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명한 정치인 한 사람이 떡고물 시비에 휘말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를 하거나 공직에 있다 보면 뒤로 뭐가 좀 생기는 시절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자 한 사람이 당시 유명한 정치인에게 이와 관련하여 질문을 하니 떡을 만들다 보면 떡고물이 생긴다는 발언을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실제로 떡을 만들다 보면 떡고물이 생긴다. 떡만이 아니고 세상만사 모든 일을 하다 보면 조금씩 뭐가 생겨나게 되어있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다 보면 톱밥이 생기고 대패로 나무를 다듬다 보면 대패 밥이 생겨난다. 옛날 할머니나 어머니가 칼국수 만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주물러 공기를 빼내고 이를 홍두께에 말아서 얇게 펴서 밀가루를 살짝 바르고 다시 차곡차곡 접어서 부엌칼로 썰고 나면 칼국수가 만들어진다. 이 때 국수꼬리(경상도에서는 ‘국시 꼬랑대이’라고 한다)가 생긴다. 이것도 칼국수를 만들 때 생겨나는 부산물로써 고물에 해당된다. 이것을 받아 챙겨서 숯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는 떡이나 칼국수를 만들어도 떡고물이나 국수꼬리는 구경도 못한다. 왜? 요즈음은 이들을 집에서 만들지 않고 모두 떡 방앗간이나 국수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은 어떤가. 학계나 정계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이 표절시비다. 누가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이 되니 이를 검증 하고 학위를 취소해야 하느니 마느니 늘 설왕설래한다. 이것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논문을 작성하고 나서 ‘논문 고물’이 얼마나 생겼는가를 보면 된다. 위에서 떡과 칼국수 예를 든 것처럼 학위 논문이건 학술지에 게재하는 논문이건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물이 생겨나게 되어 있다. 논문을 작성한 후에 고물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표절을 했거나 논문 공장에서 찍어낸, 소위 대필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석/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생기는 논문 고물은 대체 무엇인가. 논문을 작성하다 보면 애당초 저자가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주제나 연구자들이 간과했던 것들이 튀어나오게 된다. 여러 가지 내용들 중에서 처음 계획했던 논문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한 논문 안에서 모두 다룰 수 없는 주제나 아이디어가 논문 고물이다. 나중에 이 고물을 이용해서 제 2, 제 3의 논문을 작성하고 이를 학술지에 발표하게 되는 것이 논문 고물인 것이다.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학생이 제대로 공부를 한다면 여러 가지 새롭게 발생한 연구 주제 목록이 만들어지게 된다. 제대로 공부를 하면 석사는 몰라도 특히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후에 남은 인생 동안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연구주제나 아이디어 목록이 생긴다. 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얼마나 많은 논문과 책을 섭렵하고, 얼마나 많은 곳을 답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했는가에 따라 그 목록의 길이가 결정된다. 결국 그 목록은 한 연구자가 남은 일생동안 풀어야 할 과제가 되는 것이다. 마치 떡을 많이 만들면 떡고물 양이 많아지듯이. 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고물들이 다시 또 생긴다. 이런 과정이 체질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후 성과물이 나올 때마다 보람과 작은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 재미로 연구를 하고 또 그것을 즐기면서 하면 더 좋다. 이 과정에서 나의 새로운 발견이나 주장을 할 때면 더욱 좋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씩 거실 거울에 붙여 놓은 글을 슬쩍 읽어 본다.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낙지자’(知之者 不如 好之者 不如 樂之者)라고!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무엇을 하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제일 낫다. 오늘도 누가 어디 논문 고물 흘린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집을 나선다.
수개월 전 모 검진기관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상이 발견되었었다. 제대로 처치하지 않았으면 바로 명부(冥府)로 갈 뻔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다른 부분은 양호하여 전체적으로 건강상태는 상위 10%로 예상 수명이 90세라고 했다. 90세라면 앞으로 남은 햇수가 15년 남짓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저승사자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명부전에 들러 지장보살과 시왕에게 미리 선처를 부탁해야 할 것 같다. 삼천불전의 서쪽에 있는 명부전은 지장전, 명왕전, 시왕전이라고도 하는데,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워 많은 대중의 귀의처가 되는 지장보살과 그 권속을 모신 전각이다. 지옥의 어두운 곳을 관장하기에 명부전이라고 하고,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곳이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또 명부의 왕을 모신다고 하여 명왕전, 그 명왕이 열 분이라해서 시왕전이라고도 하고, 이승과 저승의 가교역할을 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은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지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지장보살의 좌우 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다. 도명존자는 중국 양주에 있는 개원사의 스님으로 저승사자의 실수로 저승을 경험한 이후 지장보살을 모시게 되고, 무독귀왕은 전생에 지장보살을 도운 인연으로 협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장 삼존의 좌우에는 염라대왕을 위시한 시왕이 도열하고 그 바깥쪽으로는 판관, 녹사, 직부사자, 귀왕, 나찰, 장군, 동자 등이 있다. 지장삼존의 좌우에 있는 시왕은 저승으로 끌려온 망자들의 죄질에 따라 형벌을 가하게 된다. 각 시왕이 주재하는 지옥은 다음과 같다. -제1 진광대왕(秦廣大王)의 도산(刀山)지옥 사람이 죽은 지 7일 후 첫 번째 심판을 받는 곳. 월천 공덕, 시주 공덕이 없는 죄인이 칼산에서 칼에 찔리고, 관속 시신은 쇠못에 박힌다. -제2 초강대왕(初江大王)의 화탕(火湯)지옥 죽은 지 14일째 심판을 받는 곳.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거나,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준 공덕이 없는 자가 가는 곳. 펄펄 끓는 물에 빠지는 고통을 받는다. -제3 송제대왕(宋帝大王)의 한빙(寒氷)지옥 죽은 지 21일째 심판을 받는 곳. 불효하거나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노인을 공대하지 못한 죄인이 가는 곳. 얼음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 -제4 오관대왕(五官大王)의 검수(劒樹)지옥 죽은 지 28일째 심판을 받는 곳.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지 않은 사람, 막힌 길을 뚫어주지 않은 사람이 시퍼런 칼날로 우거진 나무 사이로 걸어가게 되는데 걸어갈 때마다 살점이 떨어진다. -제5 염라대왕(閻羅大王)의 발설(拔舌)지옥 죽은 지 35일째. 일가 화목을 깨뜨린 자, 어른을 박대한 자가 가는 곳. 죄인의 혀를 길게 뽑아 그 위에서 소가 밭을 갈듯 쟁기를 이끄는 처참한 고통을 겪는다. -제6 변성대왕(變成大王)의 독사(毒蛇)지옥 죽고 나서 42일째. 살인, 역적, 강도, 고문, 도둑질을 한 자가 가는 곳인데 독사들이 우글거리며 온몸을 감아 물어뜯는다. -제7 태산대왕(泰山大王)의 거해(鉅解)지옥 죽은 후 49일째. 사십구재가 끝나는 날. 나쁜 음식을 대접한 자, 쌀을 팔아도 되를 속인 자가 가는 곳으로 형틀에 가두고 톱으로 뼈를 썰면서 산채로 토막을 낸다. -제8 평등대왕(平等大王)의 철상(鐵床)지옥 죽은 지 백일째.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자를 쇠절구에 찧은 뒤, 쇠못을 빼곡하게 박은 침상 위에 눕혀 놓고 죄를 다스린다. -제9 도시대왕(都市大王)의 풍도(風途)지옥 죽은 지 1년이 되는 때. 불륜을 저지른 남녀에게 살을 에는 바람이 분다. -제10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의 흑암(黑暗)지옥 죽은 지 3년째 마지막 심판을 받는 곳. 생전의 업에 따라 육도윤회의 길로 나선다. 남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식이 없는 이는 밤낮이 없는 캄캄한 이곳에 갇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행적을 되돌아 보니 ‘만약 명부에 간다면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왕을 알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공덕을 쌓아야할 것 같다. 수 주 전 아내와 같이 의료보험관리공단에 들러 사전의료연명의향서를 작성했다. 시왕들이 죄를 집행할 때 혹 감경요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기대를 해 본다.
