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7km 떨어진 망성리 일대 기와 가마터에서 ‘황룡(皇龍)’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문자기와가 처음으로 출토됐다. 지금까지는 황룡사지 내부 건물지에서만 확인되던 이른바 황룡 명(銘) 기와가 고려시대에 실제로 제작돼 납품됐음을 실증하는 첫 번째 생산지 출토 사례다.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은 지난 18일, 망성리 384번지 유적 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열고 ‘황룡 명 문자기와’를 포함한 고려시대 기와류 출토 성과를 공개했다.   이번에 출토된 문자기와는 길이 약 17㎝, 너비 15㎝의 작은 암키와 조각으로 예서체의 ‘황룡(皇龍)’ 글자가 좌서양각(左書陽刻) 방식으로 새겨져 있다. 이 같은 양식은 황룡사 남문지와 강당지,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등과 동일한 형태지만, 기와를 실제로 생산한 가마터에서 직접 출토된 것은 처음이다. 국가유산진흥원 남부조사2팀 박종섭 팀장은 “망성리 일대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궁궐이나 황룡사, 사천왕사 등에 기와를 공급한 생산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처럼 문자기와가 확인된 것은 처음으로 고고학과 건축사 양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발견은 황룡사 사용처와 기와 생산지를 직접 연결해주는 실증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덧붙였다.   문자기와가 출토된 가마터는 약 512㎡의 면적 안에 13기의 기와 가마가 중첩 배치된 형태다. 소성실과 아궁이 일부만 남아 있지만 기와 파편이 층층이 쌓여 있어 당시 대량생산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박 팀장은 “가마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라 하나를 폐기한 후 그 옆에 덧대듯 새로 축조된 연속적인 구조”라며 “단기간에 많은 기와가 필요했던 황룡사 중건기나 대규모 불사수요에 대응한 생산체계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가마터에서는 문자기와 외에도 일휘문(日輝文) 암막새와 수막새, 길이 45cm 이상의 대형 암·수키와 등 고려 중기 양식의 다양한 기와류가 함께 출토됐다. 일휘문 막새는 중앙에 원형 돌기를 두고 주변을 둥글게 둘러싼 귀목문(鬼目文) 계통의 문양으로 11세기 중엽부터 13세기까지 유행했다. 이는 ‘고려사’ 예종 원년(1106년)의 황룡사 중건 기록과 시기적으로도 일치한다.   박 팀장은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고려 중기 황룡사 중창기에 제작된 양식으로 당시에 실제 공급된 기와들이 이곳 망성리 가마터에서 제작됐음을 직접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와에 새겨진 ‘황룡’ 명문은 현재까지 한 점만 확인됐지만 학계에서는 이 한 점이 지닌 의의가 작지 않다고 본다. 박 팀장은 “완성된 기와는 모두 황룡사로 운반되고 가마터에는 깨졌거나 버려진 파편들만 남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 맥락에서 명문기와가 공급처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곳이 실제 황룡사 납품 생산지였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국비지원 매장문화유산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발굴 지역은 민간인이 주택 신축을 신청한 단독주택 예정 부지로 문화유산위원회와 협의 끝에 유구가 집중된 마당 일부는 원형 보존 후 복토하고, 상대적으로 유물이 적은 건축 예정 영역은 공사 허용으로 조율됐다. 가마 대부분은 건축 예정 구역과 겹치지 않았으며 남은 유구는 토심 하부에 안전하게 매장해 보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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