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만 하더라도 경주로 여행을 온 많은 사람들은 경주역에 첫발을 내렸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도 경주역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이런 이유에서 상당수 대한민국 국민들의 추억 한 자락이 경주역에 머문다. 하지만 추억 속 경주역은 이제 ‘경주문화관1918’로 이름이 바뀌고 열차도 오가지 않는다.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옛 경주역을 방문하는 관광객 상당수는 지난 2021년까지 역사(驛舍)로 사용된 경주문화관1918 건물 정도만 둘러본다. 하지만 옛 경주역 주변엔 많은 이들이 놓치고 지나간, 겹겹이 쌓인 세월을 간직한 공간이 있다. 경주역 동편 철도관사마을이 대표적이다.
황오동 삼층석탑에 얽힌 사연
옛 경주역을 둘러본 뒤 철도관사마을로 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역사를 바라보고 서서 왼편 나무가 우거진 쪽을 바라보면 나무들 사이로 석탑 1기가 숨어 있는데,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경주 황오동 삼층석탑’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다.
이 자리엔 원래 석탑이 없었다. 일제가 사정동에 있던 경주역을 이 자리로 옮기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 폐사지에 무너져 있던 석탑을 이곳으로 옮겨와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탑에 대한 국가유산청의 설명이다.
‘이 탑은 원래 효공왕릉(孝恭王陵) 부근인 경주시 동방동 장골 사자사(獅子寺) 터에 무너져 있던 것이다. 1936년 경주역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는 것을 기념하여 이곳에 다시 세웠다.’
이 탑이 원래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사자사 터’란 이름이 낯설다. 사자사는 경주 효공왕릉 인근 장골마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사자사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신라 제52대 효공왕의 장지에 관한 기록으로 등장한다.
‘16년(912년) 여름 4월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는 효공이며 사자사 북쪽에서 장사를 지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12본기 16년)
‘사자사 북쪽에 화장하고 뼈는 구지재 동쪽 산허리에 묻었다.’(삼국유사 왕력)
황오동 삼층석탑 옆에는 석탑 부재들과 얼굴이 반쯤 망가진 조그마한 불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4각형 연꽃으로 된 대좌가 4개의 돌로 나눠 놓여있다. 옆면에는 각 면마다 창 모양의 안상(眼象)을 2개씩 조각해 놓은 모습이 이색적이다.
황오동 삼층석탑은 세상 사람들의 부족한 관심만큼이나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다. 국가유산청은 이 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의 몸돌에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의 1층 몸돌이 폭에 비해 높이가 월등히 높고, 2·3층 몸돌 역시 폭은 거의 줄지 않은 채 높이만 급격히 줄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보다는 날렵함이 돋보이는 탑으로,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에서 고려 석탑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 탑이 ‘사자사지 삼층석탑’이 아니라 여전히 황오동 삼층석탑이라고 불린다는 점이다. 탑이 있는 곳의 법정동 명은 성동동이지만, 행정동 명이 황오동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겹겹이 쌓인 세월의 이야기
철길을 사이에 두고 옛 경주역 건너편엔 철도관사마을이 있다. 경주역이란 이름은 잃어버렸지만, 역에서 관사마을로 이어지는 육교는 아직 그대로다. 차량으로는 한국농어촌공사 경주지사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우회해서 진입할 수 있다.
철도관사마을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경주역에 근무하던 역무원과 기술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곳이 언제 조성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대략 이곳에 경주역이 들어선 1936년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도관사마을 일원은 그동안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에게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마을이었다. 예전에는 교통행정상업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현대로 오면서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마을 한쪽으로는 철길이 가로막혀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육교를 지나거나 먼 길을 둘러가야 되고 반대편으로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유적인 전랑지와 남고루 등 문화재가 있어 개발이 제한돼 섬처럼 고립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마을이 조성될 때는 바둑판처럼 잘 계획된 마을이었지만 문화재보호구역이라 3층 이상의 건물도 지을 수 없고 좁은 골목길 때문에 신축허가도 쉽지 않은 것이 개발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마을은 시간이 멈춘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 이곳은 경주시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행복황촌마을’이란 이름의 깨끗하고 단정한 마을로 변신했다. 신라왕궁 부근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황촌이라 불리던 데서 이름을 따왔다.
이곳 도시재생 사업이 특히 눈길을 끄는 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의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마을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어놓았다는 점이다.
경주시는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부분의 마을 개발사업과는 결을 달리해 좁은 골목길, 100년이 넘는 증기기관차 급수탑,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역무원 관사 등 마을이 갖고 있는 옛 정취를 그대로 보존하는데 중점을 뒀다. 그 결과 황촌마을은 이곳만의 특별함을 만나기 위한 여행객들의 발길을 하나 둘 불러모으고 있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마을호텔’은 황촌마을을 찾는 이들을 위한 숙박시설이다. 좁은 골목길 빈집을 리모델링한 ‘스테이 황촌’이 1호 마을호텔이다. 문을 연지 6개월만에 에어비앤비 슈퍼호스트가 됐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 일제강점기 경주역 역무원 관사를 리모델링한 풀빌라 ‘황오여관’은 황촌마을의 스위트룸 역할을 한다. 100년 가까이 된 관사를 1년 동안 부부가 직접 리모델링한 ‘황오연가’, 시인부부가 운영하는 ‘스테이 詩In’, 한옥체험 숙소 ‘소여정’, 이국적인 건물의 ‘블루플래닛’, 황촌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행복 꿈자리’ 등 현재 10여개 마을호텔이 운영되고 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은 특색 있는 마을호텔이 자리를 잡으면서 황촌마을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체류형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을호텔에서 잠을 자고 마을공동부엌인 ‘황촌정지간’에서 조식을 먹고 주민해설사와 함께 마을투어와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도 있다.
이런 변화에 마을로 들어온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스토리가 있는 카페나 식당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관광객들의 발길도 마을을 향하고 있다.
골목을 둘러보다 일제강점기 가옥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한 카페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100년 역사를 지닌 옛 경주역장 관사였다. 문은 손잡이를 세게 잡아당기면 부서질까 조심해서 열어야 했고, 내부는 서까래가 그대로 다 보일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리모델링을 최소화했다.
이처럼 좁은 골목마다 숨겨진 이야기를 탐험하듯 마을 곳곳을 걷다보면 소담스럽게 자리한 숙소, 카페 등을 만날 수 있다. 겹겹이 쌓인 세월의 이야기에 시간여행자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든다.
글·사진 김운 역사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