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주가 국제적 도시로서의 위상을 다시 확인받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를 계기로 경주의 지속 가능한 가치와 방향성을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경주는 이미 역사적 자산과 풍부한 문화 자원을 보유한 도시로, APEC과 같은 대형 국제행사 없이도 연간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APEC 개최가 시민들에게 체감되는 이슈로 부각되지 않을 수 있으나, 최근 도로와 주차장을 비롯한 인프라 개보수가 전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은 이 행사의 임박함을 방증한다. 행사 유치에 따른 예산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경주는 이번 기회를 도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관광 전략 재정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경주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이미 보유한 자원의 재인식을 통해 가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오랜 세월 시간과 공간, 인간이 만들어낸 유산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일회성 방문에 그친다면 이는 현세대가 과거의 유산에 충분한 생명력을 불어넣지 못한 결과로 받아들여야 한다. 본 칼럼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경주의 대표 관광지인 보문관광단지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보문관광단지와 불국사 일대는 과거 대한민국 관광의 상징이자, 관광부흥의 핵심 거점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기반시설의 노후화, 상권 침체, 콘텐츠 부재 등의 문제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특히 핵심 기능을 담당했던 보문상가는 수십 년째 강제로 폐업당하여 폐허에 가까운 상태로 방치되어 있으며, 이는 사실상 고의적 방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주변 지역의 공실률 상승과 청년층 유입의 감소로 이어져, 관광지로서의 자생력을 약화시키고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관광지는 단순한 볼거리로 유지되지 않는다. 체류와 소비가 가능한 복합적 환경, 즉 숙박, 식음료, 쇼핑, 체험 콘텐츠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현재의 보문단지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편, 최근 각광받고 있는 황리단길은 제한된 구역에서의 상업적 성공 사례일 뿐, 경주 전체 관광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 특히 재방문율이나 장기체류형 관광으로의 확장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시적인 유행 상권에 의존하는 전략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APEC을 계기로 경주를 찾는 외국 정상들과 수행단이 머무를 보문단지의 현 상태가 도시 전체의 인상을 결정짓는 첫 관문이라는 점에서, 주력 관광지의 환경 개선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주시가 추진해 온 관광정책의 일회성 운영 또한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뉴 10대 브랜드’ 사업은 해마다 단발성 이벤트로 소진되며, 정책의 지속성과 효과에 대한 회의감을 키우고 있다. 시행된 프로그램은 심의를 거쳐 10가지 대표브랜드를 지속하도록 행정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관광 브랜드는 단기 성과 중심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도시의 비전과 전략이 응축된 장기 프로젝트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주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사람의 문제로 직면하고 있다. 구도심 재생 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왔지만, 근본적인 활력 회복에는 실패하고 있다. 신라 천년의 유산, 고려·조선·근대사의 흔적, 그리고 천혜의 자연환경이라는 다층적 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매력적인 관광 도시로서의 위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경주 APEC을 기점으로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메인 관광지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계획, 관광경영, 문화콘텐츠, 지역경제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통합적 실행체계가 요구된다.
APEC 정상회의는 경주가 신라 이후 다시금 세계무대에 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2025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되지 않도록, 경주는 지금부터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체계적인 이행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재구축해야 한다. 도시를 다시 설계한다는 각오로 임할 때, 경주는 세계인이 다시 찾고 싶은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