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의 눈이 경주로 향한다. 천년 고도의 품격 위에 새로운 관광 혁신을 쌓아 올리는 지역 관광기업들. APEC 특수를 기회 삼아 경주의 미래를 여는 이들의 도전과 비전을 따라가 본다.
“어린이에게 역사를 강의할 수 있다면, 어른에게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건 단순히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이해하고 그것을 체험을 통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경주인문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김원미 대표는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교육 철학을 이야기했다.
그는 서울에서 출판사에 근무하며 평범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중 건강상의 이유로 경주로 내려오게 됐고, 경주에서 우연히 듣게 된 한 강의를 통해 고고미술사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매료됐다.
그 경험은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주었고, 그는 인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문학을 전공했지만 전공을 살려 일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배운 분야로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인문학을 전공한 많은 학생들이 현실적으로 취업이 쉽지 않은 것을 보고 안타까웠어요. 공부한 것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바람이 경주인문학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고, 그 결실이 바로 어린이를 위한 역사·문화 여행 프로그램 ‘고미선생’이다.
김 대표는 경주라는 도시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어른을 대상으로 기획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주엔 어른들을 위한 체험과 프로그램은 정말 많아요. 하지만 정작 아이들을 위한 여행 상품은 거의 없었어요. 저는 아이들이야말로 관광에서 소외된 계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어린이들도 성인 못지않게 품격 있는 해설을 듣고, 재미있고 알찬 체험을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문제의식을 해결하고자 탄생한 ‘고미선생’은 고고학과 미술학을 합친 이름답게 경주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재학생들이 강사로 참여해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으며, 현재 대릉원, 황룡사 역사문화관, 불국사, 시립경주박물관 등 경주의 대표적인 네 곳의 유적과 문화 공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시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역 기준으로 볼 때 고가의 가격대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만큼 체험 키트, 교육 자료, 기념품 등 구성이 매우 다양하고 알차서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김 대표는 2023년 사업을 시작할 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가격을 고수했다.
“주변에서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많이들 말렸어요. 하지만 저는 저희 프로그램의 가치와 완성도를 믿었고, 그만큼 정당한 비용을 책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결단은 옳았다. 고미선생 프로그램은 오히려 예상보다 많은 이용자들을 끌어모으며 인기를 얻었고, 김 대표는 이를 통해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처음에는 서울이나 멀리 떨어진 타지의 관광객들이 주 고객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부산, 울산, 창원, 포항, 대구 등 경주 인근 지역의 가족들이 주로 고미선생을 찾았다고 한다.
“그때 알았어요. 지역에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콘텐츠를 주고 싶어 하는 부모님들의 교육 인프라에 대한 목마름이 엄청 크다는 걸요.”
김 대표는 특히 고미선생의 강사진이 단순히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린이들은 현장에서 돌발 행동도 많고, 예기치 않은 질문을 던지기도 해요. 단순히 설명을 잘하는 것보다 어린이와 소통하고, 흥미를 유지시키고, 안전을 관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죠.”
그래서 그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설명법, 스토리텔링 기법, 현장 상황 대처 능력 등을 강사들에게 꾸준히 교육하고 있으며, 이는 고미선생 프로그램이 단순한 투어가 아니라 교육적 완성도가 높은 체험형 여행으로 자리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역사 이야기를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배운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경주에서 주인공이 되는 여행을 만들고 싶어요.”
인문학을 좋아했고, 경주를 좋아했고, 아이들이 존중받는 여행을 할 수있도록 하고 싶었던 김원미 대표의 ‘경주인문학연구소’는 불경기 속에서도 지난해 대비 200%이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고미선생’을 경주 어린이 여행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다.
“아이들일수록 더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해요. 그 새로운 여행문화의 선두에 경주인문학연구소가 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