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에 프랑스에 간 적이 있다. 여러 곳을 구경했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읽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무대인 알사스와 로렌스 지방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온화한 기후 탓인지 포도밭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전원의 도시였다. 독일과 프랑스의 분쟁지로 프랑스 전쟁 후 알사스의 거의 대부분과 로렌스의 동반부가 독일에 병합되면서 일어난 한 마을의 이야기이다. 하멜 선생님의 프랑스어(語)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알사스와 로렌스의 초등학교는 독일어만 가르치라는 명령이 독일의 베를린에서 왔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수업을 위해 그는 오늘 정장차림으로 수업에 임한다. 교회의 시계가 정오를 치면서 때를 같이 하여 훈련에서 돌아오는 프러시아 병사들의 나팔소리가 들리고 하멜 선생은 창백한 얼굴로 교단에서 일어선다.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막히고 현기증을 일으킨다. 갑자기 칠판을 향해 돌아서서 분필 하나를 들고 온힘을 다하여 큰 글씨로 `프랑스 만세, 프랑스 만세` 라 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나라와 말, 글을 잃은 민족의 슬픔과 분노를 압축해 표현하고 있다. 다른 민족의 박해 밑에서 나라를 짓밟히고 언어를 말살 당한 민족처럼 더 큰 비극은 없다. 특히 자기 나랏말을 말살 당한 민족은 아예 역사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만큼 언어는 「25시」의 저자 `게오르규`의 표현처럼 황금보다 더 귀한 이 세상의 보물이요, 무기요, 생존의 근본이요, 민족의 동일성을 보존하는 생명줄이다. 알퐁스 도데의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지만 한 민족이 아무리 노예로 전락한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 언어만 지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일제 통치하에서도 우리가 꺾이지 아니하고 광복한 것도 우리말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름을 바꾸고 안글을 말살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했지만 우리말을 우리가 지켜왔기 때문에 오늘이 존재한 것이다. 우리의 처지와 비슷한 내용이어서 도데의 작품이 우리의 감정을 울리면서 애독되는 것이다. 모진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나랏말, 글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맞서 싸우다 가신 선열들의 애국정신의 확고한 바탕은 바로 `나라사랑`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반세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순수한 우리말은 많이 오염되고 더러는 사라지고 있다. 초·중등 교과서에서 오랫동안 사용되던 수백 종의 순수한 우리말들이 교과서 개편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지게 된 것이 4백여 개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세모가 삼각형으로, 네모가 사각형으로, 뼈마디는 관절로, 등골을 척추로 바꾸어서 순수한 우리말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일본말이 오염이 된 것이 참 많다. 그 하나의 예로 `엑기스`(농축된 성분)라는 말을 참 많이 쓰는데 그 말은 영어 `extract(뽑아내다=추출물)의 일본식 발음을 우리가 그대로 쓴다는 것이다. 물론 한자와 함께 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반세기 넘도록 빨리 수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의 침략을 받더라도 그 언어와 풍습을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현상 때문이다. 말이든 풍습이든 낯선 나라의 것이 한 번 깊숙이 박히면 고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인 것 같다. 우리의 말과 글에 질서가 있었으면 한다. 영어가 1백여 만 단어임에 비해 40여 만 단어에 불과한 우리의 본래의 낱말이 없어지고 있다니 딱한 일이다. 요즘 나라가 좀 복잡하다. 이런 시대일수록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마음, 그리고 작지만 함께 뭉쳐 전진하는 협력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때이다. `본래의 말을 보전하는 민족은 영원하다.`는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의 뜻깊은 교훈을 잊지 말자. 울분이 치솟는 「마지막 수업」의 장면, 우리는 충분히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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