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繡)
이 상 번
수가 놓여지고 있다
김장된 수틀 안에 수가 놓여지고 있다
수틀안에 풀잎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풀잎은 청초하기 그지없다
여치 한 마리 사뿐히 내려앉는다
아침 햇살에 얼비친 좌심실 우심방
숨이 가쁜, 말간 속내가 다 보이는구나
저 긴장된 씨줄 날줄의 경계를 넘나들며
향기로운 초생달
그리운 손톱으로
웃고고 내리고고
내리지르고 웃지르는
아! 백설의 신비함이여
저-하-얀-수-틀-위-
한 땀 한 땀 수가 놓여질 때마다
장군이 창검을 겨누듯
시위를 당기듯, 단호하구나
색-색-의-
실-을-토-해-내-는-
저 작은 침봉에도
무사와 같은 단호함이 서려 있구나
아, 저러한 단호함들이 어울려
아침 햇살 얼비치는
내장까지 투명한, 가녀린
여치 한 마리
불-러-들-이-는-구-나
아! 수틀 안에 놓여지는 풀잎이여 -
*1991년 로 등단.
- ``수(繡)``에 대한 여러 시들이 많이 생산되었지만, 이만큼 구체적인서 실감나는 작품은 잘 대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먼저 밝혀둔다.
요즘의 현대시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행방이 묘연하리만지 자기당착적인 넋두리이거나 남의 시의 표현을 그대로 또는 엇비슷하게 덧칠해 내놓는게 다반사니가 하는 말이다.
시는 개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개성도 개성이지만 자신만이 구가할 수 있는 고유한 언어구사 역시 중요한 덕목이고 보면, 우선 이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군이 창검을 겨누듯 / 시위를 당기듯, 단호하구나``라든지, 또는 ``저-하-얀-수-틀-위-``, ``색-색-의- / 실-을-토-해-내-는-``, ``불-러-들-이-는-구-나`` 등에서 보이는 바느질 뜸뜸의 시각적 효과의 형상성이 좋은 예라 하겠다.
특히, ``풀잎``과 ``여치``를 등장시켜 끝까지 긴장력을 놓지않고 끌고가는 시적 탄력이 돋보인다. 역시 오래 시를 써온 시인의 안정된 톤이 신뢰를 안겨주기에 충분한 작품으로 읽힌다. 더욱 분발해 의 영예를 한몸에 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