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내남 이조리가 나오고, 이조교를 건너 전포(前浦)마을을 지나 경부고속도로를 우측에 끼고 농로를 달리다보면 월산마을이 나타난다. 월산은 달같이 둥근 산 아래 있는 마을로 ‘달미’라 불리며, 못골·너죽골·재량·미역골 등 자연부락이 산재해 있다. 월산리는 예전 고속도로를 내면서 마을이 동서로 나뉘는 수난을 당하였고, 월산 아래 재량못 가까운 곳에 여강이씨 재실인 월산정사(月山精舍:내남면 재량길 44-53)가 자리한다. 재실 주변에는 이정원(李正源,1914~1958)·이필원(李駜源,1921~?)·이완상(李完祥,1769~1805)·통덕랑 이혜중(李惠中,1704~1797) 등 수많은 무덤이 가지런하고, 마을에서 전하는 말에 ‘이필원이 선대의 산소를 외동쪽에서 이곳 월산으로 옮겨왔고, 재력을 들여 월산정사를 지었다’고 한다. 열린 대문 사이로 처마에 걸린 월산정사 현판이 선명하고, 내부에는 새롭게 판각한 월산정사 현판과 1976년 풍산 류석우(柳奭佑)의 기문과 영양 남귀락(南龜洛)이 지은 상량문과 시판 등이 걸려있다. 하지만 글에 등장하는 앙지정(仰止亭)의 흔적은 찾지 못해 아쉬웠다. 앙지(仰止)는 『시경(詩經)』「소아(小雅)」「거할(車舝)」의 “높은 산을 우러르고, 훌륭한 행실을 따라간다(高山仰止 景行行止)”에서 뜻을 취하였고, 위대한 선조에 대해 경배(敬拜)하고 흠모(欽慕)의 마음을 담았다. 정확히 언제쯤 월산정사가 건립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계(伊溪) 이기희(李紀曦,1863~1953)의 『이계집』권3, 「월산정사기(月山精舍記)」를 통해 190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계선생은 옥산문중 잠계 이전인(1516~1568)의 후손으로, 이희구(李僖久)의 거듭된 요청으로 기문을 지었고, 월산정사의 주인이 회재선생의 10세손 용수(慵叟)선생임을 밝혔다. 하지만 1976년에 지어진 류석우의 기문을 보면 후손 이필원이 선대의 무덤 아래에 10대조 계은공(溪隱公) 이기(李垍,1636~1706)와 9대조 우와공(寓窩公) 이덕표(李德標,1664~1745) 부자를 기린 곳이라 하였으니, 용수선생과 계은공의 관계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앞서 계은공이 내남이조에 세거한 경주최씨 최진립의 후손과 혼인한 인연으로 울산과 가까운 이곳에도 여강이씨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 단서가 된다. 또 우와공은 1699년 진사에 올랐고, 기개가 호탕하고 덕망과 행실을 고루 갖춘 문인으로, 1722년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장희빈의 신원(伸冤)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고, 관서 용천으로 귀양가는 등 굴곡진 삶을 살다가 비로소 노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에서 묻혀 살았다. 우연히 지나다 바라본 산자락 사이로 옛 선비의 자취가 보였고, 그 흔적을 더듬어보니 지난 경주의 역사가 손에 잡혔다. 아직도 후대의 손길을 바라는 경주의 조선 선비 이야기는 2021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월산정사기(月山精舍記) - 이계 이기희 동도의 남쪽 20리쯤에 월산(月山)이 있는데 그 산의 모습이 상현달과 같아서 이름지어졌으며, 용수(慵叟) 이(李) 공이 강학하던 곳이다. 공은 문원공 회재선생의 10세손으로 가학을 스스로 이어 학문연원의 바른길을 걸었고, 이미 훌륭한 자질과 뜻이 있었다. 절제된 행실은 고결하였고, 스스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지 못함을 알았다. 가난과 곤궁함을 이겨내고 오로지 경전을 정밀히 연구하였으며,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숨어 살면서 그곳에서 즐거워하며 평생을 살았다. 공은 일찍이 주역의 무궁함과 편절(編絶)의 남은 것을 갖고 도상(圖像)으로 상(象)을 드러내고, 주해(註解)를 더하였으며, 비록 고전(古傳)의 뜻을 말미암았으나, 고전의 뜻을 흐리지는 않았다. … 공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따라 배우는 여러 생원들과 멀고 가까운 사우(士友)들이 그를 위해 수계(修稧)하였는데, 지극한 정성 덕분에 월산 아래에 3칸 집을 짓고, 월산정사라 이름하고, 또 당의 북쪽에 앙지정(仰止亭) 3글자를 편액하였다. 북쪽을 뒤로하고, 남쪽을 바라보는 집의 창문과 방은 진실로 법도에 맞았다. 약간의 전토(田土)로 오랫동안 유지할 계획을 삼았고, 해마다 이곳에서 한 번 모여 공을 사모하였다. …주변에 스승과 벗이 없고 무리를 떠나서 거처를 찾는다면 잘못이 없기가 드무니, 이는 옛적 군자께서 글로 벗을 모으고, 인(仁)을 하도록 서로 도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진실로 능히 때때로 마당에 물 뿌리고 쓸고, 당에는 책을 쌓아두고, 그 안에 고요히 앉아 서로 바라보며 각각 보고 들은 것으로 마주하여 질문하고, 의심나고 어려운 것을 구한다면, 지극히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저버림이 없을 것이다. 공께서 평소 여러 사람들에게 바라던 것은 아마도 이 정자가 세상의 가르침에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 공사가 이미 마쳤으나, 기문이 없었고, 이희구(李僖久)의 간절한 거듭된 요청에 나는 공의 일에 대해 말솜씨가 없어 사양하였으나, 이에 감히 기문을 쓴다.
서울시가 2021년 1월부터 18세 이상의 서울 시민과 외국인 주민도 서울시와 산하기관에 대한 ‘시민감사’를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에 청구할 수 있다. 서울시는 또 서울시에 등록된 외국인 주민에게도 감사권을 대폭 늘였으며 감사청구시 지금까지 오프라인 상에서 직접 서명 받아 제출하던 청구인 모집을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전자서명 청구 시스템도 운영된다. 서울시의 시민감사 제도는 서울시민이 서울시 및 서울시 소속행정기관이 행한 사무의 처리가 위법·부당하다고 판단될 경우 50명 이상의 연서를 받은 대표자 및 상시 구성원 수 100명 이상인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자를 통해 감사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것을 지금까지 만 19세 이상부터 할 수 있던 것을 2020년 초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 각종 선거연령이 19세에서 18세로 하향되는 사회적 변화에 맞추어 18세 이상으로 낮춘 것이다. 서울시는 또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서울특별시 관할구역의 외국인등록대장에 등재되어 서울시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도 같은 권한을 부여한다고 공지했다. 이로 인해 기존 영주권을 취득한 지 3년이 경과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외국인등록대장에 등재된 사람에게만 주어지던 감사청구권이 보다 넓어졌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는 온라인을 통한 청구인 모집과 청구가 가능해진다. 이에 대비해 서울시는 지난 4일부터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 누리집(ombudsman.seoul.go.kr)에 온라인청구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시간선택제 임기 제공무원으로서 3년간 시민의 권익옹호와 시정감시를 수행하는 시민감사옴부즈만 채용 자격요건도 넓어졌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변호사나 기술사 등 전문자격을 갖춘 사람과 함께 비영리민간단체에서 근무한 경력자를 시민감사옴부즈 채용자격을 주었는데 이번 개정으로 비영리민간단체가 아니더라도 공익법인과 같은 비영리법인에서 일정기간 근무한 경력자도 옴부즈만이 될 수 있도록 문호가 넓어진 것이다. 이러한 감사권에 대한 확대 및 감사옴부즈만 채용 자격 확장은 청렴하고 공정한 서울시정 운영을 가속화하려는 선제적 조치다. 서울은 지난 해 말에 발표된 국민권익위 청렴도 조사에서 종합청렴도와 외부청렴도에서 각각 2등급을 받았다. 종합첨렴도는 지난 해 3등급에서 한 등급 오른 것. 경주는 종합청렴도와 외부청렴도에서 다행히 각각 3등급을 받아 지난 해 각각 5등급에서 2단계 올랐다. 좀 더 청렴한 경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1만명 가까운 외국인을 위해서도 시민감사단 제도가 활성화 되고 감사단의 자격도 서울처럼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통일전은 경주시 남산동 920-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총 면적 6만6000㎡ 건평에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주역 위인을 모셨다. 신라 29대 태종무열왕, 30대 문무왕, 태대각간 김유신장군 세분의 영정이 봉안돼있다. 세분의 위업을 선양하며 분단된 조국통일의 실현을 기원함이 설립 목적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1976년 4월 22일 착공하여 1977년 9월 7일 개관하였다. 