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신문을 통해 지난 6년여 동안의 기고 수를 따져보니 이번이 정확히 40번째다. 글마다 고향 경주의 미래를 고민하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간에 대해 제안하고 설득해 보려 했다. 그런데 이번이 마지막 기고라 하니 아쉬움이 앞선다. 이번 마지막 기고에서는 그간의 글들을 종합하여 경주가 나아가야 할 도시계획의 방향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누적된 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경주는 단일 시대의 유산만 가진 도시가 아니다. 신라시대의 궁성과 능묘, 고려·조선시대의 읍성과 관아,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의 건축물과 생활공간까지, 다양한 시기의 유산이 도시 전체에 층위처럼 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경주의 역사이자 자산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오래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만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오해하곤 한다. 지금도 도심 곳곳에서 일제강점기나 1960~70년대의 흔적들이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도 몇 년 뒤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가 될 것이다. 서울의 돈의문박물관마을처럼 비교적 최근 시대의 주거지를 보존하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례들도 눈여겨봐야 한다. 경주가 진정한 ‘살아있는 역사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를 단절이 아닌 연속으로 바라보고 그 맥락을 품은 공간을 정성껏 보존하고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걷기 좋은 도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도시의 매력은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서울의 청계천이 도로 위 고가를 철거하고 시민의 보행공간으로 복원되었을 때, 도시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경험했다. 대구는 폭염에 시달리던 도시였지만 가로수 두 줄을 심고 그늘을 만들고 바람길을 열어 도시 온도를 낮췄다. 경주도 보행 중심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단순히 도로를 새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가 머물고, 쉬고, 즐길 수 있는 골목길과 연결된 광장, 소규모 공원, 벤치와 녹음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자주 다니는 길을 중심으로 보행권 중심의 생활동선을 재구성하고 관광객들에게는 천천히 도시를 음미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걷는 도시가 곧 건강한 도시이며,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된다. 셋째, 중소 도시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경주는 대도시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될 수 있다. 사람 간의 거리가 가깝고, 하늘은 넓게 열려 있으며 커다란 빌딩 숲이 아닌 낮은 지붕들의 연속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있다. 최근 경주에서 시도된 ‘마을호텔’은 좋은 사례다. 대형 호텔이나 리조트가 아닌, 기존의 주택이나 유휴 공간을 개조해 하나의 숙소로 운영하는 방식은 도시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관광을 가능하게 만든다. 도시를 확대하거나 고밀도로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재구성하고 재발견하여 매력적인 장소로 만드는 방식이 경주에 어울린다. 작은 도시이기에 가능한 섬세함과 정서를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지속 가능한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 도시도 변해야 한다. 대구는 심한 열섬현상을 도시 녹화로 극복했고, 유럽의 여러 도시는 스마트시티 기술을 접목해 에너지 절감과 탄소 배출 저감을 실현하고 있다. 경주도 예외일 수 없다. 도시 내부로 녹지를 끌어들여 기후 회복력을 갖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숲은 도시의 폐와 같다. 단순히 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흐름과 그늘의 위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도시의 생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 기술 또한 단순한 홍보용이 아닌, 에너지 절약과 생활 편의 향상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은 유행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경주는 이미 훌륭한 시작점을 가지고 있다. 천년 고도로서의 자부심,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다만 이 모든 자산을 제대로 가꾸고 엮어가는 도시계획의 섬세함과 의지가 필요하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지만, 앞으로도 경주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지속가능한 ‘살기 좋은 도시’로 계속 걸어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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