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서라벌문화회관 1층, 작은 간판 하나 내걸린 공간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선다. 누군가는 기타를 메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조용히 꺼낸다. 녹음부스와 라이브룸, 작은 합주실이 나란히 이어진 이곳, 바로 경북음악창작소다.
지역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경북음악창작소는 2021년 11월 문을 열었다. 국비, 도비, 시비를 포함해 총 20억원이 투입돼 610㎡ 규모로 조성된 이곳은, 장비 좋은 녹음실을 넘어선다.
음악을 그만두려던 이들이 다시 노래할 수 있도록, 지역에 머무는 예술인들이 창작을 멈추지 않도록 과정을 지켜주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이고, 누군가에겐 다시 살아보겠다는 작은 확신의 시작인 곳인다. 2024년 한 해 동안 이곳을 거쳐 간 이는 842명이다. 녹음, 편집, 합주, 교육, 세미나 등 시설 대관은 총 160건이었고, 누적 사용 시간은 551시간에 달했다. 무대에 서지 않아도, 앨범을 내지 않아도 경북음악창작소는 음악을 계속할 이유가 되어 준 것이다.
누구를 위한 창작소인가
경북음악창작소는 무명 뮤지션과 예비 음악인, 그리고 가능성을 품은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다. 지난해 음반 제작을 지원한 팀이 6팀, 공연 제작을 지원한 팀이 2팀,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클립 등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 팀은 8팀이다. 또한 8팀의 뮤지션이 멘토링과 컨설팅을 통해 창작 방향을 다듬었고, 안동, 영주, 창원, 제주와의 지역 네트워킹을 통해 교류도 활발히 이뤄졌다. 더불어 작사, 작곡, 홈레코딩, 미디 등 심화 클래스도 총 10회 진행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력보다 이곳에 남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서울 진출을 전제로 한 음악지원 시스템과는 다른 지역 안에서 가능성을 증명해가는 곳이다.
이종수 경북콘텐츠진흥원장은 “우리가 키우는 건 스타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공연이 없어 그만두겠다는 팀, 음원을 만들 예산이 없다는 밴드가 여기서 다시 꿈을 꾼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억지로 멈춘 이들을 일으키기보단 이미 걷고 있는 이들의 속도를 놓치지 않도록 설계된 공간. 바로 그런 철학 아래 경북음악창작소는 만들어졌다.
이종수 원장은 ‘음악으로 자립 가능한 경북’을 만들기 위한 실무 책임자로 국악을 전공한 문화기획자 남희종 센터장을 경주로 보냈다.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을 두루 경험한 그는 부산, 대구, 상주, 예천, 안동을 거쳐 지금은 경북 동남권 콘텐츠센터장으로 경북음악창작소와 웹툰캠퍼스를 이끌고 있다.
남 센터장은 음악창작소의 운영뿐 아니라 기획과 예산 확보까지 주도하며, 올해는 한수원의 후원을 유치하고 전년 대비 세 배 가까운 실적을 끌어냈다. 지금 이 공간이 진심을 담아 움직이는 이유다.
2025년, 도시 전체가 무대가 된다
올해 경북음악창작소는 음악과 도심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두 가지 사업을 준비 중이다.
하나는 ‘포시즌 버스킹’이다. 계절마다 기획 공연과 거리 버스킹이 열리고, 리사이클 캠페인과 연계한 음악 플리마켓이 진행된다. 지역 웹툰 작가나 브랜드와의 협업도 함께 기획되며, ‘음악이 흐르는 도시, 걷다 보면 공연이 시작되는 경주’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또 다른 하나는 ‘퓨어뮤직 페스티벌’이다.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간, 나정해변과 APEC시티(화백컨벤션센터 인근)에서 열린다.
이 페스티벌에는 APEC 국가 인디밴드, 국내 직장인 밴드, 예술 동아리 팀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라이브 공연뿐 아니라 EDM 댄스 나잇, 원데이 마스터 클래스, 오픈 스튜디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며,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리마켓과 해변 액티비티도 함께 마련된다.
경북음악창작소는 음악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그 소리가 크지 않아도, 작지만 꺼지지 않기에 더 오래, 더 깊게 마음에 남는다. 지금도 방음벽 너머에서는 누군가가 다시 연주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생애 첫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남희종 센터장은 “많은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음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경주에 이런 공간이 있었어?’라는 말보다 ‘여기라서 가능했다’는 말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오늘 하루를 의미있게 만드는 음악, 그런 걸 지켜주는 공간으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