건물본전 통일전(統一殿) 현판(懸板) 휘호는 박정희대통령 친필이다. 건물양식은 신라시대 양식을 재현했다.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발굴 출토유물 등을 고증하여 축조했다. 정문을 들어서면, 소나무 등나무 산비탈 울창한 숲을 병풍삼아 고풍스런 정자를 낀 연못이 발길을 끈다. 넓은 마당 태극기 펄럭이는 정원주위로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장군 사적비가 위풍당당하다. 삼국통일의 주역 세분 위인의 업적을 기록한 비다. 무열왕 사적비 전면은 태종무열왕릉비의 글씨체다. 문무대왕 사적비 전면은 중국 오나라 명필 천발신참비 글씨체다. 후면은 용비어천가 글씨체다. 김유신장군 사적비 전면은 진흥왕순수비 황초령비, 후면은 월인석보 한글체다. 비문은 이선근 박사가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응현이 썼다.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통일전의 외삼문인 흥국문(興國門)이다. 현판휘호는 서예가 조수호 글씨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을 통일한 황금기국가의 기상과 융성함을 이룩하였다는 뜻에서 흥국문이라 명했다. 통일신라의 위상을 상징한 연화문 숫막새, 당초문 암막새 기와로 지붕을 얹었다. 운공첨차(雲空檐遮) 소슬대공을 한 최고의 건물양식이다. 추녀마루 문손잡이는 용면(龍面)을 설치하였다. 통일전 내삼문인 서원문(誓願門)을 올라 앞을 내다보면, 속이 확 트이는 상쾌감이 밀려온다. 멀찌감치 건너다보이는 쭉 뻗은 가로수 길로 양옆 은행나무가 나이테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면 은행잎 푸른 기운이, 가을이면 샛노랑 잎이 한 폭의 풍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여름날 울창하게 젖어드는 경치를 안겨주고, 겨울시린 바람에도 곧은 키 멋있는 나목들로 계절을 휘감고 간다. 서원문의 휘호는 서예가 최정균 글씨다. 통일신라시대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양식을 따와 돌계단 형식을 축조했다. 소슬대공과 운공첨자 건축에 기와를 이은 내삼문 안으로 발을 들인다. 경건함에 발자국 소리 낮추는 자세가 저절로 목례를 치르게 한다. 삼국통일의 성업과 호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조국통일을 염원하고, 그 실현을 맹세하자는 뜻에서 서원문이라 명했다. 향을 사르는 향료높이로 희미한 연기가 번진다. 위인을 기리는 숨결이 흐르는듯하다. 고 박정희 대통령 친필 휘호 현판 ‘통일전’ 본전건물 가득 향내음 은은하다. 무열왕⦁문무왕⦁김유신장군 영정이 모셔진 벽면이 위엄으로 차오른다. 백제 660년, 고구려 668년,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676년, 꿈꾸던 통일은 새로운 역사를 낳았다. 참으로 위대한 민족인 것을 후손들이 놓쳐버려 애닮은 통일이다. 그리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역사를 빛낸 위인들을 추모하고, 통일의 꿈을 살피라 이른 통일전이다. 천 년 전 조상님들이 민족지간에 싸우지 말고 오순도순 살고파 피땀 흘려 화합한 통일의 정체성을, 후손들이 잘 보존하지 못하고 총을 겨누는 민족으로 갈라섰으니 참으로 선조님께 죄스럽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은 말한다. 신라 30대 문무왕이 일통삼한(一統三韓)대업을 완성하기까지, 부왕(父王)인 29대 무열왕이 통일의 초석을 잘 다져놓았다고. 그리고 외삼촌인 김유신장군의 공덕도 한량없음을 서술한다. 봉안된 영정은 문무왕을 중심으로 오른편엔 태종무열왕, 왼편엔 김유신장군 영정이 모셔져 있다. 왕은 금관을 쓰고, 요대(腰帶) 요패(腰佩)도 금제품이다. 의복은 비단으로 지은 자색 빛깔의 신라의상이다. 태종무열왕 영정은 60세 때, 문무왕 영정은 40세 때의 모습을 추정해서 그린 김기창 화백 작품이다. 김유신장군 영정은 은관(銀冠)을 쓰고 요대 요패도 은제품이다. 사후인 흥덕왕때 흥무대왕으로 추존되었지만, 삼국사기 기록엔 왕으로 승격된 구체적 서술이 없다. 본전 ‘통일전’ 건물 양옆으로 늘어선 회랑은 호국불교의 원당 양식으로 조성하였다. 바닥에는 보상화문 전돌을 깔았다. 회랑벽면 설치된 그림들은 삼국통일 전후의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다. 김유신장군 단석산 수련도, 김유신장군과 천관녀도, 김유신장군 출전도, 무열왕 남천정 출전도, 강수 외교문서 작성도, 원광법사 세속오계 교화도, 삼국통일 영광도, 평양성 함락도, 매초성 당군 격멸도, 기벌포 대첩도, 문무왕 호국해룡도, 사천왕사호국불사도, 원효군사 자문도, 화랑 관창 용전도, 황산벌 혈전도, 남산성 축성도, 황룡사 9층탑 조영도 등 삼국통일의 과정을 그린 17점의 기록화다.
지난 1월 1일자 푸르른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송경호 목사 페이스북에 흥겨운 춤영상이 올라왔다. 송경호 목사와 센터의 어린이 세 명이 함께 추는 춤이었다. 글의 제목에는 ‘삼천칠백팔십육만원’이라는 금액이 적혀있었다. 이 포스팅에 5일 현재 무려 310개의 ‘좋아요’와 161개의 댓글이 달렸다. 본지가 셔블&서울·경주사람들 98회로 보도했던 ‘푸르른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과 송경호 목사(좋은씨앗교회)의 도전이 결실의 첫 단추를 꿰었다. 지난 9월부터 푸르른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송경호 목사와 함께 ‘아동학대’로 괴로워하는 또 다른 아이들을 구하자는 의미에서 출발한 ‘지켜줄게 너를 – 마음을 담은 노래2’ 앨범제작과 전국 콘서트 투어를 기획하겠다는 꿈을 세웠다. 모금 방법은 인터넷 펀딩인 ‘텀블벅’과 직접 송금, 12월 31일 자정까지 진행된 이 모금의 결과가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전체 모금액수는 텀블벅과 송금을 더해 3786만원이다. 송경호 목사가 페이스북에 쓴 말대로 ‘우리가 함께 만든 출발선’이 마침내 그 출발선에 선 것이다. 송경호 목사가 아이들과 함께 춘 춤은 목표한 금액대로 모금액이 모아지면 그 답례로 춤을 추겠다고 한 모금 전의 약속을 지킨 것. 이 모금으로 인해 앞으로 푸르른 지역 아동센터의 어린이들은 ‘마음을 담은 노래2’를 만들게 됐고 ‘음원챠트돌격대’를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며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간절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한편 이에 앞서 12월 비용이 마련된 이외에 또 다른 놀라운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유명가수인 김현철 씨, 홍경민 씨, 박기영 씨, 김훈희 씨 등이 이 노래 녹음에 참여하기로 한 것. 송경호 목사는 이들의 참여에 대해 ‘함께 하는 힘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며 “이들의 참여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 음반 녹음과 앞으로 전개될 콘서트에 참여하게 됐다”며 의미를 전했다. 한해의 시작과 함께 전해진 이 따듯한 소식과 ‘아주 어설퍼 보이는’ 아이들과 송목사의 춤에 페이스북 친구들은 환한 웃음으로 이 도전의 성공을 축하했다. 우리 세상은 분명히 살 만한 곳이고 이들을 통해 더 많은 학대아동들이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주)경농중앙연구소(소장 김태준)가 지난달 23일 앞두고 지역 아동시설인 성애원에 쌀 30포(20kg들이)를 후원했다. (주)경농중앙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성애원 아이들을 위한 후원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성애원을 방문하지는 못하고 쌀만 시설에 후원했다. 성애원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대부분의 후원이 끊어진 상태였는데 (주)경농중앙연구소에서 지속적인 후원을 약속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시설의 특성상 많은 아이들이 거주하고 있다. 다른 것도 아닌 쌀을 후원해주셔서 한편으로 마음이 든든하다. (주)경농중앙연구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태준 소장은 “코로나 상황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만큼 아이들이 추운 겨울을 지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후원하게 됐다. 성애원 아이들이 밥이라도 모자라지 않게 먹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후원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1987년 설립된 (주)경농중앙연구소는 연구동, 제제공정동, 독성연구동, 유리온실 등 1300여평의 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전작, 소독, 과수포장 등 4000여평의 포장을 현재 운영하고 있다.
