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산림조합은 신용덕 현 조합장이 단독 입후보 했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강동농협은이종해 현 조합장이 단독 입후보 했다. 한편,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은 23일부터 선거 전날인 3월 7일까지 선거운동을 하게 된다. 투표는 오는 3월 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각각 지정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경주신문이 2023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되며 6년 연속 지원을 받게 됐다. 올해 1월 제7기로 새로 출범한 지역신문발전위원회(위원장 김찬영·이하 지발위)는 17일 2023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사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주신문을 비롯한 지역신문 주간지 50개사와 일간지 32개..
삶을 조각하다 상황에 따라 재료를 선택하고 구상을 한다. 결과물에 대한 긴장과 설렘으로 작업에 몰입한다. 그리고 평온함을 느낀다. 나에게 조각은 삶이다.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생명체에 대한 호기심이다. 진중하면서도 가볍게 실재를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삶을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조각해 나간다.
2001년 6월 경주 백률사에서 도난당한 지장탱화가 약 22년 만에 경주로 돌아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 지장탱화는 가로 245cm, 세로 277cm 크기다. 탱화에는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10명의 시왕 등 지장보살의 주요 권속이 그려져 있다. 1900년대 작품으로 비지정문화재다. 지장탱화는 지난 2020년 7월 도난문화재 은닉처에서 발견됐고, 그동안 법원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돼 지난해 9월 2심 선고에서 원소유자로 소유권이 인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내로 원 소재지인 백률사 또는 본사인 불국사로 귀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발견 당시 포항 보경사, 구례 천은사, 구례화엄사, 순천 선암사 등 14개 사찰의 도난 문화재도 32점도 함께 나왔다. 백률사 지장탱화를 찾은 것은 대한불교조계종과 경찰청, 문화재청이 지난 2014년 10월 ‘불교문화재 도난 예방 및 회수를 위한 협약’을 맺고 공조체제를 갖춘 덕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측은 백률사 지장탱화가 22년 전 도난 후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일부 손상된 상태라고 밝혔다. 법당 내 탱화를 칼로 도려내 훔쳐가는 바람에 장황이 없어 경주로 와서도 곧바로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문화재 지정은 향후 재평가 후 지정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주에는 가치 있는 문화재들이 도난이 과거부터 잇따랐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경주지역 도난문화재 정보를 검색하면 1993년부터 모두 29건의 지정 또는 비지정 문화재가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기림사 감지은니묘법연화경 등 2점과 사적 제311호 창림사지 내 ‘석탑재’ 2점 등 중요문화재도 사라져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도난 시기는 1990년대 6건, 2000년~2009년 사이 18건으로, 문화재 관리가 지금보다 허술했을 시기에 집중됐다. 도난 문화재를 현재 기준으로 재평가한다면 비지정문화재들도 지정문화재로 충분히 승격 가능하다. 하지만 도난 후 부적정한 처리로 인해 지난 2020년 백률사 지장탱화와 함께 발견된 일부 문화재는 경화돼 펼쳐지지 않거나 덧칠 등으로 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난 문화재를 찾는 노력이 시급해지는 이유다. 문화재당국은 도난 문화재를 찾기 위해 보다 근본적이고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는 11월경 ‘2025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결정을 앞두고 경주시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경주시는 지난 2021년 7월 2025 APEC 정상회의 유치에 공식 도전장을 내밀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 27일 ‘APEC 정상회의 경주시 유치지원위원회’ 발대식에 이어 경북도 등 유관기관과의 실무회의를 열고 유치 성공전략을 논의하는 등 경주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다. 16일엔 서울에서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유치 민간추진위원회도 발족하고 유치 당위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오는 3월엔 APEC 경주 유치 범시민추진위원회를 출범해 범 시·도민 유치의지를 결집시키고, 대정부 유치활동도 전방위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1989년 출범한 APEC은 미국, 일본, 호주, 러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연안 국가 21개국의 국가 정상 협의체다. 대한민국에서는 2005년 부산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에 다시 열린다. 정부는 오는 11월경 개최도시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주시를 포함해 부산시, 인천시, 제주시 등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는 경제적 파급효과와 함께 도시 위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경주는 유치 경쟁 도시 중 유일한 중소 기초자치단체로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정과제인 지방균형발전 실현과 관광·경제 활성화에 안성맞춤이다. 정상회의를 위한 회의장과 숙박시설, 그리고 경호까지도 타 지자체에 비해 유리한 조건이다. 여기에 신라왕경 핵심유적과 석굴암, 불국사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가치를 지녔다. 그리고 APEC교육장관회의, 제7차 세계물포럼, 제14차 세계유산도시기구 세계총회 등 수많은 국제회의 경험을 통해 정상회의 개최 역량도 갖췄다. 이철우 도지사와 주낙영 시장은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실, 정부부처 등을 찾아 경주 유치를 건의하고 당위성도 설파하고 있다. 경북도민과 경주시민이 결집하고 두 단체장의 진력을 당부하며, 오는 11월경엔 ‘경주 유치’라는 낭보를 기대한다.
