관한 신인예술상 경연을 비롯해 당대 최고의 무대였던 동아사진콘테스트에 입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으며 1962년에는 경주사진작가협회의 모태가 된 경주포토클럽(KPC)을 창립해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그의 생전 업적은 나열하기 쉽지 않다.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한 인간미로 지켜보며, 문화유적과 문화재가 산재한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흘렸을 땀의 결실이었다. 선생은 때로 미쟝센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꾀하고 이웃과 가족을 대상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사진으로 남기는가하면, 모두가 향유해야 할 경주의 문화재를 기록해두었다. 그래서 경주의 지난 일상과 사람들은 사진 속에서 영원히 존재한다. 선생이 마주쳤던 그때의 경주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선생의 렌즈 속으로 들어가 본다면 사진 속 수많은 눈빛과 기억들이, 당시의 많은 문화유산이 되살아나 빛을 발할 것이다. 그래서 사진으로 일컬어지는 ‘기록’의 힘은 대단하다. 선생은 자유로운 눈으로 경주의 곳곳을 담아내고자 했고 개인전과 동인전을 당시 ‘다방’에서 열었다. 선생의 아드님인 최용대 화백의 내남면 집을 찾아 인터뷰 하는 내내 마치 광산에서 귀한 보석을 발견하는 희열이 느껴졌다. 차곡차곡 귀하게 보관되고 있던 사진과 도록, 필름들은 그 양이 엄청났다. 부친을 회고하는 최 화백의 기억과 함께 흥미진진한 경주의 현대 풍경을 소환해냈던, 그래서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생의 사진들로 많은 시민이 지나왔던 경주의 시간과 공간에 대해 공유하게 되는 계기를 허락해 준 최용대 화백에게 감사드린다. 본 기사는 2회에 걸쳐 연재되며, 한평생 1세대 사진가로서의 삶과 뛰어난 선생의 작품에 대해 조명하고 선생의 작품들을 아카이빙(archiving)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려 한다.
고대 동북아에는 신석기 시대 이래 샤머니즘적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요소가 문자로 정착시킨 것이 향가였다. 일본 만엽집 속의 향가 역시 동북아의 샤머니즘적 제의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몇 천 년의 샤머니즘 사회에 유교와 불교문화가 들어오면서 샤머니즘적 요소를 습합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라의 향가에는 불교적 요소가 유교와 샤머니즘적 요소를 상당 부분 대체한 상태였다. 불교 문화가 꽃을 피울수록 향가는 샤머니즘적 고유성을 잃고 쇠퇴해갔다. 그러나 일본 만엽집에는 신라와 달리 샤머니즘과 유교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만엽집 향가에는 불교적 색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반도의 향가와 만엽집 속의 향가를 검토해봄으로써 불교가 한반도에 끼친 영향을 살필 수 있고 불교 이전의 샤머니즘과 유교 문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만엽집의 향가를 통해 불교가 들어오기 전 동북아에서 주류문화를 이루고 있던 샤머니즘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샤머니즘과 유교와 불교라는 세 가지 문화요소가 어떠한 과정으로 대체와 습합이 이루어지다가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인 역시 만엽집의 작품들이 향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일본 민족의 정체성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가 자신의 옛 얼굴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향가를 통해 두 민족 간 상호 이해와 우호선린의 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경주시의 경우 일본의 향가의 본거지인 나라와 교또와 함께 향가를 매개로 교류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만엽집을 해독하고 있다 하니 한 유력 언론인이 곧바로 물어왔다. 옛날 이영희교수가 조선일보에 칼럼으로 게재한 '노래하는 역사'에서 언급한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로 되어 있다는 주장이 맞더냐'는 질문이었다. 이럴 정도로 만엽집의 한반도 언어 관련설은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다. 향가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점은 분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결정적 증거는 신라향가 창작법은 한반도 고대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만엽집 역시 한반도 고대언어를 기반으로 한 향가 창작법을 설계도로 하여 만들어져 있다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향가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신라 향가와 만엽향가에는 한반도 고대언어가 전면적으로 쓰인 게 아니라 보조적으로 사용되어 있었다. 한반도 고대어는 비록 우매한 자를 심원한 향가의 세상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데 불과하였지만, 고대 언어 연구자들에게는 고대 한반도어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만엽집 속의 향가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거인(渡去人)들에 의해 다수의 작품들이 창작된 것이 거의 확실 하였다. 백촌강 패배 이후 한반도로 부터의 도거인(渡去人) 유입이 상당수 있었고, 당시 일본 사회에서 한반도어는 문화어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촌강 패배이후 100여 년이 지날 무렵 향가가 사라지게 된 데는 한반도 언어를 구사하던 사람들이 점차 소멸된데 기인하였을 것이다. 향가의 존재에 필수적이었던 한반도어의 인적 기반을 상실한 것이다. 향가는 표의 문자와 한반도 언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었다. 논의를 확장시키면 만엽집은 상당부분 고대 한국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 보아도 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점은 고대 일본어가 얼마나 향가에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 별도의 연구 후에 결론 내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반도어를 모태어로 하지 않고는 만엽집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만엽집의 해독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협조가 필수적이지 않는가 생각된다. 향가 창작법에 의한 향가의 전면적 재해독은 필연적으로 닥쳐올 미래일 것이다. 향가는 한일 두 민족 문화의 최고(最古) 원류에 해당된다. 이토록 중요한 것이 지금까지 잘못 해독되고 있었다. 향가가 첫 해독된 지 103년이 흘렀다. 일본의 경우 1070년이나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두 나라의 향가 해독은 모두 표음문자 가설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졌다. 한일 양국의 연구자들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가설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러기에 향가이든 만엽집이든 다시 원점에서 해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항공기 비행에 있어 귀환불능점이란 것이 있다. 비행기가 출발했다가 너무 멀리 가서 연료부족 등을 이유로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말한다. 향가는 한일 두 민족에게 귀환 불능점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느 연구자가 필자에게 말했다. 너무 긴 세월 연구해 놓았기에 비록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비록 당신의 이론이 옳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까지 하였다. 한일 두 민족이 반환 불능점에 대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반환 불능점이 없는 민족이라고 믿고 싶다. 향가는 표의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만엽집은 향가였다. 이것이 그간 칼럼의 결어이다. *오늘로써 향가와 만엽집에 대한 칼럼을 마치게 되었다. 졸필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지난 6개월간 진행된 총 25회의 칼럼 중 부정확한 사실이 있었다면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며 용서를 빈다. 아울러 필자에게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주신문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향가의 힘에 의해 더욱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AI, IOT, OTT 등 새롭게 부상하는 사업 분야와 영화, 홍보, 마케팅 등 학생들의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과목들이 속속 개설되고 있다. 선덕여고(교장 권영라)는 4월부터 시작되는 온라인공동교육과정에 ‘정보 통신’ ‘영화의 이해’ ‘커뮤니케이션’ ‘문학과 매체’ ‘고급 생명과학’ ‘국제정치’ ‘심화 영어 작문II’ 등 7개 과목을 개설한다고 밝혔다. 