설경미(54) 씨의 삶은 오늘도 특별한 기도로 시작한다. “매일 글을 쓰면서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제 삶의 행복은 글을 계속 쓰는 것입니다”고 전한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글은 20여년 헤어져 있었다. 2013년 남편을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고 목욕, 식사, 빨래 등 고단한 삶을 잊을 수 있기를 바라며 힘든 봉사활동을 나섰던 그녀. 어느 순간 스멀스멀 올라오는 멈췄던 글은 새로운 삶을 이끌었고 2014년 경주문예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빨간불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횡단보도에서 허공에도 중얼거렸습니다. 글을 쓰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힘이 돼달라고! 그것은 내 가슴에 영원한 신앙 같은 어머니께 매달리는 소리였습니다. 간절함 끝에 볼을 타고 내리던 눈물이 고비마다 나를 일으켰고, 그렇게 견딘 시간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심사평에서 이정환, 이달균 시조시인은 “두 가지 관점에 중점을 두면서 심사에 임했다. 첫째는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함, 둘째는 시조적 정체성을 얼마나 잘 지켜냈는가로 초점이 맞춰졌다"면서 “거문고 타는 섬의 그리움, 수미쌍관 형식으로 잘 갈무리됐다. <다시 슬도에 와서>는 갯바람과 파도 소리가 거문고 소리로 들린다는 섬 이름에 기인한 사연들을 기승전결 4수로 잘 갈무리한 수작이다”고 극찬을 했다 이어 “구와 구의 마디도 안정감이 있고, 장과 장의 알맞은 매듭 처리로 인해 여운도 깊다. 또한 거문고 소리를 애절한 그리움으로 보고 수미쌍관 형식으로 처리한 것도 탄탄한 습작의 시간이 엿보여 당당히 당선의 영예를 차지했다”고 덧붙였다. 설경미 당선자는 “문학의 뿌리 역할을 해준 분이자 은사이신 정민호 선생님, 경주문예대학 교수님들 고맙습니다. 함께 수학했던 문우들, 내 인생의 영원한 지지자인 딸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마도 이분들과 함께여서 오늘의 영광이 내게 찾아왔나 봅니다. 연말이면 늘 풀 죽어 절인 배추처럼 다녔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5년은 가히 짧지 않았고, 그동안 시조라는 산은 벼랑도 꼭대기도 골고루 보여주며 내가 얼마나 버티고 견디는지를 시험하기에 충분했습니다”고 말했다. 설경미 작가는 경주문예대학 연구반 회원으로서 2018년 5월 중앙시조백일장 입상, 2018년 제21회 대구시조 공모전 장원, 2019년 10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중음악은 우리 삶에서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생성되고 작용하며 줄곧 이어져간다. 거기엔 시대와 역사와 민중 생활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소중하고 고귀한 문화사적 성과를 이룩하고 축적해왔다. 우리 가요는 유행가, 신가요, 대중가요, 트로트 등으로 불려온 노래 양식이 그동안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던 온갖 외래적 요소와 갖가지 혼합, 혼종, 혼혈의 과정을 겪으며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힘들었던 시련의 세월을 잘 이겨내고 100여년이 넘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오늘에 다다르게 된 것처럼 노래 또한 고난의 역사를 너끈히 견디어 오늘에 당도한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 한 지역을 대표하는 가요작품들이 종종 발표되곤 한다. 우리 지역에 시그니처가 될 만한 노래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지역민에게 큰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경주를 테마로 노래한 유행가는 언제부터 발표되었으며 대표곡은 무엇이며 어떤 곡들이 있을까. 1931년 발표된 ‘마의태자’부터 최근의 ‘경주아가씨’까지 경주를 소재로 다룬 곡들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이번호에서는 먼저 1931년~1970년대까지의 경주 노래를 다루었다. 본 기사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영남대 명예교수, 계명문화대 특임교수)인 이동순 선생의 신간 ‘노래 따라 동해 기행(2020, 걷는사람, 이동순 지음)’과 대구은행 지역지 ‘향토와 문화’ 제96호(유행가)에 선생이 게재한 글에서 인용하고 발췌해 재구성했음을 밝혀둔다. ‘노래 따라 동해 기행’은 경상북도 동해안 지역의 울진, 영덕, 포항, 울릉, 경주 등 5개 지역을 다룬 노래를 선별해 작품의 미학적 측면을 음미하며 특성을 정리해 집필한 책이다. -환동해권 지역 가운데 대중가요가 가장 많이 탄생한 곳은 경주가 단연 으뜸, 경주를 테마로 가장 먼저 발표된 작품은 ‘마의태자(1931년)’ 예로부터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고장에는 반드시 아름다운 노래가 태어난다고 일렀다. 경상북도의 주요지역 중 바다에 연접해 있는 5개 지역(울진·영덕·포항·울릉도와 독도·경주)을 통틀어 환동해권이라 부른다. 환동해권 지역가운데 대중가요가 가장 많이 탄생한 곳은 단연 경주가 으뜸이다. 1931년 2월, ‘마의태자(이은상 작사, 안기영 작곡·노래)’는 우리 지역 경주를 테마로 가장 먼저 발표된 곡이다. ‘그 나라 망하니 베옷을 감으시고/그 영화 버리니 풀뿌리 맛보셨네/애닯다 우리 태자 그 마음 뉘 알고/풍악산 험한 골에 한 품은 그 자최/지나는 길손마다 눈물을 지우네/태자성 옛터엔 새들이 지저귀고/거하신 궁들은 터조차 모를도다/설워라 우리 태자 어데로 가신고/황천강 깊은 물에 뿌리신 눈물만/곱곱이 여울 되어 만고에 흐르네//’ 이 노래가 발표된 당시는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 강탈당한 시절이라 신라 마지막 왕위를 계승했을 ‘마의태자’ 테마가 대중들의 정서에 은근한 호소력을 지녔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 곡의 작사자 이은상은 시조 시인이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직접 노래한 안기영은 1900년 충남 청양 출생. 이어, 또 한 곡의 마의태자가 발표된다. 1934년, ‘마의태자(유도순 작사, 김준영 작곡, 미스코리아 노래)’가 그것이다. ‘풀 옷을 몸에 감고 금강에 해 지우니/망군대 바윗돌에 새긴 뜻 한숨짓네/명경대 맑은 물에 손 씻고 일어나니/천 리 밖 경주성이 눈물에 어리운다//’ 이 노래는 1931년 안기영의 <마의태자>가 발표되고 3년 만에 나온 또다른 마의태자 테마곡이다. 이처럼 한국 가요사에는 같은 제목으로 마의태자를 노래한 곡들이 다수 있다. 이 곡을 노래한 미스코리아의 본명은 김추월이다. 평양 기성 권번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왕수복, 선우일선처럼 기생 활동을 하다가 가수로 발탁되었다. 마의태자 설화는 대중의 심금을 울리고 연민을 자아내는 매우 유용한 소재였다. 미스코리아가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한 이 곡은 JODK, 즉 경성방송국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나라 잃은 시기, 마의태자 설화를 바탕으로 엮은 마의태자는 은근히 망국의 슬픔과 서러움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로 작용하기도 했다. -‘경주 나그네’, 본격적으로 경주 다룬 노래...경주의 유적유물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노랫말에 표현 1942년, ‘경주 나그네(이가실 작사, 이운정 작곡, 이규남 노래)’ ‘초금에 마음 싣고 꽃을 꺾으며/반월성 넘어가는 경주 나그네/가는 봄 오는 봄아 말 물어보자 첨성대 추녀 끝에 별이 몇 개냐/서형산 바라보며 회파람 불고/안압지 돌고 도는 경주 나그네 풀 캐는 아가씨야 말 물어보자/화랑이 풍류하던 곳이 어데냐/개왓장 하나 집어 품에 안고서 풀피리 불고 가는 경주 나그네/에밀레종 소리야 말 물어보자/포석정 띄운 잔이 몇 잔이더냐//’ 이 곡은 본격적으로 경주를 다룬 노래라 할 수 있다. 1942년 8월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매된 이규남의 노래로 반월성, 첨성대, 서형산, 안압지, 에밀레종, 포석정 등 경주의 유적·유물들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노랫말에 수용되어 있다. 어느 봄날, 화자가 경주의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며 역사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궁금증을 제시하는 화법으로 노래를 엮어가고 있다. 이 노래 이후 해방을 맞고는 보다 다양한 양상의 노래들이 선보인다. 신라의 달밤을 필두로 해서 8·15해방 이후 경주 테마, 신라 테마 노래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신라 천년(백일평), 신라의 북소리(도미), 신라의 칼(신세영), 신라제길손(백년설), 님 그리운 망부석(이미자)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신라의 달밤’, 모든 경주테마곡 가운데 최고의 상징적인 노래로 당시 청년 세대의 대단한 호응을 얻으며 단숨에 최고의 인기곡으로 부상 1947년, ‘신라의 달밤(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은 모든 경주테마곡 가운데 최고의 상징적인 노래로 자리를 잡았다. ‘아 신라의 밤이여/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온다/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아 신라의 밤이여/화랑도의 추억이 새롭구나/푸른 강물 흐르건만 종소리는 끝이 없네/화려한 천 년 사직 간 곳을 더듬으며/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아 신라의 밤이여/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웁구나/대궐 뒤에 숲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님들의 치마 소리 귓속에 들으면서/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8·15해방 직후인 1947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새로운 감각과 발랄한 생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노래는 단조 위주의 식민지시대 트로트가 해방 정국에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던 시절이다 보니 작곡자 박시춘이 새로운 감각과 창법을 가진 가수를 적극 물색하던 중 한 나이트클럽 공연에서 현인을 발탁해 이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원곡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야말로 경주의 밤하늘에 뜬 보름달과 그 아래 묵묵히 잠들어 있는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첨성대, 반월성, 안압지 등의 유적지와 역사적 명소들이 잔잔히 응답하는 듯한 생동감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런 귀한 민족사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전체 한국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효과로도 작용한다. 