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子曰富與貴是人之所慾也 不以其道 得之不處也 자왈 부여귀는 시인지소욕야나 불이기도로 득지어든 불처야하며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빈여천은 시인지소오야나 불이기도로 득지라도 불거야라. 군자거인이면 오호성명이리오? 君子 無終食之間違仁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군자 무종식지간위인이니 조차 필어시하고 전패필어시니라. <주석> 慾 :喜愛, 기뻐하고 사랑함이다. 不以其道得之不處也 :부당하게 얻었으면 부귀라도 처하지 않음이다. 之는 부귀를 가리킨다. 畢浣이 말하기를 “得之”는 아래로 이어 읽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역시 한 학설을 갖추었다. 惡 :싫어함이다. 不以其道得之不去也 : 부당하게 얻었으면 빈천이라도 버리지 않음이다. 之는 빈천을 가리킨다. 대개 군자가 도를 행함에 마땅히 부귀를 얻거나 도리어 빈천을 얻더라도 그것이 그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에 마땅히 빈천에 평안하여야 한다. 거슬려 이를 버리고 망령되게 부귀를 구하여서는 안 된다. 惡乎成名 :어찌 능히 군자의 이름을 이루겠느냐? 함이다. 惡는 何, 어찌이다. 終食之間 :밥 한 숟가락 먹는 사이.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한다. 造次 :급하고 구차한 때, 곧 촉박하여 틈이 없다는 뜻이다. 顚沛 :넘어짐이다. 넘어져 어려운 때이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귀, 이것은 사람이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땅하게 하지 않고 얻는다면 군자는 그것을 향유하지 않는다. 빈천, 이것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땅하게 하지 않고 얻는다면 군자는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군자가 만약에 仁道를 버린다면 어찌 능히 군자라 칭하겠는가? 군자는 한 숟가락 밥 먹는 동안에도 仁을 떠나지 못하고 촉박하고 급한 때에라도 인과 같이 있어야 한다. 넘어져 곤궁한 때에라도 인과 함께 있어야 한다. <묵상> 여기서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라는 말의 해석이 좀 복잡하다. 그 앞의 “부귀라 하더라도 그 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면 처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가 쉽다. 결국 부당하게 얻은 부귀라면 이를 거절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똑 같이 빈천도 그 도로써 얻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가 어렵다. 위의 해석도 궤변같이 들린다. 그럼 무슨 뜻인가?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빈천이 비록 정당하게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 집에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난다. 그 부함이나 가난은 내 탓이 아니다. 그러나 그 영향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도 이를 수용하라는 말이라 생각된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빈천, 부당한 위정자의 사리사욕에 의한 희생, 이들은 다 내 탓이 아니다. 곧 정당한 방법으로 나에게 돌아온 것이 아니다. 억울하게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를 벗어나려고 나 역시 부당한 방법으로 대항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수용하며 인을 지키라는 말이다. 이를 벗어나려고 나 역시 인을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목적이 비록 선하더라도 그 방법에서도 언제나 인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당하게 받은 불이익이라도 이를 벗어나려 나 역시 부당한 방법은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 어떠한 목적에서라도 인을 버릴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은 내 존재의 모든 근거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우리는 흔히 목적이 선하면 그 방법에서는 좀 비뚤어져도 용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안 된다는 것이다. 목적이야 물론 선해야 하지만 방법 역시 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주 최부잣집 곳간에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누대에 걸쳐 켜켜이 쌓여져있던 보물급 문서들이 세상과 눈부신 조우를 했다. 그 문서들은 1만여건의 간찰을 비롯해 공문서, 명함, 서책, 시문 등 수 만 가지 자료들이었다. 방대한 문서들을 거의 원석인 상태에서 본지 지면 최초로 보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어 각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인 보도가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 짧았지만 뜻깊은 연재를 마칠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늦은 감은 있지만 전국의 많은 이들이 최씨 집안 문서의 가치를 알게 되어서 더불어 기뻤다. 현재 최부잣집서 발견된 문서 자료 중 50여건이 서울의 근현대박물관에서 독립운동과 관련해 전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여러 전시 건이 예정돼 있다. 특히 ‘한 개인의 유산이 아니라 경주 시민 전체의 자산’이라고 강조한 경주최부자 11세 주손 최염 회장의 말은 감동적이었다. 서울생활을 하고 있는 최염 회장의 주소는 아직 교촌 고택 그대로라고 한다. 경주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남달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주 발전에 관련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는 전언이다. 독자들은 우리가 전혀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을 여러 문서, 즉 기록물을 통해 증명된 것을 경주의 쾌거로 여겼다. 여러 설(說)들로 전해지던 역사적 사실들이 방대한 문서를 통해 입증된 것에 놀라움을 표했다. 또 국채보상운동의 경우 경주에서 최부자를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경주 각지에서 당시 5000명이 넘는 시민의 동참으로 일어났다는 기록물의 발견으로 최씨 일가는 아니지만 경주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낀다는 이들도 많았다. 더불어 이런 문서와 자료들을 더욱 소상히 알 수 있고 누구나 이런 문서들을 손쉽게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문서의 발견은 몇 가지 과제들을 우리에게 던져 준다. 궁극적으로는 이들 문서와 자료를 전시할 수 있는 유물관 설립이 중요한 과제다. 그보다 선행돼야 할 과제는 바로 문서들의 해제, 번역, 완역 작업이다. 문서들 중 완역된 것은 극히 일부였고 대체로 제목과 내용 정도만 번역돼있는 상황이어서 심층적인 연구와 분석은 전문학자의 몫이라는 것과 번역과 해제 작업이 산적해 있었다. 물론, 최부자선양회 자체적으로 번역을 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번역에 어려움이 많다. 해제 작업만도 상당한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아직 해제되지 않은 200~300년 전의 서류와 귀중한 문서만 해도 1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문서들이 한 건씩 하루빨리 연구되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도 등록돼 명실상부 문서들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 기록유물로서 소중한 자료인 경주 자산을 제대로 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문서들은 역사, 경제사, 향토사, 독립운동사, 각 인물사 등 각각의 연구 영역에서 조사하고 연구할 부분을 엄연한 과제로 던져주고 있으며 경주의 유물관과 전시관에서 당당히 시민과 관광객을 만나야 한다. 다른 지자체는 기록물 하나만 발견돼도 축제 분위기다. 그것을 활용하기위해 전력을 쏟는다.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기록물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경주국채보상운동은 경주 전역의 시민 참여가 명백한 기록물로 증명됐으며 국채보상운동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스토리와 국채보상운동 전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있어 그 가치는 상당하다. 대구국채보상운동기념회에서 기념비 정도를 세워준다는 제안은 거절해야한다고 본다. 우리 지역에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공감을 형성한 바탕위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자는 생각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교촌의 최부잣집 단일로 대문 안에 들어오는 관람객은 하루 2000여명 이라고 한다. 작은 지자체의 전체 방문객수와 맞먹을 정도다. 최부자 정신과 더불어 새로 발견된 문서들을 중심으로 조선 문화를 육성해 또 다른 유형의 볼거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문화재해설사를 대상으로 최부자에 관한 새롭게 밝혀진 내용과 연구한 부분을 재교육해 긍정적 부자의 표본인 최부잣집을 지속적인 관광자원으로 제대로 알릴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는 활용이 정답이다. 이번 문서의 발견이 문화재 활용의 결실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경주시와 경북도의 적극적인 관심과 그에 따르는 지원이 절실한 때다.
