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천 암각화(반구대 암각화 및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가 2023년 가야고분군에 이어 열일곱 번째로 세계유산에 등재될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이 5월 2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ICOMOS)의 심사결과 세계유산 목록 ‘등재 권고’를 통지받았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 등재는 확실하다. 1970년대 초 이 두 유적이 발견된 지 55년 만이다. 울산시민들은 반구대 암각화를 경주와 바꾸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반구천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는 울산시민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영광이다. 반구천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그동안 국가유산청과 울산광역시가 공히 많은 시간과 경비 그리고 노력을 기울였다. 반구천 암각화는 외국 여러 연구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유적으로 적지 않은 연구가 수행되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암각화 연구자들만이 아니고 일반인들도 이곳을 많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구천 암각화는 세계 여러 곳의 암채화와 암각화에 비해 양적으로는 적지만 내용은 아주 풍부하다. 선사시대 주민들 어로(漁撈)와 수렵(狩獵)의 생업경제 및 미(美)와 영(靈)적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반구대 암각화를 ‘한 편의 서사시’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 천전리 명문(銘文)과 암각화는 선사시대 암각 및 역사시대(신라)의 명문으로 이루어져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암각화 제작 기법과 그림 내용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로 각각 추정되는 동물, 동심원(同心圓), 나선형 및 마름모꼴 등의 추상적 모티프(motifs)와 신라 법흥왕 때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기마행렬도, 항해하는 배, 용, 말, 사슴 등의 암각을 통해 6세기 신라인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아울러 신라 법흥왕 때 새겨진 명문에 화랑들의 이름과 관직명이 있어 신라사 연구에 크게 기여한다. 특히, 반구천 암각화와 명문은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반구천 암각화 세계유산 등재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문제다. 풍화로 인한 암각화 손상도 걱정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연댐의 수위 조절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사연댐 수몰선 안에 있어 여름에는 수위가 높아져 자주 물에 잠긴다. 과거 오랫동안 1년에 3-4개월 정도는 물에 잠겨있었다.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하여 보존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고 많은 물상(物像)들이 벌써 희미하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길을 돌린다’ ‘카이네틱 댐을 건설한다’ 등 여러 안이 논의되었으나 시간과 예산만 낭비하고 모두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근래는 상류에 있는 대곡댐 수위를 조절하여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향후 3-4년 내 사연댐에 세 개의 수문을 설치하여 수위 조절을 한다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울산시민들의 식수 및 공업용수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울산시민들의 식수가 세계유산 등재보다 더 중요하다. 이 때문에 지난 20여 년 동안 국가유산청과 울산광역시 사이에 많은 마찰이 빚어졌다. 그러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전제 조건은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것이다. 혹시 그사이 반구대 암각화가 잠시라도 수몰된다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세계유산 등재가 무산될 수도 있다. 세계유산 등재 전후가 될 올여름부터 수위를 주도면밀히 관측해서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우리나라 고교 국사 교과서에 서술된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 시기 문제다. 현재 교과서에 반구대 암각화 제작 연대는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BC 300-100 AD)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각 언론 매체에서는 반구대 암각화 조성 시기를 신석기시대(대략 BC 5000-4000)로 간주·보도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에도 신석기시대로 제시하였다. 국사 교과서와 언론 및 국가유산청의 연대관에 일관성이 없다.    반구대 암각화 조성 시기에 대한 교과서 내용은 1980년에 발표된 견해로 그동안 새로운 증거 확보와 그에 따른 분석과 해석을 토대로 많은 반론이 제기되었지만 아직 수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교과서에는 반구천 암각화 내용은 아예 빠져 있다.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제작 시기를 구명(究明)하고 국사 교과서 내용도 수정해야 한다.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국내·외 연구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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