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 눈길 교통사고로 세 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지금은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 시절엔 단 몇 센티미터의 문턱도 넘기 어려운 장벽처럼 느껴졌다. 몸이 불편한 이들의 하루는 턱을 넘는 일의 연속이다. 예전 그 시간은 지금의 무장애도시 논의를 내 삶의 문제로 느끼게 만드는 이유가됐다. 지난 9일, 경주시는 무장애도시 조성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중간보고회를 열었다. 필자는 언론인 위원 자격으로 이 자리에 함께했고 그 자리에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장애도시는 장애인만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모두의 일상을 지키는 도시계획이란 점을 말이다. 유모차를 끄는 부모,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 팔에 깁스를 한 청년도 모두 한번쯤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순간 이동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무장애도시는 특정인을 위한 복지가 아닌 모두의 일상을 지켜주는 공공의 기반이 돼야 한다. 이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행정, 전문가, 장애인 당사자 등 모두가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다는 점이었다. 책상 위 계획이 아니라 거리의 단차와 보행로의 경사, 정류장의 높이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변화 말이다. 회의를 통해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점자블록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라는 인식은 실제론 복합적인 상황과 충돌했다. 휠체어 이용자에겐 울퉁불퉁한 점자블록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시각장애인에게는 유도선이 맞지 않거나 단절된 구간이 많아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된다고 했다. 저상버스 역시 정류장 구조와 맞물리지 않으면 접근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또한 행정 의지로만으로도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 사유지 진입로나 문화유산 보호구역의 접근성 개선은 사유재산권과 문화유산 관리 규정 등 복합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실질적 개선이 필요한 구간임에도 행정의 개입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통행 불편이 민원으로 제기되더라도 해당 구역이 사유지거나 국가 관할 구역인 경우 행정은 물리적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것이다. 좋은 의도만으로는 도시가 바뀌지 않는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는 행정의 계획만큼이나 휠체어를 밀어본 사람, 발목이 불편한 채 그 길을 건너본 사람 등 실제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회의는 보고를 받고 비판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서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듣고 나누며 조정해 가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시선이 조금씩 맞닿았다. 행정의 설계도에 당사자의 삶이 반영되고, 전문가의 데이터에 시민의 직관이 더해지며 도시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하는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무장애도시는 시설 설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소통을 통해 설계되고 공감을 통해 확장되는 도시다. 사유지 진입로 하나를 정비하는 데도 문화유산 보호구역을 더 많은 사람에게 열기 위해서도 국가나 시민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경주시가 행정의 의지뿐 아니라 시민과의 연대에 방점을 찍은 것은 분명 반가운 방향이다. 필자 역시 회의 말미에 한 가지 제안을 더했다. 변화는 눈에 보여야 시민의 삶 속에 스며든다. 무장애도시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시민들이 직접 보고, 느끼고, 공유할 수 있도록 지역의 SNS 서포터즈들이 그 변화를 생생하게 기록한다면 그것 자체가 공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날 회의장을 나서며 이 변화의 과정에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무장애도시는 특별한 사람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결국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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