진티로 가던 장꾼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과거 문교부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석학 황산덕 선생의 명저 『복귀』에서 한민족은 절대로 절멸(絶滅)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 임진왜란을 예로 들면서 이 나라는 위기를 맞으면 큰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나왔는데 그것은 우리 민족이 그런 저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임진왜란을 되돌아보면 그 말은 틀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난을 전후하여 장수로는 이순신, 권율이 있었고, 정치인으로는 유성룡, 이덕형, 이항복이 있었으며 종교 지도자로는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있었다. 지금 일본과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다. 어쩌면 나라 전체가 휘청일 것 같다.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임진왜란 때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그런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집에만 있어서는 불안한 마음이 진정될 것 같지 않다. 승용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휴가철이지만 이른 시각이라 통행하는 차량이 별로 없다. 불국사를 지나 석굴암을 향하여 올라가면 석굴암과 양북면 장항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우측 양북 방향으로 2km쯤 내려가면 다시 갈림길이 있다. 우측으로는 경주 풍력발전이다. 좌측으로 계속 3.1km 가면 우측에 있는 토함산자연휴양림 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계속 좌측 길로 4.6km 더 내려가면 장항리사지 표지판이 보인다. 길가에 차량 7-8대를 주차할 수 있는 간이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른 시각이라 텅 비어 있다. 유홍준에 의하면 국립경주박물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소불 정양모 선생은 ‘경주를 말해주는 세 가지 유물’ 중의 하나로 이 장항리 폐사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막상 절터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쌍탑과 불상 좌대만 남아 있는데 절터가 깊은 계곡에 바짝 다가서 있어 큰물이라도 지면 골짜기 속으로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실제 서탑은 언젠가 큰물이 덮쳐 탑이 그대로 골짜기 속으로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다. 장항리사지가 있는 이곳은 양북면 장항리 탑정마을이다. ‘장항’은 한자로 ‘노루 장(獐)’에 ‘목 항(項)’이다. 마을의 앞산 지형이 마치 노루의 목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지역에서는 ‘노루목’ 또는 ‘노루미기’라고 한다. 탑이 있어 마을 이름은 ‘탑정(塔亭)’ 혹은 ‘탑지이’이다. 신작로가 나기 전 이곳은 감포 쪽에서 진티(진현동)로 가는 동산재를 넘기 전 쉬어 가는 길목이다. 감포에서 진티 장으로 가던 장꾼들이 새벽에 길을 떠나 이쯤에 이르면 날이 밝아 오고 길목에 있는 이 절에 들러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고 또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십사고 부처님께 빌었을 것이다. 그리고 계곡에 흐르는 물을 마시며 한숨을 돌리고 조금은 가벼워진 짐을 추슬러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첫 새벽 감포 쪽에서 어물(魚物)을 머리에 이고 또는 등에 지고 이 산등성이를 오르던 이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돌계단을 내려가서 계곡 위 나무로 만든 아치형 다리를 건너 제법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탑 2기와 불상대좌 1기만 남아 옛 절터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는 낭떠러지이고 뒤로는 산이 아늑하게 에워싸고 있다. 속세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절은 작으나마 화려했을 것이다. 절 이름이 전하지 않아 지명을 따서 장항리에 있는 절이라 하여 ‘장항사’, 혹은 탑정마을에 있다고 해서 ‘탑정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확실한 이름은 알 수 없다. 현재 사적 제45호 장항리 사지로 지정되어 있다. 탑 주위에는 개망초가 그득하다. 이 풀은 망초에 ‘개’ 자를 더한 것인데, 지역에 따라서는 ‘왜풀’이라고도 한다. 그 이름을 통해서도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귀화식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라가 망할 무렵 나타났다고 해서 망할 ‘亡’ 자를 넣어 개망초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일본과의 갈등을 생각할 때 죄다 뽑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고양이가 무섭다. 개도 무섭지만 고양이는 정말 무섭다. 노려보는 그 눈도 그렇지만 소리 없이 따라오거나 지나가는 모양이 참 섬찟하다. 밤마다 부른 배를 좀 어떻게 해보려고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주변에 고양이가 없나 둘러보느라 목 운동만 열심이다. 나의 이런 행동은 사실 충분한 근거가 있다. 원래 인간은 고양잇과를 피하도록 되어 있다. 고양잇과의 대표주자는 당연히 사자다. 산모의 진통이 주로 한밤중에 시작하는 것은 사자가 먹이 활동을 하는 새벽이나 저녁 무렵을 피해 출산했던 시절의 흔적이라고 한다. 반면에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은 특히 그 얼굴에 열광한다고 한다. 코나 발바닥 등 어딘들 안 예쁠까 싶지만 말이다. 고양이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면 떠오르는 동물이 있다. 쉬이 예상할 수 있듯 사자 얼굴이다. 고양이 얼굴도 그렇지만 뭔가 잡으려고 앞발을 날렵하게 내밀거나 휘두르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자의 그것이다. 그러니 안 무서울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고양이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지구 상에 20% 이상이란다. 고양이를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부류다. 여기에 나도 끼어 있다. 아무리 친해지려 노력해도 안 된다. 안 되는 건 정말 안 되는 거다. 사자랑 친한 인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적 기억도 한몫한다. 한때 거친 세로줄로 짠 실크 벽지가 유행한 적 있다. 없는 살림에 마련한 비싼 벽지인지라 잘 마르라고 문을 활짝 열어뒀더니 언제 들어왔는지 옆집 고양이가 온 방을 휘젓고 다니며 벽지란 벽지를 다 망쳐놓은 거다. 벽지 한 올 한 올 선명했던 그 난폭함에 내 부모님은 그저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그들도 나처럼 20%에 해당하는 부류다. “할머니, 제발 고양이 좀 치워줘요!!” 그날 온 가족의 절규는 내 몸 어디엔가 공포로 남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자의 모습을 감춘 고양이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6억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심각하다. 80%의 사람들은 환영할지 모르지만 20%의 우리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이 숫자는 인간의 사랑을 더 받지 못해 안달하는 개보다 3배가 많은 숫자란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개는 진화 과정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가축화되어 왔다. 