특히 정보 통신 과목은 SKT IOT사업본부 매니저인 유현주 씨가 미국 현지에서 강의를 진행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스마트 시티, 자율주행 등의 주제로 34차시에 걸쳐 생생한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를 들려줄 예정이다. 유 씨는 1997년부터 IT업계에서 신사업 분야를 개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마트시티 구현을 진행했다. 영화의 이해 과목은 영화사 씨네주의 엄주영 대표가 맡았다. 엄 대표는 동아수출공사, LG미디어, CJ E&M의 영화마케터를 거쳐 ‘기묘한 가족’ ‘핸드폰’ ‘반드시 잡는다’ ‘아이들’ 등 다양한 장르를 개척했다. 최근에는 한재림 감독, 배우 박해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을 캐스팅해 항공 재난영화 ‘비상선언’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학생들 사이에 사전 질문이 가장 많은 과목으로 프리랜서 마케터인 박인정 씨가 진행한다. 영화사 두인컴, 한맥, 씨앤필름 등에서 홍보, 기획 등을 맡으며 프로모터를 담당한 마케팅 전문가다. 홍보 컨셉 잡기, 실전 마케팅 기획서 작성 등 실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학과 매체는 신문·방송학과 등 미디어 관련 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신청하는 과목으로 선덕여고 류봉균 교사가 진행한다. 다양한 기사 작성에 대한 실습을 통해 소속 학교의 실제 기사를 작성해 신문사에 제공하는 신문기사작성과 도서, TV, 영화, 음악, 인터넷 등 미디어의 장·단점을 이해하는 미디어 비평의 내용으로 진행한다. 고급 생명과학은 권정혜 교사, 국제 정치는 김병진 교사, 심화 영어 작문II는 김현정 교사가 진행한다. 김현정 교사는 2020년 1학기부터 꾸준하게 영어 과목을 개설하면서 관련 학과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영작첨삭지도를 하고 있다. 권영라 교장은 “올해는 온·오프라인 겸용 교육모델을 개발해 코로나19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쌍방향 교과서’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쌍방향 교과서의 근간은 ICT를 활용한 소통에 있다. 이번에 신규로 개설한 과목 역시 이러한 트랜드를 반영해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주)이 주최하고 (재)경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한수원아트페스티벌 2021(HAF 2021)’의 레지던시페스타가 경주예술의전당 4층 알천미술관 갤러리해에서 진행되고 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란 예술가들에게 일정기간동안 작업실 등 창작생활공간을 지원해 작품활동을 돕는 사업으로, 한아페의 레지던시페스타는 경주의 첫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내일을 위한 에너지 (Energy for Tomorrow)’라는 주제로 마련된 이번 리제던시페스타는 ‘역사를 통해 힘든 현재를 극복하고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제작하고 선보이게 된다. 선후배 작가들이 교류하며 더 나은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이번 레지던시페스타는 원로작가로 한국화의 거장 박대성,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로 안창홍, 현실과 작가 내면의 세계가 만들어낸 예술을 보여주는 오원배, 중견작가 김승영, 김남표, 손동준, 임태규, 박기진, 진 마이어슨(Jin Meyerson), 크리스 로(Chris. Ro), 신진작가 차정아, 김지윤이 참여해 총 2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기간 동안 평면, 입체, 설치, 디지털미디어 등 작품제작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와 전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연계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레지던시 기간 이후 3년간의 결과물로 같은 공간에서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며 VR기술을 이용하여 온·오프라인 모두 즐길 수 있도록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레지던시에 참여한 오원배 작가는 “1979년 경주박물관 목 없는 불상을 처음 접했을 때 당시 암울했던 시대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그 기억 속 역사를 다시 끄집어내기 위해 경주 남산과 박물관을 다니면서 그 이미지를 수집하며 영감을 얻고 있다. 영상작업은 시간을 표현할 수 있지만, 회화는 장면에 의해 드러난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경주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상으로 되짚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재)경주문화재단 관계자는 “유명 작가들이 내일의 경주를 표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고, 민감할 수 있는 작업공간을 오픈하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해주셔 감사하다. 레지던시페스타를 찾아주는 관람객들에게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면서 “레지던시페스타를 통해 미래의 경주를 디자인하며, 국제적인 아트페스티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혀다. 한아페 2021레지던시페스타 오픈스튜디오는 경주예술의전당 4층 알천미술관에서 주말인 27일, 28일 사전예약자만 참여할 수 있으며, 경주문화재단 유튜브채널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레지던시는 3월 30일까지며, 전시는 4월 6일부터 5월 16일까지 갤러리 해에서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경주문화재단 홈페이지(www.gjfac.or.kr) 및 한수원아트페스티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HAFESTA)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경주출신 미술가 최정윤 작가가 참여하는 포스코미술관 기획전 ‘예술가로 사는 것’이 지난 3월 17일부터 시작돼 4월 27일까지 테헤란로 포스코 빌딩 지하1층 포스코 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김나리, 이정록, 정보영, 정직성, 최순임, 홍인숙 작가 등 20년 이상 작품활동해 온 중견 작가들이 함께 초대되어 7인전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최정윤 작가는 검(劍)과 꽃으로 대별되는 설치 조형물을 선보였다. 레진과 소금, 스테레스 스틸과 실 등으로 검과 꽃을 형상화 한 작품은 약 5년 전부터 최정윤 작가가 몰입해온 작품 주제다. 이들 조형물들에 대해 최정윤 작가는 검을 부와 권력으로 상징되는 인류 역사의 실체라고 보고 여기에 소금을 사용한 것 역시 생명성과 종교성,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계에서는 꽃과 열매가 검과 동질적인 욕망의 찰나적 존재물임을 표현한 것이다. 또 꽃을 장식한 다양한 색의 실은 실이 가진 주술적인 성격과 인간세상의 다양한 욕망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검에 도사린 직접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권력 및 욕망과 꽃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본질적인 욕망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에게 내재된 욕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최정윤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미술부 활동을 시작해 경주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작업 초기에는 도예작업을 주로 해오다 지금은 설치미술을 주로하고 있다. 초기에는 정(鼎)으로 대별되는 삼족기(三足器)를 제작, 인간의 절대적 권위를 위시한 욕망을 그 속에 담았다. 이 정은 세월이 흐르면서 검(劍)으로 형상을 바꾸었고 다시 꽃과 열매로 변해갔다고 회고한다. 그런 한편 이런 재료가 주는 의미와 언어성을 조형에 접목하기 위해 소금과 실 등 재료를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30년 넘게 미술 작업을 해온 최정윤 작가는 50세 이후에 비로소 자신이 전문 작가가 된 듯하다며 예술세계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토로했다. 젊어서부터 확고한 작품관으로 명작을 남긴 작가들은 천재라고 인정하면서도 꾸준히 세월을 견디고 쌓아 완성된 작품세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특히 익숙함에서 오는 습관을 탈피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삶이라 규정하며 이런 작가들이 구현한 전시회를 통해 빠르게 사는 현대인들이 느리게 사는 삶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다. 매년 각종 전시회에 초대되어 작품세계를 알려오던 최정윤 작가는 2019년 5월에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퍼스널 스트럭처(Personal Structures)’ 전시에서 베네치아섬 팔라조 벰보(Palazzo Bembo)의 유러피안 컬처 센터(European Cultural Centre, ECC)에 5월 11일부터 11월 24일까지 작품을 전시해 한국 아티스트의 위상을 자랑한 바 있다. 한편 이번 전시회에 초대된 7인의 작가들은 매주 포스코 미술관에서 기획하는 ‘작가와의 대화’를 가지는데 최정윤 작가는 4월 14일 오후 6시에 예정돼 있다. 이 특별한 대화는 코로나 현황을 감안하여 포스코 임직원들과 미리 신청한 일반인 등 20인에 한해 열린다. 관심 있는 애호가들은 포스코 미술관에 미리 사전 신청하면 된다.
