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가 지역 문화와 학술, 체육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 3인을 제37회 ‘경주시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경주의 정신과 품격을 지켜온 이들이다.
“신라의 도시, 경주가 제게 준 삶이자 과제였다. 이번 수상은 그에 대한 뜻깊은 격려이자 과분한 영광이다” 제37회 경주시문화상 교육·학술 부문 수상자인 박방룡 씨(72·황오동)는 오랜 세월 신라의 흔적을 발굴하고 해석해온 자신에게 이번 수상이 뜻하는 바를 이같이 전했다.
그는 국립박물관 학예연구직으로 36년간 재직한 뒤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을 역임하며 신라사 연구의 최전선에서 활약해왔다. 그는 박물관과 연구원에서 평생을 보냈다. 퇴직 후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공부할 거리와 책임감은 남아 있다고 했다. 박방룡 씨는 수많은 발굴 조사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로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관문성(신대리성)의 명문 성석 발견을 들었다.
그는 “당시 성벽에서 확인된 한자 각석은 신라 성곽 건축의 방식과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라 불교의 상징적 인물인 이차돈의 묘역과 사당터를 실증적으로 확인한 작업도 깊은 의미를 지닌다. 유물을 떠나 사상과 정신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학술 논문은 70여편에 이르며 주제는 신라의 왕경 도시계획, 성곽, 사찰, 묘제 등 다양하다. 그가 신라사에 집중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경주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박방룡 씨는 “신라 왕경의 중심지에서 자란 것은 연구자에게는 특별한 축복이다. 같은 유적을 보고도 체감하는 감도와 문제의식이 다르다. 경주에 나서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신라 관련 논문을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바쁘다. 강의 요청에 의한 강의안을 준비 중이고, 남산 진성(鎭城)의 군사적 기능에 대한 포럼발표도 앞두고 있다. 이외에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유적들에 관한 기획 연재를 구상 중이다.
그는 후학들에게 “연구자는 반드시 현장을 밟아야 한다. 책상에 앉아 해석만 하는 고고학은 오래가지 못한다. 보고, 걷고, 쓰는 것. 그것이 고고학의 기본”이라고 조언을 남겼다.
그러면서 “경주는 신라 천년의 숨결이 이어진 곳이다. 그 유산을 시민들과 함께 되새기고 나누는 일, 그것이 앞으로 제가 해야 할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고향 경주에 대한 애정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