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야기는 오래가지 않고 짧은 침묵과 함께 하나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소리는 멈춘다. 무슨 판타지소설의 서두 같은가? 아니다. 이건 아줌마가 보는 요즘 세상 이야기다. 남녀노소 불문이다. 장소도 상관없다. 아줌마는 무섭다. 두렵다. 아줌마가 어렸을 때는 흙을 벗 삼아 놀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다수가 개인주택에서 살았고, 집에는 장난감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30분 정도만 어린이용 만화를 보여줬다. 그러니 학교를 파하면 집 밖으로 나가 동네 친구들과 놀았다. 주변에 있는 것을 갖고 놀 줄 알았고 친구들과 지내며 나름 작은 사회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아파트나 빌라, 주택지구라고 불리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모여 살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 다 알 수 없고, 흉악범죄 뉴스라도 나오면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자주 모인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소리는 없다. 미끄럼틀 여기저기에서, 시소에 앉아서, 그네를 타면서도 아이들은 거의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옆에서 가서 들어보면, 지금 보고 있는 게임에 대한 진행이나 감탄사, 아이들과 나누는 카톡에 대한 이야기(둘이 같이 들어가 있는 카톡방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톡을 올리고 있다), 아니면 한 친구가 하는 것을 옆 친구들이 함께 보고 있는 정도다. 어른들이라고 다를까? 식당에서 일행이라고 함께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일행이 하는 일은, 거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고개를 숙이는 일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이해해야 하는가? 스마트 시대에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고 싶은가? 아줌마는 심히 걱정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식 밖의 일들의 모든 원인을 이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로 발전했고,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뤄낸 결과로 엄청난 발전의 그림자는, 빈부격차와 각종 졸부를 만들어냈고, 졸부들은 그 이름에 맞는 갑질을 했고, 그 갑질을 몇 번 학습한 대중들은 ‘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단계를 거치며 몰지각한 사람을 양산했고 그것을 답습한 아이들은 또 어떤 어른들로 자라났는지 안 봐도 뻔하다. 그 결과가 지금 뉴스에서 나오는 각종 갑질과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가 세상에 나온 지 이십 년이다. 뽀로로를 보고 자란 친구들이 20대 청춘들이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것은 그보다 짧지만, 남녀노소를 모두 중독에 빠지게 할 만큼 그 힘은 강력하다. 단순히 대화를 빼앗긴다고, 게임중독에 빠지게 한다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만날 때는 열심히 이야기 나누고, 스마트폰은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한다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인플루언서, 유투버활동을 하면서 이미 그쪽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타당한 이유를 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면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오히려 더 좋게 활용하고 있는 분들도 더러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아줌마는 인터넷 세상은, ‘소통’은 없고 ‘쇼맨십’만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투버가 되었든 아프리카tv가 되었든 그곳은 진정한 소통을 하는 곳이 아니다.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벗을 거기서 만들 수 없다. 거기는 수익창출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한글이라는 문자는 알지만, 글자만 알 뿐, 문장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행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낮다는 소리다. 학원에서 배운 문해력은 테크닉을 익힌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의 크기를 키워야 문해력이 성장한다. 그리고 책 속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의 비장의 무기다.
1852년 헝가리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레메니(Eduard Remenyi/1828-1898)는 함부르크에서 독주회를 연다. 당시 레메니의 연주회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19살 청년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는 이듬해 봄에 레메니와 함께 연주 여행(브람스가 레메니의 반주자 역할을 했다.)을 떠나는데, 이는 브람스 인생의 매우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당시 헝가리는 집시들에게 관대한 편이어서 이들로 인해 집시음악이 성행했다. 집시음악은 비애와 정열이 뒤섞인 이국적인 선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레메니는 여행 중에 집시 풍의 연주를 브람스에게 자주 들려줬다. 이는 브람스가 헝가리 무곡(1869년 1, 2집 출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레메니와 표절시비가 붙어 소송까지 벌이지만, 헝가리 무곡은 30대의 브람스가 작곡가로서 이정표를 세운 매우 중요한 곡이었다. 그리고 이곡은 브람스가 아꼈던 음악가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1841-1904)가 슬라브 무곡을 작곡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연주여행의 결과는 헝가리 무곡뿐만이 아니었다. 브람스는 레메니와의 연주여행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1853년 레메니처럼 헝가리 출신이자 20세기 중반 가장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아힘(Joseph Joachim/1831-1907)을 만나게 된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브람스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요아힘은 편지를 써서 당시 유력 음악평론가였던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에게 브람스를 소개한다. 슈만 역시 젊은 브람스의 재능에 감탄하게 되고, 같은 해 평론 ‘새로운 길’을 발표하여 브람스의 이름을 온 유럽에 알린다. 브람스와 슈만의 만남은 오래갈 수 없었다. 슈만이 이듬해인 1854년 라인 강에 투신하는 해프닝이 있어났고, 이후 정신병원에 있다가 1856년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아힘과의 우정은 지속되었다. 브람스는 1878년 불후의 명작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여 요아힘에게 헌정한다. 이듬해 브람스가 지휘하고, 요아힘이 연주하는 환상의 연주회가 열렸다. 새로운 만남의 마지막 방점은 슈만의 아내 클라라(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1819-1996)에게 찍혔다. 브람스는 14살 연상의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슈만이 죽은 후에도 40년 동안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1896년 클라라 슈만이 죽자 브람스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897년 브람스도 간암으로 결국 사망하고 만다.