중학교에 입학한 지가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졸업사진을 찍는단다. 우리 아들 녀석 이야기다. 코로나 셧다운 관계로 1년을 꼬박 집에서, 또 1년간은 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1년이라지만 아크릴로 사방을 둘러싸인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동료들하고의 대화가 금지된 상태에서 수업만 들어야 했으며, 학교에는 정수기가 있는데도 개인별 물통으로 물을 마시는 등 철저히 고립된 학교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새 3학년이고 또 졸업 사진을 찍는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코로나로 힘들었을 녀석한테도 시간은 예외 없이 흘러가는구나 싶다가도 한참 어울려 공도 차고 별 거 아닌 거에 낄낄대며 내일을 채울 소중한 시간을 뭉텅 잘려나간 듯한 느낌에 아쉬움도 크다. 녀석한테 쉴 새 없이 카톡 알림과 전화벨이 울린다. 어깨너머로 들은 내용이라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단체 사진은 ‘깡패(!)’ 콘셉트로 찍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모양이다. 성인이 되어 옛 졸업 앨범을 펼쳐보면 ‘그때가 참 좋았지’ 하고 추억하려면 사진도 다소 엉뚱할 필요는 있겠다 싶다. 그게 꼭 깡패여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아무튼 아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 친구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니까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도 재미난 점이라면 “우린 뭘 입고 찍을까?”에서 “그래 건달 컵셉이닷!”에 이르기까지 의사결정(decision-making) 과정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게 압도적으로 영향을 과시한다는 거다. 화려한 언변과 정교한 논리에서부터 동의를 구하고 세를 규합하는 정치력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아들 녀석이 제안한 망치보다는 야구방망이(!)가 더 임팩트가 있을 거라는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와이프랑 눈이 마주쳤는데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와, 요즘 애들 정말 대단하구나! 그래도 괜찮다. 우리 아들 좀 멍청해 보여도 같은 반 여자애들이 똑 부러지니 뭐 그 또한 언젠가 재미난 추억일 테니...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인상 쓰고 있을 아들 녀석 주변은 이 녀석만큼이나 밝고 맑은 미래로 충만한 우리 아이들이 새겨져 있을 테니... 그런데 모든 졸업 사진이 이렇지는 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바로 우크라이나 졸업생의 경우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에서도 어김없이 졸업생들은 정들었던 교정을 떠나야 한다. 그전에 졸업사진도 찍어야 하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외곽에 위치한 체르니히우(Chernihiv)는 전쟁 발발 초기에 이미 민간시설의 80%가 파괴될 정도로 심한 내상을 입은 곳이다. 이곳에서 졸업을 하는 학생들은 부서진 탱크나 무너져 내린 학교 건물 더미를 배경 삼아 졸업사진을 찍었다. 웃음기 사라진 이들의 얼굴에는 상실감만이 가득했고 호락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미래를 상징하듯 하나같이 굳게 다문 입술을 하고 있다. 이들을 앵글에 담고 있던 작가 스타니슬라프 세니크는 “마치 초현실주의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두 여학생이 서로 마주 보면서 찍은 사진이나 여러 학생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나 배경은 하나같이 포격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전장터다. “감정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학생들이 모두 좋아했다”라고 어느 여학생은 애써 덤덤하게 말하지만 그 얼굴은 주변을 둘러싼 시멘트 더미처럼 창백했다. “우리 모두 여기서 자랐다”며 “우리가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처한 실상을 사진으로나마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의지로 읽혔다. 알프레드 윌리스라는 영국 식물학자는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꼬박 한나절을 버둥대며 애를 쓰는 나방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처럼 보여 나방이 잘 빠져나갈 수 있게 칼로 고치의 옆을 조금 잘라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나방은 날개는 화려하지도 않았으며 힘없이 날갯짓을 몇 번 하는가 싶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반면에 좁은 고치에서 빠져나오려 온 힘과 정성을 쏟았던 나방은 맑고 영롱한 빛깔을 한 날개를 작지만 힘차게 파닥이며 날아가더란다. 주름살 깊은 어르신들의 미소에는 기품과 인생의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온갖 희로애락을 견뎌내며 지켜봤기에 비로소 웃을 줄 아는 저 일그러진 얼굴 말이다. 부서진 탱크 위에 어렵게 서있는 청춘들도 부디 이런 삶의 지혜를 잊지 말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강아지는 산책을 좋아한다 김기택 산책로 여기저기에 코를 들이대다가 수상한 구석과 풍부한 그늘을 콧구멍으로 낱낱이 핥다가 팔이 잡아끄는 목줄을 거스르며 냄새 속의 냄새 속의 냄새 속으로 빠져들다가 애기야, 어서 가자, 안 가면 코만 떼어놓고 간다 엄마가 사정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코를 박고 있다가 냄새에 붙들려 코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목줄이 아무리 세게 목을 잡아당겨도 냄새에 깊이 박힌 코는 뽑혀 나오지 않는다 콧구멍으로 이어진 모든 길을 거칠게 휘젓는 냄새에 코가 꿰어 끌려들어 간다 수천수만의 코와 꼬리가 뛰어다닐 것 같은 곳으로 이름과 표정과 살아온 내력과 가계와 전생까지 한 냄새로 다 투시하는 코들이 있을 것 같은 곳으로 냄새를 향해 뻗어 내려간 뿌리들의 끝이 보일 것 같은 곳으로 네 발바닥 질질 끌리며 끌려들어 간다 냄새는 점점 커지고 사나워진다 좁은 틈으로 수축했다가 동굴처럼 늘어나는 기다란 구멍이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삼키고 콧구멍에 매달린 머리통과 몸통까지 다 삼켜버릴 기세다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몸통은 보이지 않고 남아 있는 꼬리만 풀잎 사이에서 살랑거리고 있다 도와주세요! 냄새에 물린 우리 애기 코 좀 빼주세요!
