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한반도를 강타한 7년전 많은 노동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직장에서 쫓겨났다. 이 때 유행한 말이 사오정이다. 45세가 정년이라는 뜻에서다. 그러나 사오정이란 말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흘러간 유행가가 되고 말았다. 38세를 넘기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다반사로 생겨나면서 38선이라는 말이 사오정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이제 이태백이란 말이 회자된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으로.
경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인다지만,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늦도록 가게를 지키지만 마수걸이도 못 한다”는 영세 상인들에게 경제 회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도 절반을 넘은 지 오래고, 이미 전체 노동자의 60%에 육박하고 있다.
일자리를 가지고 일은 하고 있지만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구의 한숨소리가 우울하게 한다. 100가구 중에 7가구는 노동을 하지만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임금을 받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인구 10명 가운데 1명꼴인 470만명의 사람들이 최저 생계비에 못미치는 절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난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다 어려운 것은 아닌 모양이다. 소득 최하위 20%로 속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최근 4년간 11%나 줄어들었지만, 최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같은 기간 27%나 늘어났다.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수치다.
또 중간 소득의 40%에 못미치는 가구의 비율도 11.5%로 30개 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우리나라의 소득 재분배 제도가 형편없는 수준이라는 점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버스 지나간 뒤 손드는 일만큼 싱거운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지난 시절의 자료를 가지고 백날 이야기해 본들,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죽은 자식 뭣 만지기일 뿐이다. 정작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빈익빈 부익부를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세계화의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뿐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중산층의 신빈곤화를 치유해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나라 제조업의 일자리가 11.6% 줄어든 데서 보듯, 기술의 발달로 단순 육체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 것 역시 명백하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던 일자리가 중국으로 이전되는 추세 또한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중국의 산업화 과정을 볼 때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라는 점도 굳이 토를 달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개인 차원에서는 변화시킬 여지는 거의 없다. 국가의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의 전략은 누가 바꾸는가? 좋든 싫든 정치인일 수밖에 없다.
이제 그 정치인들을 뽑는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한국의 정치를 지겹도록 경험한 국민들은 정치에 혐오를 느낀다고 토로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정치판의 부정 부패는 국민의 무관심을 자양분으로 자라는 것임을. 그리고 새로운 국가 전략을 수립하여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가 골고루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느냐, 아니냐도 선거를 통해 어떤 일꾼을 뽑느냐에 달려 있음을.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향한 전진이냐. 과거 남미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5천달러로 추락이냐.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냐. 골고루 잘 사는 사회냐. 이제 우리의 표로 선택해야 한다. 그 경건하고 무거운 과제가 총선거를 맞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손끝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