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을 취재하면서 한 가지 확실한 진실과 마주했다. 복지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손’에서 완성된다는 것.
양남면, 황오동, 안강읍, 성건동 등 각 지역의 민간과 공공이 협력해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름 없이 활동하는 위원들의 헌신은 분명 감동적이다.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생필품을 손에 들려주며 안부를 묻는 일상. 그 평범한 장면들 속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진심과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
양남면에서는 지역 여건상 이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해 찾아가는 복지 활동이 강화되고 있었다. 지리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공유되고 있었고, 민간위원들이 자발적으로 차량을 제공하고 시간을 내어 봉사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지역 복지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오동에서는 후원자와 주민들 사이의 신뢰가 복지활동을 지탱하는 가장 큰 자산이 되고 있었다. 매달 후원에 참여하는 이웃들이 있었고, 그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후원자의 밤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 행사는 단순한 감사 자리가 아닌, 이웃 간의 관계를 회복하고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안강읍에서는 민관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며,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굴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공공과 민간의 구분 없이 ‘우리 동네를 우리가 지킨다’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 성건동은 주민참여형 복지를 위해 발로 뛰는 민간위원들이 돋보였다. ‘햇살이 들지 않는 곳에 빛을 비추겠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었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단순한 행정적 기구가 아닌, 복지의 최전선에서 마을을 지켜내는 방패였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활동을 지켜보면서도, 마음 한편에 무거운 현실이 자리 잡는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그 손을 잡아줄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기존 위원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앞으로 이 역할을 누가 이어갈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지역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섰고, 그 수치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노인 복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넘어서, 지역 전체의 돌봄 체계를 재설계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의미한다. 고립된 노인의 증가, 중장년층의 돌봄 부담, 복지자원에 대한 수요 폭증 등 여러 문제가 동시에 밀려오고 있다.
행정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결국 해답은 ‘주민’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지역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 그리고 이웃을 향한 작은 실천이야말로 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협의체 위원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린다. 말벗이 되어주고, 생필품을 전하며, 때로는 눈물을 닦아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복지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된다는 것. 이제는 그들에게만 그 역할을 맡겨둘 수 없다.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은, 더 이상 몇몇 헌신적인 이들의 몫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을 전체가 복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재능으로, 누군가는 자원으로, 또 누군가는 단순한 관심과 연대로 힘을 보탤 수 있다. 복지는 거창하거나 무거운 일이 아니다.
이웃의 안부를 묻고, 손을 내밀며, 필요한 곳에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것. 그 소소한 연결들이 모여 지역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지금보다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 속에서,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로 성장해야 한다.
그 울타리가 튼튼해지기 위해서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이웃을 기억하는 ‘우리’가 있어야 한다.
이제는 묻고 싶다. “당신은 오늘,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보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