“아이구, 물난리 나가 다 떠내려가고 인자 겨우 정신 차랬어요!” 지난 힌남노 태풍 당시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포항시 북구 대송면, 그 중에서도 완전히 침수되어 전재산이 홍수에 휩쓸린 지역에서 박영숙 씨는 남편 김상목 씨와 사투를 벌였다. 물난리가 나서 집안살림이 절단난 것은 그렇다 치고 남편인 김상목 씨가 떠다니는 장롱에 발이 찍혀 중상을 입은 것이 더 큰 화였다. 피해 신고를 하기 위해 찾아간 면사무소조차 수해로 인해 업무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았고 자동차조차 침수되어 발마저 묶여버렸다. 그 와중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전화가 빗발쳤다. 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바랐지만 넷이나 있는 동생들 중 선뜻 부모님을 위해 달려오는 동생들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황폐한 정신과 아픈 몸을 이끌고 어머니 시중을 들기 위해 경주로 달려와야 했다. 심지어 동생들이 그런 자신을 알아주고 말고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박영숙 씨의 마음에 떠오른 드라마가 있다. ‘아들과 딸(MBC 1992)’이다. 아들과 딸은 남아선호사상에 찌든 집안에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가 겪어가는 세태에 대한 이야기들로 당시 60%를 오르내리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인기 드라마였다. 최수종(귀남 역), 김희애(후남 역). 채시라(미연 역) 등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이 출연했고 오연수, 한석규, 곽진영이 이 드라마로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백일섭이 애드립을 섞어 부른 ‘홍도오이야 우덜 마라 아글씨 옵빠아가 이이있다’라는 노래가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그 시대적 배경은 박영숙 씨가 맞닥뜨렸던 개인사와 거의 흡사했다. 박영숙 씨는 6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순이로 생산현장을 떠돌았다. 빡센 노동현장이 힘겨워 공장일을 그만둔 박영숙 씨는 간호조무사 시험을 치른 후 한때는 간호조무사로 부산 등 대도시와 경주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어렵게 번 돈은 집안 살림과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는 데 사용됐다. 차별 속에서도 아들을 대신해 언제나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후남의 모습이 박영숙 씨에게 고스란히 투영된다. 양복 재단사인 남편 김상목 씨를 만나 결혼한 후 하필 당시에 불어닥친 기성복 열풍으로 부부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 지인의 권유로 자동차로 물건을 실어 오일장에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이게 무려 40년 넘게 장돌뱅이로 일생을 보낸 박영숙 씨 부부의 시장과의 인연이었다. 시장 다니는 고된 와중에 친정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달려온 것은 대학 나와 잘 사는 동생들이 아닌 바로 박영숙 씨 부부였다. 박영숙 씨는 그때마다 아무 소리 않고 따라 나서는 것은 물론 처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보다 먼저 달려가자 재촉하는 남편이 더없이 고맙고 든든했다며 고마움을 표한다.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주목할 만한 일은 결국 딸인 후남의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후남은 온갖 차별 속에서도 부모님의 말을 따랐고 동생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동갑내기 석호(한석규 분)를 만나 결혼한다. 시장에서 박영숙 씨 부부는 전국구 유명인사다. 박영숙 씨는 시장 보는 틈틈이 쓴 ‘시장 이야기’로 daum 블로그에서 일약 유명인사로 자리 잡았다. 이 인연으로 포항시 블로그 기자를 지내기도 했고 잡지 ‘여성시대’와 소상공인방송 ‘임현식의 시장 사람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유명 방송에서 섭외가 들어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고사했을 정도다. 박영숙 씨 부부는 특유의 따듯한 마음으로 시장 사람들과 소통하며 언제나 따듯한 커피를 준비해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다. 그런 아량을 가진 박영숙 씨이지만 힌남노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는 대놓고 볼멘소리다. 이번 재해는 다분히 재해를 예상하지 못한 채 하천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이 큰데도 마을 전체 주민들이 받을 보상은 터무니없이 작아 보여서다. 박영숙 씨네만 해도 수천만 원의 피해가 생겼지만 고작 몇백만 원의 보상안이 오르내릴 뿐이다. ‘그럴 양이면 ‘재해지역’으로 선포하지나 말 것이지 정부가 말로만 인심 내고 실상은 나 몰라라 한다‘고 일침이다. 경주신문에 이 말을 꼭 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우리 시대 후남이, 박영숙 씨의 말 한마디가 수마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 관계자들이 화들짝 놀랄 만하다!!
지통천황은 황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어 손자에게 황위를 물려주어야 했다. 그 손자가 문무천황이었다. 그러나 그 손자도 황위를 물려받은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말았다. 할머니 지통천황으로부터 황위를 물려받았으나 24살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초벽황자와 문무천황 두 부자가 연이어 단명으로 삶을 마무리하였다. 이러한 날벼락이 없었다. 어머니 아폐황녀가 눈물가를 만들어 바쳤다. <76번가> “문무천황께 활 쏘는 소리가 어찌해 나는가. / 사람들과 대신은 방패 되어 서 있거라. / 슬프구나.” 아폐황녀는 아들의 죽음에 ‘활을 쏘는 것이 무슨 이익(利)이 된다는 말이냐. 아무 소용이 없다’라며 오열하고 있다. 어머니 황녀의 말에서 고대인들이 망자에게 활을 쏘는 행위는 떠나가는 이에게 ‘이익(利)이 된다’고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어머니였던 아폐황녀가 직접 즉위하기로 하였다. 문무천황이 너무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뒤를 이어 즉위할 손자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원명(元明)천황이다. 원명천황은 아들 문무천황이 죽고 난 다음 3년만에 등원경( 藤原宮)을 떠나 평성경(平城京)으로 또다시 천도를 결심하였다. 지통천황이 등원경으로 천도한지 16년 만이었다. 아마도 등원경(藤原경)이 길지가 아니라는 주변의 권유에 따랐을 것이다. 원명천황이 새로운 수도 평성경(平城京)으로 가는 도중 가마를 멈추게 하고 멀리 보이는 아스카 청어원궁(淸御原宮)이라는 궁을 바라보며 <78번가>를 지었다. 길지 않은 기간에 세 번의 수도 이전이 있었다. 아스카 청어원궁(淸御原宮)에서 등원궁으로, 등원궁에서 평성경(平城京)으로의 천도였다. <78번가> 飛鳥 明日香 能 里乎 / 置 而 / 伊 奈婆 君 之 當 者 不 所 見 香 / 聞 安 良武 “그동안 날아가는 새나 아스카 청어원궁과 이웃으로 지냈으리. / 지통천황께서 아스카 청어원궁을 폐기하셨지. / 그대에게 지통천황이 벌을 주어 없애버리라고 하였지. / 보고해 오기를 등원궁(藤原宮)은 아무 탈 없이 평안히 지내도록 조치하였다 하는구나” 지통천황이 아스카 청어원궁(淸御原宮)을 버리고 등원경(藤原京)으로 천도한 원인이 언급되고 있다. 무엇인가 벌을 내리는 차원에서 아스카의 궁을 폐기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아들 초벽(草壁)황자가 요절한 데 대한 문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등원궁도 길지가 아니었다. 문무천황 역시 그곳에서 요절하고 말았다. 평성경(平城京) 천도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원명천황은 길지가 아니었다고 하나 등원경(藤原京)을 폐기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비록 천도는 하나 등원경(藤原京) 관리에는 성심껏 조치를 다했다. 지통천황과의 단절이 아니라 지통천황의 정통성을 이어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등원경(藤原京)은 천도 다음 해인 711年 불에 타고 말았다.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성건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오는 11월말까지 냉장고 다이어트 인증 이벤트를 실시한다. 냉장고 다이어트 인증 이벤트는 냉장고를 정리한 후 개인 SNS에 업로드하고 인증사진을 센터 메일(gyoengju1365@hanmail.net)로 보내면 정리함 바구니 세트를 기념품으로 증정한다. 냉장고 적정용량을 유지하면 나무 1500만 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전력을 감축시키고 연간 40㎏의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 센터는 또 성건동 경로당 어르신을 대상으로 냉장고 정리방법을 교육하고 희망자에 한해 전문가가 방문해 무료로 냉장고 정리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벤트는 성건동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봉사센터 기획홍보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가 내달 25일까지 ‘2022년 경주시 좋은간판 공모전’을 개최한다. 