우리 사회에 언젠가부터 ‘꼰대’라는 말이 남성 노인들을 경멸하거나 비하하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 자신의 주장만을 옳다 여기고 남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아랫사람들을 자기의 의견 위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이 말은 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만 열심히 떠드는 사람들을 일컫기도 한다. 구태의연하고 나잇값 못하면서 말만 많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성가신 상대인 셈이다. 사회전반에 꼰대라는 말이 나도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다분히 노인들이 스스로 불러 일으킨 결과다. 이들은 스스로를 틀 속에 가두는 것은 물론 그가 속한 단체나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이런 노인들은 정작 행동해야 할 때는 웅크리고 나가지 않고 돈을 내야 할 때도 뒷전으로 빠져 눈치만 본다. 걸핏하면 ‘나때는 말이야’를 외치다 급기야 꼰대에 붙여 ‘라떼’라는 비아냥을 듣기에 이르렀다. 노인들이 꼰대가 되는 여러 요인 중 자신의 과거에 집착해 그것을 최선으로 여기는 편향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듯하다. 다시 말해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은 그게 누구건 과거의 자기에게 최소한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젊어서 잘 나가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잘 나가지 못하는 현실을 이기지 못해 말로 때우는 것이 꼰대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꼰대들이 보면 화들짝 놀랄 만한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많은 남성들이 꼰대 소리 들을 만한 64세에 세계 최초로 쿠바와 미국의 플로리다 사이의 해협 160km를 수영으로 건넌 장본인이다. 더구나 그 주인공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이다. 영화 ‘나이에드의 다섯 번째 파도(2023/지미 친 감독)’의 실제 주인공인 다이애나 나이에드(Diana Nyad 1949~)는 장거리 수영 선수로 1974년에 걸프 해협, 1975년에는 맨해튼 둘레 45km, 1979년에는 바하마의 노스비미니에서 플로리다의 주노비치까지 164km를 횡단해 주목받았다. 이에 앞서 28세이던 1978년에는 영화의 주무대인 쿠바의 하바나에서 플로리다의 키웨스트까지 가로지르는 세계 최장거리 수영 횡단을 시도했으나 42시간 동안 122km를 수영한 채 실패했다. 그로부터 33년 동안 수영을 쉰 나이에드는 많은 전문가들의 반대와 염려를 뒤로한 채 2011년 60세에 자신이 젊은 시절 포기했던 쿠바~플로리다 구간에 다시 도전한다. 특히 이때 나이에드는 상어방지용 철책까지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온몸으로만 수영하는 극단의 방법을 시도했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이쯤 되면 드라마틱한 성공담이 그려질 법하다. 그러나 이 도전은 강한 해류와 바람으로 17시간만에 끝난다. 그러나 나이에드는 불과 44일 만에 다시 도전했고 일년 후에도 또 도전했다. 그러나 거센 폭풍과 해파리의 독침에 찔리면서 연이어 실패했다. 이쯤에서 나이에드의 도전을 지지하던 스폰서도 관심을 줄이고 심지어 함께 팀을 꾸린 동료들도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과 생활고에 대한 어려움을 겪으며 나이에드를 떠나지만 그래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결국 다섯 번째 시도가 2013년 8월 31일 시도되었고 53시간 만에 180km를 수영한 끝에 마침내 성공해 꿈을 이루었다. 이 도전에는 무려 35명으로 구성된 팀이 함께 했다. 친구이자 코치인 보니스톨, 각종 물살과 풍향 등을 계산해 최적의 시간과 경로를 선택한 항해사 존 발렛을 비롯해 배를 운전한 선장, 먹을 것을 조달한 요리사, 요트로 길을 안내한 인도자, 해파리 전문 해양 생물학자, 상어퇴치를 위한 인원, 기타 배에 속한 사람들 등이었다. 나이에드는 이 도전을 성공한 뒤 몰려든 기자와 팬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세 가지 요점을 발표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꿈을 이루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수영은 고독한 스포츠 같지만 팀이 필요하다!’ 세 가지 모두 가만히 앉아 꼰대 노릇하는 노령의 남성들이 진지하게 되새겨 볼 만한 외침이다. 꼰대가 아닌 자신만의 꿈을 꾸는 노년이 된다면 그 자신의 정신과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우리 사회가 훨씬 밝고 활기차게 변할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꿈을 이룰 수 있다. 과거에 잘 나갔다면 이제 꼰대질을 멈추고 그 잘나가던 경험을 바탕으로 새 꿈을 정하고 그 꿈에 맞는 팀을 찾아보면 어떨까? 설혹 높고 거센 파도들이 앞을 가로막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강동 로컬푸드 집하장에서 개최된 ‘찾아라! 경주 행복마을’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사진> 이 프로그램은 매년 지역 내 2~3곳을 선정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이 지역 사회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2015년부터 시작됐다. 이번 행사에서는 지역 어르신 400명을 대상으로 △서금요법 △기초건강검진 △돋보기 나눔 △실버두뇌활성화운동 △이미용 △커피·급식 △네일아트 등 다양한 재능기부 서비스가 제공됐다. 이를 위해 강동 적십자봉사회, 강동 생활개선회, 강동 자율방범대 등 다수의 단체가 참여했으며, 현장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돋보기안경과 배식 봉사활동도 실시됐다. IBK기업은행의 후원으로 ‘참!좋은 사랑의 밥차’ 무료급식 봉사도 이뤄졌으며,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이를 통해 지역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식사 400인분을 제공했다. 정재윤 이사장은 “이번 ‘찾아라! 경주 행복마을’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참여해주신 봉사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내년에도 이 같은 프로그램이 계속되어 지역 주민들의 화합과 소통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지역사회의 시민의식 향상과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경주시 아동참여위원회는 지난 4일 황리단길 일원에서 지역 초·중생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동권리 옹호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 이번 캠페인은 시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아동 권리 존중 확산을 위해 마련됐다. 경주시 아동참여위원회는 경주 거주 초·중학생 20명으로 구성된 시 산하 위원회로 지역 아동의 권리를 대변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발족 이후 올해로 3년째를 맞은 아동참여위원회는 동국대 WISE캠퍼스 아동청소년교육학과 이지희 교수의 지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캠페인은 경주의 대표 관광지인 황리단길에서 아동에 대한 차별적 요소인 ‘노키즈존’에 반대하고, NO의 반대 개념인 ON을 사용한 ‘온키즈존’ 확산 운동을 펼쳤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들은 아동의 기본권인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에 대한 리플릿도 배부하면서 아동권리 옹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동국대 이지희 교수는 “노키즈존(NO Kids)은 아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회적 현상”이라며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식당이나 카페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이 노키즈존 현상의 원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권리를 올바르게 배우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낙영 시장은 “모든 아동이 행복한 아동기를 보내고 공평한 기회를 통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시는 올해 예산의 13%인 2341억9500만원을 아동친화예산으로 편성하고 아동친화도시 위한 중장기 계획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
