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지 동편 도로 건너 ‘구황동 모전석탑지’엔 용도가 아리송한 바위 몇 개와 모전석탑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왕상이 새겨진 돌기둥 두 쌍이 있다. 현 경주박물관 미술관 입구 현관 양쪽에 전시된 한 쌍의 금강역사상도 이곳에서 옮겨간 것이라 한다. 특이한 점은, 아마 네 개로 이루어졌을 상단 기단부 갑석 중 남은 두 개의 갑석에 틈새가 벌어지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한 흔적(쇠아령 단면모양의 판 흔적)과 석탑 옥개석인 듯한 돌이 두 개 있다. 모서리가 깎여진 인왕상이 새겨진 돌기둥을 보면 모전석탑이 확실하지만 옥개석을 보면 석탑이 있었는 것도 같고 아리송하여 추후에 정밀 발굴이 이루어져야 여러가지 의문점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까 싶다. 바위에 걸터 앉아 가져갔던 삼국유사 ‘제48대 경문왕’편을 펼쳐놓고 깊은 상념에 잠겨 보았다. 사실 내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전설(傳說)때문이었다. 신라 48대 경문왕이 임금이 되고 난 뒤부터 자꾸 귀가 길어졌는데, 오직 임금님의 의전용 왕관을 만드는 기술자인 복두장한 사람만 알고 있었단다. 평생 ‘임금님의 긴 귀’에 대한 비밀을 지키다 죽기 직전에 도림사(道林寺)의 대나무숲 속에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吾君耳如驢耳)”라고 하였는데, 바람만 불면 대나무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는 소리가 나서 경문왕이 명하여 대나무를 베어내고 산수유를 심었더니 바람이 불면 단지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라는 소리만 났다는 전설이 실제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일제시대 한 일본인이 이 ‘구황동 모전석탑지’ 부근에서 ‘도림사(道林寺)’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기와 조각을 주웠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명문기와의 정확한 행방을 알 수가 없어 이 곳이 정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전설의 출생지였는지는 확인 할 수가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전설은 그리스 전래동화에도 나온다. ‘수렵의 신(神)’인 ‘판’의 피리소리는 좋아하지만 ‘음악의 신(神)’인 ‘아폴론’의 하프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 ‘아폴론’ 신의 노여움으로 왕궁에 돌아오자말자 자꾸만 귀가 길어져 고민하던 그리스 왕 ‘미다스’는 우리나라 경문왕에 비유되고 ‘미다스’왕의 이발사는 우리의 복두장에 비유된다. 전설(傳說)인지 사실(事實)인지를 떠나 내가 고민한 것은 “왜 하필이면 경문왕에게 긴 귀에 관한 전설이 기록되었는가?”하는 점이다. 경문왕의 본래 이름은 응렴(膺廉)이고 18세의 나이에 국선(國仙: 화랑의 다른 이름)이 되었는데, 20세 때 헌안왕(신라 47대 왕)이 그의 인물됨을 시험하는 질문에 잘 답하여 “나(헌안왕)의 두 딸(공주)중 너 마음대로 골라라”라는 사위 지명을 받게 된다. 아마 외모가 못 생긴 큰 공주보다는 얼굴이 예쁜 작은 공주를 선호하는 부모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흥륜사 스님이었던 범교사(範敎師)의 “잘생긴 둘째 공주보다는 못생긴 큰 공주에게 장가들면 세 가지 좋은 일이 있다”라는 죽기를 각오한 충고를 받아들여 그렇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갑자기 헌안왕이 죽으면서 큰 사위인 응렴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긴다. 왕이 된 이후 경문왕은 범교사의“첫째는 아들없는 헌안왕의 큰 사위가 되었기에 차기 왕위를 지명받은 일이요, 둘째는 임금이 된 후에 사모했던 둘째 공주(처제)를 둘째 왕비로 택하여 취할 수 있었음이요, 셋째는 못생긴 큰 딸 시집보내기를 갈망하던 헌안왕과 왕비 즉 장인 장모를 기쁘게 했다는 점이다”라는 설명을 듣고 그에게 큰 상을 내렸다 한다. 한 마디로 경문왕은 범교사(範敎師)라는 지혜로운 낭도(郎徒)의 죽음을 각오한 충언을 받아 들었기에 왕이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만약에 경문왕이 단순한 아름다움에 반해 둘째 공주를 선택하였다면 왕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스 ‘미다스왕’과 신라 ‘경문왕’에 관련된 동서양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전설의 녹아있는 진정한 핵심은 ‘남의 말을 잘 듣자’라는 교훈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귀는 크지 않고 입만 유난히 크다는 점이다. 내 말하기만 좋아하고 남의 말 듣기를 싫어하는 현세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구황동 모전석탑지(傳 도림사(道林寺)址)를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의 위기를 뚫고 대한민국이 한번 더 도약하는 지름길은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전설에 숨어있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긴 귀’의 지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위에 기댄 인왕상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보잘것 없어 보이는 문화재라도 얼마든지 귀한 보배를 찾을 수가 있다. 구황동 모전 석탑지. 찾으면 찾을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입은 작을 수록 좋고 귀는 클수록 좋다’. 그래서 부처님 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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