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는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2025 경북방문의 해’를 추진한다. 도는 ‘다시 찾고 싶은 글로벌 관광 수도 경북’을 비전으로 관광객 1억명, 외래관광객 3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붐업 홍보, 글로벌 마케팅, 관광상품 개발, 관광수용 태세 개선 등 4대 분야에 20개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주요 사업으로는 서울·부산·인천 등 국내 대도시에서 홍보 행사를 마련하고, 국내외 파워 인플루언서 페스티벌, 관광 그랜드세일 등을 열어 경북방문의 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계획이다. 또 관광·숙박시설 및 음식점 서비스 개선, 주요 관광지와 철도 공항 접근성 제고, 경북관광 대학생 서포터즈 운영, 지방호텔업 외국인 고용 허가 관련 제도개선 등을 추진한다. 해외 관광객 유치 확대를 위해서는 일본, 대만, 필리핀, 베트남,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국관광공사 등이 주관하는 주요 해외박람회에 적극 참가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웰니스·템플스테이, 캠핑 페스티벌 등 체류형 관광상품 및 역사·문화 활동, 미식투어 등 관광자원의 우수성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관광코스 개발에도 힘쓴다. 도는 이 같은 계획에 자문과 추진상황 점검 등을 이행할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2일 출범했다. 추진위는 김학홍 도 행정부지사를 위원장으로 관광업계, 관련 기관, 학계, 전문가 등 43명으로 구성했다. 추진위는 이날 첫 회의에서 APEC 계기 관광 활성화 전략 등 경북방문의 해 성공개최를 위한 다각적인 논의와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위원들은 수도권에 집중된 외국인 관광패턴을 지역관광으로 돌리는 전략적인 마케팅 계획 수립, 관광산업 전반에 걸친 심각한 인력 부족 현상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규제 개선 등을 제안했다. 도는 다음 달 11일 경주에서 2025 경북방문의 해 선포식을 열고 연말까지 기본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어 내년부터 경북방문의 해 브랜드 홍보, 글로벌 관광마케팅, 관광상품 개발, 글로벌 표준 관광수용태세 개선 등을 본격 추진한다. 김학홍 도 행정부지사는 “내년 APEC 정상회의를 경북 관광산업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며 “2025년 경북방문의 해 성공을 위한 메가 이벤트와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여 관광객 1억명 시대를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경주 금강산을 아시나요? 경주에는 다섯 개의 큰 산이 있다. 신라는 왕경 내 다섯 개의 산을 정해 신성시했다. 왕경오악(王京五岳)은 북악 금강산과 표암봉 일원, 동악 토함산, 서악 선도산, 남악 남산, 중악 낭산이다. 북한 강원도와 대한민국 강원도에 걸쳐 있는 금강산이 유명해서일까. 경주 금강산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177m 높이의 야트막한 경주 금강산은 북한과 강원도 일대의 금강산보다 훨씬 이전부터 금강산(金剛山)으로 불렸다. 고려 개국 이전에는 경주의 산만 금강산이었고, 강원도의 산은 풍악산·개골산 등으로 불렸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금강산은 모두 경주의 금강산을 일컫는다. 신라시대 금강산은 특별한 산이었다. 신라의 수도 계림에 있기도 했거니와 화백회의가 열리는 장소 중 한 곳이기도 했다. 경주 이씨의 시조 알평(謁平)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 당도한 표암봉(瓢嵒峰)과 신라 제4대 왕인 석탈해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디 이뿐이랴. 법흥왕 시절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려는 왕에 맞서 귀족들은 기존의 토착 신앙을 고수하려 했다. 이때 법흥왕의 측근이자 사인(舍人)의 직책을 맡은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차돈의 순교 이후 신라는 불교 국가로 탈바꿈했고 급속도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통일신라에 접어들면서 이차돈을 성자로 높이 평가하며 무덤 인근에 사당을 지어 기렸다. 이차돈의 무덤이 있던 곳이 바로 금강산이다. 금강산에는 신라시대 왕이 자주 찾았다던 백률사와 기도의 영험한 소문으로 지나는 사람들이 손을 모은다는 굴불사 터가 있다. 바위 사방에 부처 새긴 굴불사 터 금강산 백률사 초입에 특별한 부처가 있다. 사방에 각기 다른 부처를 새긴 석조사면불상이다. 세상 어디든 자비로운 마음으로 굽어살피겠다는 의미이리라. 남산의 칠불암도 안강 금곡사 터의 사방불도 처음 대할 땐 적잖이 놀랐다. 부처는 산 중 홀로 있거나 근엄하고 위엄 서린 모습으로 법당 위 협시불과 함께 있는 것만 봤었다. 노지 바위 사방불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했다. 보물 제121호로 지정된 굴불사 터 석조사면불상(慶州 掘佛寺址 石造四面佛像)은 통일신라 작품이다. 3m쯤 되는 높이의 바위면에 입체·양각·음각의 다양한 기법으로 입상·좌상 등을 가리지 않고 조각했다. 동쪽에는 약사여래 좌상이, 서쪽엔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삼존불, 남쪽엔 입불상 2구를 양각했으며, 북쪽엔 양각의 입상 보살 1구와 음각의 입불상 2구를 새겼다. 부처들은 모두 풍만한 체구의 건강한 모습이다. 나는 사면불 중 특히 동쪽 약사여래 좌상을 좋아한다. 부처의 모습이 이질적이지 않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쪽 바위 면은 앞쪽으로 살짝 굴곡이 져 부처의 몸도 앞으로 살짝 굴곡져 있다. 마치 세상을 보듬어 안으려는 듯 아늑하다. 부처 뒤에 새겨진 불꽃 문양의 광배도 섬세해 영혼의 절대적인 신(神)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사면불을 돌며 손을 모은다. 