작곡가 박시춘은 해방 정국 격동의 분위기에 제대로 부응하는 너무도 적절한 가수를 뽑았다며 자신감을 얻었다. 과연 이 노래는 당시 청년 세대의 대단한 호응을 얻으며 단숨에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성악을 전공한 음악도였던 현인의 성악에 바탕을 둔 창법은 신민요나 트로트 등과 달리 시원한 맛을 내며 해방 이후 가요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신라와 관련된 시적 장치와 소도구들 다양하게 구사하고 문무왕의 다짐과 결의 다루기도 1952년, ‘신라제 길손(손로원 작사, 이병주 작곡, 백년설 노래)’은 6·25전쟁 당시 북에서 남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의 애달픈 향수를 달래주는 작품이다. 실향민의 심정을 실감 나게 그려낸 작사가 손로원의 노랫말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어, 1953년엔 ‘신라의 칼(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한정무 노래)’이, 1959년에는 ‘신라의 북소리(야인초 작사, 박시춘 작곡, 도미 노래)’가 발매된다. ‘서라벌 옛 노래냐 북소리가 들려온다/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사랑도 두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자/맹세에 잠든 대궐 풍경 홀로 우는 밤/궁녀들의 눈물이냐 궁녀들의 눈물이냐/첨성대 별은/화랑도 춤이더냐 북소리가 들려온다/’ -하략. 이 노래는 신라와 관련된 시적 장치와 소도구들을 다양하게 구사한다. 서라벌의 북소리, 반월성의 말 달리는 함성, 화랑과 원화의 훈련 소리, 첨성대의 별, 북소리, 금오산, 해마다 열리는 신라문화제 행사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작사가 야인초(본명 김봉철)는 경주 신라문화 축제 현장을 두루 답사한 경험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가사를 썼을 것이다. 1966년에는 ‘님 그리운 망부석(반야월 작사, 서영은 작곡, 이미자 노래)’가 발표되었고 1979년에는 ‘대왕암(김주영 작사·작곡, 김주영 노래)’이 선을 보였다. ‘모래성을 뭉개듯 남북 삼천리/황금 투구 북소리 울리던 그날/그 큰 뜻에 하늘은 다시 맑았고/한 나라의 성업은 이룩됐어라/뭍으로 적을 막아 베이던 기개/죽는다고 내 나라를 모른다 하랴/마음속엔 또 하나 바다를 지켜/죽어서도 그 몸이 용이 됐어라//’ -이하 하략. 이 노래는 1979년 당시 안성농업전문대 학생이던 김주영이 제3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김주영은 대왕암을 테마로 삼국 통일의 업적과 성과, 죽어서까지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문무왕의 다짐과 결의 등을 감격적 화법으로 엮어냈다. 다음호에서 경주를 테마로 다룬 대중가요 하(下)편이 이어진다.
경주시는 이달부터 생계급여를 수급하는 가구에 노인과 한부모가 있으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초생활보장제도상 생계급여를 수급하는 노인·한부모 가구에 1촌의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등 ‘부양할 수 있는 가족’이 있으면 수급자로 선정하지 않았던 기준을 폐지하지만 부양의무자가 연 소득 1억원 이상이거나 9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소지하고 있을 시에는 현행 기준을 적용된다. 대상자는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부양의무자의 부양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에 신청을 주저했던 가구며 기존 수급자 가구에 대해서도 추가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기초수급 선정기준인 소득 인정액 기준도 완화돼 생계급여의 경우 ▲1인 가구는 월 54만 8349원 ▲2인 가구는 월 92만 6424원 ▲3인 가구는 월 119만 5185원 ▲4인 가구는 월 146만 2887원으로 적용돼 생계급여가 지급된다. 이번 조치로 만 30세 미만 한부모 가구뿐만 아니라 만 30세 이상 한부모 가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도 함께 폐지되며, 내년부터는 이를 전체 가구로 확대해 모든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예정이다. 그동안 복지사각지대로 지적됐던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단계적으로 폐지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따라 신규 지원 대상이 된 가구는 주민등록상 주소지 소재의 주민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다. 문의 사항은 시·군·구청, 읍·면·동 주민센터 또는 보건복지부 상담센터(국번없이 129번)에서 안내받을 수 있다. 서정보 경주시 복지정책과장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로 생계급여를 받지 못했던 대상자를 추가로 지원하게 될 것이며, 기초생활보장제도 자격요건 완화로 복지사각지대의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받기를 기대한다”며, “더욱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조성해 어려운 형편의 대상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건강한 일상생활 유지와 자립지원을 위해 보건복지부는 2021년부터 장애인 복지정책이 달라진다고 밝혔다. 먼저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를 확대, 강화한다. 활동지원 서비스의 내실화를 위해 단가를 현실화하기 위해 단가를 지난해 1만3500원에서 1만4020원으로 올리고, 대상자도 9만1000명에서 9만9000명으로 확대한다. 최중증 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에게 지급되는 가산급여 대상자와 급여도 지난해 2000명에서 3000명, 지난해 1000원이었던 단가도 1500원으로 늘었다. 또한 장애인 활동지원 수급자가 65세 이후 노인장기요양 수급자로 전환돼 급여가 감소한 경우 활동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아동에 대한 발달재활서비스도 지원이 확대된다. 장애아동(시각, 청각, 언어, 지적, 자폐성, 뇌병변) 발달재활서비스 지원 대상을 기존 6만1000여명에서 4000명을 확대해 6만5000명을 지원한다. 현재 기준 중위소득 180% 이하 장애아동 가구를 대상으로 지원하며, 본인부담금은 기초생활수급자는 면제, 차상위계층은 2만원, 차상위 초과~기준 중위소득 65%이하는 4만원, 65% 초과 120%이하는 6만원, 120%초과 180%이하는 8만원 등이다. 지급급액은 월 22만원이며 장애아동 2명 이상, 부모 중 1명 이상이 중증장애인인 가정은 시·군·구청장 인정시 소득기준을 초과해도 지원이 가능하다. 단 본인부담금은 8만원이다. 성인 및 청소년 발달장애인의 의미 있는 낮시간, 방과후시간을 보장하고, 보호자의 돌봄 부담 경감을 위해 서비스 지원을 확대했다. 주간활동은 만 18~64세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지원하며, 대상자를 4000명에서 9000명으로 늘렸다. 이들에게는 대상자 특성에 따라 1일 2.5시간~6시간, 월 100시간 주간활동서비스 바우처, 문화·예술·스포츠·외부활동 등을 지원한다. 방과후활동은 만 12~17세 청소년 발달장애인에게 지원하며, 지난해 7000명에서 올해 1만명으로 확대했다. 대상자들에게는 취미·여가, 자립준비, 관람·체험, 자조활동 등을 월 44시간의 방과후활동서비스 바우처를 지원한다. 도전적 행동 등으로 그룹활동이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주간 활동서비스 이용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가산급여를 3000원 추가 지급한다. 그룹활동에 참여가능하도록 전담 제공인력도 배치할 방침이다. 장애인 소득 보장도 강화된다. 저소득 중증장애인에 대한 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전체 수급자에게 장애인연금 기초급여액을 월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했다. 장애인 일자리 급여도 지난해에 비해 1.5%(전일제 기준) 인상함으로써 장애인이 보다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동안 장애 인정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됐던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CRPS) 등 10개 질환 대상으로 장애 인정 기준을 마련하고 인정 질환을 확대 추진한다. 10개 질환은 ▲간신증후군 ▲정맥류출혈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백반증 ▲중증의 복시 ▲배뇨장애(완전요실금) ▲기질성 정신 및 행동장애 ▲강박장애 ▲뚜렛장애 ▲기면증 등이다. 또한 현재 장애 범주 및 판단 기준 때문에 인정이 되지 않는 사례는 올 4월부터 개별 심의 후 예외적으로 심사 및 인정하는 ‘예외적 장애인정 심사 절차’가 새롭게 도입된다.