(사)보훈무용예술협회 경주지부가 지난 21일 채움아트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첫발을 내딛었다. 이날 창립총회에서 정동극장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정현 씨가 초대 지부장으로 선출됐다. (사)보훈무용예술협회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국민의 호국, 보훈 의식 및 애국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창립한 단체다. 황정현 초대 지부장<인물사진>은 “역사와 문화예술 도시 경주에서 활동하는 전문예술인으로 구성된 (사)보훈무용예술협회 경주지부는 20~30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전통문화예술 및 창작 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경주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면서 “회원들 한명 한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여 건강하고 탄탄하게 성장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보훈무용협회 경주지부는 화려한 공연문화예술 활동뿐 아니라 경주지역의 문화예술에 소외되거나 많이 접할 수 없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획공연 및 찾아가는 문화예술제공, 다양한 콘텐츠로 비대면 공연 기획 등 경주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접하고 누릴 기회를 창출해 갈 예정이다. 황 지부장은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뿐만 아니라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이 보훈무용예술협회 경주지부를 통해 꿈을 펼치고 시민들과 관객들에게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젊은 패기와 열정, 창의적인 생각과 열린 마음을 가지고 활동하는 경주를 사랑하는 회원들이 모였다. 이들과 함께 문화예술은 물론 다양한 인적 봉사활동으로 경주시민과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협회의 창립 취지와 맞는 보훈을 펼쳐가겠다”고 덧붙였다. 황정현 지부장은 한성대 무용학과를 졸업했으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정동극장 경주사업소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의정부 시립무용단원을 역임했으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이수자로 회룡무용제 전국무용 경연대회에서 종합대상(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현재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하며 후학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편 (사)보훈무용예술협회 경주지부는 지부장 황정현, 부지부장 임설아, 사무국장 김동환, 상임이사 이장은, 이사직에 김도훈 외 3명, 감사직에 이호준 외 1명, 고문직에 주영희 외 1명, 그리고 최소혜 등 2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단체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라는 말처럼 노화가 진행되면서 이른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게 되는 등 수면 패턴의 변화가 생긴다. 이런 수면 패턴의 변화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본다.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대미술계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젊은 작가 3인이 뭉쳤다. 우양미술관은 대상과 대상, 혹은 관람자 사이의 빈 공간으로 정의되는 네거티브 스페이스의 예술적 가능성을 조망하고자 2021 우양미술관 첫 기획전 ‘네거티브 스페이스’전을 1층 전시실에서 선보이고 있다. 네거티브 스페이스는 통상적으로 사진, 건축, 조각, 미술 등의 장르에서 오브제가 차지한 이외의 공간을 일컫는다. 강은혜 작가의 작업은 공간에 중첩된 무수한 선들이 네거티브 스페이스를 드러낸다. 작가는 공간의 낯선 느낌에서 영감을 얻어 기하학적 요소인 선을 개입시킨다. 그리고 네거티브 스페이스를 구성하는 선의 요소들은 전적으로 보는 이의 시점변화에 기대어 관람자의 시각적인 반응이 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 된다. 이 작업은 밀집된 실뿐만 아니라 실 내부의 네거티브 스페이스에 대한 탐구다. 강은혜의 작업은 신체적 움직임과 시점의 변화, 그에 따른 실과 실 사이의 빈 공간들이 조응하며 관람객들에게 시지각적으로 관여한다. 작품 ‘네거티브 볼륨’은 보는 관점에 따라 공간이 채워져 보이기도 하고, 그사이 움직임에 따라 시야 안에서 시각적인 현란함이 느껴진다. 공간에서 실들 이외에 비어 있는 공간이 네거티브 스페이스고 그 공간 또한 작품의 일부라고 말하는 강은혜 작가는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기하학적 기호인 선을 매개로 작업을 한다. “저에게 선이란 매 순간의 찰나며, 그 찰나들이 모여서 이루는 시각의 초점 공간의 기억, 이동, 여행, 관계 그리고 무언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간에서 선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섬유 재료인 실을 이용하고 있죠. 긴장감 있는 선 안에 다양한 부드러운 터치와 감정을 녹여낼 수 있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간 안에 선들을 설치하면서 시각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조금 더 공감각적인 요소를 끌고 오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작가. “기타 줄을 이용한다거나 실들이 가지고 있는 텐션을 이용해 이 공간 자체가 울림통이 돼 실을 튕긴다거나 하는 어떤 행위를 통해 소리를 갖고 올 수 있는 혹은 어떤 냄새라던가 다른 감각적인 요소를 가지고 와서 실 안에 같이 구현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애나한 작가는 페인트, LED 라이트, 커튼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공간을 구획하고 평면적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펼쳐낸다. 색을 입은 평면적 요소들은 삼차원 공간으로 확장된다. 애나한 작가의 작업은 일반적으로 회화에서 시선을 끄는 캔버스 표면뿐 아니라 캔버스를 둘러싼 공간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역동성을 드러낸다. 작가가 구획한 전시장 내 벽은 공간을 나누고 차단하지만, 그 벽에 마련된 마름모꼴의 창은 벽 너머 또 다른 공간과 조응한다. 작가의 조형언어인 벽과 창은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네거티브 스페이스를 관람객에게 드러냄으로써 이미지화되고 배경은 그 자체가 조형요소로써 능동적으로 다가간다. 이사를 많이 다녔던 작가에게 공간작업은 그 시기 공간과 공간적 특성에 대한 고민과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된다. 코로나 시대, 집에 머물면서 여행에 대한 욕망에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 “비행기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결국 하늘이 주된 모티브이긴 하지만 그 비행기 창문을 활용한 구도를 사용한 작업이죠. 갇힌 미술관 공간에서도 네거티브 공간이 만들어지고 또 비행기 창문을 통한 그런 추상적인 이미지로서의 네거티브 공간이 같이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감정과 주어진 기획, 공간 안에서 작업을 풀어나가고 있지만, 앞으로는 문학이나 주변 사람들의 감정 등 외부 이야기들을 저만의 시각적인 언어로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엄익훈 작가의 작업은 금속 조각을 이어 붙여 빚어낸 추상 조각에 빛을 투과해 구상적 그림자 이미지를 배경에 그려낸다. 작가의 작업은 조각이라는 매체적 한계를 넘어서 추상 조각과 구상적 그림자가 존재와 부재 사이의 불확정적이고 모호한 지점을 담아낸다. 