한때 우리나라 정부 요직 상당수를 군인들이 차지하는 시대가 있었다. 박정희 소장이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하면서 그 쿠데타의 핵심세력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군이 정부의 요직을 장악하게 되었다. 1979년 10·26 사태로 인해 박정희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는가 싶었지만 이어진 12.12 군사쿠데타는 역사를 도로 1961년으로 돌이켰고 이로 인한 군부독재의 서슬은 더욱 퍼래졌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것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후다. 군의 정치진출 기반이었던 ‘하나회’를 와해시키고 군에 대한 강도 높은 권력 제한과 군의 부단한 자정 활동으로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출신 최초의 대통령이 된 이후 한동훈 법무장관을 비롯한 검사 출신들이 대거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고 과거 어느 때보다 검찰의 권력이 세졌다는 세간의 평가다. 그런 반면 검찰의 중립성과 수사의 치밀성, 수사에 대한 정확성은 대거 떨어졌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전 정권에 대한 검찰수사가 위험수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문재인 정권이 집권 초기 ‘적폐청산’을 빌미로 검사들을 동원해 온갖 정치보복을 행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문재인 정권은 무능한 권력을 쓰러뜨리고 이른바 사자방 비리, 즉 4대강에 쏟아진 비리와 자원외교를 빌미로 한 외교적 국가손실, 군의 방위사업과 관련한 구조적 비리 등을 파헤치고 농단을 없애라는 국민적 요구로 탄생한 정권이다. 그러나 기껏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다스 실소유주’ 따위의 빤한 이슈와 법원까지 걸고 넘어지는 무리한 수사에 열을 올린 채 사자방 비리는 터럭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20년 장기집권’ 운운하는 오만을 거듭한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주는 패배를 맛보았다. 윤석열 정권은 문재인 정권의 불합리를 바로 세우라고 국민이 선택한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그 기대에서 멀어진 채 집권초기 이미 30% 지지율로 곤두박질쳤다. 그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 자신의 안일과 무지, 적절치 못한 처신 등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 못지않게 국민의 우려를 주는 것이 ‘검찰공화국’으로 치닫는 독재적 발상이다. 경제회복과 민주화 가속화라는 국민의 바람은 아랑곳 않고 정적 죽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한 대통령과 그 뜻을 ‘알아서 살펴’ 여와 야를 구분하지 않고 대통령의 뜻에 반하면 어떤 정치인이건 꼬투리를 잡아 짓누르기에 여념이 없는 검찰을 보면 이 정권의 말로가 어떨지 짐작 가고도 남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과감히 대통령에 직언하고 고쳐나갈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전 정부가 저지른 패착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꼴이다. 문재인 정권의 가장 큰 맹점은 비판 없는 성역화였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인천공항공사가 전격 정규직화 되고 4대강 수문이 열리는 식의 상명하복이 현정권에서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한 술 더 떠 대통령의 말 실수나 적절치 못한 처신을 억지스런 변명과 미화로 포장해 오히려 국민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런 제왕적 행태야말로 민주화를 바로 세워온 국민의 눈에는 최대의 거슬림이자 기만일 뿐이다. 더구나 그런 비판을 검찰력을 내세워 억누르려 하는 것은 또 다른 거대한 반발을 부를 것이다. 최근 한동훈 법무장관은 이전 대통령들에 대한 수사결과가 정권에 따라 달라진 것에 대해 ‘그때는 살아있는 권력이 있어서 수사를 못 했지만 정권이 바뀌어서 할 수 있었다’고 해명해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이 권력에 따라 부화뇌동했다면 그 검찰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애초에 글러 먹은 것이고 결국 검찰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에 빌붙은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군이 어떻게 권력을 독차지했는지도 보았고 그 권력이 어떻게 해체되는지도 역사를 통해 똑똑히 배웠다. 검찰이라고 다를 바 없다. 검찰이 제 역할을 공명정대하게 하지 않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거나 권력의 정점에 서려 한다면 반드시 국민적 역풍을 맞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권력을 농단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이미 수차례의 철퇴를 내리쳤다. 바로 이 엄연한 역사를 검찰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경주시 거버넌스가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함께 권역별 ‘지역사회 혁신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경주시 전체와 권역별 표준모델을 제시하고, 권역의 실정에 따라 추진체계와 시기 등을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경주시 로컬 거버넌스 체계는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지향하는 ‘지역사회 혁신계획’ 수립 △행정 개별 부서에서 각기 추진되는 거버넌스형 정책을 종합하는 전략계획 수립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ESG(환경·사회·거버넌스),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 도시재생, 주민자치센터의 시민참여 사업, 복지사업, 에너지 등 ‘협치 선도 정책·사업’을 권역별 특성에 따라 재구성하고 재조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여 경주시 로컬 거버넌스 전략모델을 수립한다는 것은 경주시 사회, 경제, 환경적 조건, 네트워크 구조화전략, 내부운영 전략적 틀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제 절차, 방법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로컬 거버넌스 전략은 고정적이기 보다는 각 지방의 정책부서에서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경주시 거버넌스 활성화를 위해서는 첫째, 가치(민주주의와 공동선)의 사회적 공유. 둘째, 정보, 자원의 제공과 책임과 성찰의 공유. 셋째, 거버넌스 리더 또는 사회 혁신가(social entrepreneur)의 발굴과 양성 등 인적자원의 양적·질적 수준 향상. 넷째, 협동형 시민사회조직 활성화를 위한 선별적 지원. 다섯째, 거버넌스의 제도화를 통한 지속성 확보. 여섯째, 지역 거버넌스 생태계 구축 등이라 할 수 있다. 