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립극단이 지속 가능성 위기를 맞았다. 단원들은 상임단원 충원과 주말 공연 회복, 전담 인력 배치를 요구하며 경주시에 공식 호소문을 제출했다. 반면 시와 시의회는 공연 실적에 비해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경주시립극단 단원들이 최근 경주시에 호소문을 제출하며 극단 운영의 구조적 위기를 호소했다. 과거 체불임금 문제까지 겹쳐 경주시와 신뢰가 흔들린 가운데 단원들은 지금이 구조 개선의 마지막 기회라는 판단에 따른 것. 단원 15명의 서명을 담은 이 호소문은 경주시 문화관광국장에게 전달됐으며 ‘상임단원 충원’과 ‘주말 공연 재개’ ‘전담 인력 배치’ 등 세 가지 요구가 담겨 있다.
극단은 “경주시립극단은 지금 존폐를 걱정해야하는 상황에 몰려 있다”며 “경주시는 연극예술의 특성을 깊이 감안하지 못하고 오직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공연 횟수를 축소하고 상임단원를 줄이고, 그 줄인 만큼을 객원단원으로 임시방편을 하는 단기적 예산 절감에만 몰두하고 있다. 종국에는 시립극단을 비상임으로 전환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면서 시립극단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의회, 실적 대비 예산 효율성 지적
경주시립극단의 공연 실적과 예산 집행 내역이 경주시의회에서 문제로 지적된 바 있다. 지난 2월 열린 제288회 경주시의회 문화도시위원회 회의에서 모 의원은 “극단의 공연 횟수에 비해 운영 예산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입장을 제기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경주시립극단은 2025년 현재 연간 6~8회 수준의 공연만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반해 시는 극단 운영에 매년 13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원 전원이 상임직으로 근무 중인 점도 지적됐다.
이에 모 시의원은 “합창단과 고취대는 각각 50명, 39명 규모로 연간 40회 이상의 공연을 수행하고 있으나, 시립극단은 상대적으로 공연 횟수가 적다”며 구조적 효율성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극단 단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가 시민의 눈높이에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수준인지, 이제는 냉정하게 검토할 시점”이라며 “예술단체 운영의 공공성과 성과 사이에서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단원들은 “경주예술단 3개 단체 중 유일하게 상임제를 유지하는 극단은 상대적으로 공연 수가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연극이라는 예술장르의 특성상 합창단이나 고취대처럼 많은 횟수의 공연을 하기는 어렵다. 한번의 연극 무대를 만들기 위해 예술감독 지휘아래 여러 단원들이 수십번, 수백번 연습을 반복해야 비로소 하나의 연극 작품이 완성된다. 공연 횟수만으로 공공성과 성과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공연 횟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왔지만 번번이 반려됐고, 정기공연 횟수마저 제한받고 있다”면서 “일부 단원들은 2023년 체불임금 사태 이후 이어진 일련의 조치로, 사실상 보복성 행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체불임금 논란과 신뢰붕괴
2023년 하반기, 경주시립극단은 정기공연 준비를 위한 평일 야간 및 주말 공연 과정에서 발생한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 미지급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초과 근무 시간이 정식 근로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해당 시간에 대한 시간외 수당이 지급되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단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임금 정산이 아닌 구조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당시에도 우리의 요구는 단 한 명의 상임단원이라도 채용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는 입장을 밝히며, “시가 미지급 수당을 일괄 지급하는 방식으로 사안을 봉합한 뒤, 충원 논의조차 이어지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깝다.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주말공연 불허로 이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단원들은 현재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내년 연말이면 3명의 상임단원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최소한 이들의 공백만큼은 반드시 충원해야 한다는 것이 극단 구성들의 핵심적인 요구다. 공연기회 축소와 주말공연 중단은 내부 균열을 낳는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
단원들은 “대부분이 시간외수당 없이도 주말 공연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라며 “희생이 아니라 공공극단의 정체성과 직업적 책임에 대한 자발적 동의에서 비롯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단원 개개인의 사정과 입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극단의 지속 가능성 확보와 상임 체제 유지, 공연 기회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한 단원은 “상임단원 충원은 물론, 공연 기획과 행정을 전담할 단무장 채용, 주말 공연 기회 회복이야말로 시립극단의 최소한의 조건”이라며 “경주는 광역시처럼 전문 제작 인력이 있거나 민간기획사가 활발한 환경이 아니다. 공연준비부터 기획, 홍보까지 전부 단원이 도맡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상임체제가 유지되지 않으면 사실상 제대로 된 공연은 어렵다. 경주라는 도시의 특성상, 오히려 상임제가 절실한 곳이 바로 경주”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