동쪽 약사여래불 앞에서는 더욱 마음을 정갈히 하며 약사불의 왼손을 어루만지게 된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명예를 얻고 재산이 많아도 몸이 성치 않으면 허사다. 인간을 가장 무력하게 만드는 건 건강을 잃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몸뚱어리가 가장 귀하다는 것은 건강을 잃어본 사람은 안다. 굴불사는 누가 창건했나 금강산 백률사 초입에 있었다던 굴불사는 『삼국유사』에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은 굴불사는 흔적 없이 사라졌고 자연 암석에 새긴 사방불(四方佛)만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 탑상(塔像) 사불산굴불산만불산조(四佛山掘佛山萬佛山條) 편에는 굴불사와 경덕왕의 일화 전하고 있다. ‘경덕왕이 금강산 자락에 있는 백률사로 행차할 때, 산 아래에 이르니 땅속에서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렸다. 신하들을 시켜 그곳을 파 보게 하였더니, 네 면에 사방불이 새겨진 큰 돌이 나왔다. 왕은 사면불이 나온 곳에 절을 세우고 굴불사(掘佛寺)라 하였다. 지금은 사찰 이름이 잘 못 전해져 굴석사(掘石寺)라 한다’. 이 내용으로 보아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당시 굴불사를 굴석사라 불렀던 것 같다. 금강산 백률사와 경덕왕 당시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삼국유사』 탑상 ‘백률사’ 편을 보면 계림의 북악 금강령 남쪽에 백률사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백률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험하다고 소문난 대비상(大悲像)이 하나 있다고 전한다. 전설에는 대비상(금동약사여래입상, 국보 제28호,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이 일찍이 도리천에 올라갔다가 돌아와 법당으로 들어갈 때 밟은 돌 위의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 693년(효소왕 2년) 신라의 낭도 부례랑과 안상이 낭도 1000여명을 이끌고 금란(강원도 통천)으로 놀이를 나갔다가 오랑캐에게 사로잡혀 돌아오지 못했다. 부례랑의 아비가 백률사 대비상 앞에서 여러 날 기도했더니 형탁 위에 거문고와 피리 두 가지 보물이 나타났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도 존상 뒤에 와 있었다고 전한다. 부례랑이 오랑캐의 부잣집 목동이 되어 소를 치고 있을 때, 갑자기 단정한 승려가 거문고와 피리를 들고 와 위로하며 따라오게 했다.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안상을 만났다. 승려가 가지고 있던 피리를 두 쪽으로 갈라 하나씩 주고, 자신은 거문고를 타고 바다를 건너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라로 돌아온 부례랑이 피리와 거문고를 가지고 궁궐로 와 왕께 아뢰니 크게 기뻐하며 대비상이 있는 백률사에 큰 재물을 헌납하여 부처의 은덕에 보답했다. 이 밖에도 대비상의 영험함이 많았다고 한다. 경덕왕의 백률사 행차는 대비상이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덕왕에게는 딸만 있을 뿐 후사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자식을 보지 못해 첫 왕비는 폐하여 사량부인(또는 삼모부인)으로 봉한 후 의충 각간의 딸을 후비로 맞았다. 시호가 경수태후(만월부인)이다. 아들에 집착한 경덕왕은 표훈대덕을 불러 하늘로 올라가 천제에게 아들을 점지해 줄 것을 청해줄 것을 명했다. 천제를 만나고 돌아온 표훈이 왕에게는 아들이 없다는 천제의 말을 고하자, 이번엔 딸을 아들로 바꿔줄 것을 청하라 명했다. 천제는 딸을 아들로 바꾸는 일은 가능하나 아들을 얻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했고, 천제의 말에 왕은 나라가 위태롭더라도 아들을 얻는 것을 택하겠노라고 했다. 이후 왕후가 태자를 낳아 즉위하니 이가 혜공대왕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던 경덕왕은 역사적으로 훌륭한 평가를 받는다. 불국사와 석굴암 건축, 월정교 설치, 성덕대왕신종 제조 등 불교문화를 꽃피우며 통일신라 전성기를 만들었던 업적 또한 칭송받을만하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집착은 신라를 위태롭게 만든 구실을 했다. 경덕왕의 아들 건운(혜공대왕, 신라 제36대 왕)은 겨우 8살에 즉위해 만월부인의 섭정을 거쳤지만 24살에 시해를 당하게 된다. 이후 신라는 불안정한 왕권전쟁을 겪으며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금강산 자락을 걸어 돌아와 보니 부처는 여전히 사방을 굽어살핀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부처는 한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중생을 바라본다. 때로는 그런 부처 앞에 고개 들지 못한다. 부처는 그런 존재다. 중생의 죄를 묻지 않아도, 꾸짖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뉘우치게 하는 존재다. 여느 사찰이든 법당을 들어설 때 법도를 따라야 한다. 기도자는 부처가 바로 보이는 정문을 이용하지 말고 양쪽 측면의 문을 이용하라는 것은, 인간의 죄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부처의 자비이리라. 영험하다는 백률사의 대비상은 금강산을 떠나 경주 박물관에 있다. 기도발이 좋다는 굴불사 터 한편을 바라보며 마음을 모아 눈을 감는다. 천년을 돌고 돈 한 줄 바람이 스친다.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작가