인간에게 잘 보이려고 신체는 극적으로 변화해 왔다. 귀가 밑으로 처진다거나 반대로 꼬리는 위로 말려 올라가는 것이 그 좋은 증거다. 명백한 가축화의 특징이다. 고양이는 어떨까? 오히려 귀를 빳빳이 세우고 다닌다. 마치 맹수처럼 싸우자고 덤벼들 자세다. 가축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전개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개처럼 처진 귀와 살랑대는 꼬리로 인간의 이목을 집중해야만 가축화라고 할 수는 없다지만 도도한 고양이는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다. 그나마 타협한 부분이 작아진 뇌란다. 구체적으로 공포라는 감정을 관장하는 부분이 작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나름 주인의 발목에 몸을 비비거나 얼굴을 핥는 서비스를 하는, 아니 해주는 것이다. (까칠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아주 먼 옛날,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인간들은 필요에 의해 개와 소를 가축으로 선택했다. 인간이 그들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 고양이는? 아기처럼 귀여운 얼굴을 한, 그러나 그 속에 까칠한 성깔은 숨긴 채 고양이는 스스로 인간에게 접근한 케이스다. 인간과 가축이 함께 만들어가는 역사에서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다. 고양이의 아기처럼 귀여운 외모는 사람을 기분을 좋게 만든다. 아기의 웃는 모습에 반응하지 않는 성인이 없듯이 고양이도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옥시토신을 분비하게 하는 외모적 특성을 가진다.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 큰 눈망울, 앙증맞은 코 등등. 그럼 뭐하나? 고양이랑 산책 나온 사람 여태 본 적 없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걷기 운동을 할 확률이 보통사람보다 64%나 높은데 반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오히려 9%가 낮다고 한다. 또 고양이는 먹이를 줄 때만 주인에게 주목한다. 고양이한테 잘 보이려는 주인은 이런 재미를 못 잊어 먹이를 더 자주 주다 보니 오늘날 고양이 대부분이 비만이란다. 이래저래 재미난 고양이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學費封套)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握手).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윤동주가 동경에서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 속에 수록된 5편 중의 하나로 윤동주의 마지막 시편(1942년 6월 3일작)에 해당된다. 이 시는 강처중의 주선으로 주필 정지용의 해설을 달고 1947년 1월 13일 경향신문에 발표된다. 동경으로 건너온 한달 여 기간 동안의 추억에 젖어 있는 상태(“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사랑스런 추억」)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가라앉은 어조와 의지가 돋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감각에서 발원한다. 시인은 자신이 앉아 있는 육첩방(六疊房)을 “남의 나라”라고 단정한다. 이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별 헤는 밤」)이라고 할 때 다른 나라{異國}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둘 다 시간적 단절과 공간적 격리(“어린 때 동무를/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반면 시인의 내면 풍경은 사뭇 다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다른 유학생들과 달리 그는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가 포근히 품긴 학비봉투를 받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것인데, 이런 내용을 시로 쓰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못 마땅해 한다. 그는 결코 쉽게 쓰는 시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라며 가혹하게 자신을 고양시키고 단련시킨다. 그 단련이 “들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모는 실천을 불러 온다. 그는 총이나 칼로 저항하지 않는다. 작은 빛으로 불의와 거짓(어둠)을 ‘조금’ 내몬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가장 진실하게 하는 힘이다. 그것이 “최후의 나”로 표상되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 자아가 자기 자신과 눈물과 위안으로 된 최초의 악수를 나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발단된 한일 경제 전쟁이 한창이다. 3.1 운동 100주년 광복 74주년을 맞으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화두는 무엇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모는 일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경주교육지원청은 지역의 초등 특수교육대상학생 20명을 대상으로 지난 5일부터 16일까지 경주특수교육지원센터 꿈키움 방학교실을 실시했다. <사진> 경주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실시된 꿈키움 방학교실은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에게 방학 동안 지속적인 교육 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절감 및 재능 개발이 목적이다. ‘꿈 키움’이라는 주제로 운영된 이번 방학교실은 초등학생들의 재능 개발 및 직업 탐색을 할 수 있는 체육, 요리, 놀이 음악, 소품 공예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 학생들뿐만 아니라 맞벌이 학부모들에게도 만족도가 높았다. 지난해부터 방학 중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꽃누르미를 하며 창의적이 된 것 같아요. 혼자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선생님이 고마워요” “방학 중에 재미있는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특히 저는 요리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나중에 요리사가 꼭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규리 담당교사는 “초등진로적성개발에 많은 도움이 됐고 개인의 특성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사회참여활동에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희 꽃누르미 강사는 “학생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고맙고 방학이 되면 특별히 어디 갈 곳 없는 친구들이라 지원청에서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줘 감사하다”며 “친구들에게 나눠줄 재능이 있어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권혜경 경주교육장은 “꿈키움 방학교실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학생들의 재능을 개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며 학부모의 사교육비 절감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안압지 출토유물 목간(木簡). 