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삼오오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야기는 오래가지 않고 짧은 침묵과 함께 하나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말소리는 멈춘다. 무슨 판타지소설의 서두 같은가? 아니다. 이건 아줌마가 보는 요즘 세상 이야기다. 남녀노소 불문이다. 장소도 상관없다. 아줌마는 무섭다. 두렵다. 아줌마가 어렸을 때는 흙을 벗 삼아 놀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다수가 개인주택에서 살았고, 집에는 장난감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30분 정도만 어린이용 만화를 보여줬다. 그러니 학교를 파하면 집 밖으로 나가 동네 친구들과 놀았다. 주변에 있는 것을 갖고 놀 줄 알았고 친구들과 지내며 나름 작은 사회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아파트나 빌라, 주택지구라고 불리는 곳에서 많은 이들이 모여 살다 보니, 누가 누구인지 다 알 수 없고, 흉악범죄 뉴스라도 나오면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자주 모인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소리는 없다. 미끄럼틀 여기저기에서, 시소에 앉아서, 그네를 타면서도 아이들은 거의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옆에서 가서 들어보면, 지금 보고 있는 게임에 대한 진행이나 감탄사, 아이들과 나누는 카톡에 대한 이야기(둘이 같이 들어가 있는 카톡방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톡을 올리고 있다), 아니면 한 친구가 하는 것을 옆 친구들이 함께 보고 있는 정도다. 어른들이라고 다를까? 식당에서 일행이라고 함께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일행이 하는 일은, 거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고개를 숙이는 일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이해해야 하는가? 스마트 시대에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고 싶은가? 아줌마는 심히 걱정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식 밖의 일들의 모든 원인을 이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로 발전했고,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짧은 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뤄낸 결과로 엄청난 발전의 그림자는, 빈부격차와 각종 졸부를 만들어냈고, 졸부들은 그 이름에 맞는 갑질을 했고, 그 갑질을 몇 번 학습한 대중들은 ‘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단계를 거치며 몰지각한 사람을 양산했고 그것을 답습한 아이들은 또 어떤 어른들로 자라났는지 안 봐도 뻔하다. 그 결과가 지금 뉴스에서 나오는 각종 갑질과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이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가 세상에 나온 지 이십 년이다. 뽀로로를 보고 자란 친구들이 20대 청춘들이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것은 그보다 짧지만, 남녀노소를 모두 중독에 빠지게 할 만큼 그 힘은 강력하다. 단순히 대화를 빼앗긴다고, 게임중독에 빠지게 한다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만날 때는 열심히 이야기 나누고, 스마트폰은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한다고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아이는 인플루언서, 유투버활동을 하면서 이미 그쪽으로 진로를 정했다고, 타당한 이유를 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면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오히려 더 좋게 활용하고 있는 분들도 더러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아줌마는 인터넷 세상은, ‘소통’은 없고 ‘쇼맨십’만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투버가 되었든 아프리카tv가 되었든 그곳은 진정한 소통을 하는 곳이 아니다.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벗을 거기서 만들 수 없다. 거기는 수익창출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어봤을 것이다. 한글이라는 문자는 알지만, 글자만 알 뿐, 문장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행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낮다는 소리다. 학원에서 배운 문해력은 테크닉을 익힌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의 크기를 키워야 문해력이 성장한다. 그리고 책 속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의 비장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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