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한국인을 고문하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라면 먹을 때 김치 안 주기’ 나트륨 과다 섭취가 우려스럽지만 나도 김치 없이는 라면을 잘 먹지 않는다. ‘식후에 커피(아·아) 못 마시게 하기’ 나는 이상하게 생선구이 같은 걸 먹은 날에는 꼭 커피믹스를 마신다. 그 외의 식사 때에는 보통 아메리카노로 입가심(?)을 하는 편이다. 그럴듯한 이유는 딱히 없지만 아무튼 나도 한국인이란 건 분명하다.    그 밖에 ‘택배 배송에 일주일 넘게 걸리기’나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기 전에 자리에서 안 일어나기’ 등도 있지만, ‘삼겹살에 소주를 못 먹게 하기’. 등으로 볼 때 소위 ‘한국인의 황금 페어링이 뭔지, 선호하는 궁합이 뭔지가 선명해 보인다. 아들 녀석도 배달된 족발 묶음에서 새우젓부터 찾는다. 좋고 나쁜 궁합은 음식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었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기말고사를 친 어느 저녁이었다. 자신의 학과와 이름, 그리고 발표를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는 대목에서 나는 쉬이 단발머리의 한 학생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무슨 일로 전화를 했니?”하고 묻자 한참을 머뭇거리던 녀석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교수님, 저 시험 완전 망쳤어요.” 수업도 열심히 참여해 왔고 질문과 발표도 곧잘 해왔기에 전혀 예상을 못 한 반응이었다. 통화 내용은 이랬다. 대학교 첫 시험이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잘 치고는 싶은데 자신의 공부법이 대학에서도 통할지 도통 감이 안 잡히더란다. 그래서 첫 시험을 잘 치고 싶은 마음에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순간 두터운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리고 씁쓸했다.    ‘사람 손으로 직접 마킹하는 시험은 가고 이제 인공지능한테 시험을 맡기는 세상이 도래했구나...’ 일은 벌어졌고 되돌릴 수도 없었다. 뜬금없지만 문득 녀석의 점수가 궁금해졌다. 과연 인공지능은 내가 출제한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했다. 아니, 설마 잘 봤겠어? 그 희박한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전화기를 든 채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컴퓨터 화면에는 반 평균보다도 못한 저조한 점수가 찍혀있었다. 씁쓸했다. 그 여학생 말이 “자기가 봐도 정답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인공지능이 알려준 답인데 틀릴까 싶어 그냥 놔둔 문제만 두 개란다. 물론 다 오답이었다. 흐느끼던 녀석을 진정시키며 “그래, 이번 시험으로 넌 무엇을 배웠니?” 하고 물었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이런다. “이제 시험에 절대 남(?) 도움 안 받을 거에욧!” 시험은 수업에서 다루었던 학문적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체화하는 과정이다. 시험이라는 방식으로 그런 소중한 배움의 과정을 더 이상 배울 게 없어 보이는(?) AI한테 토스해 버린 녀석의 창의적 발상도 놀랍지만, 아무리 대단한 AI일지라도 직접 보지도 듣지도 않은 강의에서 출제한 문제마저 척척 맞힐 거라는 믿음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순진했다.    궁합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지만 아무튼 시험과 인공지능의 궁합도 마치 감과 도토리묵의 그것처럼 해로웠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 건강상으로도 말이다. 안타깝지만 좌충우돌 그렇게 실수하면서 녀석은 대학생으로 거듭나고 있다. 영민한 친구니까 스스로 자초한 아픔과 고통을 통해 더욱 건강하고 성숙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생각해 보면 궁합은 시간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숙성의 문제였다. 족발과 새우젓이라는 환상의 궁합도 하루아침에 완성되거나 증명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시험과 인공지능의 연결 시도가 지금 당장은 급작스럽고 당혹스러워 보일 수 있다.    주변에 이런 시도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언젠가 그 황금비율을 찾을지도 모른다. 환기해야 할 건 그 학생의 눈물과 후회, 자신에 대한 믿음 회복이 성숙과 완성의 밑거름이 된다는 점이다. (AI라는) 효율성이라는 덕목이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배움의 과정은 황소걸음 마냥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앞설 순 없다. 달고 자극적인 음식이 당장은 즐거울지라도 결국 건강을 해쳐 후회를 남기게 될 테니까 말이다.    급한 세상인 만큼 분명하고 차분한 숙성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지식이라면 몰라도 인공지능한테 삶의 지혜까지 요구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