경북도와 경북문화관광공사는 올해 새롭게 기획된 ‘짜이 경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국 현지에서 중국 정부와 관광업계를 대상으로 홍보판촉 활동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공사는 중국 단체 관광객 경북 유치를 위해 10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중국 북경, 랑팡, 정주 등 현지 여행사와 기업인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중국 랑팡시에서 랑팡문화여유협회와 북경시 중국민영경제국제합작상회, 랑팡시 페이모스 여행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또 정주시에서도 현지 여행사인 하남대당국제여행사유한공사, 심강국제여행사, 하남성한중문화전파유한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MOU를 통해 경북도와 중국 북경시, 랑팡시, 정주시 등에서 상호 관광 활성화와 교류의 폭을 넓히고 나아가 중국 관광객 유치 증진의 기반을 다지는 초석을 마련했다. 특히 공사는 랑팡시, 랑팡문화여유협회, 페이모스 여행사와 협력해 11월 하순부터 북경, 랑팡시 지역 기업인들 5만명을 2025년까지 경상북도에 유치하기로 합의했다. 또 이들 중국 기업인들에게는 경북 관광 지원과 더불어 한국 기업인과의 상호 교류의 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정주시에서는 중국 유소년 축구단 1만명을 대상으로 2024년 8월까지 경상북도 일원의 축구장 등 체육시설을 활용한 스포츠와 문화관광을 교류의 장도 펼칠 예정이다. 김성조 사장은 “짜이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실행해 많은 중국 관광객이 경북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고부가가치의 기업인, 스포츠 등 특수목적 관광객을 유치해 경북 관광업계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경주 둘레길 모바일 스탬프 투어’ 프로그램이 연말까지 진행된다. 경주시가 아름다운 자연과 찬란한 역사·문화를 걸으며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스탬프 투어는 최근 걷기 여행자 증가에 따라 지역의 다양한 둘레길을 방문객들에게 소개하고, 로컬 관광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프로그램은 이달부터 12월까지 ‘스탬프 투어’ 모바일앱(iso/안드로이드) 어플을 통해 둘레길 완주 후 지정된 장소에서 스탬프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이벤트는 총 10개 코스 내 지점에서 스탬프를 획득한 뒤 코스별로 선물을 신청하면 된다. 5개 이상 코스 완주 시 5000원 상당의 기프티콘, 7개 이상 코스 완주 시 1만원 상당의 지역 관광기념품, 10개 코스 완주 시 완주증과 완주 기념메달을 증정한다. 기프티콘 외 이벤트 상품은 당초 신청한 주소로 배송된다. 둘레길 스탬프 투어 코스는 총 10개 코스, 42개소다. 코스별로는 △경주읍성길(경주문화관 1918~성동시장~향일문~법장사) △선덕여왕길(명활성~진평왕릉~선덕여왕릉) △신라왕경길(신라대종~대릉원돌담길~동궁과 월지) △보문호반길(목월공원~호반1교~물너울교) △파도소리길(읍천항~주상절리 전망대~하서항)이 있다. 또 △동남산가는길(남산불곡마애여래좌성~경북천년숲정원~남산동 동서삼층석탑) △삼릉가는길(오릉~나정~포석정지~삼릉) △동학명상길(용담교구~최제우 생가~남사리 삼층석탑) △건천 편백나무숲길 △해파랑길(감포항~감포해국길~송대말등대~오류고아라해변) 등이다. 시는 올해까지 모바일 스탬프 투어 운영 후 방문객들의 호응도에 따라 내년에는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관광객들이 편리하고 알찬 둘레길 투어가 될 수 있도록 쉼터와 화장실, 명소 안내판 등의 정비를 완료했다”며 “가족, 친구, 연인 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번 투어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개는 사람에 의해 길들어진 최초의 동물이다. 오랫동안 사람의 생활공간에서 함께 생활하였기 때문에 개를 은유한 흔적들이 은어, 속담, 사자성어, 고사성어 등으로 대단히 많이 남아있다. 필자는 개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한자 4글자가 모인 말이며, 또 고사에서 유래된 한자는 고사성어(故事成語)라 한다. 사자성어와 고사성어는 대부분 네 글자이며 생활 중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된 말로서 시대를 대변하는 말이다. 유교에서 강조하는 세 가지 강령(綱領, 삼강)과 다섯 가지 인륜(人倫, 오륜)을 의미하는 것이 삼강오륜이다. 이를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도덕적 지침으로 정립한 것이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를 규정한 세 가지 원칙을 말하며, 오륜은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친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덕목을 말한다. 인간관계와 사회 풍토를 규범적할 목적으로 정립한 삼강오륜이 현대사회에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를 만든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사라졌다. 오늘날의 인간 근본을 망각한 사회적 폐단이 속출하여 삼강오륜을 되씹는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병폐를 각자의 언어 관습에 따라 ‘견공오륜’으로 풍자되어 회자되고 있다. 견공은 제 새끼가 귀여워 핥아준다는 빈지기자(頻摯其子)는 오륜의 부자유친(父子有親)이요. 견공은 주인을 보고는 짖지 않는다는 지주불폐(知主不吠)는 오륜의 군신유의(君臣有義)요. 견공은 한 마리가 짖으면 함께 짖는 일폐군폐(一吠群吠)는 오륜의 붕우유신 朋友有信이요. 견공은 새끼를 가지면 성생활을 기피한다는 잉후원부(孕後遠夫)는 오륜의 부부유별(夫婦有別), 소부적대(小不敵大)라 하여 어린 개는 늙은 개를 상대하여 싸우지 않는 것으로 오륜의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이다. 곧 인간사회에서는 위아래 질서가 있음을 말한다. 사람의 오륜을 비유한 견공의 오륜이며 사회를 비평하는 경종일 것이다. 또 개를 하찮게 여겨 자신을 겸양하거나, 남을 업신여겨 말로 비유하여 사용하는 사자성어로는 주인이나 나라님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 犬馬之役(견마지역), 犬馬之勞(견마지로), 犬馬之心(견마지심), 犬馬之誠(견마지성)과 윗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낮추어 이르는 뜻으로 쓰인 犬馬之忠(견마지충)이 있다. 겸양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개와 관련된 사자성어는 犬馬之年(견마지년), 犬馬之齡(견마지령), 犬馬之齒(견마지치)등이 있으며, 헛되게 먹은 나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나이를 낮추어 이르는 말로 활용된다. 또 보잘것없음을 비유한 사자성어인 邑犬群吠(읍견군폐)는 소인배들이 남을 비난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호부견자(虎父犬子)는 훌륭한 아버지에 비하여 자식은 그렇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며, 견설고골(犬齧枯骨)은 음식이 아무 맛도 없음을 이르는 말로 하찮다는 뜻이다. 견마지류(犬馬之類), 견양지질(犬羊之質)은 개나 말 따위라는 뜻으로, 낮고 천한 사람들을 얕잡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재능이 없이 태어난 바탕을 이르는 말인 묘호류견(描虎類犬)은 호랑이를 그리려고 했으나 개와 비슷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계획은 크게 세웠지만 실패하여 결과는 보잘것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명견폐(驪鳴犬吠)는 가치(價値)가 없는 이야기나 보잘것없는 문장(文章)을 이르는 말이며, 도견와계(陶犬瓦鷄)는 겉모습은 훌륭하나 실속이 없어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을 깍아내리는 말이며, 촉견폐일(蜀犬吠日)은 식견이 좁은 사람이 현인(賢人)의 언행을 의심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세상의 이치를 알리는 견토지쟁(犬兎之爭)은 두 대상이 서로 싸우고 있는 사이에 제삼자가 이득을 보는 상황을 말하며, 호표기수견양기(虎豹豈受犬羊欺)는 군자(君子)는 소인(小人)의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며, 견마지양(犬馬之養)은 봉양(奉養)만 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라는 뜻이며,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는 훌륭한 아버지 밑에 못난 자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개에 대한 사자성어는 현대사회에서 인간 생활의 근본이 무너짐을 안타깝게 여기고 사회를 비판하고자 해학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회 위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차돈순교비’를 이야기할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다. 이렇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기념비가 비지정문화재라는 사실이다. 2014년 문화재청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차돈순교비’를 보물로 지정 예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경주 금강산에 있는 백률사와 조계종 측이 순교비의 소유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보물 지정은 보류됐다. 