대표적인 출향인 사업가인 조희길 시인의 시 ‘산다는 것은’이 2020년 부로 종로3가역을 비롯한 서울시 주요 지하철 5개 노선의 역 안전문(스크린 도어)에 개시됐다. 이번 개시는 지난해 서울시가 시민 대상으로 응모한 시민창작 시 공모전에 당선된 것으로 조희길 시인의 시는 앞으로 1년 동안 3호선 종로3가역 오금역 방향 7-3, 4호선 명동역 남태령 방향 10-2, 5호선 왕십리역 방화행 8-2, 6호선 상수역 용암방향 4-4, 8호선 장지역 모란방향 6-3번 스크린도어에 개시됐다. 이번 공모는 서울시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지난해 6월 15일부터 7월 8일까지 모집한 총 3140편의 시중 최종적으로 208편을 선정해 지난 해 10월부터 서울시내 지하철 314개 역 4,093면에 각 5편씩 순차적으로 분산 개시해 온 것이다. 조희길 시인의 시는 앞으로 다른 207편의 시와 함께 향후 2년 간 서울시 지하철 안전문에 개시되어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조희길 시인은 이번 개시에 대해 “응모하고 선정된 것은 알았는데 개시에 대해서는 서울시에서 따로 통보 받지 못했다. 마침 지하철을 타던 지인이 내 시를 발견하고 사진으로 알려 주어서 알게 됐다”고 설명한 후 “서울에 거주하는 시인으로서 시민들과 친근하게 만날 수 있다는 의미와 잠깐이라도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며 소감을 밝혔다.
지난 12월 21일과 22일 양일간에 걸쳐 경주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하나의 이벤트에 와짝 쏠렸다. 뮤지컬 가수 박슬기 씨가 참가한 유튜브 비대면 ‘미스뮤지컬’ 결승에 투표하기 위해서다. 경주출신 사업가 겸 작가인 박근영 씨의 딸인 박슬기 씨는 미스뮤지컬 최종결승 심사위원 평가에서 큰 점수 차이로 1위에 등극했고 12월 25일 발표된 최종 우승자 공개에서는 경주시민들의 뜨거운 인기투표에 힘입어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투표에 적극 참여한 경주 시민들과 출향인들은 자신의 일처럼 크게 환영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경주고 서울동창회 송년회에 초대돼 노래 불렀고 경주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하며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경주 어른들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미스뮤지컬’에 오를 수 있어서 고마움을 말로 다 하기 힘듭니다” 박슬기 씨는 이번 ‘미스 뮤지컬’ 경연에 참가하기 전부터 뮤지컬계에서 남다른 경력을 쌓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규모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대학시절 각종 뮤지컬 대회에서 상위권 입선을 한 대다 2017년에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대학생부분 여자주연상을 차지하며 부상으로 대구시비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로 뮤지컬 연수까지 받고 왔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 후 1년 동안 프로 무대를 경험했고 최근까지도 국방부 산하 ‘국악예술단’에서 뮤지컬 담당 배우로, 대학로 최장수 뮤지컬 ‘천로역정’에 주요배역으로 참여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남성 뮤지컬 배우들의 쓰임이나 대우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여성 뮤지컬 배우들의 차별에 낙심해오기는 마찬가지. 바로 이럴 때 미스뮤지컬 경연은 비록 개인 뮤지컬 배우 김리씨가 유튜브 자격으로 실행하는 소규모 이벤트이지만 여성 뮤지컬 배우들의 한과 염원을 담은 훌륭한 경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뮤지컬이 소홀하게 취급되는 현실에서 이런 경연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 너무 고맙고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 기회에 저 자신을 다시 한 번 검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박슬기 씨는 뮤지컬 배우들의 경우 여성 관객과 시청자들이 절대적으로 많다보니 남성 뮤지컬 경연은 자주 열리는 반면 여성 뮤지컬 경연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한다. 특히 1년간 프로무대에서 경험한 바를 설명하며 ‘여성의 경우 주연을 맡아도 어지간한 남성 조연급들보다 오히려 개런티가 작은 경우가 허다하다’며 뮤지컬계의 여성차별에 대한 심각성을 조심스럽게 질타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비록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들어놓지는 않아도 김리 씨가 기획한 미스뮤지컬은 많은 여성 뮤지컬 배우들과 지망생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고 고백한다. -김리 씨, 여성뮤지컬계의 차별 타파하기 위해 개인비용으로 경연 마련, 전국 250여 실력가들 참여 박슬기 씨의 말처럼 이번 ‘미스뮤지컬’은 뮤지컬 배우 김리 씨가 순전히 개인비용을 들여 만든 경연이다. 1등에게 걸린 상금 50만원은 외형적으로는 아주 약소해 보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각종 무대공연이 사라져 자신조차도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김리 씨가 오로지 자신의 성의만으로 마련한 상금이다. 초호화 맴버를 구성하고 엄청난 마케팅을 벌여 시행하는 경연으로 따지면 몇 억원보다 가치 있고 무게 있는 비용인 셈. 9월 초에 김리 씨가 이 미스뮤지컬 경연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했던 말은 우리나라 여성 뮤지컬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블 캐스팅은 남자 앙상블이 주연으로 갈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인데 다 남자배우들을 위한 것입니다. 팬텀 싱어는 1, 2, 3 세편이 제작됐는데 이게 다 남자들만의 경연이었어요” 적어도 한 번쯤은 여성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끝내 여성출연자는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스스로 이 경연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여기에 뜻을 같이 하는 후원자들도 참여했다. 역시 1등에게 주는 혜택인 뮤직비디오 제작은 이런 김리 씨의 뜻 깊은 도전을 본 모제작업체가 자발적으로 제안해서 성사됐다. 1등에서 3등까지 주어진 ‘마켓비’도 김리 씨의 도전에 공감한 처음 마켓비의 작은 성의였다. 뮤지컬 배우 손유동 씨도 이 뜻 깊은 경연에 자신의 뜻을 보태 3위 이상 입상자들에게 비용을 불문하고 어떤 공연이건 보여준다는 약속을 했다. 이들은 오로지 뮤지컬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서 제각각 작지만 보석 같은 협찬들이었다. 김리 씨의 뮤스 뮤지컬 경연은 전국의 여성 뮤지컬 배우와 지망생들이에게 1차로 자신이 노래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접수 받는 것으로 출발했다. 이렇게 해서 박슬기 씨를 포함 모두 250여 명의 내로라 하는 배우와 가수들이 스스로 노래 부른 동영상을 제출하면서 ‘미스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예상보다 많은 실력 있는 지원자들이 도전해 깜짝 놀랐고 제가 이 일을 벌인 것이 참으로 잘 했다는 생각이 들며 감격의 눈물이 나왔습니다” 김리 씨가 밝힌 소감이다. 그렇게 10월 4일까지 후보 동영상을 받은 김리씨는 자신의 판단으로 우선 본선 진출자 16명을 선발했다. 이 16명은 평범한 직장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뮤지컬 배우이거나 뮤지컬 전공 학생들이었다. 일단 본선 진출자를 고른 김리씨는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뮤지컬 무대에 출연중인 유명 배우들과 뮤지컬 기획자, 감독 등 심사위원들을 위촉, 이들 16명과 함께 꼬박 2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박슬기 씨는 미스 뮤지컬 본선 진출 후 김리 씨와 가진 첫 인터뷰에서 고교시절부터 노래연습에 본격 매진했다고 소개하며 ‘비 오는 날 한강 다리 밑에서 혼자 노래 불렀다’며 스스로 노래 연습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많은 장르의 노래를 다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개하며 대장정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박슬기 씨가 보여 준 첫 무대는 뮤지컬 Thoroughly Moden Millie의 ‘Gimme Gimme’였다. 16명 선발 이후 진행은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의해 2차로 10명이 선정됐고 이들이 다시 경연을 벌여 3차 6명으로 좁혀졌다. 이들은 2명씩 조를 이루어 노래해 다시 3명으로 압축됐다. 이렇게 박슬기 씨를 포함 김수빈 씨, 박슬기 씨와 함께 조를 이룬 전소형 씨 등 3인이 4차 경연 최종 결승자로 선발됐다. -심사위원 평가, 인기투표 양쪽에서 압도적인 1위, ‘세계에 우리 뮤지컬 전하는 꿈 이루겠다’ 이들 3인은 각각 3개의 미션을 받아 노래 경연을 펼쳤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뮤지컬 곡, 남성의 노래를 부르는 젠더프리 미션과 일반 가요곡 등으로 마지막 승부를 가른 것. 박슬기 씨는 여기서 가장 자신 있는 노래로 뮤지컬 ‘위키드’의 ‘마법사와 나’, 젠터 프리 미션으로 뮤지컬 ‘웃는 남자’의 ‘그 눈을 떠’ 가요곡으로 유재하 작곡 박정현 노래의 ‘그대 내 품에’를 불렀다. 심사결과 박슬기 씨는 심사위원 점수 1749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1723점의 김수빈 씨, 3위는 1715점의 전소형 씨가 차지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관문으로 이 세 명의 노래를 전부 들은 시청자들의 인기투표로 승부가 엇갈릴 수 있었던 것. 시청자 1명의 투표가 1점으로 기록되고 초대형 프로젝트의 프로그램이 아닌 만큼 수 십 명 차이의 득표로 등위가 바뀔 수 있었다. 지난 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유튜브 ‘김리와 함께 하리·미스 뮤지컬’에서 심사위원 심사결과가 발표되고 딱 이틀 동안의 인기투표에서 박슬기 씨는 평소 자신과 교분을 쌓아온 중고등학교 및 대학 지인들과 자신의 채널을 구독하는 팬들의 투표, 가족들과 함께 투표전에 돌입했다. 이 소식을 들은 경주시민들이 적극 투표자에 참여하며 1063명 투표자 중 과반수가 넘는 546표로 압도적인 1등을 굳혔다. 박슬기 씨는 마지막 결승에서 1등을 튼튼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상당부분 경주 덕분이었다며 환하게 웃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유튜브 채널 ‘seulki muto’와 김리 씨의 유튜브 채널 ‘김리와 함께 하리’를 통해 여성 뮤지컬을 꾸준히 응원해 줄 것을 부탁했다. 박슬기 씨는 이번 인기투표에서 많은 분들이 격려 메시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뮤지컬 가수가 돼 세계 속에 우리 노래를 빛내라’는 말을 가장 많이 보았다고 전하며 응원대로 될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하겠다며 소감을 밝혔다. 또 김리 씨의 이 경연이 앞으로도 쭉 이어져 더 많은 뮤지컬 가수들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여성 뮤지컬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기 바라고 자신도 기꺼이 이 길에 협조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직은 척박하기 그지없는 여성 뮤지컬이라는 불모지대를 함께 걸어가는 두 여성 배우들의 도전은 이제 시작으로 보인다.
