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느린 생명의 움직임이 캔버스를 지난다. 그 유영의 흔적 위로, 먹과 물감이 번진다.
한국화 작가 이나윤의 개인전 ‘유영하는 시간들’이 22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 갤러리달에서 열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바다거북을 중심 모티프로 삼아 자연과 생명의 흐름을 전통화의 언어로 풀어낸다. 붓을 잡은 지 15년, 교직과 창작을 병행하던 그는 퇴직 이후 작업에 전념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시간이 쌓인 한 장의 대답이다.
바다거북은 오랜 세월을 지나온 생명이다. 이나윤 작가는 여행지에서 마주한 거북의 유영을 통해 ‘시간과 공존’의 이미지를 포착했고 이를 화폭으로 옮겼다.
그녀의 작품은 전통 재료인 먹과 물감을 사용하면서도 화지를 캔버스로 대체하고, 번짐과 담채 기법을 더해 현대적 감성을 입힌다. 형식의 실험이 돋보이지만 재료의 물성은 여전히 깊고 단단하다.
전통과 현대의 결이 자연스럽게 포개어진 것.
출품작 20점은 경주의 자연과 역사를 수묵의 물결 속에 겹쳐 놓는다. 각기 다른 풍경 속에서 거북은 시간을 지나 유영한다. ‘퍼플의 세계’에서는 금장대 아래 흐르는 강물이 퍼플빛 거북을 품고 자연과 상상 너머를 잇는다.
‘거북의 꿈’은 문무왕릉에서 영감을 받아, 신라의 수호와 동해의 생명을 함께 담았다. ‘봉길리의 아침’은 바다에서 떠오른 햇살과 거북의 움직임을 겹쳐 신라의 시간과 맞닿는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는 해양 생태계, 특히 바다거북이 겪는 현실에 주목했다. 해양 쓰레기와 플라스틱에 위협받는 생명을 마주하면서, 작품은 메시지로 이어졌다.
이나윤 작가는 “한국화가 더 많은 이들에게 열릴 수 있기를 바라며, 자연과 생명,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시는 경주예술의전당 전시공간 지원 프로젝트 ‘공유 앤솔로지’의 일환으로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