의도적으로 벽면에 드리워지는 조각 너머의 그림자 공간은 개인적인 기억, 경험,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내러티브를 그려낸다. 빛을 매개로 관람객에게 인지되는 엄익훈의 네거티브 스페이스는 기억의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써 개인적 경험이 환기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첫 번째 개인전을 하던 중 홀로 전시장을 관람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작품을 둘러보던 중 전시장 천정의 할로겐 조명이 작품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 뒤로 작품 그림자가 투영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특별해 보였습니다” 추상작품을 만들되 구상적인 그림자가 나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작가는 이후 3년 동안 실험과 연구를 통해 현재 작품이 나오게 됐다고. 처음 접하는 관람객은 평면의 그림자에 매료돼 허상의 이미지에 먼저 눈이 가지만 어느새 시선은 실제 조각 작품에 머무른다. 흔히 삶이 곧 예술이라고 하는 것처럼 좀 더 가까운 소재를 통해 공감이 가는 예술을 하고 싶다는 작가. “앞으로는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껴왔던 사건, 사고 등 사회적 이슈 등을 제 시각에서 명확히 전달해 보고 싶습니다”
인생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꿈꾼다고 다 이루어질 수 없지만 한편으론 그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 건 그 꿈을 이룰 시간과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가정형편이나 부모의 반대, 기타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두어야 했던 공부나 예술 활동을 중년이나 은퇴 후에 찾는 사람들을 보면 성취도를 떠나 그 간절함을 엿볼 수 있다. ‘돈키호테 피디’로 유명한 엄기백 감독도 그 중 한 명이다. 명성 높은 KBS드라마 피디와 KBS드라마의 산실인 수원 드라마 센터 센터장, 경주문화재단사무처장 겸 예술의전당 관장 등 남들이 보기에 모든 꿈을 이루었을 것 같은 엄기백 감독은 실상 꿈을 접은 채 평생을 산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바야흐로 청춘기에 가졌던 ‘배우’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맨땅’에 섰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다니며 배우의 꿈을 키웠던 젊은 시절의 엄감독이 꿈을 포기하고 연출자로 돌아선 이유가 있었다. “사투리가 심했던 탓입니다. 당시에는 경상도 사투리 쓰면 아무도 써주지 않았어요. 알다시피 그걸 고치기가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대학 다니면서 경주말로 대본을 만들고 연극도 했지만 당시의 냉엄한 프로 세계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다. 숫제 대놓고 연기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말로 가슴에 비수를 꽂은 교수도 있을 정도. 어쩔 수 없이 연출을 택한 엄기백 감독은 그 후 40년 동안 연출자로서 자신이 동경한 세계를 누볐을 뿐이다. “2003년 영화 ‘황산벌’이 처음 나왔을 때, 대학시절 제가 만든 연극이 이런 식의 기획이었다는 생각에 얼마나 신기했던지 모릅니다. 드디어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지요. 그 후 지방색 드러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지요. 심지어 공중파에서 사투리 쓰는 연예인들을 간판 진행자로 내세우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자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생활인으로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었고 배우로 돌아섰다가는 자신이 잡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데 쉽게 모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고백한다. “아직도 가족들은 저를 향해 ‘해보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자유롭게 살았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남편으로,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작업의 특성상 연기자들의 스케줄을 맞춰야 하고 시간적인 속박이 늘 따라 붙다보니 야간작업도 많았지요. 마치면 연기자·스텝들과 어울려 회식도 해야 했고... 이런 내막을 일일이 말할 수 없지요. 배우에 대한 엄 감독의 열망은 실상 해묵은 소원이었다. 엄 감독을 처음 만나 인터뷰한 것이 KBS수원 드라마 센터장으로 활약하던 2005년. 당시 엄 감독의 꿈이 고향 경주로 돌아가 경주에서 작은 극장을 지어 연극이건 뮤지컬이건 마음껏 해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당연히 연기자의 꿈도 포함돼 있었다. -“작은 배역은 있지만 작은 배우는 없지요” 거장 옷 벗고 공개 오디션 참가해 단역배우 획득 그 꿈이 2011년 경주문화재단 사무처장 겸 경주예술의전당 관장으로 재직하며 일부나마 이루어지나 싶었지만 짧은 임기로 그 꿈을 이루기는 힘들었다. 2013년부터 경주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활약하며 작품활동한 것이 오히려 꿈의 일부나마 이룬 일일지도 모른다.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 동리탄생 100주년에 맞춰 제작된 뮤지컬 ‘무녀도 동리’는 그 꿈의 한 조각. 그러나 역시 연기자, 배우를 향한 자신의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엄 감독이 배우로 꿈을 키우겠다고 본격적으로 벼르기 시작한 것은 이런저런 사회적 타이틀에서 완전히 물러나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지 않았을 때부터다. 자신의 영향력이나 힘을 쓰지 않는 범위에서 오로지 ‘배우 엄기백’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을 그때부터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경주시립극단 예술감독 퇴임 후 2019년 ‘예슈아’, 2020년 10월에 자신이 반드시 연출하고 싶어한 ‘천로역정’을 재해석한 ‘A dream’ 등 내면을 울리는 작품을 내놓았을 때 기자의 관심사는 과연 이번 작품에는 ‘엄기백 감독이 직접 출연하는가?’였다. 그러나 대답은 ‘No’. 연출자인 자신의 본분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신념 탓이다. 그런 그가 마음 단단히 먹고 공개 오디션에 참가해 본격적인 배우로 시동 건 작품은 2019년 8월, ‘악인전’을 연출한 이원태 감독의 ‘대외비’라는 작품이다. ‘배우 엄기백씨’의 말로는 ‘대사까지 있는 임팩트 있는 단역’!! KBS 유명 PD로 TV문학관을 비롯,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악극 등 50편 가깝게 연출하며 수원드라마센터장까지 역임한 연예계 거물이 공개 오디션을 통해 단역을 맡았다는 사실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엄기백 감독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이 나이에 연기하려는 내 진심이 정확하게 어필됐고 그들이 원하는 바에 맞았을 뿐입니다” ‘엄기백 감독은 작은 배역은 있지만 작은 배우는 없다’는 말로 영화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명하게 설파했다. 그러나 워낙 연예계 유명 인사이다 보니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편한 일도 자주 일어난다. “감독이나 조연출, 다른 배우들이 나를 예우해주려고 할 때마다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모릅니다. 나는 단역 배우일 뿐이니 그에 걸맞은 대우가 당연한데 말이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연출해온 자신의 경험 상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도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센스는 남다르다며 ‘그 덕분에 대사 없던 단역에 대사까지 넣어주더라’는 깨알자랑도 한다. 