이상적이고 실현가능한 지역 거버넌스 과정은 지방정부의 전략,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 네트워크 간 연계와 협력, 제도화라는 여러 유형의 속성 중 가능한 많은 것을 결합함으로써 추진력은 향상될 수 있다. 경주시 거버넌스 전략모델은 신뢰와 협동의 협치 경주실현(비전), 내실 있는 협치, 시민참여형 협치, 융복합형 협치 시스템 구축(목표)이어야 한다. 경주형 거버넌스 첫 번째 전략추진과제는 시정 거버넌스의 인식 공유와 상호신뢰 강화이다. 이 단계에서는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 거버넌스 교육방향 및 목표설정, 거버넌스 교육 추진체계 확보, 교육내용의 혁신을 통한 거버넌스 행정, 주민운동의 정착, 교육방법의 혁신을 통한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 거버넌스 역량 강화,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 지역현장에 대한 유연성과 혁신성 확보, 지역현장 학습모델개발, 공무원·시민사회·중간지원조직원 거버넌스 교육성과 측정 체계 확립, 거버넌스 우수사례 발굴 확산, 거버넌스 성과측정 등이다. 두 번째 전략 추진과제는 관 주도에서 민관협력형 거버넌스 체제로의 전환이다. 이 단계에서는 경주 실정에 맞는 통합적 거버넌스 체계 구축과 중장기 거버넌스 계획 수립 및 실행 감독,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협동의 가치 확산이 중요하다. 특히 실천의 과정에서 생성된 지역 거버넌스 모델의 발굴 및 확산은 주요한 전략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추진과제는 경주형 거버넌스 실효성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강화이다. 이 단계에서는 기존 시민 참여제도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와 활성화 방안 모색, 시민 참여형 공공정책 결정방식의 정착, 각종 위원회의 제도 및 운영 방법 개선, 포괄적 공익활동지원을 위한 조례 및 제도 준비, 시민사회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계획 수립을 포함한다. 네 번째 거버넌스 전략 추진과제는 지역사회 기반 융복합형 거버넌스 모델 구축이다. 이 단계에서는 시민사회 역량강화를 위한 중장기 전략 수립, 다양한 결사체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에 기반한 분야별 네트워크 형성 방안 모색, 시민사회 섹터별 중간지원기관 재정비 혹은 통합적 관리틀 설치 중장기 계획 수립 등이 과제로 제기된다. 경주시 거버넌스는 위에서 제시한 로컬 거버넌스 전략 모델을 참고하여 시정 거버넌스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디자인해야 한다. 경주시 시정 정책영역별 정책의제 발굴, 시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모든 정책영역의 행정체계와 역량 파악, 거버넌스 시정 정책의 설계, 시정 거버넌스 추진체계의 상, 방향설정, 민·관 역할 분담 조정, 시정 거버넌스가 실질적 추진을 위한 조직·예산·인사 등 제도혁신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주시는 혁신계획 수립·실행, 발굴된 정책 분야를 실행할 담당 부서(총괄·협조) 지정, 행정 부서에서 추진하는 정책의제와 단위사업 추진 지원, 교육(민·관), 시민참여, 평가 등과 같은 중요한 사안을 점검하고 로컬 거버넌스 전략을 수립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경주 외동읍 신계리에 경주김씨 경암(敬庵) 김응춘(金應春,1547~1608)의 경암정이 있다. 예로부터 신계리는 충강공(忠剛公) 이징옥(李澄玉,1399~1453) 장군 그리고 경주성 탈환의 주역인 동엄(東广) 김득복(金得福,1561~1626) 장군과 동오(東塢) 김득상(金得祥,1565~1598) 형제 등 충신과 효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실제 이징옥은 양산(梁山) 출신이지만 양산과 경주는 지리적으로 외동 치술령을 사이에 둔 인접한 상황 덕분에 그의 후손들이 많이 우거해 살고 있으며, 김응춘 역시 신계리 출신이지만 양산의 대하(臺下)마을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김응춘의 증조부는 만호 김세적(金世績), 조부는 현감 김주(金柱) 그리고 부친은 참봉 김한(金漢)과 모친은 청주한씨 한인준(韓仁俊) 따님이다. 양산에 있을 때 왜놈들이 쳐들어오자 “신하가 입고 먹는 것이 임금의 것이요 나라의 것이니, 어찌 자신이 위태로움을 가리겠는가?”라 말하며 마을 장정들을 모아 적과 싸웠고, 선조 임금이 의주 용만(龍灣)에 있을 때 순찰사가 임금께 알려 원종(原從) 3등 훈을 받았다. 1593년 2월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8년 무술 명나라 장수를 도와 기장(機張)에서 접전해 공을 세웠다. 동래정씨 정원적(元績)의 따님과 혼인해 양산군 대하리에서 아들 김대성(金大聲,1569~1659)을 낳았다.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김대성 역시 병자호란에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할 때 비분강개하였고, 삼전도(三田渡) 화친 소식을 듣고는 곧장 고향으로 돌아온 강직한 성품이었다. 경주 출신의 김응춘은 양산에서 활동을 주로 하였지만, 말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양성과 수신을 하며 지냈다. 1604년 스스로 「경암기」를 지어 말하기를 “임인년(1602) 가을에 양산 대하리에서 선대가 살던 고향인 월성 동남쪽 장군바위 산 밑에 자리 잡았다. 3년이 지난 갑진년(1604) 봄에 사는 집 왼편에 두어 칸 초당을 세우니, 방과 마루가 갖추었으나 누추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산수의 경치는 장군바위가 우뚝 섰고, 효문동 들판이 그윽하였으며, 북쪽으로 대밭골 대나무가 푸르고, 남쪽으로 연지(蓮池)의 연꽃이 아름다웠다”라며 주변의 빼어난 경치를 설명한다. 그리고 매사에 공경하고, 행실을 돈독히 공경하며, 공경하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 심신을 닦는 요결이라는 문구의 경(敬)자를 취해서 공손하고 공경하는 거처로 삼았다. 세월이 흘러 후손들이 집터 가까운 곳에 자연과 더불어 경암정을 건립하고 1946년 문중에서 현판을 걸었다. 1971년 9월에는 풍산 류석우가 「경암정상량문」을 지으며, “훈련원정 경암 김 공은 계림의 빛나는 가문으로 선조 때 창의하였다. … 모두가 살기를 도모해 자기만을 돌아보는데, 공은 홀로 강개해서 몸을 떨쳤다. … 나의 창과 너의 칼이 따르기를 원하는 무리를 보았고, 피를 마시고 상처를 만지며 힘을 다해 적군을 막았다. 낙동강에서 여러 번 도적을 잡아 큰 공을 알렸고, 기장바닷가에서 북쪽으로 쫓아 기이한 승리를 거두었다. … 아! 세월이 이미 멀어져서 아름다운 칭송이 점차 사라지건만, 오직 사모하는 아름다운 명성은 저절로 드러나 사람들이 애석함을 일으킨다”라며 경암정 건립의 의미를 부여하였고, 소눌(小訥) 노상직(盧相稷,1855~1931)이 그의 「행장」을 지었다. 그리고 외동읍 죽동리에 있는 김응춘을 모신 추감재(追感齋)는 1921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5월에 공사를 마쳤고, 청 한 칸, 방 셋, 마루 네 칸의 여덟 칸 규모 집을 완공하였다. 1921년 6월에 월성 최현필(崔鉉弼)이 「추감재상량문」을, 1922년 9월에 8세손 김계환이 기문을 지었다. 후대에 와서 김응춘을 기리는 공간이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경주지역에서는 의병 활동으로 그리 알려진 것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옛 인물을 연구하는데 자료의 소략함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양산과 경주를 오간 부족한 그의 행적과 무신(武臣)이지만 학문적인 경암 김응춘에 대해 밝힐 자료가 발굴되길 희망한다.
