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헝가리 출신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인 레메니(Eduard Remenyi/1828-1898)는 함부르크에서 독주회를 연다. 당시 레메니의 연주회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19살 청년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는 이듬해 봄에 레메니와 함께 연주 여행(브람스가 레메니의 반주자 역할을 했다.)을 떠나는데, 이는 브람스 인생의 매우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당시 헝가리는 집시들에게 관대한 편이어서 이들로 인해 집시음악이 성행했다. 집시음악은 비애와 정열이 뒤섞인 이국적인 선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레메니는 여행 중에 집시 풍의 연주를 브람스에게 자주 들려줬다. 이는 브람스가 헝가리 무곡(1869년 1, 2집 출간)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훗날 레메니와 표절시비가 붙어 소송까지 벌이지만, 헝가리 무곡은 30대의 브람스가 작곡가로서 이정표를 세운 매우 중요한 곡이었다. 그리고 이곡은 브람스가 아꼈던 음악가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1841-1904)가 슬라브 무곡을 작곡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연주여행의 결과는 헝가리 무곡뿐만이 아니었다. 브람스는 레메니와의 연주여행을 계기로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먼저 1853년 레메니처럼 헝가리 출신이자 20세기 중반 가장 천재적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아힘(Joseph Joachim/1831-1907)을 만나게 된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브람스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본 요아힘은 편지를 써서 당시 유력 음악평론가였던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에게 브람스를 소개한다. 슈만 역시 젊은 브람스의 재능에 감탄하게 되고, 같은 해 평론 ‘새로운 길’을 발표하여 브람스의 이름을 온 유럽에 알린다. 브람스와 슈만의 만남은 오래갈 수 없었다. 슈만이 이듬해인 1854년 라인 강에 투신하는 해프닝이 있어났고, 이후 정신병원에 있다가 1856년 사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아힘과의 우정은 지속되었다. 브람스는 1878년 불후의 명작인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하여 요아힘에게 헌정한다. 이듬해 브람스가 지휘하고, 요아힘이 연주하는 환상의 연주회가 열렸다. 새로운 만남의 마지막 방점은 슈만의 아내 클라라(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1819-1996)에게 찍혔다. 브람스는 14살 연상의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슈만이 죽은 후에도 40년 동안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1896년 클라라 슈만이 죽자 브람스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897년 브람스도 간암으로 결국 사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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