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경주의 유학자 화계(花溪) 유의건(1687~1760)의 문집 ‘화계집(花溪集)’이 우리말로 번역돼 세상에 나왔다. 경주문화원이 지난해부터 진행하는 ‘경주문집 국역총서’의 첫 성과다.‘화계집’은 유의건이 남긴 시와 글, 생각을 모은 책으로 모두 11권 5책. 처음 간행된 것은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120여년이 지난 1881년, 그의 후손들에 의해서였다. 그로부터 또다시 140여년이 흐른 지금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옮겨낸 것이다.화계 유의건은 경주 내남 신계리(新溪里)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조선 영조 때 진사시에 합격했지만 벼슬길에는 나서지 않았다. 대신 남산 서쪽의 두릉에 자리 잡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제자를 길렀다. 그는 자신이 머무는 서재를 ‘정묵재(靜默齋)’라 불렀다. 말없이 조용히 있는 삶을 소중히 여긴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가 사는 마을 이름을 따 ‘화계 선생’이라 불렀다.
그의 삶은 단정하고 검소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학자 정현(鄭玄)을 마음속 스승으로 삼고 부귀영화보다 책과 자연을 가까이하며 지냈다. 실제로도 어릴 적부터 총명했고, 부모상을 당했을 때는 병이 날 정도로 애틋하게 슬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글과 시로 전한 마음, 신라 왕릉 기록도 남겨
화계는 시를 좋아했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두보나 한유의 시를 외며 스스로를 다스렸고, 남송 시인 육유의 시에 운을 맞춘 시도 많이 남겼다. 특히 주목되는 글은 ‘신라왕릉진안설’이다. 조선 영조 6년(1730), 당시 경주부윤이 신라 왕릉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던 사건을 기록한 글로, 지금도 학술적으로 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심스러운 주제를 정면으로 기록한 점에서도 그의 학자적 자세가 돋보인다.‘화계집’에는 ‘주역’에 관한 깊이 있는 해석도 실려 있다. 조선의 학자들이 즐겨 본 주석서들을 비교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글들이 담겨 있다. 그는 여러 학설을 아울러 보되, 특히 수와 상징으로 세상을 풀이한 ‘상수역(象數易)’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화계는 보문 일대의 학자 남용만과 사돈 관계였고, 두 집안의 학문적 교류는 다음 세대로 이어졌다. 그의 외손자 치암 남경희는 문과에 급제했고, 치암의 외손자는 조선 후기의 문인 이종상이다. 이러한 인연 속에서 지역 유림과 학문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화계집’은 그 흐름을 담고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이번 번역 작업에는 위덕대 신상구 교수, 부산대 엄형섭 강사, 경북고전번역원 오상욱 원장, 조철제 전 경주문화원장, 영남대 최종호 교수 등 5명이 참여했다. 조철제 전 원장이 총괄을 맡았다.오상욱 경북고전번역원 원장은 “‘화계집’은 지역 고전문헌 번역의 첫걸음이다. 이번 작업을 계기로 경주의 조선 선비, 화계 유의건 선생의 삶과 사상이 다시 조명되기를 바란다”면서 “더불어 앞으로도 경주가 기억해야할 지역 인물들의 정신과 품격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문집역주와 해제작업 등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