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이어진 이상 기후에 경주 지역 과수 농가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계절의 흐름을 벗어난 저온 현상과 급격한 일교차로 과수의 착화·수정 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 농민들은 피해를 막기보다 줄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농작물 수분에 필수적인 꿀벌도 날씨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군집 붕괴와 폐사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과수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상 기후에 배·체리 농가 직격탄 경주시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올해 3월 경주시 최저기온이 영하 4.6℃까지 떨어지는 이상 저온을 기록했다. 배 개화가 한창 이뤄지는 시기였던 만큼 피해는 컸다. 외동읍을 제외한 지역의 대부분 배 농가는 냉해를 입었으며, 피해 규모는 약 140농가, 100ha, 착화율은 평년 대비 약 30%에 불과하다. 이는 수확량 감소로 직결될 뿐만 아니라 과일의 크기, 모양 등 상품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시 관계자는 “과수 착화 직후에는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 나무의 수세를 회복시키고 수정률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급변하는 기후 속에서 피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체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5월 말부터 본격적인 수확이 예정돼 있지만, 올해 경주 체리의 예상 수확량은 평년 대비 20~30%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체리는 기후에 민감한 작물로 올해의 경우 이상 기온으로 정상적인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더욱이 지난해 9~10월 잦은 강우와 일조량 부족, 올해 이른 봄의 저온 현상까지 겹치면서 착과율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전했다. 양봉 농가도 이상 기후 속 꿀벌 사수에 급급 문제는 이런 이상 기후가 단발적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있다는 점이다. 양봉 농가도 해마다 기후 영향으로 피해를 입고 있으며, 경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직까지 경주에서는 꿀벌 대량 폐사나 군집 붕괴와 같은 사례는 없지만, 양봉 농가 관계자는 이상 기후에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매년 벌꿀 수확량이 줄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이제는 양봉도 기후와 싸워야 하는 시대”라고 토로했다. 꿀벌은 기온과 일조량에 따라 활동 시기가 결정되는데, 올 봄처럼 일교차가 15℃ 이상 벌어지는 날이 잦으면 벌의 활동도 크게 위축된다는 것. 꿀벌이 활동하지 못하면 꽃 수분도 이뤄지지 않고, 결국 과수와 밭작물의 생산량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양봉 농가에서는 충분한 양분 공급과 온도 조절을 통해 벌 개체수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지만, 매년 강도가 높아지는 이상 기후 앞에서는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재난급 이상 기후, 추가적인 피해 구제 방안 마련도… 경주시농업기술센터는 이러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21년부터 미온수 살포 시스템을 도입해 왔다. 이는 개화기 저온에 취약한 과수에 따뜻한 물을 분사해 꽃의 냉해를 줄이는 방식이다. 시 관계자는 “실제 농가에서 적절히 활용할 경우 결과가 3배 이상 차이 날 정도로 효과가 크다”면서도 “올해는 기온이 영하 4℃ 중반까지 떨어지면서 시스템 효과도 한계를 드러낸 해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농작물재해보험 개선도 필요하단 지적이다. 현재 경주지역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80%를 넘어서며 농가 보호망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수의 경우 냉해는 꽃에 생기는 피해로 가시적인 손실이 드러나기 어렵고, 손해평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다. 과실이 떨어져야 인정되는 낙과 피해와 달리 냉해는 ‘될 열매가 안 된’ 피해라 정량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체리의 경우에는 농작물재해보험 대상 제외 작물로 보상조차 받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배 품종 전환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경주지역 배 농가의 80~90%는 저장성이 강한 신고 품종을 재배 중이다. 조생종은 냉해에 강하지만 저장 기간이 짧아 시장성과 유통에 불리해 품종 전환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농가는 해마다 반복되는 기후 리스크 속에서도 현재 품종에 의존하며 ‘다음 해엔 나아지길’ 기대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역 농민단체 관계자는 “경주 과수 농가들은 기후 이상이 일상화된 지금 상황에 적응하며 버티는 중”이라며 “재해 대응 기술과 보상 성격의 제도적 지원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변하는 기후에 맞춰 경주 농업 시스템의 전반적인 재설계를 검토해 봐야 할 시점”이라며 “기후에 적응력 높은 작물 전환, 스마트 농업 확대, 정부차원의 정책적 지원 및 투자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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