소유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보류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백률사를 포함한 불교계는 ‘이차돈순교비’가 국보급 문화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것이 처음 세워진 곳이 백률사라는 것이 정설이므로 소유권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불교계는 ‘이차돈순교비’가 1910년대 초 백률사에서 재발견됐으며 1914년 국립경주박물관 전신인 경주고적보존회로 옮겨졌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록에 순교비는 백률사 불전 맞은 편 산중 덤불속이나 사찰 문전 가시나무 숲 등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도 주요 근거로 들었다. 1655년 선산 도리사에 건립된 ‘아도화상사적비’에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곳에 절을 세우고 그 이름을 백률사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것도 주요 근거였다. ‘경주백률사석당기’란 이름 등이 오해 불러 사실 ‘이차돈순교비’는 818년 조성된 이후 세월이 상당히 흐른 어느 시점에 실전(失傳)됐다. 그리곤 언제부터인가 ‘경주백률사석당기’로 알려져 왔다. 1832년 청나라 금석학자 유희해(劉喜海, 1794~1852)가 자신이 펴낸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서 ‘신라백률사부도육면당’(新羅栢栗寺浮屠六面幢)으로 소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910년대 이 비석을 찾아내 1914년 경주고적보존회로 옮긴 일본인들도 대체로 ‘순교비를 백률사 근처의 숲속이나 덤불속에서 찾았다’고 증언했다. 앞서 언급한 ‘삼국유사’에서도 “(이차돈을) 북산 서쪽 고개에 장사 지냈다. 나인들은 이를 슬퍼하며 좋은 땅을 가려서 절을 세우고 이름을 자추사(刺楸寺)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세 가지 대표적 사례는 백률사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학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자추’(刺楸)를 ‘백률’(栢栗)로 동일시하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추’의 뜻이 ‘가시(刺)가 있는 호두(楸)’이고, 그것인 곧 ‘밤’(栗)이니 ‘백률’과도 통한다는 것이다. 경주 북쪽의 소금강산 중턱에 자리한 백률사는 이차돈의 순교와 관련된 사찰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법흥왕 14년(527) 옥리가 이차돈의 목을 베자 목에서 흰 젖이 솟았으며, 이윽고 그의 목이 금강산에 날아가 떨어져 그곳에 장사지내고 자추사라는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기록만 가지고 자추사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지금의 백률사를 자추사로 보거나, 혹은 금강산 정상으로부터 북쪽 약 20m에 있는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이 있는 곳을 자추사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차돈 순교비가 백률사에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자추사는 백률사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9년 펴낸 ‘우리 조상들이 다녀간 신라 왕경 경주’란 책에 담긴 내용이다. 백률사는 불교를 국법으로 허용해줄 것을 주장하다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머리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라는 이름의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언제부터 백률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5년 발간한 ‘경주 석조문화재 모니터링 보고서 Ⅲ’에 등장하는 백률사에 대한 설명이다. 최근 “순교비와 백률사 관계없다” 주장 이어져 이처럼 학계에서는 앞서 설명한 내용을 근거로 자추사와 백률사를 동일시하는 견해가 정설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차돈순교비’와 백률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학계의 주장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순교비 내용도 그렇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해동고승전’ 등 모든 사료를 샅샅이 훑어봐도 ‘이차돈순교비’가 백률사 소유가 될 만한 근거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백률사를 찾은 이들의 여러 기행문에서도 ‘이차돈순교비’에 대한 언급은 단 1건도 없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흥의 기행문이 주목된다. 그는 1660년 3월 왕명으로 경주로 내려와 5박 6일간 이곳에서 머물렀다. 기행문에 따르면 당시 그는 백률사를 방문해 절 주변을 둘러보고 기거하는 승려와 대화도 나눴으나 순교비에 대한 기록은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승려 또한 “절 가운데에 분황사에서 얻은 사리가 있는데 볼 만하다”고 하면서 비단 보자기로 10겹을 감싼 사리함을 그에게 가져가 보여줬으나, ‘이차돈순교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밖에도 1688년 정시한(丁時翰, 1625~1707), 1760년 김상정(金相定, 1722~1788), 1767년 임필대(1709~1773), 1773년 박이곤(朴履坤, 1730~1783), 1857년 송달수(宋達洙, 1808~1858) 등이 각각 백률사를 방문했으나, 이들이 남긴 기행문에서 이차돈 순교비나 순교비와 연관된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1932)가 백률사와 ‘이차돈순교비’와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백률사 주변을 뒤졌으나 아무런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백률사를 이차돈과 연관시킬 만한 기록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며 “과거 순교비를 백률사 경내에서 발견한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백률사석당기’로 부르게 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차돈순교비’가 1914년 경주고적보존회로 옮겨지기 이전, 비석이 발견된 정확한 위치를 명시하지 않은 게 오해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또, 자추사에 대해서는 “‘백률=자추’라는 언어학적 풀이에 근거해 만들어낸 또 다른 절 이름이거나, 이차돈을 기리는 사당을 지칭하는 이름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강산의 입지를 고려하고, 유력 후보지에서 노출되고 있는 유구 등을 토대로 새롭게 이차돈의 무덤과 사당터를 추정하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박방룡 전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의 논문 ‘이차돈 사인 묘와 사당에 대한 단상’, 김태형 송광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의 논문 ‘이차돈 순교유적과 유물에 대한 고찰’ 등이 대표적이다. 박 전 원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차돈순교비’를 발견한 장소를 두고도 다른 주장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1927년 발행된 ‘만선고고행각’이 “순교비가 백률사 경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굴불사터 사면석불보다 전방 100여m에 쓰러져 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박 전 원장은 논문을 통해 굴불사터 사면석불 남쪽 100m 지점에서 이차돈의 묘와 사당터로 추정되는 유구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태형 실장은 이차돈의 무덤 등이 조성된 북산의 위치가 지금의 소금강산 쪽이 아니라 그보다 1㎞ 북쪽에 있는 168.5m 고지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김운 역사여행가
한부모가족복지시설 경주애가원(원장 이윤주)은 월성원자력본부의 지원을 받아 지난 5일 부산 일원에서 ‘우리가족 힐링캠프’를 실시했다. <사진> 이번 캠프는 입주가족을 대상으로 부산 일원에서 해변열차 및 스카이캡슐을 이용해 가족여행을 즐기고, 이어서 아쿠아리움을 방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포함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가족여행의 기회가 부족했던 저소득 한부모가족들이 가족 사랑과 소통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형제를 양육하는 입주자는 “혼자서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용기가 부족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함께 바람을 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이러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프로그램은 가정의 안정과 아이들의 행복한 성장을 돕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경주애가원은 앞으로도 입주 가정의 심리적 안정과 가족관계 회복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운영할 예정이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경주시가족센터와 외국인 주민을 대상으로 ‘V-쿠킹’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사진> 이 프로그램은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와 적응을 돕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외국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증진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경주시가족센터 회원 13명이 참여했으며, 한식 조리 강사의 지도 아래 배추겉절이와 진미채볶음을 직접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이 만든 2종류의 밑반찬은 성건동과 황성동 지역 경로당을 방문해 4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나눠졌다. ‘V-쿠킹’ 프로그램은 올 한 해 동안 경주시외국인도움센터와 경주시가족센터의 90여명 회원들과 함께 진행됐으며, 경주시 내 4곳의 경로당과 황성동 지역의 3곳 경로당 350여명의 어르신들에게 밑반찬과 떡이 전달됐다. 