경주출신 손기호 감독이 연극과 동시 연출한 독립영화 ‘나는 지금 나를 기억한다(2019)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도 인상적이다. 이 경우는 녹화한 분량에서 ‘뭉턱 잘려나간’ 경우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인정하고 기꺼인 써준 손감독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생활인으로서 절절히 깨우친 무참한 실패의 경험···, 압축된 아픔, 어둠의 세월을 단축된 시간으로 절절히 느껴 경주를 떠난 엄기백 감독의 행로는 다양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편으로는 팍팍한 삶이 때늦게 그를 연단하기도 했다. 자신의 인생을 하나하나 수필로 정리해가고 있는 엄기백 감독은 2013년 격월간 수필집 ‘에세이스트’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고 2년 후에는 400여명 수필가들을 대표하는 회장직도 맡아 봉사했다. 그러나 아직은 야심차고 혈기왕성한 시기,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태어나 처음으로 연기 외적인 일에 도전했음을 밝혔다. “연출이나 연기는 꾸준한 돈벌이는 안 되잖아요.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찾다가 2008년 유럽 배낭여행에서 본 파리의 빵집 노부부가 인상적이어서 2013년 장기간 남의 가게에서 실습하며 창업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 젊은 사람들의 엄청난 도전에 기죽어 포기했다. 이럴 때 마침 후배의 소개로 논현동 사거리에 차려진 모델하우스에서 ‘평택 오피스텔 분양’에 참여하게 되었다. 생소한 분야지만 누군가에게 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일 하면서 계약고가 없어 인간적인 모멸감을 당했고 고객이 남발하는 뻔한 거짓말 약속과 그들이 내지르는 트집과 모욕을 견디기도 했습니다. 그런 한편 소주잔 기울이며 들은 선험자들의 조언과 동료들의 노하우로 나도 모르게 ‘꾼’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문책성 언어폭력, 출근과 동시에 행해지는 유치한 구호, 소신 발표를 가장한 인신공격, 계약고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매도, 두발과 용모까지 걸친 간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비정함에 숨 쉬기조차 힘든 날들이 6개월간 이어졌다. “한 건이라도 올리겠다는 오기에 야비하고 또 비겁해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드디어 가족을 슬프게 또 아프게 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늘그막의 왕성한 모습에 응원하던 가족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충분히 하셨습니다. 이제 좀 쉬세요”라고 했을 즈음 광주시립극단 예술 감독인 후배가 방문해 연출을 부탁하며 엄 감독이 스스로 밝힌 ‘부끄러운 흔적, 오염된 인내만 습득한 시간’이 마무리 되었다. 너무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이라 일체 비밀로 부쳐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자신의 인생이고 어쩌면 이 쓰라린 경험을 통해 사회 저변 숨죽인 고통 속에 있었던 자신을 겸허히 인정하는 모습에서 또 다른 깊이의 성찰이 느껴졌다. 늘 성공가도를 달려왔던 그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돌부리에 걸려 무참히 넘어진 사건을 통해 압축된 아픔과 어둠을 단축된 시간으로 절절히 느꼈을 법하다. 이 사건을 수필을 통해 담담히 관조한 엄기백 감독의 마음이 연기를 통해 표현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명배우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제가 배우가 되고 싶은 이유요? 이제부터라도 정말 저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고 싶어서요.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나이요? 이 나이에 맞는 역할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걸 하면 되지요”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한다’는 말을 하며 활짝 웃는 엄기백 감독, 아니, ‘배우 엄기백씨’에게서 70세 어름, 또 다른 청춘의 아름다운 아우라가 물씬 느껴진다. 돈키호테 엄기백 PD는 가고 조연인 산초판자 엄기백, 단역인 로시난테 엄기백 배우가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그가 어떤 역할로 나타나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선물이 될 듯하다.
최근 강남구에서 시작된 부동산 폭등현상이 서울의 다른 지역은 물론 수도권을 강타하고 있어 위화감을 조성하는 한편 이에 대한 시급한 개선정책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강남 부동산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일까? 여러 가지 도시공학적 입지조건과 발달된 교통 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이유가 되겠지만 강남 거리를 거닐다 보면 ‘아, 이래서 강남강남 하는구나’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하나둘이 아니다. 그 중에 또 하나가 ‘미세먼지 프리존’이다. 강남의 미세번지 프리존 쉼터는 모두 13곳이다.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과 강남세무서 앞 버스정류장에 처음 설치되었고 이어 테헤란로 강남역부터 삼성역 구간에 이르는 버스정류장 9개소에 들어섰다. 심지어 청담역, 역삼역 지하역사는 아예 전체가 미세먼지 프리존으로 꾸며져 있을 정도다. 이 쉼터는 기본적으로 미세먼지에서 자유로운 곳이다. 미세먼지는 지름 10㎛ 이하의 먼지로 호흡기질환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지름 2.5㎛ 이하의 초미세먼지는 폐까지 침투해 심장질환까지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 미세먼지는 코로나19를 옮기는 매개체가 될 우려가 있어 KF80혹은 KF94 마스크를 사용하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지금처럼 황사가 기승을 부리면 미세먼지 농도가 올라가 그렇지 않아도 숨쉬기 어려운 환경을 더 힘들게 한다. 호흡기가 약한 어린아이나 노인, 호흡기 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참기 어려운 시기다. 미세먼지 프리존 쉼터는 이런 걱정을 90%이상 제거해 안전한 호흡을 제공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 들어가 있으면 기본적으로 미세먼지나 황사에서 자유롭고 냉난방 시설과 온열의자 등이 완비되어 계절에 맞은 청량감 있는 온도가 맞추어져 추위나 더위 걱정도 덜 수 있다. 쉼터에는 미세먼지 저감장치와 UV LED 빛을 이용한 살균 시스템을 추가로 탑재해 바이러스 감염 확산까지 방지한다. 여기에 실내에는 버스도착시간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알림판이 있고 휴대폰 유무선 충전기에 U-강남도시관제센터, 소방서·경찰서와 연계된 비상벨 시스템을 구축해 위급상황 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 강남을 거닐다 보면 왜 강남구민들이 이곳에 살려고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따지고 보면 이런 시설들은 굳이 강남구 아니라도 지자체가 마음만 먹으면 설치할 수 있다. 최근 송파구, 구로구 등에서 이런 기능의 쉼터가 생긴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이런 시설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는 것부터 강남이 강남다워지는 시발점임도 분명하다. 