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선거가 마침내 끝났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국회로 들어가게 된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아쉽게 고배를 마시게 된 낙선자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이번 선거는 십수년만에 집권여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을 차지해 정국이 안정될 것으로 보이지만, 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각 정당의 행태는 정말이지 한심스러웠다. 국정을 농단하면서 차떼기로 돈을 긁어모았던, 그 당당했던 남정네들이 여성의 치마폭 뒤에 숨어 눈물의 표를 주어 담으려는 얄팍한 모습에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박정희 향수에 기대어 지방색을 자극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에서는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 다시 살아나온다 하더라도 더 이상 권위주의적인 개발 독재를 밀어붙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더군다나 6,70년대의 경제 모델로는 더 이상 국제 경쟁력을 가지기도 힘들다. 남북 분단도 서러운데, 10여년 동안 치유해온 지역감정을 또다시 무덤에서 부활시키려는 정치 행태에는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민주당은 어떠했는가? 긴말이 필요하지 않다. 광주 망월동 묘지를 향해 삼보일배를 하는 가냘픈 여자에 기대어 표를 긁어모으려고 하는 모습에는 차라리 TV 채널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열린우리당 역시 가관이었던 것은 마찬가지다. 지지도가 떨어진다고 밥까지 굶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단식했다는 간디의 이야기는 들었어도, 유권자가 표를 주지 않는다고 밥 굶는다는 이야기는,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지구상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다. “과연 이 나라, 이 정치가 어디로 갈려고 이러는가?” 한숨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오직 TV 화면이나, 신문에 나오는 사진 한 장에 정치적 목숨을 걸었을 뿐, 그 어디에서도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던 충무공과 같은 지도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쇼를 하려하게 연출했을 뿐, 국가와 사회를 위한 정책은 뒷전이었다. 휠체어, 붕대감은 손, 수염 기르고 밥 굶어 꺼칠한 얼굴만 크게 크로즈업시켰을 뿐, 서민의 눈물을 씻고, 악화되는 서민의 경제를 살리려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되돌이켜 본 선거판은 그랬다고 치자. 선거가 정치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차분한 일상에서 정치판을, 그리고 당선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시급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이라크 파병이니, 대외 관계니 하는 거대 담론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시가지에 한번 나가 보라. ‘점포 임대’를 써 붙인 가게들이 줄을 잇고 있다. IMF때보다 더 어렵다는 가게 주인들의 호소가 결코 엄살이 아니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도 해마다 줄고 있다. 농민들 이마에 늘어나는 주름살을 펴질 전망이 없다. 더 이상 낡은 아이디어, 낡은 패러다임, 낡은 모델로는 국가와 지역 사회를 발전시킬 수 없다. 컨벤션 센터 하나 변변하게 없는 국제적인 관광도시가 경주 말고 또 있을까? 사회가 변하는 만큼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환경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선거판에서 표심에 호소하던 당선자에게 바로 그 초심을 잃지 않기를 간곡히 당부하고자 한다. “유권자는 투표하는 날만 주인이고, 4년 동안 머슴이다”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이 무색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선거 때의 그 절절한 심정으로 4년을 활동한다면, 적지 않은 업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업적이 4년 후에 평가된다는 것 또한 잊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한 번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낙선자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드리고자 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