경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지난 2일 연희의 숲(대표 김정자)과 상호교류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양 기관의 시책 홍보를 위한 상호 협력, 상호 이해와 협력 증진을 위한 친선 교류, 센터 연중행사의 공연 예술 지원 등이다. <사진> 이번 MOU 체결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확대되고 권익향상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고, 양 기관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시민과 장애인이 차별 없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귀룡 센터장은 “이번 MOU를 통해 지역장애인의 복지향상과 사회참여가 확대되길 기대하며 양 기관의 협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경주시보건소가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환자를 대상으로 가정학습 프로그램을 운행하고 있다. <사진> 이 프로그램은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위한 조치다. 지난해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10대 주요 사망 원인 중 심장질환 2위, 뇌혈관 질환이 4위 등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시는 보건소 내 전문인력과 건강리더를 활용한 고혈압·당뇨병 가정학습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이를 위해 △경주시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 △경주시 종합사회복지관 △노인통합지원센터 △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 등과 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고혈압·당뇨병 가정학습지는 △질환에 대한 이해 △식이 및 운동요법 △ 합병증 관리법 등으로 구성됐으며,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눈에 알기 쉽도록 그림으로 제작됐다. 올해까지 2200여명이 가정학습지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가정학습지 프로그램 수강을 원하는 시민은 경주시 고혈압·당뇨병 등록교육센터로 문의하면 된다. 진병철 보건소장은 “고혈압, 당뇨병은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중요한 질환인만큼 만성질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난 10일 더케이호텔경주에서 2024년 정신건강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세계 정신건강의날(10.10)을 기념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와 인식개선을 위해 마련됐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1부 ‘마음건강 강연’과 2부 ‘마음위로 공연’으로 진행됐다. 1부는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우울증을 공부합니다’의 저자 최의종과 함께 ‘우리는 이렇게 우울증을 이겨냈습니다’를 주제로 고민을 나눴다. 2부 행사는 공연팀 솔라즈의 팝페라 앙상블 공연이 펼쳐졌다. 경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편견을 해소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경주시 아이돌봄서비스제공기관인 (사)가경사회서비스지원센터(이하 센터)는 청소년 수련관에서 아이돌보미 173명을 대상으로 아이돌보미 집담회를 가졌다. 이번 집담회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아동 인권 교육과 아이돌보미간의 상호 교류를 통해 돌봄 역량을 강화하고 현장에서의 직무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마련됐다. <사진> 경북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 소속 아동학대 전문 강사를 초빙해 실제 현장 사례를 바탕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이해와 신고 절차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또 돌봄 애로사항을 함께 공유하며 안전한 돌봄 환경 개선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주요 교육 내용으로 △아동 인권과 아동권리의 이해 △아동학대의 이해(사례 중심) △아동학대 발견 및 신고 △아동학대 대응체계 및 사례개입 과정 △아동학대 신고 의무와 학대 예방 교육 등으로 구성됐다. 강봉구 센터장은 “저출산 시대 속에서, 아이돌보미는 가정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며 “앞으로도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만전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아이돌봄지원사업 서비스 신청을 희망하는 가정은 주소지 관할 행정복지센터 또는 가경사회서비스지원센터 아이돌봄서비스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복지관)은 오는 18일 지역 장애인과 자원봉사자, 후원자, 지역주민을 위한 ‘제19회 배우GO! 즐기GO! 나누GO!’축제를 개최한다. 올해 19회를 맞이하는 이 축제는 경주시와 대한불교조계종 불국사복지재단의 지원으로 열린다.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과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 서포터즈가 함께 주최해 다양한 평생교육 체험과 흥미로운 문화공연 및 후원나눔을 누구나 경험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는 1부 기념식과 2부 축하공연, 명랑운동회, 체험부스 운영 등으로 나눠 진행되며,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복증진에 기여한 후원자, 자원봉사단체, 이용자, 연계기관에 유공자 표창도 전달된다. 이날 행사 참여자들에게는 식사와 간식이 제공된다. 또 기념품(채칼 타공볼 3종세트)을 비롯해 행운권 추첨을 통해 1등 55인치 TV, 2등 세탁기, 3등 진공청소기 등 푸짐한 상품을 마련했다. 