다른 구, 다른 도시가 따라가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런 주민편의시설부터 선도적으로 시작할 때 더 이상 강남을 부러워만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지난 1월 1일, 역삼 지하보도 125m 구간이 쾌적한 공기에 다양한 식물이 가득한 미세먼지 프리존으로 변신했다. 1983년 준공된 역삼 지하보도는 노후한 환경 탓에 도시 미관을 해치고 야간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강남구는 기존의 낡고 오염된 외벽을 고압 세척한 후 밝은색으로 도색하고, 지하보도 공간 전체에 공기 정화 식물을 심어 쾌적한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플라스마 방식의 공기청정기와 공조기를 설치해 살균·탈취는 물론 미세먼지를 90% 이상 제거하고, 지하보도 내 모든 벽면을 빛·바람·구름 등을 주제로 한 자연친화적 디자인으로 꾸미는가 하면 시간대별로 시원한 물소리와 편백나무 피톤치드 향까지 나와 역삼 지하보도가 통행로 이상의 훌륭한 휴식 공간으로 거듭났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는 지난 1월부터 노인일자리 창출 및 경로당 환경정화를 위해 지역 300개소의 경로당을 대상으로 노인일자리사업 및 사회활동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300명의 노인일자리 참여자 어르신들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씩, 주3회(월·수·금), 월 10회로 30시간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해 올해 12월까지 300개소의 경로당을 대상으로 총사업비 10억2600만원의 국비와 시비를 지원받아 경로당 환경정화(공익형 일자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일자리 참여자는 관할 지역 내에 거주하는 경로당회원으로 65세 이상의 기초노령연금 수급자가 경로회장과 회원들의 추천을 받아 본인의 신청으로 1월초 선정됐다. 주된 활동은 경로당 안팎으로 쌓여있는 먼지, 묵은 때, 거미줄 등을 제거하며 실내·외 화장실 청소, 경로당 주변 환경정화까지 담당하게 된다. 경로당 내 취사나 식기 세척, 세탁은 금기사항임을 주지시키고 있으며, 무엇보다 참여자가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라 넘어짐, 미끄러짐, 골절 등 안전에 대한 참여자의 주의와 낙상방지를 위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활동지도하고 있다. 또한 노인일자리는 코로나 19로 인해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을 지역별로 직접 찾아 현장에서 개인방역 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등 안전교육을 강조하고 일지취합도 찾아가는 서비스로 실시하고 있다. 이제 경로당 환경정비 노인일자리 사업 첫해를 맞아 참여자와 경로당 이용자는 더 행복한 마을경로당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 서로에 대한 존중과 합심으로 나아갈 때 경로당은 더 밝고 깨끗한 쉼터로 바뀔 것이라 기대된다. 특히 2년째 코로나19 시기를 맞으며 소소한 일자리와 봉사의 손길을 요청하는 곳은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어르신이 이용하는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봉사는 우선적으로 필요시 되는 시기로 본 사업의 적정성에 대한 바른 이해와 경주지역 624개소 전 경로당으로의 사업 확산을 위해 노인회는 물론 유관기관과 각 경로회의 노력은 지속 되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 사업은 공익형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저소득 어르신들의 경제적 지원과 사회활동 참여로 노후생활을 영위함은 물론 건강증진과 사회적 관계개선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경로당을 깨끗하고 청결한 쉼터로 만들고자하는 노창수 경주시지회장의 선거공약사업이다. 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은 “일주일에 3회, 한 달에 10번이지만 규칙적인 생활로 내 몸이 먼저 건강해졌고 경로당이 깨끗해져 자주오고 싶다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매우 행복하다”며 “코로나19가 얼른 사라져 회원들 모두가 예전처럼 마스크 벗고 음식도 나눠 먹으며 맘껏 웃으며 생활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경주시지회 관계자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시작한 금번 사업이 지역사회와 사회적 봉사 및 관심으로 ‘깨끗한 경주시 노인환경문화 만들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어르신들에게는 생활의 활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국제로타리 3630지구 경주로타리클럽(회장 조봉래)와 경주지역자활센터(센터장 정희근)는 지난 19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두 단체는 지역 저소득계층 자립지원과 자화사업 활성화를 위해 일거리를 발굴하는 등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경주로타리는 이날 협약을 기념하기위해 135만원 상당의 혈압측정기를 자활센터에 기증해 의미를 더했다. 조봉래 회장은 “지역의 어려운 이웃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뜻 깊은 일에 동참해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들에게 일자리 제공 및 수익증대, 복지향상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등 지속적인 교류활동으로 더 나은 경주를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정희근 센터장은 “그동안 연탄 나누기 사업을 비롯한 여러 사업에 후원과 참여로 많은 도움을 준 경주로타리와 협약을 맺게 돼 기쁘다”며 “좀 더 체계적인 협력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누군가의 까닭 모를 한 방울 눈물로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김동리 시(詩) ‘봄’ 끝 구절이 스친다. 햇살 빗질하는 문학관 뜰, 봄빛 가지런히 빗겨져있다. 샛노랑 덧칠한 산수유꽃망울 못다 감춘 사랑, 그립게 터트려 놓았다. 동리선생 정원에서 옮겨 심은 명자나무 꽃잎, 붉은 입매로 수줍다. 한국문단 양대 산맥의 지평을 이룬 경주가 낳은 소설가 김동리·시인 박목월 두 분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정신의 맥을 잇고자 2006년 건립한 문학관이다. 경주시 불국로 406-3 진현동 550-1번지 토함산 오르는 길목에 똬리 틀고 있다. 신라천년 고찰 불국사를 마주하고 문학의 혼 지피는 발걸음 모으며 간다. 꽃피우기 위해 입덧 울컥울컥 토해내는 꽃샘바람을, 문학의 향기가 보듬고 가는 봄날이다. 여심(女心)을 건드리는 봄바람 연인삼아 걸음한 문학관의 뜨락이 봄빛으로 화창하다. 먼먼 기억을 끄집어내는 여유 꽃잎에 얹혀, 찰나의 봄빛에 혼절하는 순간이다. 회상의 책장을 넘기면 깃 넓은 흰 교복칼라 해맑은 소녀가 시집을 끼고 서성이고 있다. 별밤을 홀딱 새며 원고지 행간을 짓던 소녀의 꿈 조각들, 하늘이 가끔씩 챙겨서 그리운 색깔로 문밖에 걸어두는 나의 무지개를 본다. 동리선생의 ‘무지개’ 싯귀가 황혼의 가슴을 간지럼 먹이는 까닭이다. 가슴속에 무지개 솟는 소리/ 무지개 괴는 소리// 하늘과 땅 사이엔/ 사랑의 무지개/ 이승과 저승 사이/ 다리 놓는 무지개// 동리선생의 본명은 김시종(金始鍾)(1913~1995), 본향 경주에서 부친 김임수(金壬守) 모친 허임순(許任順), 5남매 중 3남으로 출생했다. “무슨 일에서건 지고는 못 견디던 한국 문인 중의 가장 큰 욕심꾸러기, 어여쁜 것 앞에서는 매양 몸살을 앓던 탐미파 중의 탐미파, 신라 망한 뒤의 폐도(廢都)에 떠오른 기묘하게도 아름다운 무지개여” 1995년 영면한 김동리 비석에 1주기를 맞아 미당 서정주가 지은 비문이다. 1934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백로〉, 1935년《중앙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화랑의 후예>, 1936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단편〈산화〉가 잇달아 당선되어 필명을 떨쳤다. 서정주 김달진 등과 ‘시인부락’ 동인을 결성하여 왕성한 시작 활동을 주도했다. 발표한 1백여 편의 시(詩) 중에 『바위』 『패랭이꽃』 시집이 있다. 동리선생 3주기를 맞아 『김동리가 남긴 詩』 유고시집을 발간했다. 김동리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작은오빠 국어교과서에 실린 ‘등신불(等身佛)’이였다. 