종이가 없던 옛날에 문서나 편지글을 쓰던 얇고 긴 나무조각. 나무쪽에 쓴 편지 그 글귀엔 낭만과 설렘이 도사리고 있다. 문학소녀였던 여학생시절 친한 친구에게 예쁜 편지지 또박또박 시를 적어 우정을 나누었고, 월남전 백마부대 참전한 큰오빠로부터 오누이 정 편지글로 다정다감하게 주고받을 적, 전 학년 1교시를 몽땅 파월장병 위문편지 쓰기로 주어지던 기억도 풋풋하다. 1970년대 천년고도 경주는 전국 학생들 수학여행지로 붐볐다. 봄, 가을 등하교 길은 시내(市內) 자리한 단체 숙박시설 여관들로 즐비했기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창밖으로 던지는 펜팔요청 쪽지 세례를 무지막지 받곤 했다. 이성의 호기심어린 사춘기시절 한 움큼의 펜팔요청 쪽지를 주워 온 반친구들은 하나씩 주소를 골라 부모님, 선생님 몰래 펜팔을 주고받는데,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면 문예부장인 나에게 편지 문장 글 써주기를 부탁했다. 여린 마음에 친구의 속내를 거절할 수 없어 대신 써주는 편지글로 나의 문학적 치기는 화들짝 번져간 것 같다. 답장편지 써주는 빌미 책상서랍 가만히 넣어주던 간식꺼리며, 무슨 큰 비밀인 양 둘이만 아는 편지글로 소곤소곤 우정을 수놓던 여학생시절,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 새어 나오는 가버린 날의 우스개 한토막이다. 편지란 단어에 담겨진 기억을 캐내면 멀어져 온 세월만큼 설레임은 삭아져 그리움 말갛게 묻어나는 추억, 그대도 나도 낡고 빛바랜 수첩만큼 희미해져 가물가물한, 미농지 떨림 같은 첫사랑의 연서(戀書) 어렴풋하기도 하리. 무엇이 그토록 영혼을 흔들어댔는지 밤 꼬박 새워 쓰고 지우기를 번복하던 편지글엔, 젊은 날의 고뇌와 고독 고스란히 베여있어 그 아픔의 깊이로 아름다웠던 청춘.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싯귀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에도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소월의 -초혼(招魂)- 싯귀처럼 끝 간 데 없이 그립고 쓸쓸해서 못다 쓴 그대와 나의 편지도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안압지 출토유물 목간 발견(2007년) 당시 신문 보도된 기사엔, 전문학자들도 목간에 새겨진 글자 해독(解讀) 뜻풀이가 어렵다고 피력했다. 그 때 불현 듯 가슴 오므라드는 영감이 스쳐서 느낌을 잉태하고, 한 편의 시를 낳게 되어 2008년 육부촌 동인시집에 시 제목 ‘목간’(木簡)을 실었다. 늘 짝사랑인 시 앞에선 작아지고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비루하고 못난 자식일수록 공들이는 부모마음처럼 나의 시에도 분신과 다름없는 고통과 열정 간절하고 치열하기에,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조심스럽게 옮겨놓는다. 시속의 화자(話者) 딸은 공부하기 위해 떨어져 있을시 첫정 맏딸이라 그렇게 애틋하고 그리웠는데, 하마 성숙한 여인 되어 펼친 꿈으로 삶의 중심 곁으로 흘러들고 있다. 목간木簡 1 천년 뻘, 캄캄하게 재워져 출토된 유물처럼 다 해독 못한 편지를 읽는다 세월 갈수록 번져오는 어머니 먹물가슴, 내가 베껴 딸아이에게 문자를 쓴다 2 안압지 뻘 속 달못의 영광을 거머쥔 채 썩지 않고 간직한 나무쪽 편지, 곰삭은 천년발효 두께에도 완전해독 어렵다는 기사를 읽다가, 자식 낳고 기르면서 부모심정 알 것 같다고 함부로 말한 내가 부끄럽고 죄스러워 가슴에 손 얹는다 진흙탕 생살 뜯겨 불어터진 나무쪽 사연, 즈믄세월 잠기도록 다 풀 수 없다는데 어머니 가없는 사랑이야...... 3 떨어져 공부하는 딸이 눈에 밟혀, 휴대폰 메시지 마음 담아 띄우면 재깍재깍 사랑표현 해독해 보내는 딸, 딸의 어머니 어머니의 딸 그 중심에 흘러가는 내가 있다 모성의 질긴 탯줄 목간에 새겨 나의 어머니께 물려받은 사랑, 다시금 딸에게 돌려주는 숨결이 미덥다
수시로 시사성 있는 SNS포스팅을 하는 농협인 김호열 씨가 이번에는 경주 화랑마을 수영장에 대한 아쉬움을 포스팅해 눈길을 모았다. 김호열 씨는 먼저 경주 화랑마을 수영장이 캠핑, 한옥민박, 수련생 및 시민들의 피서를 위해 경주시에서 만든 수영장으로 지난 7월 22일 개장해 오는 9월1일까지 휴일없이 운영한다고 소개하고 지난 주 자녀들과 함께 다녀온 후기를 올렸다. 김호열 씨에 따르면 화랑마을 수영장은 기본적으로 가성비도 좋고 장점도 많지만 몇 가지 미흡한 점을 발견했다고. 가장 먼저 물이 지나치게 차갑고 그늘막 수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았다. 많은 수영객이 들이닥치면 태부족이라 판단한 듯. 그늘막 사이의 공간도 차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미관상으로는 나쁠 것 같다는 소감도 썼다. 다만 수영장 밖에도 그늘막이 있어서 가족 단위 입장객들이나 단체 입장객을 좀 더 배려할 수 있기를 바랐다. 현황을 자세히 적고 조근조근 조언하는 김호열 씨 제안에 대해 댓글 단 김홍림 씨의 글도 재미있다. 김홍림 씨는 김호열 씨의 포스팅이 민원 넣는 방법을 제대로 안다면서 “페북에 공무원들은 밥X묵고 머한다꼬 주상절리를 이래 관리하노 컷꼬 이라머 중앙당에 민원 올린다꼬 개거품을 무디더 ㅋㅋ” 하며 “이말에 시장님이 똥골이 쪼매 나셨는지 바로 관계 공무원한테 지시했니더 케놓고는 ‘그거하고 중앙당 하고 무신 관계 있는기요?’라며 점잖게 한 말씀 하셨다”고 전했다. 짧은 포스팅에 좋은 민원도 넣고 민원에 대한 올바른 답글도 달리고 시장님의 ‘이유 있는 울화통’까지 소개했으니 정말 재미있는 포스팅이다.
법무부 경주준법지원센터(소장 박종균)는 지난 14일 보호관찰위원 경주보호관찰소 협의회 신규 위촉 보호관찰위원 16명을 대상으로 기본교육을 실시했다. 이번 교육은 보호관찰 법령, 보호관찰청소년 지도·감독 기법, 사회봉사 집행감독 방법 등 범죄예방 봉사활동에 필요한 내용 위주로 진행됐다. 교육을 이수한 보호관찰위원들은 보호관찰청소년 1대1멘토링 및 경제구호, 취업알선, 주거환경 개선사업, 사회봉사 협력기관 감독, 수강명령 집행 등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지역사회 내 범죄예방을 위한 보호관찰위원의 역할이 기대된다. 한편 보호관찰위원 경주보호관찰소 협의회는 지난 4월 10일 새롭게 출범한 범죄예방 민간자원 봉사 조직으로 초대회장으로 추대 받은 차재섭(58) 위원을 중심으로 약 30명의 보호관찰위원이 범죄예방을 위한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친절해, 칭찬해, 우리 모두 실천해, 친절칭찬 함께해, 내가 먼저 실천해!” 동요 산토끼 노래에 맞춰 친절칭찬 경주만들기 개사곡으로 어르신들의 박수소리는 활기차다. <사진> 두 팔 올려 외치는 “칭찬을 일상으로 Everyday 칭찬day~~~~”는 더 우렁찼다. 경주문화원(원장 김윤근)은 지난 12일 경주시자원봉사센터 친절한 경자씨 칭찬친절강사를 초청해 노인사회참여활동 80명을 대상으로 문화원 강당에서 친절칭찬 실천운동 특강을 실시했다. 이번 특강은 상호간 칭찬하고 친절한 노인되기 실천 운동을 위한 ‘칭찬물결 든든캠페인’ 릴레이의 첫번째 주자인 경주문화원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특강은 ▷친절과 칭찬은 어떤 효과가 있으며 무엇 때문에 실천해야하는가? ▷친절과 칭찬 활동을 무엇 때문에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친절을 얼마나 베풀었는지, 칭찬을 몇 번 들었는가? ▷칭찬을 얼마나 했는가?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이날 강사는 “칭찬과 친절은 긍정정인 사고로 긍정적인 사람을 만들며 친절과 칭찬을 하게 되면 상대방을 인정하게 돼 열린마음이 생겨 좋은 관계를 만들어 준다”면서 “눈을 뜨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순간순간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을 칭찬하고 잠들면서 자신에게 감사하라”고 말했다. 경주문화원 신정욱 담당자는 “서로 배려하고 칭찬하는 마음 갖기 실천을 우리 어르신들부터 실시하겠다”면서 “지속적이고 다양한 칭찬·친절 교육을 실시해 어르신들이 진정으로 공감하는 칭찬·친절실천운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했다.