2월이 싫어졌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설날이 있기도 하고, 내 생일도 덩달아 오기도 하는 달인데, 굳이 2월을 좋아하면 좋아했지,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쌍둥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고민하는 달이 되었고 그 고민이 달갑지 않았기에 2월이 싫어졌다. 아마 많은 아줌마, 엄마들이 싫어하는 달이 2월일 것이다. ‘이 무슨 소리냐고?’ 2월은 졸업이 있는 달이다. 그걸 누가 모르는가? 그런데 어린이집도 졸업을 한다.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2월 중순에서 하순에 졸업하고 짧게는 5일, 길게는 1~2주 동안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 집에 있어야 한다. 나는 전업주부였기에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있으면 되었지만, 아이들이 자꾸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쓰는 걸 이해시키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린이집을 졸업해서 이제는 어린이집에 못 간다고 하면 쌍둥이는 그러면 유치원에 가면 되지 않느냐고 따졌었다. 3월이 되어야 입학을 한다고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셋째도 어린이집을 졸업하게 되었을 때 며칠 전부터 신경이 쓰여 배가 아팠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워킹맘들은 어쩌란 소린가? 갑자기 아이를 1~2주만 맡길 곳이 어디 있으며 돌봐줄 사람이 누가 있는가? 친구 중에 가장 결혼을 늦게 한 나로서는 먼저 아이들을 키운 워킹맘 친구들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고 한편으론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때 사정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도와주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솔직히 졸업뿐인가? 어린이집도 방학을 한다. 가정 어린이집에 보낸 경우, 여름방학, 겨울방학도 일주일이 있다(큰 어린이집은 방학 기간에도 돌봄을 해주는 곳도 있기는 하다). 매년 며칠씩 엄마들은 돌봄 공백을 채우려고 이리저리 고민해야 한다. 워킹맘은 워킹맘대로,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힘든 시기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참고 견디며 경력을 이어가던 워킹맘들은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멘붕이 온다. 입학하면 길게는 한 달 동안 12시가 좀 넘으면 집에 온다. 학년이 올라가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다니던 엄마들이 막상 아이들이 학교를 들어갔는데 몇 년 못 버티고 사직서를 쓰는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초등 돌봄이 있기는 하지만 학교마다 정원이 많지 않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초등 돌봄이 1~2학년을 대상으로만 한다는 것이다. “3학년이 되면 혼자 있어도 된다는 소리인가?” 작년에 초등학생 형제가 집에서 라면을 먹다가 화재로 사망한 사건도 있다. 형제 자매가 같이 학교를 다니면 저학년은 돌봄을 하고 큰 아이는 혼자 집에 가라는 소리인가? 엄마들도 방학을 좋아하고, 2월을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줌마 한소리 좀 한다.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학교든, 아이들이 가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돌봄 선생님들의 근로조건을 최악으로 만들어서도 안된다. 근로의 피로도는 돌봄 서비스의 질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를 맡기는 엄마로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누구보다 절실히 느낀다. 그렇기에 선생님들의 쉼도 중요하다. 보통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월차, 연차는 그림의 떡이다. 선생님들의 쉼을 위해 방학엔 쉬고 월차, 연차를 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같은 기관에 근무 경력이 있지만 퇴사한 선생님이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의 방학과 연차와 월차를 대신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안된다고 하지 말자.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이 경주에 있다. 가정 어린이집처럼 작은 기관의 경우는 구역별(같은 동네마다) 보완 선생님을 채용하면 어떨까? 엄마의 휴식과 선생님의 휴식은 아이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아빠의 휴식에도… 그러니 올해 예산을 역대 최대로 많이 받았다고 자랑만 하지 말고 시스템적으로 부족한 곳을 채울 수 있는 고민의 시간을, 실제로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갖기를 아줌마는 바란다. 지역 위원들과 공무원, 선생님과 학부모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면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이다.
베르디(G.Verdi/1813-1901)는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 론콜레에서 태어났다. 밀라노에서 가까운 곳이다. 태어날 때는 프랑스 땅이었고, 곧 오스트리아가 이곳을 차지했다. 19세기 초 이탈리아는 듬성듬성 쪼개진 영토였다. 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사르디냐 피에몬테 왕국이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주도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 베르디의 삶의 터전은 그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밀라노에서의 성공, 그리고 통일운동으로의 필연적인 참여가 뒤따랐다. 부친의 친구이자 부세토의 부유한 상인 바레치(A.Barezzi/1787-1867)는 베르디의 후견인 역할을 맡는다. 밀라노에서 유학을 한 것, 그리고 부세토의 음악감독이 된 것은 모두 바레치 덕분이었다. 바레치의 아름다운 딸 마르게리타(M.Barezzi/1814-1840)와의 결혼(1836)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하지만 결혼은 비극의 전조였다. 슬하에 둔 1남 1녀가 모두 사망하고, 아름다운 아내마저 죽는다(1840). 불과 4년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불행들이다. 죽음에 대한 베르디의 두려움은 아마 말러에 견줄만한 것이리라. 죽고 싶을 정도로 크나큰 실의에 빠진 베르디를 건져 올린 것은 오페라 ‘나부코(Nabucco/1842초연)’의 성공이었다. 오페라 속에서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은 오스트리아의 압제 하에 있는 이탈리아인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나부코는 당시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알려진 합창 아리아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는 국가(國歌)의 위상을 갖기도 했다. 나부코 한방으로 베르디의 명성은 크게 높아졌고, 그는 평생을 함께 할 여인도 만나게 된다. 여주인공 아비가일 역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Strepponi/1815-1897)였다. 베르디는 1840년대에 애국적인 내용을 가진 오페라를 다수 작곡한다. 항간에 유행하던 ‘Viva Verdi(베르디 만세)’는 이런 베르디를 찬양하는 구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통일운동을 주도한 사르디냐 피에몬테 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향한 구호였다. Verdi는 Vittorio Emmanuele Re d’Italia의 두문자를 따서 만든 은어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살벌했던 오스트리아의 압제 속에서 현란한 언어유희를 즐겼던 것이다. 1850년대 초반, 동갑내기 라이벌 바그너가 드레스덴 혁명에 실패하여 스위스 취리히에 피신해 있던 시기에, 베르디는 오늘날 ‘빅3’라 불리는 작품들을 초연한다. 1851년에 리골레토를, 1853년에 일 트로바토레와 라 트라비아타를 연이어 발표한다.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는 각각 프랑스의 유명 작가인 빅토르 위고와 알렉상드르 뒤마피스의 문학 작품에서 리브레토를 가져왔다. 베르디는 나이 마흔을 즈음하여 전성기를 달렸다.