문학서적이 귀했던 학창시절 새 학기 교과서를 받아오면 내 교과서는 물론 오빠들 국어책에 실린 문학작품들을 섭렵했다. 청소년기에 읽은 ‘등신불’ 까뮈 ‘이방인(異邦人)’ 샤르트르 ‘존재(存在)와 무(無)’ 등, 읽은 감동의 전율은 가슴 속 영원한 떨림으로 잠재돼있다. 1947년 무녀도(巫女圖)⦁1948년 역마(驛馬)⦁1949년 황토기(黃土記)⦁1951년 귀환장정(歸還壯丁)⦁1955년 실존무(實存舞)⦁밀다원시대(蜜茶苑時代)⦁흥남철수(興南撤收)⦁1958년 사반의 십자가⦁1961년 등신불(等身佛)⦁1978년 을화(乙火) 등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키며 현대문학사의 거장으로 족적을 남겼다. 토속신앙과 결부된 샤머니즘에 노출된 종교적 갈등을 인간의 심리에 근원을 두고 그려나간 소설 ‘을화’는 1982년 노벨문학상 본선에 진출했다. 1백여 편의 시와 80여편의 소설, 그리고 수필 평론 등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평판을 심어준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삶과 죽음의 존재론적 우주 관념에 침착된 운명을 끌어안은 작가다. 작품에 밀착된 토착적인 면모는 한국인의 정서에 순응하고 고뇌한 인간적 흔적이다. 화랑의 후예⦁산화⦁무녀도⦁황토기⦁역마⦁까치소리⦁달⦁늪⦁바위 등, 동리선생 영혼의 근원이었던 고향 경주를 바탕으로 일궈낸 작품들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시선으로 작품의 맥을 굳히듯, 옛 궁궐터와 가람 터 돌무지덧널무덤 왕릉을 배회한 걸음이 선하다. 형산강변 서천(西川) 냇물 따라 ‘무녀도’ 배경지 애기청소 소용돌이 꼭지물속을 길어 올린 작가의 안목이 용하다. 신화 속을 더듬어 천년왕궁을 걸어 나온 동리선생의 고뇌에 차면서도 유유자적한 자국이 눈에 어른거린다. 당수나무에 빌던 토속신앙의 풍속을 퍼 담는 글귀가 괸다. 어질고 순박한 사람냄새 고향냄새 서럽기도 하다. 샤머니즘의 갈등에 질문하고 화답한 작품의 깊이를 가늠하는 문학관의 뜰, 동리선생의 시 한 편 빗살무늬 혼령으로 봄빛에 빗겨져간다. 그 밖에 아무것도 없네 내 건너 수풀 너머 언덕 위에 살구꽃 복숭아꽃 개나리서껀 뽀얀 안개 아지랑이 속에 엉겼네 살구꽃 복숭아꽃 개나리서껀 그 뒤에 먼 산 먼 산 위엔 구름 나는 지금 구름을 보고 있네 그 밖에 다른 것은 없네 꽃과 나무와 산과 구름과 그것만 자꾸자꾸 보고 있네 그 밖엔 아무것도 없네.
3월 말부터 경주전역에 벚꽃이 개화하면서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인해 코로나19 차단에 비상이 걸렸다. 문화유적주변과 국내 최대 관광휴양지인 보문단지, 시내 전역에 퍼져있는 경주의 벚꽃은 이미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경주 벚꽃음악회, 벚꽃페스티벌, 벚꽃운동회 등에 역대 최대 관광객이 몰려 명품 벚꽃축제로의 발전을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모든 축제가 취소됐으며 올해도 벚꽃 관련 행사는 모두 취소됐다. 경주는 지난해 코로나19가 가장 확산되던 시기와 벚꽃 개화기가 맞물려 방문하는 관광객들로 인해 예방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야외활동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경주도 벚꽃 개화시기가 되자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벚꽃이 절정을 이룰 3월 말에서 4월 초에는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주에서는 3월 24일 현재 239번 확진자가 발생했다. 특히 최근에는 경주를 찾은 방문객들이 확진자로 밝혀지는 등 타지역확진자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1년 2개월여 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확산여부는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마스크 착용 일상화, 방역규칙 준수에 의한 영업행위 등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격적인 관광시즌을 맞아 몰려오는 관광객을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상황도 못된다. 따라서 코로나19로부터 시민과 관광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는 것밖에는 없다고 본다. 시와 관련 기관에서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예방수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가 요구되며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유적지나 공공시설 등에 대한 예방방역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그리고 식당과 커피숍 등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좌석 간격을 충분히 넓게 하고 손 세정제와 열 체크기 등 예방 용품을 비치하고 방문객 출입 명부를 철저히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식당의 경우 음식 덜어먹기, 위생적 수저 관리, 종사자 마스크 쓰기, 매일 2회 이상 소독 등을 해야 한다. 그동안 코로나19 확산자 감소 사례를 보면 지킬 것만 잘 지키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관광객을 맞는 경주시민들의 철저한 예방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경주시가 경주시의회에 제출한 ‘경주시 시내버스 정책심의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보류됐다. 시의 조례안은 시내버스 재정지원의 투명성과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해 불거진 시내버스 재정보조금 투명성 논란과 관련해 시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보여 진다. 이 조례안은 시내버스 운영개선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자문하기 위해 전문가와 시민들로 구성된 시내버스 정책심의위원회를 구성·운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위원회 위원 수는 19명으로 정했으며 위원장은 부시장, 당연직 위원은 교통업무 담당 국장으로 하고 시장이 위촉하는 위촉직 위원은 시의원, 대학교수, 직능대표,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명시했다. 또 위원회 기능으로는 시내버스 운영정책 방향, 운송원가 산정, 보조금 지원 기준과 방법, 경영개선 등을 심의·자문역할을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 조례안이 시의회에서 제동이 걸린 것은 바로 위원회 구성원 문제다. 시의회는 위원회에 학생, 출퇴근 시민, 고령층 등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실수요자가 제외돼 시내버스와 관련한 전반적인 대책마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시는 시내버스회사에 매년 70억원 안팎을 지원해 왔으며 지난해에는 16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했다. 그리고 회사 측의 보조금 불법사용 논란으로 보조금 일부를 환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의 조례안을 보면 말고 많고 탈도 많은 시내버스 운영에 대한 감시기능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둔 듯 보인다. 시로서는 시내버스 제정지원금의 투명성과 적정성 확보에 맞췄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겠지만 시내버스 운영에 많은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시민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하라는 의미를 간과한 듯 보인다. 시가 시내버스를 잘 관리하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려면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서비스를 확보해주는 내용이 보완되어야 한다. 통상적인 인사들로 채워지는 위원회가 아닌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바람이 직접 전달될 수 있는 위원을 위촉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길 바란다.
