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아들 녀석은 핸드폰을, 그 옆에서 나는 신문을 보고 있다. 누운 아들은 이리저리 몸을 연신 뒤집지만, 핸드폰을 쥐고 있는 손만은 놓지를 않는다.
햇살 좋은 거실은 ‘라떼’ 세대와 MZ세대가 세상 정보를 어떻게 얻는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인류학적 현장이다. 글자가 좀 작아서 가끔 읽은 줄을 다시 읽는 번거로움만 빼면 종이 신문을 접을 이유는 없다. 손가락으로 넘기는 신문의 질감이나 잉크 냄새가 좋기도 하지만 TV나 동영상과 달리 관심 있는 기사를 천천히 읽으며 무엇보다 내 속도로 사유를 끼워 넣을 수 있어서 좋다.
아빠가 이렇게 아날로그적 감성을 즐기는 반면 편하게 누운 아들, 어깨너머로 슬쩍 보이는 손가락은 아주 그냥 바쁘다. 손가락이 기민하게 움직이니까 아마 눈알은 깜박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굴러다닐 거다. 안 봐도 뻔하다. 녀석이 즐기는 디지털 감성의 질료들은 이미지나 동영상이 대부분이다. 게임을 하면서 급하게 친구랑 주고받는 한 줄짜리 텍스트도 있긴 하지만 해독 불가의 외계어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타임 어택이 심해서인지 오탈자가 많은 편이다. 아직도 적응이 잘 안 되는 “응, 아니야”라는 멘트도 신기하다. “응(yes)”이란 말인지 “아니(no)”라는 뜻인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런 대도 지들끼리 키득거리는 걸 보면 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녀석들이 배우고 풀고 하는 학교 교재나 문제집 지문들은, 어른들도 그 양과 질에 압도당할 정도라는 거다. 긴 지문도 지문이지만 선지도 워낙 길어 한 번 읽고 곧바로 처리할 수준이 아니다. 까딱 선지 파악을 잘못해 시간을 허비했다면 상황을 되돌릴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권장 도서 한 권 안 읽고 맨날 유튜브만 보는 애들이 이런 지문을 보고 문제를 푸는 자체가 정말이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녀석의 책상 위에 뒹굴어 다니는 국어 문제지 속에는 이런 지문이 있었다. 좀 길지만 옮겨보면 “레보비츠는 12음 기법의 등장을 음악사의 혁신으로 평가하고 후설의 현상학을 적용하여 그 의미를 규명했다. 후설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적 경험은 의식의 지향성을 통해 구성되는 ‘현상’이다. ··· 그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전제에 대한 ‘판단 중지’를 통해 사물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전공이나 관심 분야가 아니라면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해설서를 찾아보니, “철학자 후설(Husserl)의 현상학 개념을 바탕으로 쇤베르크의 음악을 해석하고 평가한 레보비츠(Lévi-Bruhl)의 미학적 관점”이라고 친절(?)한 해설이 달려있다.
기어이 이 문제를 맞힌 녀석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다 읽고 풀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일론 머스크 자서전 말고는 한 권도 읽지 않던 녀석이 의외로 담담하게 말한다. 인공지능이 정답을 토해내는 방식이 인간에게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비밀의 경로인 것처럼, 우리 아들의 정보 취득과 이해 방식을 예측하기에 높다란 절벽을 느낀다. 아빠가 느낄 기이함과 좌절감과 상관없이 아들은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든다.
아들이 사는 세상은 글보다 동영상이나 이미지로 과집중된 사회다. 10대 청소년일수록 카톡보다 인스타그램 류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더 중독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모비일 기업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무려 2억 7787만 시간을 유튜브에, 9411만 시간을 인스타그램 보는데 소비했다고 한다. 반면에 카카오톡에는 4821만 시간을 썼다니까 이들은 이미지와 동영상에 2배 이상의 시간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지난 미국의 대선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트럼프 후보의 피격 사건을 꼽는다. 파란 하늘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뒷배경으로 주먹을 치켜들고 있던 트럼프의 사진을 두고 타임지는 사진 한 장에 “역사적 중요성, 명백한 구도, 부인 못할 긴장감 등 모든 게 다 담겼다”라고 격찬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달한 초상화 역시 이 사진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란다. 가로·세로 한 장 짜리 이미지가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우리 아이들은 지금 인스타로 숏폼(짧은 영상) 동영상을 즐기고 있다. 계속된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동영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가까운 미래 교실의 모습이나 교재들도 이렇게 바뀌어 있지는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