캔버스 위에 자유와 희망의 꿈이 펼쳐진다. 정경희 작가의 초대개인전이 오는 8일부터 17일까지 더케이호텔경주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정경희 작가는 ‘모래 위에 피어난 꿈과 사랑’이라는 주제로 ‘Happy Trip’ 시리즈 작품을 25점 선보인다. 작가의 Happy Trip 출발점은 꿈과 보이지 않는 상상력의 조화다. 작가는 모래와 젯소를 혼합한 바탕에 겹치고 긁는 방식으로 특유의 질감과 따뜻한 색감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이미지를 유추해낸다. 빨간 자동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드라이브하고, 꽃 배가 표류하는 등 작품 속 동화적 에피소드는 현대인들에게 순수한 유람을 상상하게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자동차와 논, 밭, 열기구, 모란, 벚꽃, 구름, 꽃배, 나무 등은 일상적인 의미를 넘어 꿈과 현실 속에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내면의 정서와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 생명력을 회화의 중점에 뒀습니다. 자연의 순수 미를 색채 미학으로 재해석해 형의 단순화, 균형, 조화, 비례미를 화면에 구성해 나가죠. 친숙한 일상의 이미지를 순수한 시각적 아름다움과 섬세한 색채로 담아 일상과의 소통영역을 확대해 가려 합니다” 작품 속 자연 형상에서 동양적 사색과 한국적 정서가 느껴진다. 근거리의 평면성과 원거리의 입체적 공간은 조형적인 공간으로 조화를 이룬다. 작업 과정의 반복은 밀도와 균형 있는 작품으로 특징을 짓는다. “캔버스 표면에 고운 모래와 젯소를 혼합해 바탕에 얇은 질감을 먼저 입힌 후 굵은 모래로 표현하고자 하는 물상을 두껍게 발라 입체감을 나타내죠. 그다음 못이나 뾰족한 도구로 긁기도 하고 나이프로 여러 가지 질감을 표현해 나갑니다” 작가의 꿈과 상상력이 결합해 낭만적 분위기가 연출된다. “저에게 꿈은 무한한 자유와 희망을 선사합니다. 자연 형상을 화면 속에 끌어와서 절제와 밀도 있는 구성으로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통해 꿈과 행복을 담아내고자 했죠.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 제 작품이 따뜻하고 밝은 기운과 함께 삭막한 현실에 지친 마음에 잠시나마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소중한 사람과 함께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선물 같은 전시. 정경희 작가의 ‘Happy Trip’ 시리즈를 통해 무력감에 지친 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전해지길 기대한다. 정경희 작가는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일본, 서울, 경주, 포항, 울산 등지에서 8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한·일 국제교류전(2018), 한·베 국제 교류전(2017), HARBOUR Art Fair, 경주아트페어, K-art 거리소통프로젝트 참여 등 해외교류전 및 단체전, 초대전 100여회에 참가했으며, (재)경주문화재단과 (주)세잔건설 등에 작가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장기간 지속되는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과 전시, 개인 교습 등으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지난해는 여느 때보다 보다 힘든 한해였다. 지역 예술인들의 한 해 성과를 되돌아보고 그동안의 노력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2020 경주예술인 한마당’ 행사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되면서 조용하게 한 해를 마무리해야만 했던 (사)한국예총 경주지회. 모두가 힘들었던 2020년을 뒤로하고 2021년 신축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사)한국예총경주지회 김상용 회장을 만나 경주예총의 지난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경주예총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문은? 새로운 비전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경주예총은 1964년 창립돼 한국 전통과 현대예술 문화발전에 구심점 역할을 수행했으며, 예술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활발한 창작활동과 예술의 혼을 꽃피울 수 있게 다양한 지원을 해왔습니다. 저는 회장직을 수행하며, 선조들의 뛰어난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천년고도, 예향 경주 예술인들의 문화예술을 통해 우리의 삶의 질과 행복의 가치를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노력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경주예총은 문인, 미술, 음악, 연극, 사진, 국악, 무용, 연예협회 등 8개 산하단체로 구성돼, 지부별 발표회 및 전시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고 지역 예술을 한 단계 높게 승화시켜 나갔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우리 경주 예총 700여회원들은 다양한 창작활동을 통해 경주 예술인의 자긍심을 한껏 높이며, 지역 예술과 문화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임기 내 가시적인 성과를 꼽는다면? 반세기가 넘은 경주예총의 제24대 회장직에 출마하면서 경주예술의 재창조를 위해 여러 가지 선거공약을 준비했고, 지난 3년간 약속한 바를 열심히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봉사했습니다. 첫째,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위상을 강화하여 더 좋은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둘째, 예총 산하 8개 지부가 복합적으로 확장된 문화예술 행사를 가질 수 있도록 예산 지원을 했습니다. 셋째, 시민과 함께 문화 예술을 공유하고 예향 경주가 미래 지향적 문화 예술 도시로 거듭나도록 노력했습니다. 특히 해외 자매 도시 중국 시안 미술가 협회와 국내 자매도시 전북 익산 예총과의 예술 협약으로 정기적인 예술 교류를 통해 양 도시 예술인들의 친목과 예술 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2019년 9월, 중국 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중국 시안 폐교구 최진관 미술관에서 시안 폐교구 인민정부가 주최 전시 개막식을 성대하게 치렀는데 매우 인상적이며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2018년 9월에는 경주예총과 익산 예총간의 정기적인 예술 교류를 위한 협약식을 갖고 2019년 5월 ‘영호남 예술아 놀자’라는 주제로 익산 솜리 문화 예술 회관과 배산 체육공원에서 교류 행사를 개최하며 양 도시 예술인들의 화합과 예술 문화 발전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대비해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방안에 대한 생각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덮친 2020년은 우리 예술인들에게 우울한 시간이었습니다. 문화예술은 지친 삶 속에 치유의 메시지를 주고 우리의 일상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번 팬데믹 속에 우리 예술인들은 공연과 전시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경주예총의 회장으로서, 가깝게는 예술인들의 예술혼 회복과 널리는 시민들의 상처받은 일상을 치유하는 문화예술 활동 지원방안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실질적 해결 방안은, 언택트 시대로 전환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온라인 공연, 전시 등을 비대면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비대면으로 예술 활동의 확대를 위해 지역 예술인 중에서 온라인 미디어 창작과 관심 있는 회원들을 발굴, 지원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원 방안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저는 비대면 예술 향유 기반의 확대를 위해 예술 성장 환경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지원할 것입니다. 또한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예술 활동이 계속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경주 문화 재단 등 유관기관과 협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2021년 주요 사업은? 