경주 시민들이 즐겨찾는 황성동 황성공원 내 무의공武毅公 박의장朴毅長(1555~1615)의 공적을 기리는 박무의공비(朴武毅公碑)가 보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어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경주성 탈환에 참전해 경주에서 왜적을 막아낸 박무의공을 기리기 위해 1861년 세운 박무의공비의 보호비각 지붕의 일부 기와들이 주변에 떨어져 있어 안전이 우려되고 있다.
방송통신대학은 한 때 가난한 고학생들, 배움의 시기를 놓친 만학도의 갈증을 푸는 대학으로 인식되었다. 처음 방송통신대학이 생긴 것이 1972년 서울대학교 부설로 2년재 초급대학과정 5개과가 설치되면서 시작됐다. 1981년에는 5년제 학사과정을 신설했고 1982년에 서울대학교에서 분리되며 3개학과를 신설했다. 1983년에는 전국에 학습관을 설치하여 지방학생들의 학사행정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1989년부터는 전문대학과정을 모두 개편해 본격적인 학사과정으로 통일했다. 현재 방송통신대학은 본래의 의도대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추가적인 공부를 원하는 다양한 학구층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대학과정은 5개 단과대학 24개 학과 대학원 과정은 19개 학과를 열고 있으며 경영대학원 7개, 프라임 칼리지 5개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2020년 대학정원은 1500명이다. 마침 방송통신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이어 법학과까지 공부하고 있는 김인현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방송대 다니면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득’이란 글을 올렸다. 자신의 블로그에 실은 글을 다시 퍼올린 이 포스팅에서 한 학기 등록금이 30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반가운 소식과 마이크로 소프트 웨어 오피스 (7만1900원 상당) 무상 사용, 구글드라이버 2TB(11만9000원 상당)무상 지급, 수업중 자격증 취득 사이버 교육(90만원 상당), 각과목당 단과수업비(6만9000상당) 6과목 신청 가능하므로 총 41만4천원 상당, 무상으로 이북과 오디오북을 대요할 수 있어서 하루 8000원씩 계산해 292만원이다. 이를 모두 더하면 연간 무려 415만4900원의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30만원 달랑 내고 415만원을 득본다는 계산. 김인현 씨는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이사로 이미 한양대학교에서 도시공학박사까지 받은 바 있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방송통신대학에서 경영학 전공에 이어 법학전공까지 2차례에 걸쳐 공부하고 있다. 때문에 누구보다 방송통신대학의 특혜를 잘 아는 인물.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대학들이 모두 비대면 사이버 교육으로 전환한 상태다. 이를테면 전국대학의 방송통신화가 코로나로 인해 이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사이버 분야에서 절대고수격인 방송통신대학이 지금보다 훨씬 귀하게 대접받을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모차르트(W.A.Mozart/1756-1791)와 베토벤(L.v.Beethoven/1770-1827)은 고전파의 양웅(兩雄)이다. 모차르트가 베토벤보다 14살 연상이었고, 이들은 빈(Wien)을 중심으로 동시대를 살았다. 이들은 바하(J.S.Bach/ 1685-1750)가 이루어 놓은 음악적 토대 위에 고전파라는 고귀한 성을 쌓아 올렸다. 그 성의 규율은 매우 엄격했다. 협주곡은 3악장으로, 교향곡은 4악장으로 정했다. 1악장은 빠르고, 2악장은 느리고, 마지막 악장은 또 빨라야 했다. 음악의 형식이 정해진 것이다.
요즈음 동네 골목 여기저기선 알 수 없는 꽃향들이 은밀하게 흩어져 나옵니다. 바야흐로 만화방창의 시기가 다가왔다는 속삭임들이죠. 봄은 꽃들만의 계절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무심하게 이 땅을 지켜온 수많은 문화유산들도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신라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경주장항리사지를 찾아 고즈넉한 봄 기운을 느껴보세요. 한수원 본사 입주 이후 담장 하나를 두고 별개의 공간이 펼쳐지는 양북면 장항2리에는 장항리사지와 국보 236호인 장항리 서 오층석탑이 있습니다. 토함산 동쪽으로 내려온 산줄기에 쓸쓸하고도 적막한 절터 하나가 바로 그곳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종소리, 진평왕릉과 함께 폐사지인 장항리사지를 꼽으면서 ‘이 세 가지를 잘 음미해야 신라 문화의 품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장항리사지는 현재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서에 탑 2기가 남아있습니다. 1923년 도굴범에 의해 붕괴된 것을 1932년에 복원이 가능한 서탑만을 새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절터가 있는 계곡은 대종천의 상류로 감은사터 앞을 지나 동해에 이르고요. 경주를 안다고 하는 이들도 이 곳 장항리사지 폐사지를 아는 이는 드뭅니다. 그리고 잘 찾아가지 않습니다. 폐사지의 연화대좌에 조각돼 있는 주먹 불끈 쥔 천진난만한 사자는 익살스럽게 웃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슬며시 사자를 보며 따라 웃어봅니다. 장항사지 동탑 주변에는 탑의 여러 부재들, 즉, 면석부분 2개, 탑신, 지대석인 하대부분, 옥개석 받침 일부분 등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석재 여기저기엔 아직 생장하고 있다는 고착 상태의 이끼류가 저승꽃처럼 끼어 영원성을 더했구요. 동탑의 탑신을 어루만지며 그간의 상흔을 위로해 봅니다. 신라시대 뭉툭한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올랐을 예술혼이 손끝으로도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무심히 나뒹구는 와편에서도 당시 장인들의 손길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기와를 만들며 물로 문지른 자국, 타격 자국, 기왓장 뒷면에는 삼베의 섬세한 조직과 삼베로 누른 자국 등이 화석이 된 그대로였습니다. 경감로가 나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가다가 이곳 절터를 많이 찾았는데 요즈음은 답사팀들이 찾고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절터로 오르는 길은 자연석을 이용해 조성된 길을 거쳐 경사가 급한 지형에 그대로 데크로 길을 만드는 등 정비돼 있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단장되기 전에는 계곡으로 내려가 다리를 건너고 경사가 몹시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가야 했지요. 주민들은 경감로가 신설된 이후부터는 탐방객이 줄었지만 토함산 수목경관 숲이 완성되면 토함산자연휴양림과 함께 연계관광지로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