초기 미국,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백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파 앤드 어웨이(Far and Away, 1992)를 떠올릴 것이다. 론 하워드 감독이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을 출연시켜 만든 흥행작이다. 영화의 백미는 온갖 수난을 겪고 난 이민자들이 자신의 땅을 가지는 순간이다. 자신의 깃발을 최대한 멀리, 최대한 넓게 달려가 꽂는 곳이 자신의 땅이 된다는 설정은 개척자들에게 로또 이상의 매력과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 역사도 그런 시대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비록 땅은 아니지만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 수많은 전문인들이 자신들만의 영역을 만들고 그 표식을 남겨놓았다. 그 영역이 큰 사람은 대단한 학자가 되거나 재벌 혹은 공직자가 되었고 문학인과 체육인 등 다방면에서 이름을 남겼다. 단지 큰 업적을 남기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이룬 영역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낄 수도 있다. 그것이 비록 세상이 다 알만큼 거대하거나 떠들썩 하지 않아도 자신을 떠난 대중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거나, 비록 자신의 이름을 걸어놓지는 않았지만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그 영역에서 삶을 즐기고 여유를 얻는 모습을 본다면 그 만큼 가치 있는 일도 드물 것이다. 지난주 만난 권원수 씨는 ‘파 앤드 어웨이’의 주인공 ‘조셉 도넬리(톰 크루즈 분)’를 연상시키고도 남는다. 권원수 씨는 경주 사람들은 물론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씩은 반드시 둘러 봄직한 보문호수 전체 도로에 벚나무를 심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보문관광단지는 1971년 8월 정부에서 실행한 ‘경주관광개발계획’으로 기본계획이 마련되어 1974년 공사를 시작했으며 1975년 보문관광단지 지정 및 경주관광개발공사가 설립되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1단계 공사를 마치고 개장한 것이 1979년 4월이다. 그 후 각종 호텔과 편의시설이 들어서고 온천이 개발되면서 보문관광단지는 일약 국내 최대·최고의 관광단지로 성장했다. “제가 1978년에 경북관광개발공사에 입사했어요. 마침 그즈음 경주관광종합개발공사가 시작되었고 보문호수가 만들어졌지요. 저는 경주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나왔는데 그때 호수 주변에 조경을 맡았어요!” 토목학과를 나왔지만 조경공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자료도 거의 없어 조경 공사 자체가 어렵기만 했다는 권원수 씨. 그 와중에 가장 기억 남는 작업이 벚나무 심기다! “당시에 심은 건 팔뚝 정도 굵기의 가늘고 작은 벚나무였습니다. 그게 지금은 보시다시피 고목이 되었지요” 권원수 씨는 보문관광단지를 둘러볼 때마다 아름드리로 성장한 벚나무를 바라보고 쓰다듬어 보는 일이 어떤 일보다 보람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이른 봄 벚꽃이 한창일 때 보문호반을 찾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환한 웃음을 볼 때마다 45년 전 한 그루 한 그루 벚나무를 심던 자신의 청년시절이 떠올라 감회에 젖곤 한다. “그 후 보문단지 경험을 발판으로 전국을 다니며 많은 공사를 했어요” 가깝게는 경주 포항간 산업도로에 은행나무도 심었고 경주민예촌, 보문 컨트리, 신라CC 등의 조경을 담당했다. 경주 외에도 팔공CC, 경기도 제일 스포츠 골프장 등 수많은 조경공사를 진행했다. 권원수 씨는 그런 공사들이 무수히 많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기억조차 희미하다고 회고한다. 분명한 것은 권원수 씨가 자신만의 영역을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냈고 그게 어느 순간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의 주인공이 초기 개척시대 수많은 미국인들 중 한명이듯 경주가 국제적인 관광단지로 성장한 이면에는 권원수 씨 같은 숨은 주인공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권원수 씨는 최근 황성공원을 비롯한 경주의 곳곳을 거닐며 경주시와 시민들이 알아야 할 다양한 공원 소식을 전해 본지 ‘SNS는 즐거워’에 가장 자주 등장한 제보자이자 그만큼 왕성하게 SNS를 즐기며 주변과 소통하는 인물이다. 언제나 청춘의 기운으로 또 다른 ‘파 앤드 어웨이’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권원수 씨! 그는 경주의 어른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경주시가 아동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오는 6월 30일까지 ‘상반기 찾아가는 아동권리교육’을 추진한다. 교육은 아동을 포함한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아동권리를 교육·홍보해 아동이 권리의 주체자로서 책임감 있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교육은 아동 및 아동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을 대상으로 유엔아동권리협약 아동의 4대 권리(생존권, 발달권, 보호권, 참여권)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교육대상은 아동(만 18세 미만),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공무원, 부모 등이다. 교육희망일 기준 전월 20일까지 경주시청 아동청소년과 이메일(leekh74@korea.kr)로 신청하면 된다. 시는 신청기관을 대상으로 아동NGO 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문강사를 파견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경주시 아동청소년과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 관계자는 “시민의 아동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아동이 행복한 도시, 모든 시민이 행복한 도시를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립도서관은 ‘2023년 상반기 독서문화 프로그램’ 수강생을 22일부터 28일까지 모집한다. 이번 강좌는 시(詩)에 물들다, 그림책 출판(나도 그림책 작가), 그림책 지도사 3급 등 총 11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교육기간은 3월 7일부터 6월 7일까지 14주간 운영된다. 신청은 경주시립도서관 홈페이지(http://library.gyeongju.go.kr) 로그인 후 독서문화행사-문화강좌신청에서 선착순으로 신청할 수 있다. 경주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수강료는 무료(교재비 및 재료비 본인 부담)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시립도서관 홈페이지를 참고하거나 시립도서관 사서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오는 24일까지 ‘2023 상반기 친절한 경자씨 자원봉사 재능대학’ 수강생을 모집한다. 자원봉사자 양성 평생교육 프로그램은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가 다양한 분야의 재능자원봉사자 교육 및 양성을 통한 재능자원봉사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해오고 있다. 프로그램은 △바리스타 △정리수납 △제과제빵 △떡 제조의 총 4개 강좌, 65명의 수강생을 모집하며, 바리스타 및 정리수납 강좌는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또 4월, 5월, 6월에는 특별강좌로 생활 속 전기 안전교육과 심폐소생술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신청기간은 이달 24일까지며, 만18세 이상 경주시민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신청방법은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 홈페이지(www.경주자봉.org)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작성 후 방문접수 및 이메일(gyeongju1365@hanmail.net)을 통해 신청 할 수 있다. 기타 재능대학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054-771-1365)로 문의하면 된다.