120다산콜센터는 문자 그대로 국번없이 120번으로 전화 거는 공공서비스 문의 전화다. 교통정보, 수도요금, 지방세, 민원 신고, 정책문의 등 서울시 및 25개 자치구 행정에 대한 모든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한다. 우리나라 근대 과학사에서 가장 다재다능했던 정약용 선생의 호를 딴 다산 콜센터는 무엇이건 물어보는 대로 답해주는 척척박사다. 다산콜센터가 발족된 것은 2007년 9월, 본격적인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2008년 6월로 청각장애인 수어서비스가 시초다. 2008년 콜재단 IT서비스 관리시스템을 장착한 후 2009년 휴대폰 문자서비스 상담을 시작했고 2010년에는 외국어 상담 서비스, 2011년 보건소 상담서비스, 2012년에 전방위 SNS상담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다산콜센터라고 해서 무턱대고 아무것이나 묻는 대로 답하지는 않는다. 서울시·구 행정과 무관한 생활정보 문의는 제한된다. 다산콜센터 근무자는 이사장부터 일반직까지 420명이며 연간 210억 정도의 예산이 집행되므로 기초자치단체가 이런 콜센터를 만드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IT산업의 발달은 지자체의 통합서비스 시스템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 1일자 본지 이재욱 기자의 조사에 따르면 경주는 세계인이 찾는 국제관광도시이지만 언어소통이 가장 불편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산콜센터의 초기 서비스가 외국인 응대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유의한다면 우선은 외국어 서비스라도 시작하는 것이 국제관광도시 경주다운 발상 아닐까? 신경주 역에 내리는 외국인들이 전화나 SNS로 외국어 안내 시스템을 제공하는 단일 번호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반갑고 안심될까? -이 기사는 출향인 이채관(수원대교수/59)씨의 제보와 본지의 취재로 작성되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디어 제보를 환영합니다.
한 공간에서 예술작품과 식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 지역에 있어 지역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재욱(34) 대표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데스틸’이 바로 그곳. 이 대표는 “가볍게 식사를 하면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지역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보통 전시회장이나 갤러리 같은 경우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가볍게 식사를 하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문화예술이라는 장르가 조금 더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습니다”고 말했다. #요리와는 전혀 관계없었던 이 대표의 이력 이 대표의 이력은 참 독특하다. 국민예술대학 입체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몇 회의 개인전시와 팀 기획전시를 가졌다. 이 후 서울의 밀알미술관, 갤러리조선에서 큐레이터로 활동을 하며 기획한 전시회만 20여개. 소위 잘나가던 기획자였던 이 대표는 아내의 직장 발령과 동시에 고향인 경주로 돌아오게 됐다. “아내의 직장이 포항으로 발령 나면서 함께 고향인 경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잘 살릴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하다 시작하게 된 것이 지금의 복합문화공간 데스틸을 운영하는 것이었어요” 미술을 전공해 예술문화와 관련은 있지만 요리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던 이 대표. 복합문화공간, 식사와 문화예술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목표였던 이 대표였기에 요리를 배우는데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열심히 배웠습니다.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대충 배워서 시작할 수도 없었기에 바닥부터 열심히 배웠습니다. 처음 데스틸의 운영을 시작하고 손님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금은 어느 정도 음식의 맛과 방향이 잡혀져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해주십니다” #젊은 예술가, 지역주민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공간 일반적인 갤러리나 전시회와 데스틸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떠오르는 신예작가의 작품을 지역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 데스틸은 이 대표의 신인작가 및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에게 홍보의 기회,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그들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과 무엇보다 문화예술이라는 분야를 지역에서 쉽게 접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져서 운영된다. 그러다보니 데스틸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는 대부분 젊은 작가들의 작품위주로 진행된다. “데스틸에서 전시되고 있는 모든 작품들은 작가와 저, 1대1 미팅을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작가선정의 기준은 40세 미만이어야 하며, 작품은 참신하고 작가의 소신이 담겨있는 작품을 위주로 선정합니다” “서울과 수도권은 늘 문화와 예술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지만 지역에서는 쉽지가 않죠.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기란 더욱 쉽지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40세 미만의 작가들에겐 홍보의 기회를 주고, 지역주민들에겐 일상에서 미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현재 전시되고 작품은 홍리원 작가의 작품으로 홍 작가는 홍익대 회화를 전공한 떠오르는 작가입니다. 홍 작가의 작품은 파격적이면서도 정제되고 색표현이 아름다운 작품들입니다” #변화를 선도한다 이 대표의 큰 목표는 지역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아 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을 걸고 데스틸을 운영한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방식인 ‘식사를 하면서 예술작품을 관람한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식사를 할 수 있으면서, 예술작품도 관람하고, 거기에다 작가와 대화의 기회까지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 데스틸을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이 대표는 그동안 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는 전시회를 위주로 운영하고 있지만 조금씩 변화를 줄 예정입니다. 이곳에 작가를 직접 초빙해 주민들과 토크콘서트를 진행하거나 미술을 통한 교육의 장소 등으로 활용해 문화예술이란 것이 마냥 먼 것이 아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지역주민들의 마음의 변화를 이끌고 싶습니다”
다방면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경주인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연극·영화·탤런트 세계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번 호에는 연예계에서 별들로 불리운 경주 사람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단연 이현세 화백이다. 이 화백은 세상이 다 아는 만화가이고 세종대 애니메이션 학과 교수이지만 그가 만든 작품이 수없이 영화와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수많은 광고에 모델로 참여했기에 연예인이라 칭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이 화백의 만화는 대표적으로 ‘공포의 외인구단’ ‘폴리스’ ‘지옥의 링’ ‘며느리 밥꽃 풀에 대한 보고서’ '테러리스트(원작 카론의 새벽)' ‘아마겟돈(애니메이션)’ ‘2009외인구단’ 등 고전과도 같은 작품이 있고 2010년 이후 작품으로는 ‘두목’, 골프 드라마 ‘버디’도 영화 또는 드라마로 제작됐다. 이 화백 만화는 웅대한 스케일과 판타지적 요소로 인해 제작비 소요가 많아 영화화 되기 힘들다는 우려 속에서도 이 화백의 또 다른 인생작 ‘남벌’ ‘천국의 신화’ 등에 꾸준히 제작설이 잇따르고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아마겟돈’을 직접 감독한 이 화백은 다수의 작품을 직접 감독하거나 연출하지는 않았지만 만화 자체가 완전한 영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때 경주출신 감독과 연출의 첫장을 장식하기에 걸림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로 천만관객 영화의 장을 연 강우석 감독 역시 경주가 낳은 불세출의 영화인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유명한 ‘투캅스 시리즈’와 ‘마누라 죽이기’ ‘공공의 적 시리즈’는 물론 최초의 천만관객 영화인 ‘실미도’를 만든 장본인이다. 