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고려 공예에서 즐겨 쓰이던 소재였다. 원숭이 모양 청자는 묵호, 연적, 인장 등 문방구류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제작됐다. 곁에 두고 자주 사용하는 기물인 만큼 벗처럼 함께하고 싶은 대상을 생생하게 빚어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실제 크기와는 달리 원숭이가 석류에 매달린 형태로 표현된 연적처럼 상형청자에서는 현실에 없는 장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연적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형상 자체에 담긴 상징성과 조형미를 극대화하는 고려 장인의 감각과 기술이 돋보인다. 이 연적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에 출품됐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순회전으로 기획됐으며 경주에서 고려 상형청자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는 국보 3점과 보물 7점을 포함해 총 97건의 유물이 출품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호림박물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 전국 8개 기관이 참여했다.   형상을 빚어낸 청자는 장식만을 위한 도자기가 아니다. 사용하는 목적, 담고자 한 의미가 명확한 기물들이 많다.   전시를 기획한 윤서경 학예연구사는 그 기원을 통일신라에서 찾는다.   윤 학예연구사는 “경주 구황동 원지에서 출토된 오리 모양 뿔잔이나 월지의 사자 향로는 오늘날 상형청자와 유사한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지역에 축적된 조형 전통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통일신라 상형토기를 통해 고려 상형청자의 조형적 계보를 살펴본다.   2부는 상형청자의 생산지와 유통 경로를 다룬다. 강진 사당리와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 태안 해역 침몰선 출수품 등이 소개된다. 완제품보다 장식 거푸집, 소성 실패편, 가마터 잔재 등 제작 과정의 흔적이 눈에 띈다. 3부는 상형청자의 주된 형상들을 조명한다. 참외, 복숭아, 조롱박과 같은 식물, 오리, 물고기, 원숭이 같은 동물 형상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상형청자는 그릇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입과 코, 꼬리 같은 부분이 물의 유입과 출수 기능을 담당하도록 설계됐다. 용과 사자처럼 상징성을 가진 형상도 자주 쓰였다. 대표작으로는 어룡 모양 주자가 있다. 물고기 몸에 용의 머리를 가진 이 기물은 도교 신화 속 수호 생물을 모티프로 한다. 물을 담으면 용의 입을 통해 액체가 흘러나오며, 손잡이는 연잎 줄기를 꼰 형상이다. 실제 사용 가능한 구조이며, 용량은 약 880㎖로 측정됐다.   4부는 상형청자에 반영된 종교적 세계관을 다룬다. 복숭아를 든 인물 형상 주자는 서왕모 신앙과 관련된 도교적 상징을 품고 있다. 청자로 제작된 불보살상, 연꽃 문양이 둘러진 정병은 불교 의례와 연결된다.   당시 금속기가 일반적이었지만, 청자는 비색 유약의 품격과 제작의 용이함 덕분에 종교 기물로도 활용됐다. 마지막 공간은 관람객 체험을 위한 구역으로 꾸며졌다. 기린, 어룡, 귀룡을 본뜬 촉각 전시품이 마련돼 있으며, 여름방학 기간에는 청자 조각을 복원하는 퍼즐과 드로잉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윤상덕 관장은 “상형청자에 담긴 형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고려인의 감각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창문”이라며 “경주라는 장소에서 신라의 조형성과 고려의 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관람객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8월 24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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