사람에 의해 가장 먼저 길들여진 동물이 개다. 개는 17∼18세기를 거치면서 사람의 쓰임새에 따라 목양 목축견, 경비견, 사냥개, 사역견, 애완견으로 개량되어 오늘날의 개가 되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개가 해왔던 많은 일들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개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개는 또 군견, 경찰견으로 개량되어 사람을 대신해서 전쟁터에서 위험한 일을 수행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에 이용되었던 개들은 전쟁에 의해 부상을 입은 군인들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치료견 역할을 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사람들의 반려견이 되었다. 세계는 아직도 각종 테러, 지역의 전쟁, 첨단화된 무기 등으로 과거보다 더 진보된 적대감으로 군사적 경계를 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들이 수행하기에는 위험한 일을 고도의 훈련에 의해서 목적을 달성한 세계적 영웅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라크와 레반트의 이슬람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 ISIL, ISIS, IS) 지도자를 제거한 미국의 영웅 군견 ‘코넌(Conan dog)’의 이야기다. 코넌(Conan)은 미국 제1특별 테러 타격 부대인 델타 포스(Delta Force)에 소속되어 있는 특수 작전 군견(special operations military working dog)이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미국 대통령(President)은 기밀이 해제된 코넌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원더풀 도그(wonderful dog)’라고 표현했다. 당시 코넌의 이름과 사진은 기밀이었다고 밝혔다. 코넌은 벨지안 셰퍼드 말리노이즈(Belgian Shepherd Malinois)이며 수캐이다. 코난은 당시 이슬람국가(IS) 테러조직의 지도자였던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가 사살된 곳인 시리아의 바리샤(Barisha, Syria) 공습에 참가했다. 2019년 10월 27일, 코넌은 도망가는 바그다디(Baghdadi)를 추적하여 터널 끝까지 쫓아갔으며, 이 테러 지도자는 터널에서 자살 조끼(suicide vest)를 터뜨려 자폭했다. 코넌은 당시의 폭발로 부상을 입었지만, 덕분에 사상자 없이 작전을 마무리해 영웅이 되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넌을 ‘아름다운 개, 재능 있는 개’라고 치켜세웠고, 최고의 명예훈장(2차원 청색 리본, two-dimensional blue ribbon)인 동메달을 수여하였다. 벨지안 셰퍼드 말리노이즈(Belgian Shepherd Malinois)는 벨기에 북서지역에 위치한 ‘말리노아’지역에서 목양견으로 활약하며 가축을 지키던 견종이다. 셰퍼드라는 뜻은 양치기 개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국내와 전 세계에서 경찰견, 구조견, 수색견 등으로 활약을 하고 있다. 안내견 및 독 스포츠에서도 뛰어난 지능과 외형 및 성격 등으로 인하여, 경찰견이나 훈련을 위한 견종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안내견 및 독 스포츠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견종이다. 말리노이즈의 체고는 평균 약 55∼66센티미터이며, 체중은 약 25∼35킬로그램 정도인 대형견에 속한다. 체력이 매우 뛰어나고, 귀는 곧게 서 있고, 긴 주둥이와 늘씬한 사지를 가지고 있고, 얼굴은 귀를 포함해서 검은색 계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지능이 높고, 총명하고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훈련도 쉽게 이해하고 배우는 똑똑한 개이다. 견주와 가족에게는 충성하지만 영역을 지키는 본능이 매우 강해서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사나운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단순히 반려견으로 키우기에는 초보 견주가 감당해야 할 훈련, 체력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경주 문화예술 르네상스 사업 ‘청년문화활동가’의 발대식이 지난 9일 경주문화관1918에서 열렸다. <사진> 지역의 문화예술적 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콘텐츠를 직접 기획·실행하기 위한 청년문화활동가들의 행보가 시작된 것. 사업단은 지난 1월 31일까지 작년 청년문화활동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경주를 중심권·동부권·서부권·남부권·북부권 5개 권역으로 나누고 중심권은 다시 3개 권역으로 나누어 작년보다 2개 권역이 늘어난 7개 권역으로 중심권1·2·3·동부권·서부권·남부권·북부권의 청년문화활동가를 모집했다. 이날 발대식에서는 청년문화활동가 18명이 참여한 가운데 위촉장 전달, 경주 문화예술 르네상스 추진계획과 청년문화활동가 활동 내용에 관한 안내 순으로 진행했다. 이어 질의응답으로 청년문화활동가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며 발대식을 마쳤다. ‘경주 문화예술 르네상스’는 청년문화활동가의 주재로 해당 권역에 거주하는 지역예술인 1명, 지역 주민 1명으로 구성 된 시민자문단과 함께 소모임을 운영하며 권역별 예술자원 및 유·무형 문화유산을 모색, 권역별 예술인 발굴 및 지역 특색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할 예정이다. 이 사업을 통해 권역별 지역 주민들에게 공연·전시·교육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청년문화활동가는 3~4월에 지역의 특색을 담은 사업기획을 위해 주민들 및 지역 예술인을 만나고 월 1회씩 전체회의를 통해 권역별 추진현황 점검 및 토론, 사업 관련 정보전달 및 의견을 공유하며, 5~6월은 권역별 사업실행 후 성과공유회 개최할 예정이다. 경주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단 김규호 단장은 “청년문화활동가와 시민자문단이 함께 권역별 맞춤형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경주의 구석구석 문화예술이 스며들 수 있도록 하여 문화도시 경주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경주 문화예술 르네상스 사업은 경주시 내 문화로 소외된 지역이 없도록 하반기 2차 모집을 6월에 진행할 예정이다. 상반기 누락 됐던 본인의 지역에 진행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지역예술인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싶다면 경주문화재단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주목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스트리아 찰츠브루크 주변 여행 8/5 일부터 10여일간 우리는 오스트리아를 떠나지 못하고 예술의 도시인 빈, 찰츠부르크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중세도시의 전통적인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예술의 도시답게 호수, 궁전, 음악, 박물관이 있고, 바이든, 베토벤, 모차르트등 유명 음악인들의 혼이 흐르는 분위기에, 아늑한 힐링 유혹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짧은 36년간 생애에 600여곡의 많은 노래를 작곡함으로써 그의 혼이 흐르는 모차르트의 생가.