1995년 이후 강우석 프로덕션에서 시네마서비스로 이름을 바꾼 강우석 사단은 취화선, 퀴즈왕, 김씨 표류기, 한반도, 신기전, 주유소습격사건 2, 등의 영화를 제작했고 2012 웹툰을 영화한 한 ‘전설의 주먹’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외에 강 감독의 후원으로 제작되거나 성공한 영화들도 다수인데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는 대표적인 예이다. TV 연출 쪽에서는 엄기백 PD와 박수동PD가 대표적이다. 엄기백PD는 방송계의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방송가의 이슈메이커로 활약했다. 사극 ‘조광조’에 언체인더 멜로디를 썼고 30% 시청률을 넘기는 드라마 ‘욕망의 바다’를 연출하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회사의 종용으로 드라마 ‘무당’을 연출, 종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으면서 방송에서 도중하차 한 이력도 있다. KBS수원 드라마 센터장과 경주문화재단 사무처장 겸 예술의 전당 관장으로 활동하다 지금은 연극제작과 광주시립극단 객원연출가와 ㈜임창정 고문으로 활동중이다. 엄기백 PD의 아들 엄상용씨 역시 영화감독으로 입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박수동PD는 그가 연출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하나만으로 그의 방송경력을 장식하고도 남는다. 1990년 9월 9일 첫 회 방송 이래 17년 동안 무려 852부작 방송한 KBS의 최장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만들면서 원로 배우들이 노년을 마감했는가 하면 고현정 같은 배우가 입문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최지우 출연작 유정, 6·25이후 남한 귀착민의 삶을 그린 ‘살다보면’ 등을 연출했다. 박수동 PD의 아들인 초신성의 박건일 씨는 가수 겸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시트콤의 대명사 김병욱 PD, 경주 문화재 알린 송창수 PD, 그것만이 내 세상 최성현 감독, 연극계의 손기호 감독은 현재 진행형, 또 다른 천년 삼국유사의 주인공들!! 우리나라 ‘시트콤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도 있다. 바로 김병욱 PD다. ‘LA아리랑’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 화제작들을 꾸준히 만들었고 2006년에 ‘거침없이 하이킥’, 2009년 지붕뚫고 하이킥<사진>이 국민적인 열광을 얻으며 대한민국을 시트콤 천국으로 이끌었다. 송혜교, 정일우, 서민정, 정준하, 황정음, 진지희, 서신애, 신세경, 유인나, 쥴리엔 강, 최다니엘, 윤시윤, 이기광, 이광수 등이 주연급으로 성장했고 이순재, 정보석, 김자옥, 오현경, 박영규 씨 등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제작을 맡은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도 인기를 얻어 안내상, 윤유선, 안계상, 윤지석 등을 스타덤에 올렸다. 2009년 MBC에서 제작한 이현세 원작 공포의 외인구단을 각색한 ‘2009 외인구단’ 연출을 맡은 송창수 PD도 경주 출신 감독이다. 그는 특히 2006년 정재영 출연 ‘마이캡틴 김대출’의 대본을 쓰고 감독까지 한 영화감독 출신이다. 안타깝게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는 경주 문화재 발굴을 중심으로 경주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영화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송창수 감독은 제작자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VR영화인 ‘오랜지캔들’을 제작, 한국신문방송인클럽과 한국SNS기자연합회에서 주관한 ‘2017자랑스런한국인대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현세 화백의 골프 만화 ‘버디버디’와 무협수사극 ‘창천수호위’의 스토리 작가이자 그래픽 노블 ‘아이리스’의 작가인 최성현 작가는 2014년 개봉한 화제작 ‘역린’의 원작자이자 각본까지 맡아 이 영화를 380만 관객으로 이끄는 저력을 발휘했다. 영화적 재능을 겸비한 최승현 작가는 마침내 2018년 자신이 대본과 감독까지 맡은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영화계의 새로운 히어로로 떠올랐다. 이병헌, 윤여정, 박정민, 한지민, 문숙 등 배우들이 열연한 이 영화 역시 3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동시 개봉된 블록버스트들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이 영화는 한국 영화에서 소화하기 힘들었던 음악 장르를 감동적으로 표현해낸 수작이다. 연극계의 손기호 감독은 대학로에서 정평 난 제작자이자 감독이다. 극단 이루의 대표이기도 한 김기호 감독은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감포 출신 덕이 분이 열수’ 등 연극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배우를 거쳐 무대감독, 제작PD를 경험한 후 ‘부부 쿨하게 살기’ ‘사람과 사람’ ‘내 마음의 옥탑방’ ‘다시 서는 남자 이야기’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사랑을 묻다’ 등 작품이 손기호 대표가 쓰고 연출한 작품들이다. 이들 모두는 경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경주가 고향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경주라는 소재를 영화나 드라마에 넣기 위해 무던히도 기회를 노리는 연예인들이다. 실제로 이들의 작품 속에 등장한 경주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이현세 화백의 만화 소재는 상당부분 경주와 신라의 왕성을 배경으로 삼았고 강우석 감독은 경주에 영화센터를 만들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엄기백 감독은 숫제 경주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년간 머물기도 했다. 송창수 감독은 경주 이야기로 자신의 영화인생을 열었고 최성현 감독의 스토리 ‘버디’도 경주에서 출발하는 만화다. 손기호 감독의 ‘눈 먼 아비~’와 ‘감포출신 덕이~’ 역시 내놓고 경주를 배경으로 한 연극이다. 앞으로도 이들은 경주를 영상에 담기 위한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창작열기를 경주가 녹일 수 있게 조금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대왕의 꿈, 참 좋은 시절 등의 작품들이 경주를 얼마나 부양했는지는 굳이 따질 필요조차 없다. 스토리 제작에서 영화를 위한 세트장 설치나 제작비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한 예로 경주의 살아있는 신화 이현세 화백을 활용하기 위한 경주시의 노력도 다시 불 붙여 볼 만하다. 현대적 콘텐츠의 힘이야말로 또 더 기막힌 전설과 신화를 만들 또 다른 ‘삼국유사’가 될 것이다.
지난 7월과 8월 사이 경주 출신 김수환 씨의 아들인 종이접기 꿈나무 김현빈(양산 물금중 2년) 군이 양산과 서울 사이를 두 번이나 다녀갔다. 7월 20일에는 종이접기 카페모임을 위해서 지난 8월 17일에는 종이접기 경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종이접기가 소수자들의 은밀한(?) 취미활동이고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은 기술을 공유하려면 전국단위의 카페모임에 나가야만 하는 특별한 사정 때문이다. 김현빈 군이 사는 양산은 물론 근처인 울산과 부산을 통 털어도 이 취미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 7월 양재동에서 열린 제2회 네이버 종이접기 카페 정기모임에는 어린이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종이접기 동호인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이들은 서로 자신이 가진 종이접기 기술을 선보이며 6시간 가깝게 모임을 가진 후 얼굴 가득 만족감을 갖고 헤어졌다. 지난 8월 17일, 18일 양일간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제21회 코리아 종이접기 응모전에서 선발된 종이접기 작품들이 전시됐다. 현빈 군의 작품도 당당히 입선, 작품이 전시되는 영광을 누렸다. 종이접기 동호인 수가 적은 것에 비해 실제 종이접기를 취미로 가진 사람들의 실력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일곱 살 때 이모가 선물해준 ‘오리로보’라는 종이접기 교본을 접하며 처음 종이접기 세계로 빠져든 현빈 군은 이번 입선을 통해 상위 레벨을 자랑하는 실력파로 등극했다. 호랑이, 사슴벌레, 드레곤, 아이언맨···, 현빈 군이 만드는 종이접기는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다. 누구나 접을 수 있는 종이비행기는 종이접기 축에도 들지 못하고 개구리나 학쯤이 종이접기 레벨로 치면 기본 중에서도 가장 바닥수준. 종이접기 특성상 일체 칼이나 가위를 쓰지 않고 오로지 한 장의 종이로만 접어 만들다 보니 설계도를 가지고 있어도 일반인들은 시작조차 못 할 만큼 어렵다. 보통 50x50cm의 넓은 종이가 하나씩 형체를 드러내는 모습은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어려운 종이접기를 현빈군은 설계도도 없이 머릿속으로 모양을 잡고 찬찬히 접어낸다. 동호인이 적고 만들기는 어려워도 만들어진 작품을 보면 누구나 신기하게 여기고 감탄한다. 현빈 군이 제작하고 입선한 작품은 ‘사그라도 드래곤’이라는 작품으로 역시 한 장으로 접은 용이다. 한 장으로 접은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용의 모든 부분들이 디테일하다. “종이접기를 하고 있으면 아무런 잡념이 일어나지 않아요. 이렇게 몰두 하다 보면 어지간한 스트레스는 저도 모르게 풀어집니다” 이런 작품 하나를 접으려면 적어도 3~4시간은 매달려야 할 만큼 작업과정이 만만치 않지만 조금씩 목표한 대상을 향해 완성되어가는 종이모양을 보면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만큼 빨리 지나버린다고. 