장애인 평생교육 체험활동으로 ‘메타버스 토탈공예-양말목 공예’를 복지관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보면서 공예품을 만들고. 뇌병변장애인의 디저트 만들기 교육과정 ‘공감당(共甘黨) 3차년도’ 사업의 나눔활동으로 건빵강정 1000세트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캐리커쳐 자화상 그리기, 인생네컷 사진 촬영 부스, 스트레스 측정 및 상담, 친환경 샴푸바 만들기, 장애인 취업상담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같은 날 장애인체육관에서는 지역주민과 자원봉사자의 화합을 도모하는 명랑운동회도 진행한다. 한편, 경주시장애인종합복지관은 지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치료·교육·훈련·취업·문화·여가·체육·평생교육 등 종합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회는 지난달 30일부터 4일까지 경로당경로당 행복선생님과 어르신들이 활동을 통해 제작한 작품전시회를 개최했다. <사진> 이번 전시회는 경로당행복선생님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프로그램 과정에서 어르신들이 만든 작품을 그대로 전시했다. 미술 및 공예작품은 300여점으로 경로당 어르신 프로그램 활동작품과 사진 전시로 시청을 오가는 분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30일부터 시청 본관에는 미술, 공예 등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이 전시됐으며 민원실에서는 활동사진이 전시됐다. 기존 여성 위주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남성들이 참여하고 경로당별 특색과 욕구에 맞는 맞춤형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라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시회와 더불어 ‘어신! 경로당으로 놀러 오세요’라는 홍보도 했다. ‘건강을 지켜요. 걱정을 떨쳐요. 마음껏 웃어요’라는 슬로건으로 경로당 회원 요건과 경로당 내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프로그램도 설명했다. 먼저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는 경로당행복선생님 사업의 설명을 통해 방문객들의 궁금증을 해소했다. 현재 경북도내 경로당에는 어르신들의 활기찬 노년의 삶을 위해 ‘행복선생님’을 배치해 여가, 복지, 건강, 교육을 아우르는 현장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로당행복선생님 활동은 복지코디네이터로 △상담(말벗, 안부확인)서비스 △복지서비스 연계 △경로당이용 권유 △사회적 활동영역 확대 도모 등을 하고 있다. 프로그램코디네이터로는 △경로당 프로그램 제공 △노후의 삶 활력도모 △여가증진 △평생교육 △생활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다. 경로당코디네이터로는 △경로당 시설·장비 안전점검 △방역 등을 통한 지역 어르신들의 균등하고 안전한 이용 촉진 △학대예방, 교통안전, 건강검진 등 행정관련정보를 제공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구승회 회장은 “경로당 어르신들이 행복선생님과 웃고 즐기며 만든 작품들을 많은 분들에게 드러내는 자리라 그 의미가 크다”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경로당 행복선생님과 함께 더욱 알찬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경로당 운영이 더욱 활발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주시보건소가 지난 7월 22일부터 9월 27일까지 진행한 아토피 피부염 예방을 위한 특별 행사가 마무리됐다. <사진> 이번 아토피·천식 안심학교로 찾아가는 특별행사는 △탈인형극 ‘피부가 좋아지는 샘물’ △아토피 피부염 교육 △아토피 피부염 율동 △약산성 비누, 부채만들기 체험 등으로 구성됐다. 행사 기간 어린이집, 유치원 등 지역 28곳을 대상으로 총 1299명이 참여했다. 특히 탈인형극은 전문 극단이 아닌 보건소 직원들이 직접 공연에 참여해 예산 절감에 기여했다. 이로 인해 유치원, 어린이집 전체 안심학교 28개소로 수혜 대상을 확대했다. 한편 아토피·천식 안심학교란 아토피 피부염, 천식, 알레르기 비염 등 질환을 가진 어린이가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하는 예방관리 프로그램이다. 경주시는 어린이집·유치원, 초·중·고등학교 포함 총 34개소를 올해 아토피·천식 안심학교 참여기관으로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DN은 지난 2일 중앙시장에서 개인정보 보호 홍보 캠페인을 펼쳤다. <사진> 이들 기관은 개인정보 침해에 쉽게 노출되고, 유출된 개인정보를 통한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 디지털 범죄에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개인정보 취약계층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캠페인은 개인정보 보호의 날(9.30)과 개인정보 보호주간(9.30.~10.4.)을 맞아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시장 방문객과 상인들에게 개인정보 유출 예방 홍보물을 나눠주며, 스마트 기기의 안전한 이용을 당부했다. 특히 개인정보 알아보기,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 예방법, 스미싱 피해 사례 예방법, 스마트폰 개인정보 보호법 등을 중점 안내했다.