오는 5월에는 경주예총 예술제 개최를 시작으로 9월에는 해외 자매도시 중국 시안 미술협회 예술교류가 있을 것이며, 10월에는 경주 신라문화제, 11월에는 국내 자매도시 전북 익산예총과의 예술교류와 예술경주 27호가 발간될 것입니다. 이어 12월에는 예술경주 27호 출판 기념식 및 경주 예술인의 밤이 열릴 예정입니다. 특히 2021년 주요 사업으로 경주예술인 인물사 발간도 함께 진행될 것입니다. 이번 인물사 발간 사업은 예향 경주 예술을 빛낸 예술인들을 선정하고 기록함으로써 예술 도시 경주의 가치와 품격을 높이고 지역 예술인들에게 자긍심을 고취하여 지역 문화예술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준비한 사업입니다. 단순한 선정 과정을 넘어, 다양한 자료수집 및 구술채록을 통해 경주예술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예술인의 인물사를 발간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계획과 지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경주예총 700여회원들의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예술 활동은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의 삶 속에 예술 문화에 대한 이해와 그 안목을 넓히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경주예총은 예향 경주의 예술이 시민의 삶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할 것이며, 예술적 열정과 굵은 땀방울을 쏟으며 사회적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경주향교 부설 사회교육원(원장 권혁웅)에서는 2021년도 수강생을 모집한다. 경주향교는 전통적 윤리 가치관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유림회관에 경주향교 부설 사회교육원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사회교육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모집강좌는 △주간반에 사자소학, 동몽선습, 계몽편, 격몽요결, 명심보감, 소학,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주역, 고문진보, 신라사, 한시, 서예(한글, 한문), 사군자, 민화, 시조창, 가야금 △야간반에는 논어, 고문진보, 현대문학(시, 수필) 등으로 각 분야 저명한 강사들이 강연을 펼친다. 누구나 신청 가능하며, 수강료는 무료다. 수강 신청에 관한 접수 및 문의는 경주 유림회관 3층 교육원 사무실(054-775-3624)로 하면 된다. 오선아 기자
경북 미술의 미래, 전도유망한 청년 작가들의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경주엑스포 솔거미술관은 ‘2020 경북미술인 지원사업 선정 작가 Part 2’ 전시를 다음 달 21일까지 진행한다. <사진> 이번 전시는 지난해 실시한 ‘경북미술인 지원사업’을 통해 선정된 4인 작가 중 40세 이하 청년 부문에 선정된 ‘김창수·남상헌’ 작가의 작품 전시다. 김창수 작가는 포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년작가로 인간의 몸을 수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보고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을 안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그려내는 ‘이모션’을 선보여 관객들과 소통한다. 남상헌 작가는 과거의 기억을 화폭에 옮기며 그 순간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담아내는 ‘그때 그 순간’ 작품을 통해 기억의 단편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표현해낸다. 이를 통해 추억 속의 장소와 인상을 관람객과 공유한다. 경북도와 경주시가 주최하고 (재)문화엑스포와 (사)한국미술협회경주지부가 주관하는 2020 경북미술인 지원사업 선정 작가 전시는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미술 산업 전반을 성장시키기 위해 운영하는 ‘경북미술인 지원 사업’의 일환이다. 전시는 당초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연기돼 지난 4일 오픈했으며, 솔거미술관 측은 관람객을 수용인원의 30% 미만으로 조절하고 발열 체크와 소독 등 방역을 강화해 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류희림 경주엑스포 사무총장은 “이번 전시와 경북미술인 지원사업을 통해 경북지역을 배경으로 실력과 창의성을 갖춘 청년작가들이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솔거미술관이 코로나19 등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지역 미술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기획과 지원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향토문화 발전 및 민족문화 선양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경주문화원(원장 조철제)이 ‘경주문화’ 제26호와 ‘경주문화논총’ 제23집을 발간했다. 경주의 다양한 문화예술을 소개하고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소통공간으로 기능해온 ‘경주문화’는 이번 경주문화 제26호에서 △생활 속 생태공원 △문화 환경변화에 따른 대응 △한국전쟁 70주년 기획특집 △경주의 문화인물(정순임 명창, 한기철 박사, 최현필 선생) △신라문화의 부활 △경주예술문학 △경주미술계의 과제 △경주 근대문화재 탐방 △경주의 새 명소 △농촌 경제와 문화 △미래의 문화콘텐츠 △2020년 경주문화원 주요 사업 등 지역의 향토문화를 연구하는 인사들이 참여해 유용하고 폭넓은 정보와 지역 문화인의 활동과 동정을 전한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경주문화’는 우리 경주가 낳은 위대한 문화인물의 업적을 기리고, 한 해 동안의 문화예술 활동상을 망라함으로써 문화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데 기여 하고 있다”면서 “경주문화원이 지혜와 열정을 모아 발간한 ‘경주문화 제26호가 경주문화원의 위상을 드높이고 향토문화를 더욱더 살찌우는데 밑거름이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경주문화원 부설기구인 향토문화연구소(소장 오세윤)가 매년 발간하는 논문집 ‘경주문화논총’ 제23집에는 △강석근의 ‘용장사지 매월당 북향화 연구’ △김창섭의 ‘경주 천관사지 유적정비 기본방향 연구’ △박임관의 ‘글로벌 신라와 차 문화’ △선애경의 ‘경주, 골목은 살아있다. 골목이 희망이다(下)’ △오승연의 ‘남산 천룡사지 발굴의 성과와 과제’ △유문식의 ‘김동리 소설에 나타난 예기청수장소성 연구’ △이채경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기록된 신라 이야기 연구’ △최민희의 ‘오기일(烏忌日)인 정월 16일의 의미’ △최석규의 ‘건천 대곡리 동경이 마을 만들기 기본계획’ △최영기의 ‘경주최부자 부(富)의 근원이 되는 선대정신’ △최재영의 ‘황남동 일대 수목자원(노거수)의 활용방안’ 외 문화재 사진작가 오세윤의 ‘경주 풍경-사진 작품’ △최영조의 작가의 근작 문인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학생 수가 부족해 보건교사가 상주하지 않던 학교에 올해부터 보건교사가 채용돼 학생들이 보건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경북교육청(교육감 임종식)은 따르면 2021학년도부터 학생 수 40명 이상 모든 공·사립학교에 보건교사 배치 확대 한다고 밝혔다. 이번 보건교사 배치 확대는 코로나19 장기화 추세에 따른 학생들의 건강권 보장과 안전을 위해 마련됐다. 공립학교 보건교사는 교육부에서 정원을 배정받아 2021학년도에 학생 수 40명 이상 585개교(지난해대비 109%)에 배치한다. 이는 지난해 대비 50개교 늘어났다. 또한, 사립학교 보건교사는 교육청 자체 배정 계획에 따라 배치한다. 이에따라 공립 배치 기준에 맞춰 143개교(지난해대비 139%)에 배치돼 지난해 대비 40개교 늘어난다. 경주지역에도 학생 수 부족으로 보건교사가 미 배치됐던 학교에 보건교사가 채용될 예정이다. 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8개 학교에 보건교사가 채용돼 학생 보건교육을 담당할 것이라 밝혔다. 8개 학교에 보건교사가 채용되면 보건교사가 미 채용된 학교는 초·중학교 11개로 줄어든다. 경북교육청은 2020학년도에는 공립학교 학생수 70명 이상 638개교(69.1%)에 보건교사를 배치했다. 2021학년도부터는 공·사립학교 학생수 40명 이상 728개교(78.5%)로 확대함에 따라 90명의 보건교사를 추가 배치하게 된다. 이는 지난해 4월 기준 경북 도내 전체 학생 26만525명 중 학생 수 40명 이상 학교의 98.5% 이상의 학생이 새학기부터 보건교사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게 된다. 또한 34학급 이상, 학생 수 850명 이상 과대학교 38개교(초등학교 36개교, 고등학교 2개교)에 기간제 보건교사를 추가 배치해 감염병 예방을 위한 보건교육 등을 한다. 특히, 학생 수 40명 미만 보건교사 미배치학교 중·고 병설(통합)교를 제외한 154개교에는 교육지원청 보건교사가 순회하면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과 보건교육 지원으로 학생의 안전과 건강권을 보호한다. 임종식 교육감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학습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보살핌과 배려로 학교에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경북교육청은 도내 23개 시·군의 40년 이상 노후 학교시설 217동 약 48만6000㎡를 5년간 1조664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은 한국판 뉴딜의 10대 과제에 포함돼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4차 산업에 대응하는 미래인재 양성과 미래지향적 친환경 스마트 교육 여건을 구현하기 위함이다. △저탄소 제로에너지를 지향하는 그린학교 △미래형 교수학습이 가능한 첨단 ICT기반 스마트 교실 △학생 중심의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한 공간혁신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학교시설 복합화 등 4가지 기본원칙을 두고 ‘디지털+친환경 융합형’으로 추진한다. 대상학교 선정기준은 학교 추진의지, 건물경과년도와 안전등급, 학교의 지속가능성 등을 지표로 지역 교육지원청의 정량평가를 1차로 평가한다. 