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텃밭에 심어둔 햇감자를 수확하는 설렘과 기대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감자를 심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지난봄 어느 햇살 좋은 날, 수선화가 담벼락에 예쁘게 피어난 동네를 산책하다 텃밭에서 감자를 심고 있는 이웃을 보고 경작을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에다 감자를 심을지 고민하다 십수 년 전에 집주인이 경작하다 버려둔 300여 평 텃밭에 잡풀을 제거하고 50평 남짓 땅을 일궜다. 열흘 이상 매일 가시넝쿨과 잡풀들과 씨름하며 걷어내고 나니 기름진 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일랜드에서 감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국민적 기억을 담고 있다. 감자 역병(Great Famine, 1845~1852)으로 수백만 명이 굶주리고 아일랜드 인구의 약 4분의 1이 사망하거나 미국, 호주 등으로 강제 이주해야 했다. 감자는 아일랜드 농민들이 생존을 걸고 키우던 작물이자 식민 억압과 고통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인 셰이머스 히니(Semus Heaney, 1939~2013)의 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감자와 땅을 파는 행위는 아일랜드인의 역사적 고통과 뿌리 깊은 토착성을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시 Digging에는 농부였던 아버지와 조부가 감자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임이 잘 나타나 있다. 아버지가 땅을 파고 감자를 수확하던 모습, 그리고 그보다 앞선 조부의 농사 솜씨를 존경과 감탄의 시선으로 묘사한다.    ‘By God, the old man could handle a spade. Just like his old man’이라는 대목에서 감자를 통해 전해지는 이곳 사람들의 세대 간 노동 전통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감자는 이처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해 준 생명줄이자, 정체성의 근원임을 잘 알 수 있다. 아울러 햇감자를 수확하기 위해 시인의 부친이 화단 사이로 용을 쓰며 감자 캐는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도 나온다. “거친 장화는 삽 끝에 착 올리고 삽자루는 무릎 안쪽에 견고하게 받쳐져 있다. 아버지는 큰 줄기를 모두 뽑고 반짝이는 삽날을 깊숙이 박아 넣어 햇감자를 캐 올렸다. 우리 손에 들린 차갑고 단단한 감자의 느낌이 좋았다.” 지난 수년간 아일랜드에 살면서 느끼는 일이지만 아일랜드 햇감자는 정말 맛이 일품이다. ‘피쉬 엔 칩스’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식품이 되었다. 감자는 페루와 볼리비아 등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자라던 식물로 고열량에 저장성이 우수하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 아일랜드와 영국처럼 비가 많고 서늘한 기후에도 잘 자란다. 밀레의 그림 ‘만종’의 기도는 감자 기근 시기의 아일랜드인들이 신앙에 매달린 현실을 연상케 한다. 감자 기근이라는 그림에서 농민이 사회 하층에서 어떻게 버티는지를 시각화하였고 구조적 불평등을 상징하는 식물로도 묘사하고 있다. 즉 농민의 고통을 그림으로 남겨 역사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자에 대한 어린 시절 추억은 각별하다. 1970년대 중반, 초여름의 모내기 들녘에서 3남 1녀 중 막내였던 나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새참으로 감자를 삶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아궁이에 땔감으로 보릿단을 쑤셔 넣었지만 연기만 자욱하고 불길은 좀체 살아날 줄 몰랐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가며 끝내 감자를 노릇노릇하게 익혀낼 수 있었다. 찬통에 정성스레 담아 논으로 향하는 길. 문제는 미끄러운 논두렁이었다. 발을 헛디딘 나는 진흙탕에 엎어져 흙범벅이 되었지만, 작은 품에 꼭 안고 있던 감자 통은 끝내 놓지 않았다. 감자만은 지켜야 한다는 일념이었는지도 모른다. 온몸이 흙탕물이 된 채로 도착한 나를 보고 가족들은 처음엔 놀라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감자를 받아들었다. 막내가 준비한 감자를 먹으며 지친 얼굴에 번지던 온 가족의 미소와 칭찬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 햇살처럼 남아 있다. 집 뒤편 바람 부는 언덕 위 텃밭에는 세 개의 고랑에 감자를 심고 온라인에서 구매한 야생화도 사서 이곳저곳에 심었다. 가을날 경주 대릉원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던 장면을 연상하며 한국에서 가져간 코스모스와 생명력 강한 쑥갓도 같이 심었다. 비바람이 사방에서 부는 바닷가의 집 뒷터라 어지간한 생명력이 아니면 힘들 거란 예상은 했지만 많은 시간 들여 싹을 틔우고 뿌리내리고 있음에 대견함을 느낀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 이사를 가더라도 한국에서 가져온 코스모스와 쑥갓이 생명력을 발휘해 비바람 언덕 위 이 텃밭에서 생명력 있게 살아남아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하늘거리는 모습을 연상하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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