경주시가족센터의 한 참가자는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에 감사하다”며 “직접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리러 경로당을 방문하니 환하게 맞이해주셔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의 프로그램은 지역 사회의 융화와 다문화 공존을 촉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는 지역 내 등록경로당 634개소를 대상으로 경로당 운영 활성화를 위한 홍보에 나서고 있다. 경주시지회 대내외 행사를 비롯해 경주시에서 개최되는 각종 행사에 참여해 홍보부스를 운영하며 행복한 노후 생활과 관련된 정보를 안내하고 있는 것. 최근 열린 경주시평생학습박람회에서는 ‘어르신!! 경로당으로 놀러 오세요’라는 제목의 홍보체험부스를 운영했다. 이 자리에서 패브릭 폐섬유 걱정인형을 만들며 ‘건강을 지켜요. 걱정을 떨쳐요. 마음껏 웃어요’라는 대화명 아래 경로당 회원 요건과 경로당 내에서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먼저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경로당행복선생님 사업의 설명을 통해 어르신들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현재 전체 경로당에는 어르신들의 활기찬 노년의 삶을 위해 ‘행복선생님’을 배치해 여가, 복지, 건강, 교육을 아우르는 현장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로당행복선생님은 복지코디네이터로 △상담(말벗, 안부확인)서비스 △복지서비스 연계 △경로당이용 권유 △사회적 활동영역 확대도모 등을 하고 있다. 또 프로그램코디네이터로는 △경로당 프로그램 제공 △노후의 삶 활력도모 △여가증진 △평생교육 △생활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다. 경로당코디네이터로서는 △경로당 시설·장비 안전점검 △방역 등을 통한 지역 어르신들의 균등하고 안전한 이용 촉진 △학대예방, 교통안전, 건강검진 등 행정관련정보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경로당 내 손소독제와 체온측정기 등 방역물품을 비치하고 주기적인 방역·소독까지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로당 운영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경로당에서는 정보화 교육, 콩나물 기르기와 영양반찬 만들기 등 대면 프로그램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또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공동취사가 가능해 경로당이 활발히 움직여지고 있으며, 특히 독거노인 안전 확인 및 상호간 교류로 정서적인 외로움 해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회 경주시지회 관계자는 “경로당 운영이 활발해지면서 그간 겪어왔던 우울감과 고립감을 해소하고 어르신들의 행복과 건강한 일상을 되찾길 바란다”며 “노인복지증진을 위한 역할 강화와 함께 어르신들이 경로당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무르익는 단풍 계절을 맞아 경주의 많은 SNS들이 다투어 통일전 앞 은행나무길의 풍경을 올린다. 3년 전 경주시의 가로수 정비사업으로 완전히 볼품 없이 변해버렸던 은행나무길이 지난해 가을까지는 시민들의 외면을 받더니 이제 겨우 관심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당시 기자가 시청에 문의해 보았을 때 담당자의 답변이 기억난다. 나무가 지나치게 무성해 병충해가 생기기 쉽고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주므로 나무의 속 가지를 잘라 주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시민들의 입장은 강경했다. 가지치기를 해도 하필 한창 단풍 시즌 들어가는 초입에 인정사정없이 나무들을 솎은 것에 대해 지나친 행정편의주의라고 질타했고 그 결정에 조경전문가들의 의견이 고려된 것이었느냐는 질책도 쏟아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옛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는 시 담당자의 설명과 달리 아직도 은행나무는 이전의 위용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만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나마 이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어느 정도 찾은 듯하지만 여전히 이전에 비해서는 부족하다. 가로수라는 특이성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은행나무는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잘 성장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은행나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무들은 일부러 손대지 않아도 자기 나름의 자정기능과 자활기능을 가지고 성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노거수들이 도시나 동네마다 있지만 그것을 일부러 잘라주고 관리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만큼 나무란 것이 가만 내버려 둬도 잘 자란다는 말이다. 마침 여러 SNS들 중 안정희 씨도 통일전의 은행나무를 비롯해 용담정, 경북삼림환경연구원, 도리마을 등의 은행나무들과 단풍들을 올리며 경주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그 중 하나인 통일전 은행나무들이 예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한 것이 반갑기 이를 데 없다. 다음에 또 시가 나무를 관리한다면 과유불급을 먼저 떠올리기 바란다.
서울, 인천, 대구 등 전국적으로 빈대 성충과 유충들이 속출하고는 것과 관련한 걱정이 커지면서 경기도가 빈대와의 전면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경기도는 최근 도내 숙박시설과 목욕장 특별점검 등 빈대 확산 예방 대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경기도는 지난 6일 경기도내 시군과 함께 11월 말까지를 집중 점검 기간으로 정하고 긴급 도-시군 부단체장 회의를 열고 빈대확산 예방을 위한 특별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내 숙박업소, 목욕장 업소 5262개소 등을 특별 점검하기로 했다. 점검은 빈대 확산에 따라 확대될 수 있으며, 해충 방제를 위한 소독실시 여부를 살핀다. 이와 함께 31개 시군 49개 보건소에 예비비를 활용해 고시원, 외국인 노동자 임시거주시설, 기숙사 등 위생 취약 시설을 대상으로 빈대 방제 컨설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경기도 질병정책과는 빈대 발견 시 콜센터 120 또는 시군 보건소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고 접수 시 보건소의 현장 조사와 빈대 관련 전문 방역업체를 연계 받을 수 있다. 빈대는 몸길이 5mm 내외로 넓고 평평한 적갈색의 몸을 하고 있으며 피를 많이 빨아먹으면 짙은 붉은 색을 띤다. 주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해충으로 물리면 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심할 경우 수면부족까지 동반하는 고통을 준다. 오래전에는 피를 먹고 통통하고 부풀어 오른 빈대를 터뜨린 자국이 집집마다 있을 정도로 많았지만 1960년대 이후 DDT 등 살충제 보급 으로 국내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최근 해외에서 유입돼 국내에서 잇따라 빈대가 발견되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편 인천과 부천, 대구와 서울 등에서 빈대가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경기도 이외 전북, 충북 등 각 지자체들도 빈대 방역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충제를 챙기는 등 빈대로부터 시민들을 지키기 위한 안전점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교촌을 다녀갈 때마다 아쉽게 지나치는 곳이 있다. 지금은 완전히 그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 ‘놋전거리’다. 놋전거리는 순수한 우리말이고 이것을 한자어로 표현하면 ‘유기공방거리’라고 부르면 될 것이다. 