그만큼 몰입도가 높은 취미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공들여 만든 작품이 수십 점, 자잘한 작품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하루 30분쯤 종이접기를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학교공부는 현빈 군으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스트레스다. 다행히 부모님 모두 교사로 활동하며 현빈 군이 무엇을 하건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 주는 편이라 종이접기 세상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고. 아직 특별한 꿈을 꾸기보다는 날마다 즐겁게 뛰놀고 공부하는 가운데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현빈 군, 과묵하고 수줍어하는 인상과 달리 종이를 잡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손길은 이미 종이접기 분야의 당당한 프로다. 몇 년 전 미국 MIT연구진이 알약 캡슐에 종이접기 원리로 접어 넣은 최첨단 의료용 로봇을 만들었다. 역시 종이접기의 원리로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수술용 로봇집계도 발명됐다. 최소한으로 접어 최대로 펼쳐야 하는 우주선 태양 전지판과 초대형 우주 햇빛가리개도 종이접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설계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크기로 변신하는 종이접기 원리를 첨단과학이 배운 것이다. 좀 더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현빈군이 설계한 종이접기가 우주선이나 로봇으로 거듭나 세상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경주시지회(지회장 김철성)는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경북남부보훈지청 민원실에서 독도사랑 사진전을 개최했다. 이번 사진전은 특수임무유공자회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 4월부터 KTX신경주역 광장, 동국대 경주병원 로비, 감포 나정해수욕장 등 광장이나 공공장소에서 독도 사진 30~100여점 전시됐다. 또한 향후 기관단체 등에서 사진전 요청이나 개최 협조를 통해 연중 이어갈 예정이다. 김유문 경북남부보훈지청장은 “전시회 작품들은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이 ‘독도지킴이 환경정화 활동’을 펼치면서 찍은 사진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독도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고화질의 생생한 사진으로 담았다”면서 “독도가 시민이나 학생들이 친근하게 접하고 가까이에 있는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뜻깊은 행사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밝혔다.
산내면 일부리 일대에 아름다운 꽃길이 조성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산내면 곤달비 창조적마을만들기’ 추진위원회 주민들이 솔선수범해 산내면으로부터 받은 꽃씨를 심고 제초작업을 하는 등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 산내 곤달비 창조적마을은 2017년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일원에 친환경테마거리, 쌈지공원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올 30일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이 사업으로 완성된 친환경테마거리가 허전하다고 생각한 추진위 주민들은 산내면에서 코스모스, 백일홍 등의 꽃씨를 받아 심었고, 아름다운 꽃길을 생각하며 바쁜 일상을 쪼개 하루 5~70여명이 참여해 제초작업 등을 펼쳤다. 덕분에 친환경테마거리가 위치한 제방 일대에는 형형색색의 꽃이 만개해 꽃길이 조성됐고 지나가는 주민과 관광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박순복 부위원장은 “무엇보다 나이가 많은 마을주민, 젊은 주민, 너나 할 것 없이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름다운 마을만들기에 앞장서 많은 고생을 했다”면서 “각종 꽃들이 만개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산내면에 많은 분들이 찾아 가을을 맞이하는 풍경을 만끽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지나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니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넓게 펼쳐진 푸른 논이 어우러진 경치 또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꽃향기 가득한 춘심이가 행복한 미소를 띠며 반갑게 맞이한다. JJ 갤러리(관장 김정자)에서는 ‘제1회 경주-하다 展’을 다음 달 8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화단에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지역작가 7인의 썸머 기획전으로 그들의 최신작 20여점을 한자리에 전시한다는 데서 벌써 주목을 받고 있다. #김서한 작가 강렬하고 화려한 단청의 색상과 정적인 먹선이 캔버스 위에서 조화를 이룬다. 한지, 먹, 아크릴 등 동·서양의 재료를 사용해 지역의 곳곳을 담아내는 김서한 작가. 대학 시절 사찰의 단청, 불화, 벽화 등 불교미술 관련 아르바이트를 해왔던 작가는 그 시절 값진 경험을 끌어내 현대적 시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김정자 작가 ‘공간접기’ 기법으로 개념화된 이미지를 다면화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김정자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다차원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화려한 꽃과 청명한 하늘 등 자연물을 통해 무한히 확장되는 대상을 바라보며 다양한 시각으로 공간을 표현하며 해석, 지난 6월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에 이어 오는 9월 예정된 뉴욕 개인전에서 국내외 관람객들과의 소통에 나서고 있다. #송해용 작가 꽃을 매개로 인간의 사랑과 열정, 그리고 송해용 작가의 심성이 화폭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와 우연성, 절제된 구성이 만들어낸 필연적 화면구성이 유난히 돋보인다. ‘꽃의 화가’라 불리며 영남권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송 작가. 작품성, 상품성,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작가의 달맞이꽃과 함께 옛 시절 추억을 되뇌어 보는 것은 어떨지. #신수원 작가 신수원 작가는 유년 시절 경주오릉 산골마을에서 자연과 함께 보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는 옛 시절 풍광과 낯선 제주도, 그리고 최근 프랑스 유학하는 동안 여행하며 얻은 감성 등을 결합해, 몽환적인 구성과 다양한 색채로 세상에 대한 희망과 환희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승민 작가 아프리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행복의 감성을 한국적 색채와 선, 구성으로 화폭에 옮긴 오승민 작가의 작품이다. 미술대학 설립을 위한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아프리카 스와질란드 현지 생활을 하게 된 오 작가는 가진 자나 없는 자나 항상 여유로운 모습을 짓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해맑고 순수한 모습을 재구성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그곳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오랫동안 기억하고자 한다. #이철진 작가 현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밝고 경쾌한 이미지인 ‘춘심이’로 풀어내는 이철진 작가. 그는 작품 춘심이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이 당신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누군가의 잠재된 건강한 내면을 끌어 올린다. #최지훈 작가 캔버스를 박차고 나올듯한 생동감 넘치는 인물화가 관람객들의 긴장감을 자극한다. 동경의 대상인 서양의 유명 화가들을 캔버스에 담는 최지훈 작가의 작품이다. 그의 인물화는 붓이 아닌 에어브러쉬로 완성된다. 에어브러쉬로 뿜어져 나온 물감의 고운 입자가 작가의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를 통해 사진과 같은 섬세한 작품으로 표현, 마지막 강렬한 붓 터치는 그의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한다. 갤러리를 찾은 김미희(50대, 황성동) 씨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작가만의 기법과 색채로 표현된 다양한 작품들로 지루할 틈이 없는 전시였다”면서 만족감을 내비쳤다. 김정자 관장은 “이번 전시는 진취적인 마인드로 경주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교류 장”이라면서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경주 작가의 다채롭고 수준 높은 작품을 소개하고, 지역주민에게는 문화생활 향상에 보탬이 되고자 앞으로도 다양한 활동과 기획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한편, 다음 전시는 9월 10일부터 10월 13일까지 신수원 작가의 초대개인전이 진행될 예정이다. 월요일 휴관. 전시문의 010-2533-5340.