공모전은 창의적이고 우수한 디자인의 간판을 선정해 전시·공유하고 바람직한 지역 광고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기획됐다. 대상은 도시 경관을 향상시키는 디자인이 적법하게 설치된 간판으로,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된 창작 간판 등이다. 다만, 타인 또는 단체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참가 자격은 별도 제한이 없으며 공동 참가는 불가능하다. 공모 참여는 경주시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기존 간판 사진 1장, 개선 디자인 간판 사진 1장 등 총 2장(A3사이즈)과 작품 도안을 USB에 담아 경주시 도시계획과로 직접 방문하거나 우편접수하면 된다. 제출 기간은 다음달 14일부터 25일까지다. 수상작은 추후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선정할 예정이며, 대상 1명 180만원 포함, 총 7명에게 500만원의 시상금을 제공할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청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거리 분위기뿐 아니라 경주의 역사·문화·관광 정체성을 담아낸 좋은 간판을 꾸준히 발굴해 소상공인과 주민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매진할 계획”이라며 “경주를 빛낼 간판을 찾고 또 적극 알려 수준 높은 지역 옥외광고 문화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지역 차원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추진력 중 하나는 시민사회의 주도성(initiative)이다. 지속가능성에 입각한 시민참여와 실천은 재정 절감과 직결되고 지속가능성이 높은 정책을 통한 지역사회 통합력을 제고한다(당진시, 2020a; 이창언, 2020; 이창언, 2022: 451). SDGs 주체들은 시민을 지속가능발전 정책 추진에 주체화하기 위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 홍보, 인식증진 활동을 추진해야한다(이창언 2022: 457). 일본에서는 SDGs 의제 제안-선정-실행-평가의 방식이자 이해 관계자 참여를 통한 사회문제 해법 찾기의 일환으로 ‘SDGs 선언’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4월 충청남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청년특별위원회가 ‘충청남도 청년 연대 지속가능발전 실천선언식’에서 SDGs 선언을 한 바 있다. 이어 지난 9월 충남청소년진흥원이 주관하는 국제교류 사업 ‘글로벌 미래세대 위원회’가 충청남도 청소년 SDGs 실천 선언식을 개최하고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하고 실천 문화 확산을 주도하기 위한 선언이 발표됐다, ‘SDGs 선언’이란 기업이나 조직, 단체, 각계각층, 개인 등이 SDGs에 대한 실천 방침을 정하고 SDGs 실행과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발표하는 것이다. 선언은 SDGs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이해관계자, 세대의 조직을 위한 정책 수립과 SDGs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富山県, 2011)을 말한다.[富山県, 2021, 富山県SDGs宣言作成ガイド(R3.11 月改訂版2)] 일본 지자체에서 실행되는 「SDGs 선언 사업」은 지자체 내의 기업, 기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SDGs에 관한 대응을 선언하는, 「지자체 SDGs 선언」을 모집하여 지자체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SDGs 대응을 「가시화」하고, 지자체 전용 사이트 등을 통해 널리 알림으로써, 지역사회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의 파트너십을 촉진하고, 지자체의 SDGs 대응을 추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 다양한 이해관자들과 협력하여 지자체 SDGs의 달성과 함께 지역사회 이해관계자 그룹의 성장・발전 전략으로 연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경주시가 태풍 힌남노 피해와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시민들을 위해 펼친 다채로운 문화예술축제들이 곳곳마다 성황을 이뤘다. 최근 실외마스크 해제와 함께 △신라문화제 △난장! 동아시아 축제 △황금정원 나들이 △힐링 페스타 △문화재야행 △신라달빛기행 등 축제장을 찾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축제를 만끽했다. 이에 경주의 가을은 밤낮 구분 없이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며 예전의 활기를 띠고 있으며, 주요 관광지뿐만 아니라 봉황대 인근 중심상가도 문전성시를 이뤘다. 경주의 대표 명품문화 예술축제인 ‘2022 제49회 신라문화제’가 17일간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화려한 막을 내렸다. 이번 신라문화제는 시민 주도적 역할 확대와 지역과 동반 성장하는 축제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으며, 60년을 이어온 위상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면모를 과감히 보여줬다. 특히 중심상가, 봉황상가, 북부상가, 불국상가 등 21개 업체가 참여해 파레트 테이블, 파라솔, 푸드 코트존(A형 텐트)등으로 색다른 공간을 연출한 달빛난장을 비롯한 인근 여러 점포들은 사람들로 연일 북적였다. 신라문화제 행사기간 중 봉황대 광장 특설무대에서는 2022 동아시아문화도시 경주의 ‘난장! 동아시아를 즐겨라’ 행사가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한·중·일 3국의 대중가요와 전통연희를 만나볼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매일 저녁 다양한 문화공연, 문화체험, 부대행사로 행사장을 찾은 방문객을 맞이했다. 황남동고분군 일원에서 열린 ‘황금정원나들이’ 행사도 성황리에 진행됐다. 올해는 경주 8색色을 주제로 8개 주제공원과 5개 부속정원, 신세대 포토존, 야간 경관용 조명시설 등이 선보였다. 특히 행사기간 동안 폭염, 강풍주의보 등 고르지 못한 날씨 속에서도 18만여명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HICO에서 진행된 2022 경주사계축제 가을편 ‘힐링페스타’ 경주도 명강사들의 힐링 강연, 점핑 힐링, 테라피 워크숍, 필라테스/요가 라이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성황리에 개최됐으며, 명품 야간 문화재 활용 축제인 ‘2022 경주 문화재 야행’과 ‘신라달빛기행도’ 이색적인 경주의 야간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선사하며 방문객들을 밤늦게까지 머물게 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청마 유치환의 대표시 ‘행복’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낭송 행사에 가보면 청마의 시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행복’을 비롯하여 ‘바위’, ‘깃발’, ‘생명의 서’, ‘울릉도’ 등 시인은 떠났어도 그의 시는 여전히 애송되고 있다. 청마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경주로 옴으로 인해 경주는 바야흐로 문학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경주고 교장(1955년 2월~1959년 9월)과 경주여고 교장(1961년 6월~1962년 3월)으로 두 차례에 걸쳐 5년 6개월 정도 경주에서 살았다. 청마의 작품 중 경주를 노래한 시들은 생각만큼 많지는 않다. 산문 1편과 시 7편 정도이다. 물론 경주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작품들과 경주 생활 중에 쓴 작품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청마는 경주에 온지 한 달 만에 안압지와 반월성, 남천을 거닐며 고도 경주의 느낌을 ‘경주에 와서’라는 짧은 산문 한 편으로 표현했다. 경주생활 중에 쓴 시 가운데 대표작으로 황오리 5호총이라는 부제가 붙은 ‘고분에서’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 시는 발표 당시에는 ‘황오리 5호총’이라고 발표했으나, 추후 발간된 시집에는 제목이 ‘고분에서’라고 되어 있다. 이외에『제9시집』에는 경주의 유적지들이 들어간 시들이 많다. 경주로 온 이듬해 4월 경주 외동 모화리 봉서산 자락에 위치한 원원사지를 방문하고 쓴 ‘원원사지’와 소금강산 굴불사지의 사면석불을 노래한 ‘사면불’과 ‘잠자리-석굴암에서,’ 상봉-계림에서, ‘역투’ 등이 경주를 노래한 대표적 시편들이다. 원원사(遠願寺)! 원원사(遠願사)! 