놋그릇이라는 좋은 우리말이 유기(鍮器)라고 어렵게 표현되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고 불만스럽지만 오래도록 이 근처에 놋전거리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놋전거리라는 이름처럼 이곳에 놋그릇 만드는 공방들이 많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놋전’이라고 불렀던 이곳은 지금의 교촌한옥마을 남서쪽 200여 미터쯤에 있었다. 교촌길을 따라 교촌에서 대릉원쪽으로 가다 다시 왼쪽으로 난 길 안쪽에 있었다. 다행히 지도를 찾아보면 도로명으로 ‘놋전길’이 나와 있어서 아직도 경주시가 행정적으로는 그 길을 기억하는 듯하다. 지금은 몇 채의 집이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놋전에는 적어도 30여 호는 됨직한 집들이 퍼져 있었다. 그 놋전을 지나면 다시 3~40여 호의 인가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교촌일대도 그렇지만 그 많은 집들이 유적지 정비사업으로 전부 헐린 것이다. 내가 최염 선생님을 뵈면서 이 길에 대해 여쭈어본 것은 순전히 그 길을 자주 다닌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놋전을 하루 두 번 이상 지나다녔는데 지날 때마다 왜 그 거리가 놋전이 되었고, 놋전이라는 이름과 달리 놋그릇 만드는 공방이 하나도 없는지 궁금했다. 최부자댁 글을 쓰면서 혹여 그것이 최부자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어느날 문득 그 질문을 해본 것이다. 그런데 최염 선생님 대답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얻어냈다. 교촌은 소가 엎드려 있는 지형, 소가 떠나면 땅의 기운도 사라지기에 방울을 달아 놓은 것! “놋전은 당연히 우리 집안과 관련이 컸지요. 우리 집안에서 한 해 소비하는 놋그릇만 해도 놋그릇 가게 몇 개는 먹고 살았을 거라. 그래서 놋그릇 가게들이 번성했던 것이고 거기에 놋전이 있다고 소문나니 사람들이 더 몰려들어 사가면서 가게들도 차츰 더 늘어났던 것이지.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그쪽에 공방들이 즐비했다네!” 최염 선생님 말씀에 귀가 번쩍 띄었다. 놋전이란 거리 이름의 유래를 확인하기도 했고, 그 거리가 왜 생겨났는지를 단박에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조선시대는 유학과 유교가 절대적으로 신봉되던 때였고 그 유학의 정점에는 제례의식이 있었다. 그 제례에는 거의 놋그릇이 쓰였고 그게 아니라도 근대 이전 부자들은 당연한 듯 놋그릇을 늘 썼다. 더구나 교촌의 기와집들 대부분이 최부자댁 식솔들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집집마다 과객들도 끊임없이 드나들 시대, 놋그릇 수요가 많았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감탄하자 최염 선생님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시면서 더욱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런데 왜 하필 놋그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 도자기나 옷 가게, 신발 가게, 모자 가게 등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인데 왜 하필 놋그릇이었을까? 내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드러내자 최염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셨다. “사실은 여기에 묘한 사연이 숨어 있다네!” 최염 선생님 말씀은 그야말로 흥미로웠다. 원래 교촌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소가 엎드려 있는 듯한 형상이란다. 소가 엎드려 있다는 것은 소에게는 가장 태평스런 모습이다. 엎드려 여물이라도 씹고 있다면 그건 소에게는 더 이상 좋은 시간이 아닌 것이다. 띠를 이야기할 때 소띠 사람이 겨울에 태어나면 복이 많다는 민간의 속설도 따지고 보면 겨울에는 소가 일은 하지 않고 평안히 엎드려 여물만 받아먹으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촌이 소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소가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소가 일어나 떠나 버리면 지력이 쇠해지므로 어떻게든 소를 붙잡아 두어야 했다. 소가 일어날 때 방울을 달아두면 짤랑거리는 소리로 인해 소가 일어선 것을 알 수 있고 그에 맞추어 소를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최부자댁에서 지금의 자리에 일부러 놋전을 열도록 길을 열어주어 사시사철 놋그릇 두드리는 소리, 쇠방울 소리가 들리도록 했었다는 것이다. 실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 많았던 놋그릇 공방들은 왜 다 없어졌는지 다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염 선생님은 거기에 대해서도 막힘 없이 말씀해주셨다. “그건 일제 때 공출로 놋그릇이며 놋숟가락·젓가락들을 전부 빼앗기면서 그렇게 되었지!” 대동아공영 운운하며 전쟁을 일삼았던 일본은 급기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막대한 군비를 늘이게 된다. 그중에서도 놋그릇은 구리와 아연, 주석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이것은 총알이나 폭탄의 탄피 성분과 거의 비슷하다. 당연히 유기는 공출 대상 1호였고 집집마다 놋그릇이며 놋숟가락 젓가락들이 몽땅 털려 나갔다. 그러니 놋그릇 사는 사람도 생기지 않았고 새로 만드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놋전의 숱한 가게들도 재료를 전부 빼앗긴 채 문을 닫거나 다른 일로 바꾸어야 했다. 이게 일차적으로 놋전이 쇠퇴한 이유였다. 그런 놋전이 해방 이후 다시 활황을 띠기 시작해 60년대 후반까지 옛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놋그릇 수요가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나 결국 사양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70년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스텐 그릇과 수저들 때문이었다. 일본의 공출대상 1호인 놋그릇의 수탈로 놋전의 많은 가게들이 전부 문을 닫거나 다른 일로 바꾸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에게 성가신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놋그릇을 닦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두어 달에 한 번쯤은 정기적으로 놋그릇을 닦으셨다. 양잿물을 풀어놓고 짚으로 양잿물을 찍어 놋그릇을 닦으면 그릇에 핀 푸르스름한 녹들이 시꺼먼 녹물이 되어 녹아 나왔다. 가끔 어머니는 연탄재를 곱게 빻아서 양잿물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참고로 양잿물은 서양에서 온 잿물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잿물은 콩깍지나 짚을 태운 재를 우려내 만드는데 이게 알카리성을 띠고 있어 전통적으로 세탁이나 세척에 사용되었다. 그러다 서양에서 강력한 세척력을 가진 수산화나트륨이 들어와 잿물을 대신하면서 이것을 녹인 물을 서양의 양(洋) 자를 붙여 양잿물이라 불렀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한눈에 보기에도 광채가 번쩍번쩍 나는 그릇들을 펼쳐 놓으시고는 “이제 그릇 닦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하셨다. 말씀인즉 시내에 스텐 가게가 생겼는데 거기에서 놋그릇과 스텐그릇을 1대1로 맞교환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골칫거리인 놋그릇을 평생 사용해도 광채가 사라지지 않은 현대식 스텐 그릇과 바꾸었으니 얼마나 기쁘셨을까? 어머니는 집안에 있던 놋그릇이란 놋그릇과 온갖 놋수저를 전부 쓸어 모야 스텐 그릇과 맞바꾸어 오신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 이전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양잿물로 놋그릇 닦는 불편을 영원히 면하실 수 있었다. 최염 선생님 말씀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스텐의 등장으로 더 이상 놋그릇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전국적으로 놋그릇 만드는 장인들이 급격히 사라진 것은 바로 이 스텐 그릇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는 그 후 놋그릇의 가치와 스텐 그릇의 가치가 비교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텐은 스테인레스강(stainless steel)의 줄인 말이다. 스테인레스강이란 말 그대로 녹이 없는 강철이다. 주재료는 10.5~11%의 크롬 또는 몰리브덴과 니켈 등을 철과 섞어 만든 금속이다. 강철에 비해 구리가 몇 배나 비싼 재료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녹이 설지 않는다는 이점 하나로 귀한 놋그릇을 스텐과 맞바꾼 것이다. 2000년대 경제력이 좋아진 이후 놋그릇에서 건강에 좋은 각종 이온이 나온다고 해서 다시 놋그릇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스텐에서 발산되는 광택이 싸구려 티가 난다고 해서 스텐을 쓰는 가게나 가정들이 거의 사라졌다. 만약 이런 가치 판단이 70년대에 알려졌다면 놋전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놋전이 사라지면서 최부자댁 기운도 쇠한 셈이 되었다. 최부자댁 지기를 지키던 소가 떠났고 최부자댁 기운이 서려 있던 교촌은 이제는 관광객과 그들을 만나는 상업화된 반쪽 한옥들이 들어섰다. 한때 놋전 자리에 다시 유기공방을 연다는 설이 나돌았다. 과연 그 자리에 다시 쇠방울 소리가 들리면 최부자댁이 예전의 번영을 찾을 수 있을까?
