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무용수이자 안무가인 리파르(Serge Lifar, 1905-1986)는 니진스킨(Vaslav Nijinsky, 1890-1950), 마신(Leonid Myasin, 1896-1979)의 계보(동성애자인 디아길레프의 애인의 계보이기도 하다)를 잇는 발레뤼스의 마지막 남성 스타 무용수이다. 그는 발레뤼스가 해체된 바로 그 해인 1929년에 파리오페라발레극장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하여 19세기 말 이래 계속 내리막길을 걷던 프랑스 발레를 혁신시켰다.
아일랜드 출신의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발루아(Ninette de Valois, 1898-2001)는 103살을 산 장수무용가로 유명하다. 그녀는 1931년 영국 런던에서 빅-웰스발레단(The Vic-Wells Ballet)을 설립한다. 이 단체는 1940년 새들러스웰스발레단(Sadler’s Wells Ballet)으로 개명되고, 1957년부터는 로열발레단(The Royal Ballet)이라는 지금의 명칭을 얻게 된다. 로열발레단은 폰테인(Margot Fonteyn, 1919-1991)이라는 걸출한 발레리나들을 배출한 오늘날 가장 유명한 발레단 중의 하나이다.
멀리 미국으로 건너간 무용수도 있다. 발레뤼스 후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안무가였던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이다. 그는 1934년 후원자 커스틴(Lincoln Kirstein, 1907-1996)을 초청을 받아 도미한 후 이듬해인 1935년 아메리칸 발레단을 공동 설립하는데, 이 단체는 1948년 뉴욕시티발레단으로 개명되어 오늘에 이른다. 미국에 발레가 알려진 건 18세기 후반이지만, 193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미국발레가 독자적인 양식을 보일 만큼 발전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러시아인 발란신의 노력에 힘입었다.
발레뤼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전 세계로 나간 발레의 전도사들 덕분에 발레뤼스가 현대발레에 가진 지분은 아직도 상당하다. 해체 후 약 100년이 지난 요즘, 발레뤼스, 디아길레프, 니진스키 등이 도서, 공연 등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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