이번호부터 모두 14편에 걸쳐 향가의 새로운 해석법을 내놓은 김영회 선생으로부터 향가를 해석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향가학계에서 처음으로 ‘향가를 만드는 방법’을 본지 독점으로 공개한다. -편집자주 1.보언(報言)의 발견 양주동 선생의 묘소에서 고통을 하소연하다 문득 스파크 하나가 튀어 올랐다. 왜 향가 제작법을 찾으려 하는가. 47년 전부터 이를 찾아다니던 필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묻던 말이었다. 그러면 나는 말했다. ‘문화의 시작점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가 향가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2년 서울 광화문통에 있던 경희궁 터에서였다. 그 곳에 있던 학교에서 고교 생활을 했었고, 그 때 향가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 날은 전율이었으나 제작법을 묻는 필자에게 웃음 외에는 답이 주어지지 않았다. 필자는 제작법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그 날의 작은 결심 이래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필자는 우리민족으로는 향가를 최초로 해독해 내신 양주동 박사님의 묘소를 찾았다. 원왕생가라는 향가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 원왕생가는 모두 85자의 한자로 되어 있다. 그 날까지도 향가를 구성하는 글자들은 잘 짜여진 암호문처럼 서로가 서로를 단단히 결박하고 있어서 어떤 예리한 나이프로도 베어지지 않았고, 어느 날카로운 송곳으로도 뚫리지 않고 있었다. 묘 앞에 앉아 지하의 양주동 박사님께 암호와도 같은 향가 문자 해독의 고통을 하소연하던 그 때였다. 영감 하나가 스파크처럼 튀어 올랐다. 혹시 원왕생가 속에 있는 ‘향언운 보언야(鄕言云 報言也, 우리말로 보언이라 한다)’라는 구절이 바로 그 앞 ‘질(叱)’이라는 글자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바로 돌아와 자료를 펼쳐놓고 확인에 들어갔다. ‘질(叱)’이라는 글자는 ‘꾸짖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신라 향가 979자 중 37번이나 나오는 핵심 글자다. 향가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나를 주의 깊게 살핀 것이다. 그 동안 수 없이 찾아왔던 영감 대부분은 필자를 배신하고 떠나갔으나, 그 날 만큼은 아니었다. 그 글자는 향가를 만들던 작자가 연출하던 이들에게 ‘꾸짖는 소리를 내라’고 지시하던 말임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질(叱)의 쓰임을 알게 됨으로써 그 주위 글자들의 쓰임 역시 알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다른 향가문자들의 작동 원리까지 알 수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향가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어 나갔다. 마침내 길을 나선지 40여 년 만에 천년이 넘도록 잃어버리고 지냈던 향가의 문자 체계를 발견한 것이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 나와 향가만의 문답이 진행되었다. 향가의 비밀이 드러나던 그 때, 필자는 샹폴레옹이라는 프랑스인이 이집트 그림문자 체계를 발견해 낸 운명의 시각을 떠올렸다. “1822년 9월 14일 정오 쯤, 샹폴레옹은 자기 집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달려, 형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가 소리쳤다. “발견했어!” 그는 몇 마디를 던지고는 기절해버렸다. 그의 형은 그가 죽은 줄 알았다.(문자를 향한 열정, 레슬리 엣킨스, 로이 엣킨스 저) 향가로 들어 갈 수 있는 틈바구니 하나를 발견하고, 이빨 빠진 나이프로 주변을 파헤쳐 입구로 만든 다음 깜깜한 동굴 속으로 조심조심 기어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우리가 이름으로 들어 알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토함산 자락에서 달을 보며 흘리던 처용의 눈물, 남녀교접에 굶주린 수로부인과 두 남자의 삼각관계, 나이 어린 하인들에게 섹스기법을 가르치던 선화공주의 평화를 향한 임무에 대한 이야기들도 먼지 쌓인 궤짝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거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원효대사님의 호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향언운 보언야(鄕言云 報言也)’라는 글자를 원왕생가 속에 무심결에 써두었던 그 분의 친절이 뜻밖에도 향가 속에 보언(報言)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단서가 되었고 이를 실마리로 하여 마침내 향가의 제작법을 찾아낸 것이다. 천금과도 같이 소중한 17자, 국보 이상의 의미를 가진 그 글자들은 다음과 같다. 惱 [叱古音 (鄕言云 報言也) 多可 攴] 白 遣賜 立 뇌 [질고음 (향언운 보언야) 다극 복] 백 견사 립 번뇌할 때는 밝은 불법을 보내주리.
(재)경주문화재단은 경주예술의전당 대표 레퍼토리사업 ‘2시의 콘서트’의 2019년 세 번째 시리즈로 ‘몹쓸춤판2’를 9월 4일 화랑홀에서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서는 차세대 스타 무용가들이 모여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신명 나는 춤 한판을 벌일 예정이다. ‘몹쓸춤판2’는 ‘만들어진 것이 몹시 쓸 만한 춤판’이라는 의미로 김설진, 허창열과 ‘시나브로 가슴에’ 팀이 네 개의 무대를 선보인다. M-net ‘댄싱9’ 시즌 2에서 우승으로 화제가 되었던 예술감독 김설진의 첫 번째 무대를 시작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이수자인 허창열이 문둥북춤을 통해 한이 담긴 춤사위를 펼친다. 이어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과 도전적인 시도로 춤 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을 받은 ‘시나브로 가슴에’ 팀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유희적으로 풀어낸다. 마지막 무대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출연진이 관객들과 함께 프리스타일의 춤을 선보인다. 티켓은 5000원이며 경주예술의전당, 티켓링크, 네이버에서 예매할 수 있으며, 카카오플러스친구 쿠폰 20% 할인과 2019년 ‘2시의 콘서트’ 티켓 소지자에게 제공되는 마니아 20% 할인도 준비돼 있다. 자세한 정보는 경주예술의전당 홈페이지와 문의 전화(1588-4925)를 통해 확인 가능하며 문화 소외계층 초청 관련 문의는 (재) 경주문화재단 공연사업팀(054-744-4634)으로 하면 된다.
송담 박종현 선생의 문하생들 전시 ‘2019 담묵회전’이 오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서라벌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이자 (사)한국서예협회 월성지부장, 무명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종현 선생은 지역의 서예인으로 활발한 작품활동과 문하생들을 이끌어 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경주시 자원봉사센터 서예취미반, 안강 고명서실, 송담 갤러리 등에서 박종현 선생에게 사사하고 있는 수강생 중 20명이 참여해 73점의 서예, 문인화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박종현 선생은 “비록 서툴고 부족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서로 격려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우리 민족 예술인 서예를 일반인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예의 활성화 및 저변 확대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전시 오프닝은 9월 2일 오후 6시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진행된다. 문의 010-5043-1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