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표 문화유산 민간단체인 신라문화원이 올해로 창립 32주년을 맞았다. 1993년 설립 이래 신라문화원은 신라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하고 민족문화유산을 보존·활용하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해왔다. 그 중심에는 현재까지 신라문화원을 이끌고 있는 진병길 원장이 있다.
진 원장은 “신라문화원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혼자의 힘이 아닌, 정부와 기업, 지자체, 경주시민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문화는 사람의 마음을 잇는 다리이고, 우리는 그 다리를 32년간 정성껏 놓아왔다”고 말했다.
경주신문에서는 문화와 역사를 관광뿐만 아니라 교육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는 신라문화원 진병길 원장을 만나 32년간의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생활 속 문화유산 활용, 신라문화원의 길
신라문화원은 ‘신라 달빛기행’, ‘추억의 수학여행’, ‘세계유산 탐방’ 등 경주의 정체성을 담은 콘텐츠로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함께 즐기는 역사문화 플랫폼을 구축해왔다. 전통 공간인 서원·향교·고택 등을 교육·체험·공연의 장으로 활용하는 ‘살아 숨 쉬는 향교·서원 활용사업’은 문화재청 우수 활용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진병길 원장은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는 유산이 아닌, 생활 속에서 향유하는 자산으로 재해석하는 실용적 접근이 신라문화원의 핵심”이라며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데 집중해 왔다”고 강조했다.
특히 ‘살아 숨 쉬는 향교·서원 활용사업’은 문화유산을 매개로 청소년 인성교육, 가족 단위 체험, 전통예절 교육, 음악회 등을 운영하며 역사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살리는 프로그램으로 전국적인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위기를 딛고 이뤄낸 32년의 역사
진병길 원장은 신라문화원이 설립 초기 10년 동안의 어려운 시기를 견뎌냈기에 32년간의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하나의 성과가 다음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순환의 힘, 그리고 지역사회의 협력이 신라문화원의 가장 큰 에너지이자 자산”이라며, “정부기관과 지자체, 시민의 협력이 오늘의 신라문화원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진 원장은 32년 신라문화원장으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을 고청 윤경렬 선생 기념관 건립에 작은 기여할 수 있었던 일을 꼽았다. 황리단길 일대 지진 복구를 위해 KT&G로부터 받은 지원금 중 남은 금액을 기념관 건립에 쓸 수 있게 노력했던 것.
또한 서울 창덕궁 달빛기행의 모태가 된 것이 바로 신라 달빛기행이라며, 문화관광 콘텐츠의 선도적 모델이 된 사례도 소개했다. 특히 신라 달빛기행은 1994년 시작된 경주 야간관광의 대표적인 콘텐츠로 진 원장의 관광 트렌드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보여준 사업이기도 하다.
지역 소멸 시대, 문화유산과 마을을 잇는 연결고리
진병길 원장은 오늘날 지역 소멸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경주가 가진 문화유산 자원을 활용해 문화유산과 인근 마을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서악마을 사례를 언급하며 “무열왕릉과 설화가 얽힌 선도산을 중심으로 마을을 품격 있게 가꿔내는 작업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악마을은 문화유산과 숙박시설, 전선 지중화 등 미관 개선이 어우러져 새로운 형태의 체류형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또한 진 원장은 “경주의 음식은 그 자체로 지역 정체성과 세계관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라며, 스토리텔링과 문화유산 해설이 결합된 먹거리 콘텐츠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사찰음식 철학 체험, 향토음식 연계 역사 해설 프로그램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러한 경주의 융합형 콘텐츠를 국제무대에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단순한 고도(古都)를 넘어 ‘살아 있는 정신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이 기획하고, 공공이 지원하는 이상적 모델
진병길 원장은 신라문화원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성과는 민간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공공이 이를 지원하며 함께 만들어 온 협력 모델이라고 전했다. 문화유산 돌봄사업, 시민 참여형 해설 프로그램, 문화유산 지킴이 교육 등은 문화자산을 지키는 동시에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게 만든 대표적 사례다.
최근 신라문화원은 기업연수와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도 새롭게 기획 및 진행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등 기업연수를 경주에 유치하고 있으며, 진 원장은 이 자리에서 신라인의 리더십 철학을 소개한다.
그는 “삼국 중 가장 약했지만 통일을 이룬 신라의 힘은 화랑정신에 바탕을 둔 리더십에서 나왔다”며 “모두에게 솔선수범하는 자세,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책임의 가치가 오늘날 기업에도 필요한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신라문화원은 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역사체험 중심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며, 교육 콘텐츠를 통한 세대 간 문화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진 원장은 “기업연수와 청소년 교육은 경주가 가진 문화유산을 새로운 콘텐츠로 전환해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라며, “신라문화원이 그 연결고리를 만드는 현장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진병길 원장은 인터뷰 동안 ‘경주’를 강조했다. 신라문화원은 경주가 성장하는 과정에 필요한 역할을 하는 민간단체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 도시, 경주가 되길 희망한다”면서 “신라문화원은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현장의 동반자로서 계속 나아가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