경주시 양남면 숯방(신대리 3반)경로당이 지난 3일 미뤄뒀던 개소식을 가졌다.개소식에는 이곳 마을 어르신들과 주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진희 양남면장, 최덕규 도의원, 주동렬 시의원, 오석술 양남면 노인회장 등이 찾아 개소식을 축하했다. <사진> 숯방 경로당은 경주지역 내 현재까지로는 가장 늦게 건립된 경로당이다. 지난 2020년 7월 31일 준공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개소식이 늦어졌다. 경로당은 지상 1층에 면적 54.88㎡ 규모로 조성돼 작지만 아담한 시설로 어르신들이 쾌적하게 이용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인회 경주시지회 숯방마을 경로당을 담당하는 허순여 행복선생님은 이날 개소식을 맞아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을 맞이하며 특기인 색소폰 연주를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숯방 경로당 편기용 노인회장은 “이곳은 오지여서 교통이 불편한데다 자연부락이 여러 군데로 하나의 경로당을 이용하기 어려웠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숯방 마을에 경로당이 생겨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남진희 양남면장은 “소통 공간인 경로당을 발판 삼아 친목 도모와 여가 활동으로 건강한 생활을 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인회 경주시지회 이동균 사무국장은 “어르신들의 복지증진 및 행복한 노후생활에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경로당 개소식을 하게 돼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지회의 경로당행복선생님과 함께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건강도 증진하고 다양한 여가생활을 즐기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주시지회와 경로당 간에도 교량역할을 하는 소통의 공간이 되고 화합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공고번호 : 경북-경주시-2023-1080 10월 26일 원화로 431-12 (경주시립도서관 근방) 미용 됨, 분홍 목줄 착용, 왼쪽 눈이 작음, 팔 다리가 긴 말티푸 말티푸 / 남아 / 1차 접종완료 / 중성화 o / 2살 / 3.8kg
척추와 경추 건강은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돌입하고 생활 방식이 급속도로 바뀌면서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비용도 꾸준하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구미 선진국의 통계에 따르면 전 국민의 70~80%가 일생 중 한 번 이상 척추 및 경추 통증을 호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척추와 경추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보자. 미국에서는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이 경추와 척추 치료비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5억 달러가 처음 진단된 척추 및 경추 통증 환자의 보존적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진단 및 치료 비용에 해당하며, 이 환자들로 인한 국가적 생산력 손실을 감안하면 경제적 손실은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스마트 기기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척추와 경추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60억에 가까운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그중 65%는 하루에 최소한 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설문조사는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주간 20시간 이상 스마트폰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밝혔으며, 이는 현대인들의 주요 의사소통 수단이 스마트폰으로 전환되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의료 종사자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스마트폰이 건강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바른 자세의 중요성, 컴퓨터와 스마트 기기 사용 시 척추와 경추 건강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흔히 발생하는 척추질환의 종류와 치료, 예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척추의 퇴행성 변화를 늦추는 바른 자세 바른 자세가 척추와 경추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그것이 왜 중요한지, 어떤 자세가 올바른 자세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의사 중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척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척추는 기본적으로 7개의 경추(목), 12개의 흉추(등), 5개의 요추(허리), 천추(골반)으로 되어 있으며, 배 쪽은 척추의 몸통과 몸통 사이의 추간판, 즉 우리가 흔히 부르는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다. 중반부와 후반부는 하나의 궁을 형성하여 그 내부에서 척수를 보호하고 있으며, 후반부에서 후관절로 연결되어 있다. 체중을 지탱하기 위하여 추간판과 후관절에 적절한 압력이 배치되며, 주변의 인대와 척추 기립근들이 이를 보조하고 있다. 자세에 따라 체중에 의한 압력의 분배가 달라지며, 한쪽에 과중한 압력이 가해질 경우 해당 부위의 퇴행성 변화가 가속되게 된다. 바른 자세는 추간판과 후관절, 인대, 근육에 적절한 압력 분배를 이뤄 척추의 퇴행성 변화를 최대한 늦춘다. 올바르지 않은 자세, 특히 노인분들의 경우 앞으로 굽은 자세를 취할 경우 척추 전반부, 즉 디스크에 과도한 기계적 압력이 가해져 주변 조직이 허혈성 변화 및 염증 변화를 일으키며 퇴행 증상이 가속화된다. 등이 점점 앞으로 굽고 척수가 지나갈 공간이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경우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기본적으로 목을 앞으로 빼서 굽힌 상태로 시선을 아래 방향으로 유지하게 된다. 이는 경추 전반부 디스크의 퇴행성 변화 및 경추기립근의 지속적인 신전 상태에 의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는 경추 구조의 전반적인 퇴행성 변화를 가속화하기 때문에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C자 모양의 곡선 유지가 목표 최근 바른 자세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인터넷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영상과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Mayo clinic 및 Cleveland clinic에서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알아보자. 경추와 요추는 자연스러운 C자 모양의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이 자연적인 곡선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서 있을 때 목의 곡선을 위하여 머리가 앞으로 빠지지 않고 몸과 일직선을 이루면서 시선을 아래쪽이 아닌 정면 혹은 정면보다 위쪽을 주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허리를 앞으로 굽히지 않고 가슴과 배가 정면을 바라보되, 과도하게 배를 내밀지 않고 복근을 몸쪽으로 끌어당겨 척추기립근을 보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먼저 발이 정확히 바닥에 닿고 무릎이 고관절과 같은 높이에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의자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등받이가 척추를 제대로 지탱하기 위해서 허리 쪽에 수건을 말아 두거나 작은 베개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니터 혹은 읽고 있는 책의 높이가 눈의 높이와 거의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며, 이는 경추의 곡선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앉아 있는 경우에도 목을 몸통과 일직선에 놓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운전 중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앉아 있는 것은 경추와 요추에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에, 중간중간 서서 걸어 다니며 휴식을 취해주어야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에도 항상 스마트폰을 눈과 같은 높이로 유지하면서 사용하면 경추의 긴장을 예방할 수 있다. 앉아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경우, 팔을 앞의 책상에 기대는 자세보다 의자에 있는 팔걸이를 사용하는 것이 보다 경추 건강에 이롭다.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 바른 자세를 유지하더라도 척추는 지속적인 퇴행성 변화를 겪으며 다양한 질환이 발생한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척추질환은 척추 추간판 질환이며, 흔히 디스크라고 불리는 것들이 이 질환에 해당한다. 척추 추간판 질환은 경추, 흉추, 요추 어디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임상 양상과 증상의 정도, 그에 따른 치료법도 아주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요추 추간판 탈출증은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1930년대에 정형외과 의사였던 Barr와 Mixter에 의해서 하지의 저림을 가지고 있던 환자에게서 탈출한 추간판이 신경근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진단 및 치료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유병률과 높은 경제적 손실을 유발하고 있다. 요추 추간판 탈출증 환자들은 대표적으로 요통과 하지의 방사통을 호소하며, 이는 주로 노화에 의해 발생하나 강한 외상이나 기타 다른 원인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통증과 함께 추간판 탈출증에 의한 신경근의 이환은 근력의 약화 및 감각 이상도 일으킬 수 있다. 심한 추간판 탈출증의 경우 배뇨와 배변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어 해당 경우 의사의 빠른 진료가 필요하다. 