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시인의 `시가 있는 세상`-81] 옮겨 앉지 않는 새 이 탄 우리 여름은 항상 푸르고 새들은 그 안에 가득하다. 새가 없던 나뭇가지 위에 새가 와서 앉고, 새가 와서 앉던 자리에도 새가 와서 앉는다. 한 마리 새가 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한 나무가 다할 때까지 앉아 있는 새를 이따금 마음 속에서 본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앉지 않는 한 마리의 새. 보였다 보였다 하는 새. 그 새는 이미 나뭇잎이 되어 있는 것일까. 그 새는 이미 나뭇가지일까. 그 새는 나의 언어(言語)를 모이로 아침 해를 맞으며 산다. 옮겨 앉지 않는 새가 고독의 문(門)에서 나를 보고 있다. *계간『미르네바』주간,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인. <해설> - 지고한 선비정신이 바로 우리의 고유정신이 아닐까. 빛나는 시정신이 이런 데에 있다면 한국현대시의 가치도 높아지리라 보는 견해다. 거의 대부분의 시가 존재론적인 방식에 의하여 쓰여지다 보면 부하가 걸리어 시정신이 탈색되기 일쑤인데, 정제된 마음안에서 일어나는 관조적인 작품이 이 시가 아닌가 한다. 보라, 언어구사력도 뛰어나다. `새가 와서 앉던 자리에도 새가 와서 앉는다`고 했으며, `그 새는 이미 나뭇잎이 되어 있는 것일까. / 그 새는 이미 나뭇가지일까`에서 보이듯 `옮겨 앉지 않는 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여름은 항상 푸르고`에서의 `우리 여름`은 인간세상을 지칭하는 것이며, 시인은 살맛나는 세상임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정치가나 시인이나 마찬가지로 순간출세욕에 눈멀어 왔다가는 하는 군상들이 `그 안에 가득`한 `새들`이 아니겠는가. 옮겨 앉는 새 말이다. 이 시에서는 고고한 선비정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의 당파나 현대사회의 믿음의 부재 등을 통한 쉬이 자리를 바꾸는 흔들리는 인간상을 꼬집고 있기도 하다. 비록 고독하지만 제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인간정신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