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한 줄 시(詩)를 적어볼까.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보내주신 학비봉투(學費封套)를 받아대학 노-트를 끼고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나는 무얼 바라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握手).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윤동주가 동경에서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 속에 수록된 5편 중의 하나로 윤동주의 마지막 시편(1942년 6월 3일작)에 해당된다. 이 시는 강처중의 주선으로 주필 정지용의 해설을 달고 1947년 1월 13일 경향신문에 발표된다. 동경으로 건너온 한달 여 기간 동안의 추억에 젖어 있는 상태(“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사랑스런 추억」)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가라앉은 어조와 의지가 돋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감각에서 발원한다. 시인은 자신이 앉아 있는 육첩방(六疊房)을 “남의 나라”라고 단정한다. 이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별 헤는 밤」)이라고 할 때 다른 나라{異國}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둘 다 시간적 단절과 공간적 격리(“어린 때 동무를/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한 반면 시인의 내면 풍경은 사뭇 다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다른 유학생들과 달리 그는 부모님의 땀내와 사랑내가 포근히 품긴 학비봉투를 받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것인데, 이런 내용을 시로 쓰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못 마땅해 한다. 그는 결코 쉽게 쓰는 시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라며 가혹하게 자신을 고양시키고 단련시킨다. 그 단련이 “들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모는 실천을 불러 온다. 그는 총이나 칼로 저항하지 않는다. 작은 빛으로 불의와 거짓(어둠)을 ‘조금’ 내몬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을 가장 진실하게 하는 힘이다. 그것이 “최후의 나”로 표상되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내고, 그 자아가 자기 자신과 눈물과 위안으로 된 최초의 악수를 나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서 발단된 한일 경제 전쟁이 한창이다. 3.1 운동 100주년 광복 74주년을 맞으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화두는 무엇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모는 일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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