그 무슨 간곡하고 아득한 소망이었기 이도록 애닯게도 이름 들려 남음이랴 -시 원원사지 일부 경주에서 쓴 시들의 공통점은 경주지역 화강석과 많은 대화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언급한 시들 외에도『제9시집』에는 ‘예술- 석수(石手)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추어 둔 것을 깨뜨려 찾아내는 것이다’ 라는 아포로즘과 단장 54 바위- 얼굴은 안으로 내면을 밖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또한 미발표 유고시집속 ‘석상에(石像)에’ 라는 제목의 시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돌아가는 것이다 그 아득한 시원(始元)의 데로 이제는 돌아가는 것이다 (중략) 싸늘한 살갗 하나 사이하고 저쪽과 이쪽이 지척도 아니언만 소리도 닿지 않는 그 억겁 리- 이제는 돌아가는 것이다 -(청마의 시 ‘사면불(四面佛)’ 일부) 흔히 미당 서정주의 ‘석굴암대불’과 비교되기도 하는 같은 제목의 시 ‘석굴암대불’은 경주로 오기 전에 쓴 작품이다. 1953년《신천지》에 발표하였으며 1954년 발행된『청마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청마는 경주의 자기의 거처를 요지암(遙持庵)이라 이름 짓고 여러 유적지들을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 이 시기는 생떽쥐베리와 사르트르에 빠져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경주시절은 왕성한 문단 활동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주고 부임 이듬해인 1956년 경북문화상을 받았으며, 1957년에는 한국시인협회 초대회장으로 피선되었으며 예술원장 재연임 피선되기도 했다. 또한 시집『제9시집』을 간행하기도 했다. 1958년에는 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을 받았으며『류치환 시선』과 자작시 해설집『구름에 그린다』를 발간했다. 1960년에는 시집『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주시절은 한국문학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시인협회장과 예술원 회원이라는 타이틀도 타이틀이었지만 그는 사람을 좋아하는, 술을 좋아하는 로맨티스트였다. 그런가 하면 아나키스트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관 주도 행사에 학생들이 동원되는 일에 강력하게 반대하였으며, 이승만 정부에 반기를 들며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일로 인해 경주고 교장직에서 물러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청마의 시 ‘칼을 갈라’와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등에 그의 강직한 성격과 뜨거운 피가 잘 나타나 있다. 한편으로 청마는 애주가로 경주에 많은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져서 아쉬움이 큰 쪽샘의 주막집들을 자주 들리곤 했다. 지역의 예술인들은 물론 부산과 대구, 포항 등 멀리서 찾아오는 많은 문인들과 밤을 새우며 술잔을 주고받기도 했다. 멋과 낭만이 함께했던 쪽샘이 사라진 것은 여러모로 아쉽다. 문향이 꽃피던 그곳의 사라짐은 경주의 또 다른 상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허만하 시인은『청마풍경』이라는 저서에서 청마의 흔적을 찾아 원원사지를 비롯하여 쪽샘 등 경주 곳곳을 누비며 청마의 풍경을 그려내기도 했다. 송희복 교수는 유치환의「경주 시절과 시의 공간 감수성」이라는 주제로 청마의 경주 시절의 시를 분석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청마와 관계된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를 추억하고 기념하고 있다. 청마문학관과 청마기념관, 청마문학상, 청마문화제 등이 있는 통영이나 거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중에서도 특히, 이영도 시조 시인과의 5000통 넘는 연서를 쓴 편지의 시인 청마를 기념하여 통영우체국을 아예 ‘청마 우체국’으로 이름을 바꾼 일은 특별하다. 청마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부산 동구에서도 초량동 산복도로에 전망대와 우체통을 설치하고 그의 예술과 문학정신을 기리고 있다. 5년 6개월을 살다간 이곳 경주에도 청마의 시정신을 기리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다. 경주고 교정에는 재직 당시 만든 교훈 ‘큰 나의 밝힘’ 새김돌이 남아 있어 재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불국사에서 토함산을 오르는 등산로에는 청마시비가 세워져 있다. 청마의 시 ‘석불암대불’의 일부를 새긴 이 시비에 얽힌 웃픈 에피소드도 숨어 있어 재미를 더해 준다. 그의 문학정신을 계승하는 청마백일장도 4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워낙에 뛰어난 시편들이 많아서 묻혀있지만, 경주를 노래한 뛰어난 시편도 많다. 청마의 시를 찾아내고 애송해주는 것이 경주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일일 것이다.
경북도는 시군과 합동으로 20일부터 12월 19일까지 2개월간을 ‘하반기 지방세 체납액 일제정리기간’으로 정하고 강도 높은 징수활동을 펼친다. 경북도의 9월말 기준 이월체납액은 1196억원으로 연말까지 427억원 이상을 정리해 올해 체납액 정리목표를 달성하고 다음연도 이월액을 최소화 할 방침이다. 도는 이번 일제정리기간에 기획조정실장을 단장으로, 시·군에서는 부단체장을 부단장으로 하는 ‘지방세 체납정리단’을 구성해 체계적으로 운영한다. 모든 체납자에 대해 획일화된 체납처분이 아닌 고액 체납자과 소액체납자, 납세태만과 담세력 부족 체납자로 분류해 맞춤형 체납 징수활동을 추진한다.체납세액 고지서 일괄 발송을 시작으로 체납자 전국 재산조회, 재산압류 및 압류재산 공매 등 체납처분과 인·허가 등 각종 관허사업 제한, 신용정보기관에 공공기록정보 등록 등의 행정제재도 병행한다. 특히 고액·상습 체납자는 명단공개, 출국금지, 관세청 수입물품 체납처분 위탁 등 고강도의 체납처분과 행정제재도 가한다. 이번 일제정리 기간에는 관외지역에 거주하는 체납자의 체납액 징수를 위해 3개팀 70여명으로 구성된 관외지역 체납세 합동징수팀도 운영해 현장 위주 실태조사와 추적 징수를 펼친다.또 내달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을 ‘체납차량 번호판 경북 일제 영치 기간’으로 정해 자동차세 체납액도 집중 징수한다. 이는 체납자의 주소를 빅데이터로 제작한 체납차량 분포 지도와 번호판 영상단속 시스템이 탑재된 차량을 이용해 영치활동을 추진한다. 영치대상은 도내 자동차세를 2회 이상 체납, 전국 자동차세를 4회 이상 체납한 차량이다. 아울러 경북 최초로 전국 부동산 거래신고 현황을 전수 조사해 체납자 소유의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인 분양권과 입주권도 체납처분 한다. 다만, 납부의지가 있는 생계형 체납자에 대해서는 분납을 유도하고, 행정제재 유보를 통해 경제활동 복귀를 지원하는 등 맞춤형 징수 활동을 전개한다. 홈페이지와 전광판, 케이블 방송, 반상회보, 현수막 등 각종 홍보매체를 통해 ‘지방세 체납액 일제정리기간’을 적극 홍보해 체납자가 스스로 체납액을 납부할 수 있는 분위기도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황명석 경북도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체납액 일제정리 기간을 통해 성실납세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며 “다만, 고의적으로 세금납부를 회피하는 상습·고질체납자에 대해서는 선제적 체납처분과 적극적 행정제재를 통해 공평과세가 확립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상북도의정회는 지난 25일, 26일 양일간 The K호텔 경주에서 70여명의 의정회 회원(전·현직 도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지방의회 발전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 이번 세미나는 지방의회 부활 31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의 지방자치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지방의회의 나아갈 길을 찾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특히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으로 주민주권 구현과 지방의회 독립성 확보, 지방의회 책임성 강화, 지방행정 능률성 제고, 자치권 확대 등이 토론 내용에 포함됐다. 개회식은 안원효 경북도의정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이철우 경북도지사, 배한철 경북도의회의장, 주낙영 경주시장, 이철우 경주시의회 의장, 김석기 국회의원 순으로 축사가 이어졌다. 세미나에서는 고우현 전 경북도의회 의장이 ‘새정부의 지방자치 발전 방안’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이어 이성칠 금오공대 교수가 ‘지방자치법 개정에 따른 문제점과 대책’, 박중보 경운대 교수의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문제’를 주제로 발표 및 토론이 진행됐다. 주낙영 시장은 “경주는 신라시대 화백제도, 부족회의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원칙이 이어져온 의회제도의 기원이 서린 고장”이라며 “이런 문화유산의 보고인 경주에서 세미나가 열리게 된 것을 환영하며, 향후 지방자치 및 의회발전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원효 경북도 의정회장은 개회사에서 “앞으로 세미나, 토론회 등을 통한 의원들 간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 지방의회와 의원들의 위상 재정립과 지방자치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북도 의정회는 지난 9월 초 태풍 힌남노로 많은 피해를 입은 경주시 주민을 돕기 위해 성금을 모금해 경주시에 전달했다.