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었든 웅장한 성당, 그의 얼굴이 담긴 과자, 그의 이름을 부친 박물관이 있고, 또한 외갓집 마을의 그림 같은 풍경들이 이어져 있어,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찰츠 브루크의 도시환경 찰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300㎞ 정도 서쪽으로 알프스 「잘 자르 강」 기슭에 있습니다. 도시 어원이 「소금의 산」이라는 뜻으로 지금도 소금 생산지로 유명하지요. 인구 50만명 정도의 도시인데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3000만명이나 된다고 해요. 유명 작곡가들로 인한 음악의 도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잘 알려져 있어, 많은 관광객이 즐겨찾는 아름다운 관광도시입니다. 찰츠브루크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4키로 정도 지나, 중앙역에서 내리면 이 도시인데, 1996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모차르트가 살던 생가(生家) 사운드오브 뮤직을 촬영했던 미라벨 정원을 구경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그의 생가로 갔습니다. 1756년 태어나서 16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부 파손되었다가 재 건축된 건물이며, 1996년부터 「모차르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의 가족 이야기, 집 이야기가 있고, 어린 시절 그가 사용했던 바이어린, 피아노등 악기와 초상화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그에 관련된 기념품 가게와 카페도 있었습니다. 이 집은 찰츠부르크의 중심가인 게트랑데 거리에 있으며, 그가 살았던 4층 아파트는 주변 아파트와 달리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mozarts geburtshaus’라고 길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모차르트 초콜릿(쿠겔로) 맛보기 오스트리아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찰츠브르쿠의 유명한 과자가, 그의 이름을 붙인 ‘모차르트 초콜릿’입니다. 50여개 국으로 수출된다고 해요. 그러나 이 초콜릿의 원조(모차르트 쿠겔로)는 1890년 ‘파울 피르스트’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그의 자손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는 전부 수작업으로 만들어 판다고 합니다. 맛이 좋고, 과자 포장에 모차르트 얼굴이 새겨져 있어 더욱 사랑을 받고 있어요. 거리에는 모차르트 기념품 가게가 많고 가게 안에도 초콜릿이 가득했습니다. 원조 초콜릿은 맛이 어떤지 가족 수 만큼 사서 포장을 뜯고 먹어보니, 위대한 음악가의 얼굴을 찢는 것 같아서 안됐지만 진짜 맛이 있었어요. -찰츠부르크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호엔 찰즈부르크 성(城) ‘높은 찰츠부르크’라는 의미의 이 성은 해발 120여미터 언덕 위에 있습니다. 시내 어디에서나 쳐다볼 수 있기에 이곳의 랜드마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요. 성(城)까지는 ‘후니쿠루’라는 케이블카가 왕복 운행 중이어서. 시내 구경까지 시원하게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종기 문화유산해설가&시민전문기자 leejongi2@naver.com
동창에 말을 세워두고 오솔길로 들어가니 立馬東倉細路斜 산자락 검푸른 솔밭에 갈가마귀 지저귄다 隔原松檜咽寒鴉 우거진 풀숲에 기린이 누워 있고 姜姜宿草麒麟 은은한 나무 사이에 호랑이 앉았다 隱隱殘林象虎 석양에 나그네 지팡이가 얼마를 머물렀으며 落日幾留行客杖 추풍에 목동의 풀피리는 부질없이 들리는구나 秋風空集牧童 왕기는 처량하게 구름마냥 흩어졌지만 凄凉王氣浮雲散 천고에 한 봉분이 높다랗게 솟아 있다 千古嵯峨一杯 경주 출신 학자 성재 손윤구(孫綸九, 1766~1837)가 노래한 ‘괘릉’(掛陵)이란 시다. 괘릉은 서역인(西域人) 모습의 무인상으로 유명한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이다. ◆절터 옮기고 조성한 왕릉 이 무덤 자리는 본래 곡사(鵠寺)라는 절이 있던 곳이었다. 이 절은 원성왕의 어머니 소문왕후의 외삼촌인 파진찬 김원량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건물로 지었다. 그 뒤 불상을 봉안하고 경전을 담은 윤장대를 세워 절로 바꿨는데, 절 주변에 있는 바위가 고니 모양처럼 생겨서 곡사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798년(원성왕 14) 왕은 자신의 장례 절차와 관련한 조서를 통해 번거롭게 흙을 쌓아 무덤을 만들지 말고 지세를 따라 무덤을 세우라고 명령한다. 원성왕이 세상을 떠난 뒤, 담당 관서는 곡사를 지금의 숭복사 자리로 옮기고 그 자리에 왕릉을 조성한다. 그러나 봉분이 놓일 자리가 절의 연못 터였던 탓에 땅을 메우는 과정에서 계속 물이 솟아나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사람들은 관을 거는 장치를 만들어 허공에 안치했다. ‘능을 걸다’라는 의미의 괘릉(掛陵)이란 이름은 그렇게 생겨났다. 원래 괘릉은 오랜 기간 동안 문무왕의 가묘로 알려져 있었지만, 20세기 초 숭복사 터에서 ‘절을 옮겨 원성왕릉을 조성했다’는 내용이 담긴 비편이 발견돼 사실상 이 능의 주인이 원성왕이란 게 밝혀졌다. 사실 원성왕은 원래 왕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삼국사기’는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된 전말을 이렇게 전한다. 혜공왕(765~780) 말년에 반란이 일어나 왕과 왕비가 죽었다. 상대등 김양상이 앞장서서 반란을 제압했다. 김양상의 동생인 이찬 김경신도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웠다. 김양상이 선덕왕이 되면서(780년) 경신에게 상대등 자리가 주어졌다. 5년 뒤 선덕왕이 아들 없이 죽었다. 신하들은 선덕왕의 조카 김주원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 그런데 서울 북쪽 20리 되는 곳에 살던 주원은 마침 내린 큰 비로 알천(지금의 북천)이 넘치는 바람에 궁궐에 오지 못했다. 이에 누군가가 “임금 지위는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폭우가 내리는 것은 하늘이 주원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닌가. 지금의 상대등 경신은 전왕의 아우로서, 덕망이 높고 임금의 체통을 가졌다”고 말했다. 결국 경신이 왕위를 잇게 됐고,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백성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는 이야기다. ◆무덤 앞 무인상…서역인 왕래 근거되기도 괘릉은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할만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주변을 감싸고 그 사이로 펼쳐진 너른 잔디밭 끝에 봉분이 솟아 있다. 