남석돌안경은 수집가들에게도 인기 있는 골동품으로 떠올라 있다. 돌안경은 길쭉한 타원형의 안경집에 담겨 보관되었는데 이 안경집도 만만치 않은 공예품이자 골동품으로 여겨진다. 기록에 의하면 1889년∼1891년 사이 조선에 온 미국선교사 J-게일이 쓴 ‘코리안 스케치’라는 기사에 ‘안경 하나에 15달러의 고가였는데 양반들이 구하지 못해 안달이었다’고 전한 기사가 있다. 이 기사를 쓰면서 미국의 연대별 달러 가치를 알려주는 전문 사이트를 찾아보니 1889년의 가치측정은 없고 1900년부터 시작되는데 당시의 1달러 가치가 ‘한 켤레의 특제 가죽 구두를 살 수 있는 가치’였다. 지금도 좋은 가죽 구두를 사려면 수십만 원은 들고, 그때 가죽 구두가 지금보다 훨씬 비싼 것이라 보면 15달러가 적어도 수천만 원에 해당했을 것이다. 그러니 조선후기의 최부자댁 가주들이 지인들에게 돌안경을 선물했다면 그것은 지금으로 치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귀한 선물이었을 것이고 문파 선생님 당대인 일제강점기로 따져도 가치를 가늠하기 힘든 귀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1960년대 초 남석돌안경 하나에 1000만원, 6·25로 맥 끊어져 최염 선생님도 돌안경 가격이 궁금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남석돌안경의 값을 알아보신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걸 알아보신 것이 1960년대 초인데 그때 남석돌안경 하나에 1000만원이 넘었다고 기억하셨다. 그 당시 1000만원이면 서울의 집 몇 채를 거뜬히 사고도 남을 큰 금액이었다. 더구나 최부자댁 돌안경은 최고의 품질에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것이었고 무엇보다 다른 곳에 경쟁 상품이 없었던 만큼 최소한 그 이상의 값어치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시기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차이가 있고 남석돌안경은 아니지만 나 역시 돌안경을 주문해서 만들어본 적 있다. 아버지께서 환갑을 맞으셨을 때 형제들과 함께 돌안경을 선물해 드린 것이다. 그게 33년 전인 1991년이었는데 그때 가격으로 200만원이 넘었다. 그 무렵에는 돌을 깎는 기술도 자동화되었고 안경테 만드는 기술도 자동화되었던 시기인데도 이렇게 비쌌다. 그 현대식 돌안경도 연수정을 갈아 만든 것이었는데 수정의 무게가 있어서 그런지 안경이 요즘 안경들에 비해 훨씬 묵직했다. 아버지가 돌안경을 썼을 그때만 해도 돌안경은 부의 상징이었고 눈 건강을 위한 최고의 안경으로 여겨질 때였다. 그렇다면 돌안경이 왜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았고 눈 건강에 좋다고 여겨졌을까? 돌안경은 추울 때는 온기를 머금고 있어서 눈을 보호해주고 더울 때는 서늘한 기운을 머금어서 역시 눈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추운 곳에서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도 안경알에 수증기가 끼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뒤에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에 따르면 수정 자체에서 원적외선이 방출되어 눈에 좋고 렌즈의 입자가 규칙적이고 조밀한 덕분에 빛의 굴절률이 낮아서 깨끗하게 보이고 코팅을 하지 않아도 빛을 반사해서 눈을 보호하는 기능까지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최부자댁에서는 조선 후기에 이미 이 요즘 안경도 갖추기 힘든 건강성과 기능성을 가진 명품 안경을 만들었던 셈이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당연히 생긴다. 이 귀한 명품 안경을 최부자댁에서는 왜 상업화 하지 않았을까? 앞서 말했다시피 최부자댁 돌안경은 일일이 손으로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안경알을 갈고 소뿔이나 귀갑을 다듬을 장인들도 극소수로 귀했다. 즉 이 돌안경을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안경에 쓸 만한 수정의 채취가 그렇게 쉽지 않아 대량생산 자체가 어려웠다. 보통 안경알을 만들 만한 수정은 투명한 빛깔의 연수정으로 지름이 10cm 이상이어야 하고 길이도 최소한 20cm 이상이어야 했다. 연수정이라고 해서 다 안경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수정 자체에 잡다한 얼이 적어야 했다. ‘옥의 티’라고 하는 만큼, 얼이나 티가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적은 것이 좋은 수정인 것이다. 기계로 돌을 깎을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일일이 손으로 돌을 자르고 갈았던 시절이니 그런 큰 원석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안경알이 대체로 평균 잡아 한두 벌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1년 걸려서 생산해 낼 수 있는 안경알이 많아야 스물에서 서른 개도 채 되지 않았다. 이 돌안경은 최부자댁 가보격인 특산품으로 문파 선생님 당대에만 하더라도 일 년에 수십 개의 돌안경을 만들어서 중요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거나 집안에 혼사가 있을 때 사돈댁으로 보내는 예물로 사용하곤 했다고 한다. 혹은 서울 나들이를 하실 때 중요한 지인들에게도 선물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최부자댁 남석돌안경과의 인연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안경이 수입되면서 약화되기 시작했고 6·25를 기점으로 완전히 명맥이 끊어져버렸다. 명맥이 끊어진 사연도 드라마틱하다. 최염 선생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6·25 때 경주경찰서장을 지냈던 사람이 이강학 씨였다. 뒤에 치안국장까지 지낸 사람이었는데 이분이 6·25 당시 경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에 휩싸이지 않으니까 피난 갈 염려를 아예 하지 말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지프차를 타고 문파 선생님께로 달려와서 ‘지금 인민군이 안강을 점령했고 이제 곧 경주시내로 밀고 들어오게 생겼으니 빨리 피난을 가시라’고 전했다. 당시 문파 선생님은 대구에 계셨고 최염 선생님 부친이신 최식 어른이 급하게 피난 짐을 꾸리셨다. 이때 사당의 신주는 사당 밑에 묻어 화를 면하게 했고 돌안경은 안경 채로 집안에 있던 큰 금고에 보관했다. 이때 보관한 안경이 모두 100벌 정도였다. 