아울러 개축 또는 리모델링의 적정성, 고교학점제, 혁신학교, 교육과정 선도학교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운영, 지역중심의 지속가능한 학교 등을 평가지표로 선정심의위원회 2차 평가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우선순위를 선정한다. 선정심의위원회의 전문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도의원, 교수, 건축사, 구조기술사를 외부전문가로 위촉해 선정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8일까지 현장실사를 통해 사업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확인할 예정이다. 임종식 경북교육감은 “학교공간혁신사업으로 추진한 예천 감천초가 전국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그린스마트 미래학교 또한 학교사용자가 만족하는 사람중심, 디지털전환, 공간혁신을 포괄하는 대한민국의 표준이 되는 학교시설 구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박물관 신임관장에 국립중앙박물관 최선주(58) 학예연구실장이 임명됐다. 최선주 신임관장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전남대학교 사학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전남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나라 국립박물관에서 연수했으며 불교 조각을 전공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 초대 팀장,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춘천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 연구기획부장, 미래전략담당관을 역임하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박물관 기획통이다. 2009년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팀장을 맡아 전국 600여개의 국공사립 박물관, 미술관과 함께 사업을 추진해 박물관·미술관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기획한 주요 특별 전시로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미술’ ‘양양 낙산사와 관동팔경’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등이 있다. 특히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영월 창령사 오백나한전’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 시켜 국립박물관 전시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는 ‘인체로 본 불교 조각’ ‘고려 초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연구’ ‘영월 창령사 오백나한상의 도상연구’ 등 불교 조각 연구의 다수 논문이 있다. 최선주 신임관장은 “경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국립경주박물관을 통해서 찬란했던 신라의 문화와 불교미술의 정수를 느끼는 감동의 장소로 만들어 갈 것”이라면서 “코로나로 인해 당장 박물관을 찾을 수 없는 분들을 위해 국립경주박물관의 콘텐츠를 발굴해 온라인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게다”고 밝혔다. 이어 “국립경주박물관을 민족문화의 전당으로써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경주시민과 경북도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개인적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김해김씨 족보에 따르면 김유신 장군의 62대 손이다. 그의 후손으로서 백제의 패망 장면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왠지 진지한 느낌이 드는 것은 김유신 장군과의 인연 때문일 것이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660년 황산벌에서 백제의 계백 장군과 만나게 되었다. 각자는 자기 나라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 삼국시대 5만여명의 병력을 모았다는 뜻은 국가가 총동원령을 내려야 가능한 숫자였다. 그 때 김유신은 5만군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백제의 계백은 소수의 결사대로 이에 맞섰다. 5만이어야 하는데도 소수의 결사대만을 끌고 나갔다는 사실은 나당의 기습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을 집결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계백장군이 시간만 끌어주었다면 백제는 군사를 정비해 신라와 당나라의 기습전략을 흔들 수가 있고, 잘하면 망국으로의 길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백은 얼마 견디지 못한 채 황산벌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이후에야 백제는 군사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고, 왜국의 지원을 받아 3년간의 전쟁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최후의 결전은 한반도 서해안에서 벌어진 백촌강(白村江)과 주류성 싸움이었고, 백제와 왜는 여기에서 회복 불가능의 타격을 입고 말았다. ‘이 땅에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으리라’ 백촌강 패배 후 신라에 흡수될 수 없는 백제인들은 꽃을 가꾸던 땅을 버리고, 현해탄을 건너 왜국으로의 도거(渡去)에 나서기로 했다. 퇴각하는 왜국의 군사들과 항전을 다짐하는 대규모 백제인들을 실은 배가 속속 왜국을 향해 떠나갔다. 현대에 들어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는 보트 피플과는 비교될 수 없는 대규모 디아스포라의 발생이었다. 혼란스러웠을 배 위에 산상억량(山上憶良, 660-733)이라는 세살박이 아이가 타고 있었다. 아이는 백제 왕실에서 의사를 지냈던 아버지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들 부자는 한 점의 빛도 허용되지 않는 검은 바다를 건너야 했다. 훗날 일본 만엽집 연구의 제일인자로 알려진 중서진(中西進, 1929~) 오사카여대 명예교수가 그 날의 아이에 주목했다. 중서진 교수는 1969년 <국학원 잡지(만엽집 특집)>에 ‘억량 귀화인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의 논문은 다음과 같다. 中西進(1969), 憶良帰化人論 『國學院雜誌(万葉集特輯)』70(11), 國學院大學出版部, pp.267-282. 그는 위 논문에서 ‘산상억량은 660년 백제에서 태어났다. 3살 되던 해 백제가 멸망하였고, 그는 아버지와 함께 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산상억량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일본서기 9월 24일 조에 기록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중서진 교수의 이 논문은 필자에게 백촌강 충격이 일본에 건너간 향가에 던진 충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단서를 주었다. 억량이 가진 독특한 이력은 백제도거인(渡去人)들이 어떻게 일본에 정착하였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만엽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그의 일본국 정착과 살아갔던 과정은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 역시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를 통해 향가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일본 도거(渡去) 후 억량이 역사의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한 만엽가의 저자로서다. 그의 나이 30세 때였다. 세살박이였던 아이가 어느덧 30세로 성장해 만엽의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작품은 34번가다. 白浪乃濱松之枝乃手向草幾代左右二賀年乃經去良武 ‘흰 파도가 치는 물가에 소나무 가지들이 풀숲처럼 우거져 있다. 그대의 여러 대 후손들도 좌우로 길에 넘쳐나고 있어라’ 산상억량이 천도(川嶋)라는 황자에게 만들어 준 작품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비교법, 은유법, 생략법 등이 매우 정교하게 구사된 작품이다. 만들어진 시점은 690년 9월로 특정돼 있다. 자손들의 번성을 칭송하고 있는 내용으로 보아 일본 천무천황과 관련된 작품이다. 천무천황은 만엽가에서 자손 많기로 유명한 천황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지통(持統) 천황은 키(紀伊)국에 행차해 남편 천무천황의 묘를 참배하고 있었다. 천도(川嶋) 황자가 그녀를 수행하면서, 산상억량이 만든 만엽가 하나를 가지고 갔다. 이 사실은 산상억량이 어떤 형태로든 천도황자와 지통천황과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천도황자와 지통천황은 남매간이다. 또한 그들 남매의 아버지 천지천황은 백제 지원을 위해 대규모 군사를 파견했던 연구대상 천황이었다. 그러나 왜국은 백촌강에서 패배했다. 쇼크가 쓰나미처럼 일본에 가해졌다. 수도를 옮겼고, 나라 이름까지도 ‘왜국’에서 ‘일본’으로 바뀔 정도로 후유증이 지속되었다. 백촌강 쇼크로 일본이 흔들리는 가운데 2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시점에서 산상억량이 포착됐다. 만엽향가 저자와 천황 남매와의 교류라는 두 가지 점이 의미심장하다. 그는 백제 파병을 결단했던 권력자의 후손들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향가창작 실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만엽향가라고 해서 백촌강 충격으로부터 완전 자유스러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 건너간 향가의 변화를 알려면 산상억량이 가는 길을 보아야 했다. 만엽에 있어 억량의 길을 따라가 보자. 신라 향가와 일본 향가라는 오누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을까.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