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예년보다 훨씬 빠르고 강하게 찾아왔다. 6월 말부터 시작된 폭염은 이미 ‘역대급’ 수준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7월 6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7명, 환자는 875명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사망자는 두 배 이상, 환자 수는 83% 급증했다. 특히 전체 환자의 33%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다. 논밭, 실외 작업장, 길가 등 야외에서 쓰러진 사례가 많아 일상과 노동 현장 곳곳이 위험지대가 된 셈이다.
경주는 전국에서도 폭염에 가장 취약한 도시 중 하나다. 고령인구 비중이 높고, 기후적으로 내륙 특유의 체감 더위가 심한 탓이다. 열사병 위험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이는 지역의 특수성과 맞닿아 있다. 실제로 경주에서는 60~80대 고령층 환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야외활동 중 온열질환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주시 역시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는 폭염 취약시간대 농작업 자제 유도, 소방 사이렌 순찰, 실외 근로자 작업시간 조정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건강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400여 명의 재난도우미가 직접 안부를 확인하고, 무더위쉼터와 살수차도 확대 운영 중이다. 또한 하수관·배수로 정비, 축대 낙석 방지 등 태풍과 집중호우를 대비한 안전 점검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응이 ‘충분한가’라는 물음에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우선,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주 전역에서 동시에 진행 중인 각종 공사 현장이 한낮 폭염 시간대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공사 노동자는 물론, 시민과 관광객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시장 주변이나 주거밀집지역에서의 작업은 고령자와 보행 약자를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보다 촘촘하고 섬세한 대응이다. 공사 허가 시 ‘폭염 대응 계획’을 의무화하고, 그늘막·물·얼음·응급키트 같은 최소한의 안전 장비를 현장에 반드시 갖추도록 해야 한다. 무더위쉼터는 단순히 개수 확대에 그칠 게 아니라, 실제 고령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위치와 안내 방식까지 재점검해야 한다. 실외 근로자 보호 조치는 일회성 점검이 아니라, 작업반장·감독자 교육과 연동된 지속형 매뉴얼로 정착시켜야 한다.
재난은 대형 사고로 나타나기 전, 작은 불편과 사각지대에서부터 조용히 증식한다. 열대야 속 독거노인의 방 한 칸, 한낮에 쪼그려 앉은 도심 가로수 밑 그늘이 곧 그곳일 수 있다. 경주는 노인 인구가 많은 도시인 만큼, 폭염 대응에는 더 민감하게, 더 집요하게 접근해야 한다.
무더위는 자연현상이지만, 인명 피해는 결코 불가피한 일이 아니다. 과소 대응과 느슨한 매뉴얼이 빚어낸 ‘인재(人災)’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