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개월은 평생 잊지 못할 악몽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지난해 조류독감이 발생한 안강 육통리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점차 평온을 되찾고 있다.
아직까지 그 때의 ‘악몽’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동네 주민들은 환한 웃음으로 지나는 객을 맞이 했다.
고병원성 가금인플루엔자(조류독감)가 경주지역에 발생한 것은 지난해 12월 21일, 안강읍 육통2리 이모(68)씨 농장에서 처음 발생해 인근 농가로 번지면서 이씨 농장 인근 5개 가금농장에서 사육 중이던 2만여수가 모두 살처분 처리됐다.
당시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방역당국의 현장 실태조사가 실시됐고 민·관·군·경 300여명이 합동으로 휴일도 반납한 채 살처분 작업을 펼쳤으며 보상문제로 농장주와 경주시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살처분 작업에만 무려 일주일 넘게 소요될 만큼 큰 사건이었다.
특히 조류독감 이후 닭·오리·계란 수요가 전국적으로 얼어붙어 관련 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해지기도 했다.
지난 18일 오후 조류독감으로 인해 농장에 있던 양계 9만5천마리를 살처분했던 권영택씨 농장을 찾았다.
기자라는 인사에 취재를 거부했던 권씨는 “조류독감 발생 직후 언론 때문에 관련된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소비위축이 심해졌다”며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결국 30여분 만에 농장으로 인도했다.
권씨는 “살처분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한 동안 몸져 누워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제자리로 돌아왔다”며 그 동안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한 간에서는 살처분으로 입은 피해액을 정부로부터 보상 받아 일반 농장들보다 형편이 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모른다”며 “피해액에 몇 배를 준다해도 그 악몽은 보상 받을 수 없다”고 권씨는 토로했다.
권씨는 재기의 꿈을 키우며 지난 1월 중순경 경기도에서 중병아리 4만6천마리를 다시 들여왔다.
2개월이 지난 그 중병아리들은 지난 3월 초순부터 산란에 들어가 초란을 낳고 있었다.
권씨는 작은 초란을 손에 넣으며 “조류독감 발생 직후 다시는 내가 계란을 못 만질줄 알았다”며 “이제 재기에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권씨는 홍역을 한번 치른 뒤여서 그런지 농장 관리가 대단했다.
부화장 입구에는 두 개의 소독실이 있었으며 소독한 옷과 소독 신발을 신어야만 출입이 가능했다.
“이제 농장은 정상 단계에 와 있지만 그 동안 계란을 출하하지 못해 기존 거래처가 모두 끊어졌다”며 “30년 동안 쌓은 거래처와의 신뢰가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이 정말 가슴 아프다”고 권씨는 말했다.
권씨는 또 “그래도 살처분한 우리 농장주들은 보상을 받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관련 산업 관계자들과 농장에 근무했던 직원들이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은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휴일도 반납한 채 도움의 손길을 건낸 지역 공무원들과 경찰, 군인들에게 정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는 권씨는 인근 양계농가 김모씨와 함께 지난주 경주시청을 방문해 계란 4천500개를 전달하고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