한 달 정도 피난을 갔다 오니까 집안이 엉망으로 변해 있었고 안경알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당시 최부자댁은 육군건설공병단이 진주해 관리하고 있었는데 그때 들어와 있던 군인들이 금고 중에서 제일 약한 밑바닥을 깨고 안경알을 전부 털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 후로는 전쟁통에 안경을 만들 여력이 없었고 특히 경주 남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나서부터는 수정채취도 금해져서 돌안경의 명성은 그대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최염 선생님의 안경에 대한 회고는 좀 더 이어졌다. 60년대 중반쯤 문파 선생님이 하고 계시던 안경알이 너무 무겁고 색깔이 짙어서 좀 얇게 갈아 드리려고 당시 경주에 있던 ‘남석돌안경’이란 안경점으로 찾아간 적 있었다. 그 집 사장님이 예전에 최부자댁에서 돌안경을 만들던 장인의 아들이었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돌안경 제조를 전수받아 대물림으로 안경방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답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자기를 포함해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때는 안경알을 기계로 자르고 가는데 기계란 것이 섬세한 사람과 달라 안경알을 깨뜨릴 염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문파선생님 안경은 특별히 더 좋은 품질인데 그 귀한 것을 함부로 맡을 수 없다고 했다. 윗대 조상님들이 손으로 구현해내던 기술을 기계가 따라할 수 없었으니 그 정도로 조상님들의 손길이 섬세하고 대단했던 셈이다. 결국 남석돌안경의 신화는 시대의 흐름, 특히 최부자댁이 부자의 문을 내리면서 함께 그 막을 내리고 만 것이다. 문어발식 재벌기업들 부보다 덕 중시한 최부자댁 마음 배워야 돌이켜 보면 이 남산 돌안경은 17~19세기, 그 시대 ‘최고의 첨단기술’이었다. 더구나 이 돌안경 가공과 생산은 어지간한 자본이 투입되지 않으면 할 수도 없고 설혹 재원은 마련할 수 있어도 그 일을 할 장인을 구할 수 없으면 만들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함부로 따라 하기 힘든 전문 기술이었다. 그러니 그 기술을 산업화시켜서 상용(商用)으로 판매하려고 했으면 적지 않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부자댁 조상님 중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고 가용(家用)으로만 사용했을 뿐이다. 시중에 남석돌안경이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지만 그것은 최부자댁에서 판매한 것이 아니고 최부자댁을 통해 흘러나간 안경이 시중에서 자기네들끼리 알음알음으로 유통되었던 것들이다. 최부자댁 남석돌안경은 이런 점에서 또 다른 중대한 교훈을 준다. 우리나라 재별 대기업들은 산업이 한창 성장하던 1970년대부터 원래 기업 성장의 발판이던 자동차니 건설이니 전자사업 등에 만족하지 않고 무엇이건 돈 되는 일이면 다 달려드는 ‘문어발식 기업’을 만들어 왔다. 말로만 ‘계열사’였지 그 기업이 성장하는 주된 사업과 상관없이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 기업 몸집을 늘여왔다. 그렇게 한 이유도 간단했다. 기업이 커지면서 한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수가 몇천 명에서 몇만 명에 이르자 그 직원들을 기본적인 내부 고객으로 삼아 생활자재와 용품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거대 재벌기업들이 동네 상권을 점령하는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고 빵도 만들어내고 심지어 떡볶이까지 만들어 팔고 있다. 그런 경영권들은 하나 같이 재벌 2세, 3세들이 소유하고 있거나 최대주주가 되어 지배구조를 독식한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지탄받아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부자댁 돌안경이 더 가치있게 보이는 것이다. 아무나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첨단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돈을 벌지 않았고 그 기술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을 후대하여 기술을 대물림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최부자댁 조상님들의 겸허한 마음을 현대의 재벌기업들은 조금이라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 비싼 안경을 선물로만 쓴 것은 부보다 덕을 쌓는 것이 훨씬 많이 남는 장사란 것을 아셨기 때문일 것이다. 남석돌안경이 최부자댁 어떤 가보보다 귀하여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외동분회 죽동 경로당(회장 김윤섭)은 지난 10일 작은 음악회를 개최했다. 행복선생님이 준비한 ‘청춘을 돌려다오색’ 소폰 연주를 시작으로 어르신들이 각자 준비한 ‘묻지 마세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등으로 진행됐다. <사진> 한 시간정도 진행된 음악회는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었고 어르신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음악회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이렇게 좋은 노래와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오랜만에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천북농악단이 지난 4일 봉황대 일원에서 열린 제18회 경주시 농악경연대회 무형유산 풍류한마당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사진> 천북농악단은 지난 1월 새롭게 창단된 악단으로, 끈끈한 유대감 속에서 즐겁게 활동하며 우리 전통 가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전통문화의 계승과 지역 풍물단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등 악기를 연주하며 15분 동안 흥겨운 풍물놀이를 펼쳤다. 