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로봇의 결정적 차이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뼈와 근육 대(對) 쇠나 티타늄? 생명 대 전기와 모터? 기억 대 데이터? 다 맞는 말이겠지만 난 감성에 기반한 행동양식을 꼽겠다. 가령 대화 중 상대방의 말에 동의를 표시할 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친다. 더 격하게 동의할 때는 박수를 치거나 상대를 때리기도(?) 한다. 불필요한 행동임에는 분명한데 우린 이러고 있다. 기능과 작용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감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본 덕목이다.
만약 로봇이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느낌을 받을까? 말도 인간처럼 하고 그림도 우리 이상으로 창의적으로 그려주는 요즘이지만, 인간의 정서를 모방하는 로봇을 마주한다면 친근감보다는 이질적이고 매우 언짢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경험할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로봇이 인간을 흉내 낼수록 인간은 더 많은 감정적 연결을 느끼지만, 정도를 넘어 과도한 흉내는 외려 거부감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음을 경고하는 개념이다.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 감성이나 정서 등 마음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느낌은 타협할 수가 없다. 굳이 여행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비행기와 자전거 여행의 차이라고 할까. 전자가 목표(결과) 지향적이라면, 후자는 과정 중심적이다. 목적지만큼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낯선 광경과 그 장소만의 냄새도 중요하다. 전자가 딱 로봇이고 또 그 존재 이유라면, 후자가 인간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요즘 가장 핫한 AI와 로봇 분야에서 후발주자인 애플이 이번에 희한한 걸 들고 나왔다. 비록 간략한 형태로 구현한 시제품 수준이지만, “로봇이 이 정도로 인간을 닮을 수 있나” 하는 물음표와 함께 “AI가 5살짜리 꼬마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 있겠다”는 느낌표를 동시에 던져준다. 스마트폰은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화면을) 터치하는 거라는 신세계를 제시한 애플이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지 살펴보자.
여러분들은 영화 벅스 라이프를 만든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Pixar)를 아실 테다, 스티브 잡스가 설립했고 쫓겨났다가 재입성한, 그 픽사의 등장 오프닝에 나오는 탁상 램프를 기억들 하시리라. 눈치챘지만 애플의 첫 인공지능 로봇은 영화에서 통통 뛰어다니던, 바로 그 탁상 램프다. “아니, 램프가 로봇이라고?”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세인 지금 후발주자로서 애플이 꺼낸 첫 작품치곤 아주 영민한 의도이지 싶다.
애플이 올린 9분짜리 유튜브 영상에는 감성 로봇(Expressive Robot)과 기능성 로봇(Functional Robot)으로 나누어 램프 로봇을 시뮬레이션해 보인다. 나눈다는 표현이 좀 뭐 한 게, 인간에게 기능과 감성은 한 몸처럼 작동한다. 가령 우리는 기분 좋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컵에 물도 따른다. 물 따르는 행위에 노래 부르는 행위와 기분 상태는 전혀 방해되질 않는다. 하지만 애플이 굳이 이 둘을 나누어 시연한 까닭은, 세상 모든 로봇이 기능 중심적일 때 애플은 감성이라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영역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영상은 제법 충격적이다. 명령은 말이나 프롬프트(챗GPT 부류의 인공지능은 시작부터 아웃인가!)가 아니라 손으로 가까이 오라는 모션을 취하면 램프 로봇은 알아서 불빛을 사람 쪽으로 당겨준다. 행동으로 램프를 제어(가까이 와, 저리 가, 저기를 비춰 줘 등)하는 모습에 어린아이도 직관적으로 사용(아니 가지고 놀)할 수 있겠다 싶다. 예스(미소나 웃는 표정)에서 노(눈이 휘둥그레지는 다양한 모습)까지 아이들의 다양한 표정 명령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관계라면 살아있는 장난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겠다.
보통 아기(또는 강아지)는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엄마나 보호자 얼굴을 한 번씩 체크한다. 엄마가 빙그레 웃고 있으면 ‘아, 이런 행동은 괜찮구나’ 하고 스스로 행동의 범위와 정당성을 설정한다. 램프 로봇도 사람과 눈을 맞추면서 “네가 책을 읽고 있는데 이렇게 내가 불빛을 비추면 돼?” 하는 식으로 소울 메이트(soulmate:영혼의 단짝)가 되어간다.
애플 로봇이 주인의 안색을 체크한 다음 슬며시 램프 머리로 물컵을 민다. 주인이 컵을 들고 마신다. 램프도 기분이 좋은지 머리를 까딱댄다. 누가 봐도 “우리 주인님, 참 잘했어요!” 하는 느낌이다. 와, 애플이 애플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