경북도는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인한 재난의 원활한 복구와 피해주민의 생계안정을 위한 복구비 6367억원을 정부에서 확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태풍으로 21개 시·군에서 인명피해 사망 11명, 사유시설 238억원, 공공시설 1807억원 등 총 2045억원(포항 801억, 경주 1211억)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포항·경주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복구에 필요한 총사업비는 6367억원으로 사유시설(재난지원금) 691억원, 공공시설 5676억원이다. 특히 이번 태풍 ‘힌남노’는 하천 등 방재시설물의 계획빈도(1980년)를 훨씬 뛰어넘는 500년 빈도 이상의 강우로 포항지역은 도심하천이 범람하면서 주택 4037동, 상가 9292동이 침수피해를 입었다. 상대적으로 경주지역은 산지 및 도로 비탈면 등에서 유출된 토석류와 유수지장물로 인해 공공시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경북도는 피해 복구와 매년 반복되는 태풍 및 집중호우 피해에 대비하고자 지방하천 11개소(포항5, 경주6), 소하천(경주), 도시방재시설(포항) 등 총 13개 지구 개선복구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중앙부처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당초 요구한 금액보다 2922억원을 더 확보했다. 또 지난 태풍으로 많은 침수피해를 입은 주택과 소상공인의 주거 및 생계 안정을 고려해 ‘피해 주택 재난지원금 상향,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지원, 의연금품 관리·운영 규정 개정’을 정부에 건의했다. 행정안전부에서 시범적으로 기존 지원기준을 상향해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침수주택은 기존 2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침수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에게는 300만원의 추가 재난지원금도 지원하게 됐다. 정부 재난지원금 상향지원과 현실적인 지원을 위해 도 및 시군의 예비비를 추가로 확보하고 이재민의 주거 및 생계안정을 돕고자 침수주택 200만원, 소상공인 100만원을 추가로 지급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경북도는 침수피해를 입은 주택 및 소상공인의 조기 생활 안정을 위해 재난지원금 150억원과 재호구호기금 149억원을 피해복구계획 확정 전에 교부해 피해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사유재산 피해에 대해서는 한발 앞선 지원과 실질적인 피해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신속한 예산편성으로 복구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예기치 못한 재난에도 대비할 수 있는 있도록 재발 방지와 개선복구사업에 역점을 두고 복구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최근 ‘메타버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을 오픈하고 복지상담, 재활서비스, 장애인식개선교육, 장애인정보통신보조기기 체험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경상북도의‘메타버스 수도, 경북’추진계획에 따라 올해 1월부터 10개월간 메타버스 플랫폼 연구조사를 포함한 전략회의를 추진했고, 지난 9월에는 포항공대 메타버시티 교육추진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한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메타버스 TF팀을 구성하고, 사회복지분야와 특히 장애인복지 서비스에 적용가능한 메타버스 컨텐츠 연구를 통해 스페이셜 플렛폼을 활용한‘메타버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을 구축했다. 메타버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인터넷주소 https://url.kr/wsyaqb 를 통해 접속이 가능하며, 스마트폰, PC, HMD(VR기기)를 활용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혹은 QR코드를 사진으로 찍어 접속이 가능하다. 회원가입 절차 없이 접속해 3차원 가상현실 공간인‘메타버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나를 대신하는‘아바타’를 통해 복지관소개, 방명록, 상담실, 장애인식개선교육, 자원봉사활동, 정보통신보조기기 ICT 메타버스 체험관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종성스님은 “메타버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서비스 오픈 후 여러 보완사항을 확인하고 수정해 쌍방향 소통을 통한 장애인의 일상생활훈련, 안전훈련등을 통해 장애인의 자립지원이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만들어 내겠다”고 전했다. 메타버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1개의 메인공간과 연계한 5개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메인공간은 복지관 소개 및 복지관 소식을 사진, 영상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연결된 5개의 공간은 장애인 정보통신보조기기 14종, VR 안전체험, ICT 메타버스 체험관, 비대면 소통공간인 상담실, 자원봉사자 및 후원자를 소개하는 서포터즈실 등으로 구성돼있다. 메타버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다양한 서비스를 추가 확충해 업데이트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21일 경주시장애인기초재활센터 대회의실에서 ‘제12기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 수료식’을 개최했다. <사진> 이날 행사에는 장애인대학 학생 및 가족, 자원봉사자, 후원자 등 70여명이 참석해 수료를 축하하고 격려했다. 제12기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은 지난 4월 14일 개강해 장애인들이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권·금융·법률·교육 등의 강의가 진행됐다. 또 6월 단양 여름견학, 10월 청송 졸업여행도 가졌다. 또 (사)경상북도장애인부모회 경주시지부, 한마음정신보건재활센터와 협업해 전체 일정을 진행했다. 밝은빛누리는 장애인대학은 경주시와 경주시의회의 지원으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 12년째 진행되고 있다. 장애인복지 및 자립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한 강의 등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이 자립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사회참여 확대를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23년 밝은빛누리 장애인대학은 오는 2023년 3월 개강할 예정이다. 신청문의는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하면 된다.