최만규 천북농악단장은 “천북농악단이 올해 1월 창단한 이후 처음 참가한 대회라 감회가 남다르다”며 “이번 대회를 계기로 단원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게 돼 기쁘고, 앞으로 연주를 더 발전시켜 더욱 멋진 농악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한편 천북농악단은 앞으로 천북 경로잔치와 시민체전 등 다양한 행사와 대회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사)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는 외동읍 북토리 인근 마을 어르신 100여명을 대상으로 ‘찾아라! 경주 행복마을’행사를 진행했다. <사진> 이날 행사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제공된 맞춤형 복지서비스는 시력검사와 돋보기 나눔 (1001안경경주시청점), 서금요법 및 수지침(고려수지침경주시지회), 네일아트와 손 마사지(온뷰티미용학원) 재능봉사 뿐만 아니라 IBK 참! 좋은 사랑의 밥차를 활용해 외동지역의 자원봉사자(외동읍여성의용소방대, 외동로타리3630지구)가 참여한 가운데 어르신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했다. ‘찾아라! 경주 행복마을’은 자원봉사센터 외동거점에서 재능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복지 사각지대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외동거점을 중심으로 지역사회에 자원봉사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특히 외동거점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활동가들이 장소선정 및 자원봉사자 모집, 수혜자 파악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참여함으로써 자원봉사 리더역할을 수행했다. 센터 정재윤 이사장은 “오늘 행사로 어르신들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하고, 지역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센터는 앞으로도 지역사회의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는 지난 5일 양남면 하서항 일원에서 열린 ‘제6회 양남 주상절리 한마음 축제’를 지원했다. 이번 축제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은 주상절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지역주민들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마련됐다. 축제에는 주낙영 시장, 시·도의원, 김상우 월성본부 제3발전소장을 비롯해 지역 기관·단체들이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사진> 축제 현장에는 동경주 지역의 신선한 농수산물 판매부스에서 지역특산물을 소개해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주목 받았다. 또 노래자랑, 송대관, 홍시 등 초청가수 공연과 양남면 주민자치 프로그램 수강생들의 공연이 이어져 흥겨운 축제 한마당을 만들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김원도 양남면발전협의회장은 “양남면의 일 년 중 가장 큰 이번 행사에 주민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정을 나누는 행복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상우 월성원자력본부 제3발전소장은 “아름다운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번 축제가 양남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이들이 찾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월성본부는 지역과 동행하며 안전하게 발전소를 운영해 지역민과 상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 월성원자력본부는 회사 홍보영상을 송출하고 홍보부스를 운영하며 한수원 지원사업, SMR, 분산에너지 특별법 등에 대해 홍보했다. 또한 월성본부의 지역지원 사업들을 소개하며 지역 수용성 제고를 위한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이번 축제는 월성본부 ‘한수원 지원사업’에 공모·선정돼 열렸다. 월성본부는 앞으로도 지역공동체 일원으로 지역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다양한 사업을 발굴·지원해 나갈 예정이다.
강동면에서 특별한 문화축제가 열렸다.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형산강 역사문화관광공원에서 강동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제1회 경주 연화장 문화축제’가 개최된 것. <사진> 형산강은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동해의 물산을 경주, 영천, 대구 등지로 운반하던 중요한 통로였다. 강동면민과 경주연화장문화축제 추진위원회의 협력으로 이뤄진 이번 축제는 조선시대 닷새마다 열렸던 연화장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또한 신형산강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신형산강 프로젝트의 중추적인 역할도 기대된다. 이날 축제의 주요 행사 중 하나인 보부상 행렬은 강동면민 50여명이 참여해 연화장의 역사적 전통을 되살렸다. 축제에는 다양한 문화행사와 특산물 판매가 진행됐으며, 진현동 밤도깨비마켓 팀이 참여해 젊은 세대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플리마켓도 진행됐다. 