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피는 봄
손 경 호
우리 선조들은 일 년 중 찔레꽃 필 무렵이 가장 가난한 계절이었다고 한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보릿고개라고 불리던 이 시기는, 시쳇말로 찔레꽃송이 만큼이나 가난이 풍성했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가난을 운명으로 삼고 허기진 뱃가죽을 쥐고 묵묵히 소처럼 일만 했다고 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그 봄날의 긴긴 해를 어떻게 보냈을까 걱정도 해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찔레꽃이 피기 전에는 어김없이 꽃샘추위라는 것이 있어서 봄을 시샘하는 이 늦추위가 짓궂을수록 꽃빛깔이 더욱 고와진다니 참 묘한 일이다.
이른 봄에 피는 산수유로부터 시작하여 목련꽃, 개나리, 살구꽃, 매화 그리고 벚꽃이 피고 진달래가 그 뒤를 따른다. 참 묘한 것은 이들 모두가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온다는 것인데 무슨 연유에서일까.
그리고 대자연은 야누스 같은 두 개의 얼굴을 하고선 남쪽에 봄소식이 상륙해서 위도선을 따라 북상하고 있는데도 반도의 허리에는 아직도 늦추위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이런 기후 속에 살아온 우리의 조상들은 선비의 품성도 또한 날씨처럼 고약해서 가난한 것에 기준을 두고 일찍부터 가난과의 불가분의 연분을 맺고 그것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겨왔다. 돈 많고 권세 당당한 벼슬아치보다는 비록 낡은 의복일망정 기품 있는 가난한 선비를 더 존경하고 흠모하였으니, 나라가 가난한 그 때만해도 `가난`은 `가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종의 자부심을 띤 사회의 흐름이요 풍조였다.
요즘에는 사람마다 가난의 기준이 다소 애매해져 있으므로 가난을 정의하고, 측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옛날에는 식생활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옷이나 집 따위는 관계치 아니하고 가난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되던 것이 오늘날에는 적어도 옛날의 기준과는 차원이 판이하게 달라져서 가난의 의미마저 혼란스럽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또 한번 신경을 자극하는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새파란 나이의 어느 의사는 월 8백 50만원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개업을 할 수 없는 가난`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거의 자살 원인이 이런 허황한 가난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그들은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왔으며, 도대체 이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자꾸 궁금해진다.
나물죽 먹고 팔베개 베고 이를 쑤시고 나면 대장부의 낙이 더 이상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던 옛 선현들의 능청과 거드름이 이 시대와는 영원히 결별했다는 말인가.
물질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면서 황금만능만 주장하는 속이 빈 배금주의자보다는 고매한 성품으로 옷깃을 여미면서 가난을 자랑하던 옛 흥취가 아직도 우리 주변을 감돌고 있는 청백리들이 숱하게 있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빨간 찔레꽃이 줄장미 넝쿨처럼 청기와 담장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찔레꽃 피는 봄. 가난 대신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식이나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춘곤증
손 경 호
봄이 되면 아지랑이처럼 전신을 엄습해 오는 고양이의 졸음 같은 것을 가리켜 춘곤증이라 한다.
이런 증상은 말 그대로 초봄에 다른 질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나른하고 피로를 쉽게 느끼면서 졸린 증상을 말하는데 이는 인체리듬의 적응 장애 증상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 쉽게 말하자면 밤이 긴 겨울에 익숙해져 있던 인체가 낮이 길어지고 일조량이 많아지는 새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계절적 변화뿐만 아니라 봄철에는 사회적인 변화까지 겹쳐 여러 가지 변화가 많은 요소도 한 요인으로 꼽을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취직과 입학, 이사와 인사이동 등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급격한 환경변화 상황들이 봄철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봄철은 움츠렸던 겨울과는 달리 활동량이 늘어나는데 비해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지 못하는 점도 원인의 하나로 들 수 있다.
한방 생리 의사의 얘기로는 봄은 간의 기운이 왕성해져 비장을 비롯한 소화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계절이라 한다.
세월은 속여도 계절은 못 속인다는 옛말처럼 훈훈한 남풍에 얼었던 기운이 녹아지는 듯 잠이 솔솔 오는 것이 막기도, 참기도 어려워 그냥 고개가 숙여진다. 구태여 증세라 한다면 충분히 잠을 잤는데도 낮 시간에 졸음이 쏟아지거나, 식욕도 떨어지고 기운이 빠지고 권태감으로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이다.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가 뻐근하며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이 찌뿌드드하고, 심하면 불면증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를 동반한다고 하니 혹시 병인가 싶어 염려했던 사람도 굳이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춘곤증은 3∼4월경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시적 생리현상이지만 그 증세가 심할 경우에는 알맞은 조치를 취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춘곤증과 함께 겨우내 잠복해 있던 질병이 더불어 나타나는 경향도 있으니 피로가 장기간 계속 된다든지 피로감과 함께 숨이 차다든지 하는 다른 증상이 보이면 너무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해봐야 한다.
신체도 겨우 내내 갇혀 있던 양기는 봄의 따스한 기운을 맞이하여 왕성해지고 동시에 음의 기운은 부족해진다고 한다. 따라서 봄철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춘곤증이 발생하기 쉽지만 특히 남성의 경우 더 활기가 떨어지고 의욕상실증 현상이 심하다고 한다.
자동차도 출발할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모되듯이 인체도 계절의 시작인 봄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춘곤증은 피로뿐만 아니라 식욕부진, 식곤증, 현기증, 무기력증 등을 동반하여 사기를 저하시키므로 자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아침을 거르고 허기진 상태에서 점심을 먹으면 과식하게 되고 그래서 춘곤증을 가중시키게 된다고 한다.
영양소 중에서 단백질은 졸음을 쫓고 대신에 당분은 졸음을 부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낮에는 육류, 야채, 해조류, 잡곡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낮에 20분 정도 수면을 취하는 것도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무리하거나 격렬한 운동은 피로를 가중시키므로 피하고 전신을 풀어주는 스트레칭, 손가락과 발 부위를 풀어준다든지, 머리 주변은 지압으로 풀어주고 가벼운 팔다리 운동 등이 춘곤증 퇴치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해서 나른한 봄 오후를 이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