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릉에서 명활성 입구까지 이어지는 1.8km의 도보길에는 ‘선덕여왕길’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인터널저널’에서는 가을에 걷기 좋은 경주 둘레길 10곳을 2020년에 소개했는데 ‘선덕여왕길’이 포함되었다. 이때 ‘선덕여왕길’은 선덕여왕릉에서 황복사지와 진평왕릉을 지나 명활성에 이르는 6.1km 거리의 길이다. 선덕여왕릉에서 명활성까지의 길을 포괄적으로 선덕여왕길로 명명하기보다는 선덕여왕릉에서 진평왕릉까지의 길만을 선덕여왕길이라 부르고 진평왕릉에서 명활성 입구까지 구간은 별도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진평왕릉에서 명활성 입구까지의 길만을 ‘선덕여왕길’로 부를 뚜렷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이 구간 양쪽 끝에는 진평왕릉과 명활성이란 중요한 사적지가 있다. 두 사적지를 아우르는 길 이름을 짓기가 마땅치 않으니 그 중 어느 한쪽을 택하여 길 이름을 짓는다면, ‘진평왕릉 가는 길’로 명명하기 보다는 ‘명활성 가는 길’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명활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월성·황룡사·대릉원·남산·산성 지구) 중의 산성 지구에 포함된 핵심 유적이다. 명활성은 신라시대 때 왜병의 침입을 방비할 목적으로 경주 동쪽에 쌓은 둘레 약 6km의 산성이다. 선덕여왕 16년(647)에 상대등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 근거지로 삼은 적도 있던 곳이다. 둘째, 선덕여왕릉에서 진평왕릉까지 길을 ‘선덕여왕길’이라고 한다면, 진평왕릉에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어 명활성 입구에 이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진평왕릉에서 명활성에 이르는 길 이름을 ‘진평왕릉 가는 길’로 붙일 수는 없다. 셋째, 진평왕릉은 경주 시내 쪽에서는 명활성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어 진평왕릉에서 명활성까지 걸은 후 원점회귀하면 시내에서 접근하는 동선이 짧고 효율적이다. ‘명활성 가는 길’(가칭)은 왕벚꽃과 겹벚꽃의 명소이다. 봄철이면 길 양옆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보문호 물을 인근의 보문 들판으로 끌어들이는 길옆의 농수로에서 물이 세차게 흐를 때면 이곳은 산과 물, 꽃과 들판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몇년 전 수로를 새로 정비하면서 수로의 둑을 너무 높이 쌓은 탓에 걸어가면서 흐르는 물을 잘 볼 수 없는 구간이 생겨 무척 아쉽다. 흐르는 물을 볼 수 없는 구간은 걷는 사람에게 복개한 수로와 별반 다름없이 느껴질 것이다. 보문호의 물을 흘려보내야 물이 흐르는 수로의 성격상 콘크리트 둑을 높이 쌓을 필요는 없었다. 수로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도보길과 조화를 생각하는 ‘종합적 사고’가 부족해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으로 판단된다. 이 수로에는 농사철에만 물이 흐르는데 사시사철 물을 흐르게 하면 이 길은 더욱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명활성 가는 길’은 봄철에만 좋은 곳이 아니라 가을철이면 넓은 황금빛 들판이 한 눈에 펼쳐져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이곳은 걸으면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은 왕복 거리가 비교적 짧은 3.6km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으며 황토로 조성되어 있어 맨발로 걷기 좋은 길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이 길을 더욱 다듬고 정비하여 숲머리먹거리촌과 잘 연계하면 교토의 ‘철학의 길’과 같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산책로로 발전시킬 수 있다. 길 양끝에는 맨발 걷기를 마친 사람을 위해 발 씻는 곳이 필요하다. 세족장을 새로 만든다면, 이곳에는 소음을 크게 일으키는 발 건조기를 설치하지 말고 각자가 준비한 수건으로 발을 닦도록 했으면 한다. 도보길은 힐링과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명활성 가는 길’은 ‘명활성 탐방로’와 연결된다. 명활성 탐방로는 일부 구간이 아직 미개통이다. 보문관광단지에는 명활산, 명활성, 명활성 가는 길, 명활성 탐방로가 함께 존재함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 ‘선덕여왕길’이란 도보길의 명칭을 재고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경주 도보길 전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체계적으로 정비했으면 한다.   경주시는 2003년에 ‘아름다운 문화유적길’이라는 보고서를 간행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크게 보완하여 ‘아름다운 문화유적길(아유길)’이 제주도 ‘올레길’에 버금가는 전국적 브랜드를 갖는 도보길로 육성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 경주시의 어떤 부서가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며 도보길의 관리 주체는 어디로 할 것인가가 먼저 정해져야 할 것이다. 도보길의 정비 및 확충은 ‘머무르는 경주 관광’에 크게 일조하며 시민의 행복과 건강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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