단순히 증상만 보고 추간판 탈출증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종양이나 감염과 같은 생명에 직결되는 타 질환과의 감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가 치료보다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 진단은 기본적으로 단순 방사선 사진(X-ray), 컴퓨터 전산화 단층촬영(CT)로도 진행할 수 있으나 자기공명영상검사(MRI)가 다른 검사법에 비해 신경 조직의 관찰이 우수하며, 추간판 탈출증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고, 타 질환과의 감별도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요추 추간판 탈출증은 기본적으로 보존적 치료부터 시작한다. 이전의 연구들에서 추간판 탈출증은 6주 정도의 보존적 치료를 하면 80% 이상에서 증상이 호전됨을 보고하고 있다. 보존적 치료에는 안정 및 휴식, 약물 복용, 물리치료,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 등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너무 오랜 기간 동안의 침상 안정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대 2~3일 정도만 침상 안정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 이상 안정을 취할 경우 오히려 기능적 장애를 악화시키고 통증을 더 증가시킬 수 있다. 약물 복용 및 물리치료로 호전되지 않을 경우,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는 추간판 탈출증의 발생 단계에 주사 및 차단술을 시행함으로써 증상을 효과적으로 경감하는 역할을 한다.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는 근래 그 사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연구에서는 적어도 단기간에 있어서 방사통의 의미 있는 통증 경감과 기능의 개선이 증명되었다. 신경차단술의 경우는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와 거의 흡사하나, 스테로이드 및 기타 약제를 신경근 표피에 주사한다는 차이점이 있으며, 좀 더 방사통에 선택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이러한 보존적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 수술적 치료를 선택할 수 있으며, 최근 굉장히 다양한 수술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내시경을 사용하여 추간판을 절제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기존의 방식에 비해 피부 절개의 범위를 최소화하면서 척추 기립근의 손상이 줄어들고 수술 후 통증 및 출혈량이 적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빠른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하며 부작용이 최소화되었다. 하지만 재발성 탈출증의 경우 이러한 방식이 제한될 수 있어 의사의 상담이 필요하다. 경추질환 치료는 좀 더 섬세하게 경추에서도 추간판 탈출증이 자주 발생하며, 경추질환 중에서 유병률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추 추간판 탈출증과 임상 양상, 자연적인 경과 및 치료 방법에서 차이가 있어 구분이 필요하다. 경추 추간판 질환은 크게 3가지 임상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단독으로 혹은 같이 존재할 수 있다. 뒷목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 대표적이며, 범위는 후두부부터 견갑골 주변까지 굉장히 넓다. 뒷목 통증은 타 경추질환에서도 발생할 수 있으며, 그 양상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뒷목 통증이 있다고 하여 추간판 질환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그 원인을 차근차근히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경추 추간판 탈출증 환자는 신경근증에 해당하는 증상을 호소할 수 있는데, 이는 요추의 추간판 탈출증과 비슷하게 상지의 어느 한 구역으로 방사되는 통증을 의미한다. 이는 특정 분절의 경추 신경근이 추간판에 의해 압박되었기 때문이며, 방사통의 범위를 통해 추간판 탈출이 발생한 분절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신경근의 압박에 의해 감각 이상 및 운동 능력의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환자들은 척수증에 해당하는 증상을 호소할 수 있다. 이는 추간판이 궁 내의 척수를 직접 압박하는 경우 발생하며, 증상이 매우 비특이적이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경우 판단하기 어렵다. 증상으로는 손의 근력 약화, 부자연스러운 손놀림과 감각 이상, 하지의 근력 약화로 인한 보행 장애를 들 수 있다. 특히 손의 세밀한 운동에 장애가 생겨서 종종 젓가락질을 하기 힘들고 물건을 잘 떨어뜨린다 거나 단추를 채우기가 힘들 수 있다. 진단은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요추 추간판 탈출증과 유사하게 자기공명영상검사를 주로 진단에 사용한다. 추가적인 감별 진단이 필요할 경우 확산 텐서영상이나 대사 신경영상이 필요할 수 있다. 치료의 경우 역시 요추 추간판 탈출증과 같이 보존적 치료를 먼저 하는데 4~6주간 진행할 수 있다. 경추 역시 안정 및 휴식, 약물치료 및 물리치료를 먼저 시행한 후, 효과가 없을 시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를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경추의 경우 경막과 척수 간의 간격이 굉장히 좁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경추에서는 주로 신경근에 대한 신경차단술을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 보존적 치료로 증상이 나아지지만 조기에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근력 저하 및 감각 이상이 점점 진행하는 경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발생한 경우, 척수증 징후가 동반된 경우에는 빠른 진료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보존적 치료가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한 경우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수술적 치료에는 전방 도달법 및 후방 도달법에 있으며, 이는 단순히 추간판의 상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경추의 상태에 따라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선택된다. 이 외에도 척추 협착증, 척추측만증, 척추전방전위증 등의 질환도 흔히 발생한다. 이러한 질환들은 적절한 치료를 통해 관리해야 하며, 정기적인 척추 검진과 꾸준한 운동, 올바른 자세 유지 등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글: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신재원 자료제공 : 한국 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건강검진센터 자료출처 :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발췌
따라갈 수 없는 경지/마음과 뼈에 새겨 고심하며// 오늘 으뜸 藝人의 길 나아가/큰 자취 온전히 비추려// 빈 하늘 펄쳐/고운 빛 던져// 먹 갈고 붓 놀리며/아름다운 물결 보여 본다.// -송안 서보영 示 가운데 40년 넘게 서예와 문인화에 정진해온 송안 서보영 문인화가의 첫 개인전 ‘美波示人’이 경주예술의전당 4층 갤러리해에서 12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회는 20대 초반부터 시작한 서예와 문인화의 작품을 집대성한 자리다. 경주 출신 서보영 작가는 대학 시절 심천(心泉) 한영구 서예가에게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예와 문인화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으며, 25년 동안 후진 양성에 전념해왔다. 서 작가가 그동안 여러 차례 단체전에 출품하던 것과는 달리, 이번 개인 전시회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가로 10m, 세로 2m의 거대한 매화도와 가로 2.7m, 세로 35cm 크기의 임제록(臨濟錄)이다. 더불어, 병풍 형태로 제작한 10군자를 담은 문인화 작품 역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미파시인’은 그녀의 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물결을 파도처럼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녀의 작품 세계를 잘 대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을 선보이며, 서예인으로서의 이미지를 넘어 문인화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의 작품을 통해 생각과 감정, 사유를 표현하는 깊이를 천천히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작품을 바라보는 그 과정은 마치 그림자 속에서 빛을 찾아내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그동안 밖으로 내지 않고 공부해왔던 그녀의 내면세계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서보영 작가는 “서예와 문인화와 함께한 세월이 길었지만, 행동은 물론 말주변이 없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면서 “아직도 미비하다고 생각하며, 부끄럽기가 한량없다”면서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서보영 작가는 (사)한국서가협회 자문위원, 상임위원, 심사위원을 역임하며, 경북도청소년지도자대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중국 북경시와 일본 우사시와의 서예교류전에도 참여한 바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오는 20일부터 12월 1일까지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단체를 대상으로 ‘신라는 경주여행’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신라는 경주여행’은 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이 ‘성인이 돼 첫 여행을 경주로 간다’는 가정하에 경주 여행을 계획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경주의 여행지 정보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경주의 명소 관련 박물관 전시품을 살피고, 활동지를 통해 나만의 경주 여행 테마를 만들어 볼 수 있다. 참여자들은 ‘큰별쌤과 함께하는 국립경주박물관 완.전.정.복.’ 영상을 시청하여 박물관과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 문화재와 관련된 경주 여행지를 선정해 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활동지 속 지도에 나만의 경주 여행 테마를 직접 정하고 경주 명소와 유적지 정보를 주체적으로 수집하여 표현함으로써 신라의 역사와 문화재를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학교별 사전 신청이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국립경주박물관 누리집(http://gyeongju.museum.go.kr-교육·행사-교육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