대한노인회 경북연합회는 지난 12일 의성군 의성마늘소 덕향 회의실에서 도내 10개 시·군 12개 팀이 참여한 가운데 ‘2022년 제1회 신바람 경로당 한마음 예술제’를 비대면 동영상으로 개최했다. 한마음 예술제는 경로당 어르신팀 부문과 경로당 프로그램 강사 부문으로 나눠 진행했다. 지난 3월부터 프로그램 접수 결과 1차 서면심사에서 경로당 프로그램 강사부문 14개 팀이 참여해 5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경로당 어르신 팀은 시·군 지회별 17개 팀이 1차 예선 심사 후 7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으며, 본선대회에서는 프로그램 발표자만 참석해 발표하고 경로당 프로그램은 비대면 동영상으로 진행했다. 이번 발표대회는 경로당 어르신의 도전의식과 프로그램 강사의 재능을 발굴하고 선의의 경쟁의식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경로당 전문채널 및 유튜브 방송을 통해 항상 시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공유해 경로당 활성화 사업에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만들고자 열렸다. 식전 행사로 시작된 발표회는 경북국학기공 화랑시범단의 국민건강 기공체조와 나라사랑 태극기 공연 후 개회식이 진행됐다. 이어 본선 대회는 경로당 어르신팀 부문에 문경시지회 상록수팀의 건강 댄스 체조 등 7팀, 경로당 프로그램 강사 부문에 김천시지회 오삼아 노올자팀의 ‘어르신 추억의 건강운동회’ 등 7개팀이 참여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대회 결과 경로당 어르신부문에서는 연극을 통해 어르신의 치매예방과 기억력 증진을 위한 ‘춘향전’ 작품을 제출한 안동시지회 은물결동아리 팀이 대상을 받았으며, 칠곡군, 포항시, 문경시, 경주시, 영주시, 성주군지회가 입상해 상장과 부상으로 농산물상품권을 받았다. 프로그램 강사부문에서는 문경시, 김천시, 경주시, 상주시지회가 치열한 경연을 벌여 코로나 시대에 디지털 격차해소를 위한 교육 방법 개발 등 스마트 경로당 조성을 위한 경주시지회 천년의 행복팀이 대상을 받았다. 김월선 경북경로당광역지원센터장은 “12개 시군지회에서 제출된 모든 영상들이 대상을 받을 충분한 작품들이었다”며 “코로나19로 그동안 여가활동의 기회가 없었으나 이번 발표회 작품들을 유튜브 경로당 전문채널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시청할 수 있도록 널리 보급하겠다”고 말했다. 구승회 노인회장은 “어르신들은 이제 스마트폰이 일상화돼있고 경로당은 공공와이파이가 보급되고 있어 어르신 여가선용으로 활용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며 “이번 프로그램 개발을 계기로 경로당이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와 다른 점이 많다. 기본적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약간만 배우면 칠 수 있는 스포츠이고 클럽이 하나라서 준비에 드는 비용 부담이 적다. 골프화를 신으면 좋지만 일반 운동화를 신고도 충분히 칠 수 있다. 86센티 길이의 클럽 하나로 합성수지로 만든 직경 6cm의 공을 치는데 공 하나로 전 라운드를 마칠 수 있다. 클럽은 볼 닿는 부분의 각이 없어 볼이 뜨거나 날아가지 않아 위험하지도 않다. 코스가 짧고 비교적 큰 힘이 들지 않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들, 힘을 덜 쓰는 노인도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각광 받고 있다. 경기 방식은 골프와 비슷하다. 4인 1조로 티 오프 후 홀까지 가장 적은 타수로 볼을 넣는 사람이 승리한다. 18홀 기준으로 대략 1시간 30분~2시간 정도면 마칠 수 있다. 파크골프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1984년에 처음 시작돼 홋카이도에만 무려 600여개의 파크 골프장이 성행할 만큼 인기 있는 스포츠로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에는 구황동, 동천동, 석장동, 산내면과 외동읍 등에 모두 15개의 파크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 무엇보다 라운딩 비용이 일반 골프에 비해 비교조차 안 될 만큼 싸다. 수시로 유익한 포스팅으로 이 코너의 단골 출연자가 된 권원수 씨가 최근 파크골프에 대해 자주 소개했다. 지난 10월 21일에는 ‘파크 골프에서도 홀인원 하면 밥을 사야 하는 룰이 생겼다’며 파크골프 동호인들 간 즐거움에 대해 썼다. 골프에서 홀인원 하면 엄청난 비용을 들여 홀인원을 기념하는 것에 비해 밥 정도 사면 된다고 하니 부담감 없이 홀인원을 즐길 만하다. 그러나 권원수 씨 말을 빌리면 홀인원이 워낙 자주 나와 늘 밥 사고 얻어먹는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권원수 씨는 경주의 경우 경주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돼있고 파크골프를 즐기는 60~80대 동호인들이 급증해 시내에 있는 두 곳의 파크골프장은 매일 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이 많아 라운딩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더 길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며 파크 골프장의 인기를 전했다. 또 파크골프를 친 덕분에 건강이 좋아졌다는 분들이 많은 만큼 건강보험공단이나 경주시에서 시내 근처에 몇 곳 더 조성해주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하루에 빈 플라스틱 통 5개면 50원을 벌 수 있습니다. 꼭 돈을 받아서라기보다 환경을 살리는 데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하지요” 미사신도시 미사1동행정복지센터 입구에 마련돼있는 자원순환 회수로봇(네프론)을 이용한 한 주민이 건넨 말이다. 이 주민은 매일 하루 서너 개씩은 페트병이 생기므로 이틀에 한 번꼴로 이 로봇을 사용한다며 환경을 위하는 동시에 걷기를 통해 건강도 함께 챙긴다고 자랑한다. 자원회수로봇은 빈 페트병을 회수하는 로봇이다. 하루에 일인당 5개까지 넣을 수 있는데 이 로봇에 페트병을 넣으면 저장된 전화로 개당 10원의 포인트를 준다. 이 포인트가 2000점 이상되면 등가로 현금으로 환산받을 수 있다. 단 페트병의 레벨을 완전히 제거하고 투입하지 않으면 로봇이 회수 불가로 판정하고 도로 뱉어낸다. 기자도 정식으로 등록한 후 절차를 보고 따라해 보았다.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시작 버튼을 누르니 페트병 수거 로롯이 입을 열었고 그 속으로 페트병을 넣자 문이 닫히고 페트병 구부리는 소리가 들린다. 좀 두꺼운 페트병을 넣었더니 회수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뜨고 병이 도로 배출되어 나온다. 실험삼아 비닐 레벨이 붙은 페트병을 넣었더니 역시 회수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병이 배출된다. 레벨을 떼고 다시 넣으니 무리 없이 통과된다. 여기에 함께 연동된 앱이 ‘슈퍼빈’이라는 앱이다. 이앱을 통해 포인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는 반드시 이 앱을 깔아야 한다. 앱을 보면 미사2동에는 한 대 밖에 없지만 신도시가 만들어진 화성에는 30대가 이미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자원회수로봇 옆에는 아이스팩 수거함도 마련돼 있어서 일상에서 수거하는 아이스팩을 행정복지센터에서 일괄 처리하는 기능도 있다. 아파트단지라면 분리수거장에 따로 아이스팩 수거를 위한 박스를 가져다 놓기도 하지만 일반 주택에서는 아이스펙 처리가 은근히 불편하다는 점을 고려, 행정복지센터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거하는 것이다. 50원이라는 비용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일상에서 배출되는 페트병의 처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로봇을 이용해 페트병을 처리하는 재미도 느끼고 작은 돈이지만 벌 수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일부러 백을 들고 걷는 과정에서 생기는 운동은 완전한 덤이다. 아직은 화성시와 미사신도시에만 있는 로봇이라 향후 사용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뷰할 때 가장 힘든 유형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어떤 대답에건 ‘예’나 ‘아니오’식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유형은 인터뷰하기가 무척 어렵다. 충분한 취재를 하고나서 인터뷰를 시작해도 막상 무얼 물으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거나 ‘취재를 잘 해 왔으니 그걸 바탕으로 대충 써주세요’라고 말하면 갑자기 기가 탁 막힌다. 