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시기상 언제가 제일 좋을까?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고향 천북의 냇가 나지막한 산자락에 진달래, 북숭아꽃이 정말로 아름답게 피었다. 작은 복숭아 과수원에 핀 꽃은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봄의 절정을 알려 주었다. ‘고향의 봄’ 노랫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처럼 뒷마당의 살구꽃까지, 지금은 완전히 없어졌지만 머릿속에 잊지 않고 기억하는 나의 고향, 천북 동산이 생각나는 3월 말이다.
경주는 일 년 열두 달 중 언제가 가장 아름답고 언제 찾아가면 좋을까? 이 물음의 뿌리는 4년 전 3월 하순에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에서 시작된다.
돌아가신 후 매년 봄이 되면 돌아가시기 전까지 생각조차 못 한 생각이 한 달 이상 간다. 바로 ‘이 아름다운 푸르름과 꽃의 잔치’를 아버지는 더 이상 보실 수 없으시다는 생각 때문이다.
농사일이 많아지는 때, 아버지도 표현은 안 하셨지만 얼마나 이를 기다리고 좋아하셨을까? 못난 자식이 그런 생각을 돌아가시고 난 후 겨우 하고는 홀로 자책의 눈물까지 흘리게 된다. 그렇다면 왜 아버지는 무뚝뚝하기만 하실 뿐, 꽃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감정이 없었으리라 생각했을까? 한편으로 우리의 아버지들은 왜 그런 불통의 아버지상으로 우리들 가슴에 맺혀 있을까?
지금 경주는 산천은 어떠한 모습인지 상상으로 영화 한 편을 찍어본다. 3월 마지막 주말에 내려가 볼 경주의 풍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봄기운보다 세차게 솟구친다.
우리나라 고려가요나 근현대 가요를 보면 대부분 사모곡(思母曲)인데 아래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덜 친근하다.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 낫같이 들 리가 없습니다 / 아버님도 어버이이시지마는 / (위 덩더듕셩) /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은 없습니다 / 아아, 세상 사람들이여 /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은 없습니다”
필자도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버님 돌아가신 후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고 무뚝뚝하셨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셨던 분, 그래서 아들인 나와도 그렇게 살갑지 않았다. 그런 당신께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사랑한다는 표현을 겨우 했는데 그 아린 기억이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이제는 없어진 경주역의 철길처럼 이어진다.
그러던 중 문득 예전보다 인기 높아진 트로트를 통해 가수 장민호의 사부곡(思父曲)에 마음이 쏠렸다.
“무릎 꿇고 빌어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봐도 / 이제는 다시 느낄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가셨네 / 지난 세월들 이 자식 위해 / 모든 것을 다 주신 내 아버지 / 아~ 어디에 계시옵니까 목 놓아 불러봅니다”
아버지는 봄이 오면 쟁기를 지게에 지시고 소를 앞세우고 봄꽃이 앞다퉈 피는 산길을 걸어 산골 논으로 가셨는데 그 모습이 흑백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살아계시고 봄이 되면 다시 내게로 오신다.
경주는 언제 가면, 어디가 핫플(Hot place)인지, 맛집은 어디인지, 무엇을 꼭 경험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고 있다. 첨성대 칼럼을 함께 하면서 그 횟수가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고 경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분들이 많아져 그만큼 부담감도 높아졌다.
그러나 적어도 첫 번째 질문에 대한 개인적인 답변은 정해진 것 같다. 그 답은 ‘3월 말에서 4월’이다. 벚꽃이 기다려지고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꽃도 경주를 사랑하게 해 줄 것이다.
경주에 언제 가면 좋을까? 사부곡이 나를 감싸는 지금, 바로 지금이다. 3월에 싹틔운 봄이 서운한 마음 하나 없이 4월의 사랑으로 배턴 넘겨주는 지금, 이 시절에 경주로 가자. 경주는 무뚝뚝하지 않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