경주연화장문화축제 추진위원회 이병환 추진위원장은 “마을주민들도 부조장은 알지만 연화장에 대한 인식이 저조하다. 1669년 간행된 ‘동경잡기’와 1933년의 ‘동경통지’에는 연화장이 관문(경주읍성)에서 40리 떨어진 곳에서 열흘마다 5일과 10일에 장이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와 함께 동강서원의 ‘고왕록’에서도 연화장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며, 그 역사는 350여년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강동의 국당은 ‘윗부조’, 포항의 중명·중단은 ‘아랫부조’로 불리며, 포항 연일에서 ‘부조장 문화축제’가 열리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부조장이 포항 연일인지 경주 국당인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일제가 남긴 지적도(1914년)에 따르면, 강동면 국당리에 ‘시장’ 표기가 존재하며, 당시의 사진에서도 국당리에 ‘장집’의 모습이 확인된다. 또 제산 기슭에 있는 ‘좌상대 도접장 김공 이형 유공비’는 연화장의 역사적 기능을 증명하는 유적으로, 1894년에 세워진 비석이 최근 역사문화관광 공원에 재건립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1회 경주 연화장 문화축제’가 열렸다. 이병환 위원장은 “경주 시내가 신라 문화권이라면, 강동은 양동마을이 있는 유교 문화권이자, 보부상이라는 역사 문화를 가진 곳”이라면서 “옛 연화장과 보부상의 명성을 되살리고, 지역민들이 거둔 산물을 소개 판매하면서 지역 발전을 꾀하고자 이 축제를 마련했다. 앞으로도 지역의 전통을 계승하고, 강동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데 기여하는 의미 깊은 행사로,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무대왕문화제 추진위원회는 지난달 28일, 29일 이틀간 제8회 통일기원 문무대왕 문화제를 문무대왕릉 수증릉 일원에서 개최했다. <사진> 이번 행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의 위대한 호국정신을 기리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기 위해 열렸다. 행사에는 남심숙 경주시 문화관광국장, 최덕규 도의원, 주동열·오상도 시의원이 참석해 축하 메시지를 전했으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 등 1500명이 참여해 관심을 끌었다. 행사는 감은사지석탑에서 문무대왕수증릉까지 왕의 행차를 재현하는 것을 시작으로, 문무대왕 추향대제, 신라문화 체험행사, 문무가요제와 정수라, 윤수현의 축하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김상희 문무대왕문화제 추진위원장은 “문무대왕문화제를 통해 주민들이 화합하고, 경주시민 모두가 함께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며 “역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동경주농협 농악단이 지난 4일 열린 제18회 경주시 농악경연대회 및 무형유산 풍류한마당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사진> 동경주농협 농악단은 주민 25명으로 구성돼 각종 공연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며, 아름답고 경쾌한 가락으로 전통문화 계승·보존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전통 농악의 흥과 멋을 선보이며 관중들의 큰 호응을 받으며 축제의 장을 열었다. 동경주농협 농악단 관계자는 “앞으로도 전통 가락을 지키고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음 대회를 기약했다.
황성파출소를 비롯한 10개 기관·단체는 지난달 27일 황성동 일대 합동 야간순찰을 실시했다. <사진> 이번 순찰에는 황성파출소, 황성동행정복지센터, 황성자율방범대, 황성여성방범대, 황오자율방범대, 황오여성방범대, 현곡여성방범대, 황성동청소년지도위원회, 재난안전예방보안관, 경북경찰청 기동순찰대 11팀 등 총 51명이 참여했다. 순찰대원들은 황성동 내 우범지역과 청소년 선도 지역을 구역별로 나눠 순찰하며, 청소년 선도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다. 특히 기존 황성파출소와 황성자율방범대 중심의 순찰에서 읍면동과 시·도의 협력으로 확대돼 의미가 크다. 조랑희 황성파출소장은 “행정관서와 자생단체가 함께하는 범죄예방 캠페인은 매우 효과적”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협력 방안을 통해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병학 황성동청소년지도위원장도 “청소년 일탈과 범죄예방을 위해 야간순찰은 필수적이지만, 소수의 인원으로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경찰서 및 자생단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동 순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황성동·황오동·현곡면 자율방범대는 이번 황성동 순찰을 시작으로 매월 해당 읍면동 지역을 순회하며 합동 야간순찰을 이어갈 계획이다.
월성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달 27일 단양군 매포읍 주민자치센터로 선진지 견학을 다녀왔다. 월성동과 매포읍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 6월 28일 양 지역의 발전을 위한 자매결연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사진> 이날 행사에는 이준호 월성동장, 신상균 매포읍장, 안재철 월성동 주민자치위원장, 김기학 매포읍 주민자치위원장을 비롯해 주민자치위원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행사는 주민자치프로그램 소개와 더불어 2025년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경주를 알리는 시간도 가졌다. 안재철 월성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앞으로도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주민자치위원회의 활성화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준호 월성동장은 “주민자치 역량 강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며, 매포읍과의 협력 관계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