봉분의 밑 둘레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다. 그 주위에 다시 수십 개의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둘렀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봉분은 완벽한 원형을 보여준다. 입구 안내판에도 이 무덤이 “둘레돌, 십이지신상, 난간, 석물 등 모든 면에서 신라 능묘 중 가장 완비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조각 수법도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무덤 입구에 있는 서역인(西域人) 모습의 무인상이다. 곱슬머리에 깊게 패인 눈, 커다란 코와 덥수룩한 턱수염…. 이 무덤을 지키고 있는 무인상은 얼핏 봐도 한민족의 얼굴이 아니다. 사실 신라의 조각 작품 가운데 국제적 성격을 띤 것들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중국의 강한 영향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이곳 무인상을 비롯해 사천왕사 터에서 나온 신장상 등은 중국 미술에선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들이다. 이를 두고 학계 일각에선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고 머리에 두른 띠, 허리에 매단 주머니와 복장 등을 근거로 이곳 무인상이 중앙아시아 이슬람 계통의 서역인을 모델로 했다고 본다. 이는 ‘경주 계림로 보검’(보물 제635호)과 더불어 신라~아라비아 간 장거리 교역은 물론, 울산을 통해 외국인이 드나들고 인근에 집단 취락을 이루고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여겨졌다. 9세기 아랍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가 쓴 ‘제도로 및 제왕국지’에 “황금이 풍부하고 여러 가지 이점을 갖고 있어서 무슬림들이 영구 정착하기도 한다”는 등의 신라 관련 정보가 등장하는 점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런 이유로 ‘삼국유사’에 동해 용의 아들로 묘사된 처용도 서역 계통 인물 중 한 명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처용이 서역인일 수 있다는 해석을 무조건 무시할 수만 없는 점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며 “이 방면을 순행한 헌강왕이 국가에 필요한 인재 등용을 위해 외국인을 왕경으로 데려갔을 추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왕릉 조성 때 통째로 옮겨진 사찰 터…숭복사지 괘릉에서 2㎞ 정도 떨어진 외동읍 말방리엔 숭복사지가 있다. 798년 괘릉을 조성하면서 통째로 옮겨진 사찰인 곡사가 있던 자리다. 곡사란 이름이 숭복사로 바뀐 것은 헌강왕 때인 885년의 일이다. 곡사가 이곳으로 옮겨지고 60여년이 지난 경문왕 즉위 2년인 862년. 경문왕은 원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곡사를 주목하고 중창불사를 계획한다. 하지만 곡사의 중창은 쉽게 시작되지 못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865년 어느 날 경문왕은 꿈에서 원성왕을 만나 중창 불사에 대한 허락을 받게 되고, 허비한 3년의 시간을 아쉬워하며 중창 불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경문왕의 곡사 중창은 그동안 왕위 계승을 두고 대립하고 갈등했던 여러 정치 세력들을 ‘원성왕의 후손’이라는 점을 들어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아들인 헌강왕 때에도 곡사에선 또 다른 불사가 추진됐다. 헌강왕은 재위 11년(885)에 곡사의 이름을 ‘대숭복사’로 바꾸면서 국가가 관할하는 정법사에 예속시키고, 보살과 관리를 파견해 재정을 돌봤다. 곡사를 중창했던 선왕의 업적을 기리고 계승하면서, 대숭복사와 왕실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려고 하려는 의도였다. 헌강왕은 이듬해인 886년 봄 최치원에게 숭복사비의 비문을 짓기를 명한다. 비는 진성여왕 때에서야 완성되는데, 그것이 최치원의 ‘사산비명’(四山碑銘) 중 하나인 ‘대숭복사비명’이다. 대숭복사비명엔 경문왕의 곡사 중창과 헌강왕의 대숭복사 개창 내용을 담았다. 이는 원성왕 후손의 일체감 강조를 넘어, 꾸준히 선조의 덕업을 계승하는 경문왕계 왕실의 정통성과 위상을 더욱 부각하려는 의도였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숭복사지는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절터가 있는 마을 이름인 ‘말방리사지’(末方里寺址)로 불렸다. 당시 주변엔 석탑 부재가 쌓여 있었고 귀부와 비편, 건물의 초석 등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이후 비편을 수습해 해독하는 과정에서 이곳이 숭복사 터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절은 3단의 석축을 쌓아 맨 위에 법당과 탑을 배치하고 북쪽에 강당을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 한편엔 2014년 진품 비편을 본떠 만든 숭복사비가 서있다. 비편과 비를 짊어지고 있던 쌍귀부(雙龜趺)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김운 역사여행가
경북도는 영농진입의 가장 기본 요소인 농지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농업인들에게 농지 임대료를 지원한다. ‘청년농업인 농지 임대료 지원사업’으로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있다. 지원대상은 농어촌공사 경북지역본부의 농지은행사업을 통해 임대차 계약을 맺고 있는 만 18세부터 만 39세 이하 농업경영체로, 신청일 기준 도내 주소를 두고 실제 영농에 종사하는 청년농업인이다. 농지 임대료 지원을 원하는 청년농업인은 3월 31일까지 거주지 시군(읍·면·동 사무소)에 신청하면 된다. 지원대상자로 최종 선정되면 한국농어촌공사와 약정을 맺은 농지 임대료의 50%(연간 최대 200만원까지)를 3년간 지원받을 수 있다. 신청대상 규모는 1월말 현재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을 통한 임대차 계약현황 기준으로 1400여ha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는 청년농업인 600여명(790여ha)이 농지 임대료 지원을 받았다. 또 타 광역자치단체도 경북도를 벤치마킹해 사업을 시행하고 있거나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주령 농축산유통국장은 “창농에 가장 큰 걸림돌인 농지확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청년농업인을 대상으로 농지 임대료를 지원하고 있다”며 “경북도에서 시행하는 농지 임대료 지원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정책사업 통해 보다 많은 청년들이 농촌으로 유입되고 안정적으로 정착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신청방법 등 자세한 사항은 경상북도 홈페이지(알림마당) 및 경북청년농부포털 홈페이지(http://gbyfarme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