취재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기본 자료일 뿐이다. 이를테면 겨우 뼈대를 갖춘 정도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살을 붙이고 피를 돌게 해야 하는데 대답이 ‘알아서 대충 하슈’ 정도가 되고 나면 코가 맥맥해지는 것이다. 그만큼은 아니라도 의뢰자들이 친절하게 상세한 내용을 일일이 다 기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전개과정을 선연히 기억하기도 힘들거니와 설혹 기억하고 있어도 제대로 표현해내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자서전을 대필하는 과정에서 내가 만든 용어가 하나 있다. ‘인지적 유추(認知的 類推)’라는 것으로 약간의 단서를 가지고 상황 전체를 찾아낸다는 의미로 쓴 용어다. 이것은 그야말로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한 작법이다. 내가 책을 써드린 어느 의뢰인이 나에게 이렇게 기술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시장에 좌판을 깔고 해삼과 멍게를 팔았어요. 그걸 돕다가 칼에 손가락을 베었어. 피가 철철 났지. 그때 이걸 엄마가 알면 얼마나 걱정하실까 생각되는 거야. 그래서 끝내 말씀드리지 않고 혼자 치료하고 숨겼어요. 그때 내가 철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 이야기를 들려준 의뢰인의 표정이 얼마나 숙연해보였던지 인터뷰하는 내 가슴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을 정도였다. 며칠 후 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글이 완성돼 그분에게 보여드렸다. 그 분이 글을 다 읽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감탄했다. “아니 박 작가님은 어떻게 그때 그 상황을 나보다 더 정확하게 써놓았어요. 마치 그 상황을 직접 보신 듯 상세하게 꾸며 놓았어요!” 나는 달랑 1분도 안 되는 재료를 가지고 한 편의 드라마를 써야 했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우선 해당 시장의 모습을 내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다행히 내 머릿속에는 70년 대 좌판시장의 모습이 잘 저장되어 있어서 그런 류의 시장 모습을 쉽게 유추해낼 수 있었다. 좌판에서 부지런히 손님들 상대하고 있을 어머니를 한 쪽에 두고 그 어머니와 말을 주고 받거나 서로 술잔을 나누는 손님들의 모습도 그려졌다. 이런 배경을 두고 내 상상력이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의 바쁜 모습 한쪽으로 소년이 칼로 멍게를 손질한다. 날씨는 춥고 손은 얼었다. 자연히 감각이 둔해질 수밖에 없다. 시린 손끝을 새파란 칼날이 지나간다. 그때의 섬뜩함이 가슴을 파고 든다. 순간 빨갛게 흐르는 피가 멍게에서 나온 체액과 썪인다. 이어 전해 오는 짜릿하고 날카로운 아픔. 놀라 손가락을 움켜쥐고 순간 어찌할 바 모른다. 어머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일에 여념이 없다. 그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스치는 생각. ‘이걸 보시면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실까?’ 소년은 말없이 손가락을 움켜쥐고 그 자리를 떠나 우선 약국으로 달려간다. 상처를 보고 약사가 빨간 소독약과 붕대, 반창고를 내주고는 직접 응급처치까지 해준다. 그런채로 다시 돌아와 멍게를 손질한다. 붕대가 젖을까봐 조심하는 것이 성가신 한편 혹시라도 어머니가 손가락 처맨 붕대를 보실까봐 몸을 한쪽으로 틀어서 멍게를 손질한다. 이런 내용을 찬찬히 기술해 나갔다. 위에서 유추한 내용들을 하나씩 간추려 묘사하고 그때의 감정을 글로 표현했다. 그 글을 본 의뢰인이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 자신이 처한 여러 가지 정황과 감정이 그 글 속에 그대로 되살아나서였다. 또 한 명의 의뢰인은 어린 시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중학교 갈 때, 아버지가 ‘농사나 짓지, 중학교는 말라꼬 가노?’ 카면서 입을 딱 닫아뿌시는 기라. 학교 가서 선생님께 말a씀드렸더니 그 선샘이 집으로 와가 맻매칠이나 아버지를 설득했어. 그래가 내가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카이” 딱 요 정도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썼다. 우선 그 의뢰인의 마을을 가본 나는 전체적인 동네의 배경을 머릿속에 스케치하고 의뢰인의 집 구조도 그려보았다. 아버지와 이야기 할 때의 초등학교 6학년을 내 마음속에 등장시켰다. 매일 일손 바쁜 아버지의 모습 한편으로 가난한 아버지의 어쩔 수 없이 완고해진 심정도 살펴보았다. 아이의 조심스런 부탁과 그것을 단숨에 잘라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 그 표정이 어떠했을지를 그려 보았다. 이튿날 학교에서 풀 죽은 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해야 했던 아이의 심정과 똑똑한 아이에게서 진학을 포기한다는 말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 두 사람 사이에 흘렀을 처연한 마음들을 다시 그려보았다. 그로부터 매일 가정방문을 오는 선생님과 아버지의 실랑이를 그렸다. 선생님의 집요한 설득과 생활형편으로 인해 차마 아들을 중학교에 보내겠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것을 뒤쪽에 숨어 숨죽이고 듣는 아이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차곡차곡 그려보았다. 그정도 되면 아들이 영특하고 공부에도 남다른 재질이 있었을 것이 뻔하니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받을 수 있는 장학혜택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런 며칠의 과정이 주변 정황과 시골의 풍경과 세 사람 사이에 오고간 대화, 표정 등으로 묘사됐다. 이윽고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졌을 때 아이의 환희와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을 선생님의 미소, 자신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아들을 속 시원히 진학시키지 못한 미안함에 허락은 하면서도 끝내 시선을 다 주지 못했을 아버지의 표정도 포함됐다. 결국 그 대목을 읽은 의뢰인도 눈물을 ‘뚝’ 흘렸다. 나중에 그 의뢰인이 출판기념회를 하면서 대중들 앞에서 어머니에 대한 시를 한편 읽었는데 도중에 왈칵 눈물을 흘려 좌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함께 눈물을 쏟은 적도 있었다. 그 상황들을 내 가슴에서 고스란히 유추하고 세세히 묘사한 결과가 그렇게 드러난 것이다. 그런 성공적인 사례들도 많았지만 전혀 엉뚱하게 유추해 글 전체를 확 드러내고 다시 쓴 적도 있다. 어느 의뢰인이 아주 큰 음식점을 경영했는데 그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지 않아 혼자서 상상의 날개를 폈는데 그게 보기 좋게 어긋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의뢰인은 한강의 어느 멋진 강변에 건물을 빌려 카페 겸 음식점을 시작했는데 그게 아주 대박나게 잘 되어 2호점을 다시 냈고 급기야 자기 자신이 직접 집을 지어 유명한 한정식 식당을 다시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그 의뢰인이 하도 급하게 일을 의뢰하느라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분의 평소 신념과 이력 등을 고려하고 잘 되는 식당의 일반적인 모습들을 유추해서 글을 썼다. 위생관념, 직원들과의 화합, 고객에 대한 응대요령, 식자재에 대한 청결도 등 내 전공의 한 분야이기도 한 식음료 부분의 잣대를 일괄적으로 적용해 글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의뢰인이 고개를 절절 흔들더니 급히 자기 부인을 만나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다른 내용은 다 그만두고 그 큰 음식점을 오로지 부인이 혼자서 다 감당해낸 것이었다. 직원도 없이 오로지 부인의 솜씨와 차포상마 다 뗀, 한 마디로 엄청난 노력으로 꾸려진 식당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전혀 뜻밖의 반전이었다. 유추의 한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어이없는 반동이기도 했다. 글을 고쳐 쓰면서 나는 그 의뢰인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의뢰인은 마침 내 선배이기도 했다. “형수님은 일반의 한계를 뛰어넘은 내조자이십니다. 이 책은 차라리 형수님 책으로 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