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 출토유물 목간(木簡). 종이가 없던 옛날에 문서나 편지글을 쓰던 얇고 긴 나무조각. 나무쪽에 쓴 편지 그 글귀엔 낭만과 설렘이 도사리고 있다. 문학소녀였던 여학생시절 친한 친구에게 예쁜 편지지 또박또박 시를 적어 우정을 나누었고, 월남전 백마부대 참전한 큰오빠로부터 오누이 정 편지글로 다정다감하게 주고받을 적, 전 학년 1교시를 몽땅 파월장병 위문편지 쓰기로 주어지던 기억도 풋풋하다. 1970년대 천년고도 경주는 전국 학생들 수학여행지로 붐볐다. 봄, 가을 등하교 길은 시내(市內) 자리한 단체 숙박시설 여관들로 즐비했기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창밖으로 던지는 펜팔요청 쪽지 세례를 무지막지 받곤 했다. 이성의 호기심어린 사춘기시절 한 움큼의 펜팔요청 쪽지를 주워 온 반친구들은 하나씩 주소를 골라 부모님, 선생님 몰래 펜팔을 주고받는데,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면 문예부장인 나에게 편지 문장 글 써주기를 부탁했다. 여린 마음에 친구의 속내를 거절할 수 없어 대신 써주는 편지글로 나의 문학적 치기는 화들짝 번져간 것 같다. 답장편지 써주는 빌미 책상서랍 가만히 넣어주던 간식꺼리며, 무슨 큰 비밀인 양 둘이만 아는 편지글로 소곤소곤 우정을 수놓던 여학생시절, 지금 생각해도 피식 웃음 새어 나오는 가버린 날의 우스개 한토막이다. 편지란 단어에 담겨진 기억을 캐내면 멀어져 온 세월만큼 설레임은 삭아져 그리움 말갛게 묻어나는 추억, 그대도 나도 낡고 빛바랜 수첩만큼 희미해져 가물가물한, 미농지 떨림 같은 첫사랑의 연서(戀書) 어렴풋하기도 하리. 무엇이 그토록 영혼을 흔들어댔는지 밤 꼬박 새워 쓰고 지우기를 번복하던 편지글엔, 젊은 날의 고뇌와 고독 고스란히 베여있어 그 아픔의 깊이로 아름다웠던 청춘.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싯귀절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에도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저하지 못하였구나> 소월의 -초혼(招魂)- 싯귀처럼 끝 간 데 없이 그립고 쓸쓸해서 못다 쓴 그대와 나의 편지도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안압지 출토유물 목간 발견(2007년) 당시 신문 보도된 기사엔, 전문학자들도 목간에 새겨진 글자 해독(解讀) 뜻풀이가 어렵다고 피력했다. 그 때 불현 듯 가슴 오므라드는 영감이 스쳐서 느낌을 잉태하고, 한 편의 시를 낳게 되어 2008년 육부촌 동인시집에 시 제목 ‘목간’(木簡)을 실었다. 늘 짝사랑인 시 앞에선 작아지고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비루하고 못난 자식일수록 공들이는 부모마음처럼 나의 시에도 분신과 다름없는 고통과 열정 간절하고 치열하기에,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조심스럽게 옮겨놓는다. 시속의 화자(話者) 딸은 공부하기 위해 떨어져 있을시 첫정 맏딸이라 그렇게 애틋하고 그리웠는데, 하마 성숙한 여인 되어 펼친 꿈으로 삶의 중심 곁으로 흘러들고 있다.목간木簡1천년 뻘, 캄캄하게 재워져 출토된 유물처럼 다 해독 못한 편지를 읽는다세월 갈수록 번져오는 어머니 먹물가슴, 내가 베껴 딸아이에게 문자를 쓴다2안압지 뻘 속 달못의 영광을 거머쥔 채 썩지 않고 간직한 나무쪽 편지, 곰삭은 천년발효 두께에도 완전해독 어렵다는 기사를 읽다가, 자식 낳고 기르면서 부모심정 알 것 같다고 함부로 말한 내가 부끄럽고 죄스러워 가슴에 손 얹는다진흙탕 생살 뜯겨 불어터진 나무쪽 사연, 즈믄세월 잠기도록 다 풀 수 없다는데 어머니 가없는 사랑이야...... 3떨어져 공부하는 딸이 눈에 밟혀, 휴대폰 메시지 마음 담아 띄우면 재깍재깍 사랑표현 해독해 보내는 딸,딸의 어머니어머니의 딸그 중심에 흘러가는 내가 있다모성의 질긴 탯줄 목간에 새겨 나의 어머니께 물려받은 사랑, 다시금 딸에게 돌려주는 숨결이 미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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