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 1835-1921)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이 폐결핵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모친 슬하에서 자랐다. 일찌감치 생상스에게서 음악적 천재성을 발견한 모친은 아들 교육에 힘썼다. 불과 10살에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전곡을 현란하게 치며 프랑스 낭만파의 거두 베를리오즈를 놀라게 한 그가,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16세에 생상스는 오르간 부문에서 당당히 1등상을 받았고, 22세에 프랑스 오르가니스트의 최고봉인 파리 성 마들렌 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천재 생상스는 연주뿐 아니라 작곡실력도 뛰어났다. 특히 협주곡 작품이 많다. 이중에서 바이올린협주곡은 자작곡 지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으로 명성을 떨쳤던 사라사테(Pablo Sarasate, 1844-1908)와 인연이 깊다. 생상스가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헌정했더니, 사라사테가 단번에 매료되어 바이올린협주곡 작품을 여러 차례 요청한 것이다. 번호 달린 바이올린협주곡은 불과 세 개지만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작품이 여럿 있다. 또한 번호 달린 피아노협주곡 다섯 작품과 첼로협주곡 두 작품도 있다. 생상스는 번호달린 교향곡을 세 개 남겼다. 이중에서 3번 교향곡 ‘오르간’(1886)이 가장 유명하다. 프랑스 교향악의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2악장으로 되어 있으나 각 악장이 2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 사실상 4악장이나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같은 해 영면에 든 리스트에게 헌정되었다. 살아생전 리스트는 생상스에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었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트의 배경음악으로 선곡하여 유명세를 탄 ‘죽음의 무도’ 또한 생상스의 교향시 작품이다. 원래 가곡으로 작곡된 것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해골이 서로 부딪치며 춤추는 장면은 실로폰으로 묘사되었는데, 관현악곡에 실로폰이 사용된 첫 사례라고 한다. 생상스는 모차르트처럼 다재다능한 음악가였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를 무대에 올려 성악작품도 잘 만드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면모를 과시했다. 아마 생상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는 곡은 ‘동물의 사육제’일 것이다. 전부 14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13번째 ‘백조’가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생상스 자신은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출판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불과 며칠 만에 완성되어 부족한 구석이 많은 곡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이 생상스의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다. 생상스는 부친의 사인이 폐결핵이라 본인도 걸리지 않을까 늘 두려워했다. 그래서 평생 동안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다녔다. 나이가 들어서는 주로 북아프리카에 머물렀다. 그리고 알제리에서 86세 인생을 마감한다. 생상스는 다재다능한 천재라는 점에서 모차르트와 곧잘 비교되지만, 음악 외의 다른 학문들, 특히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점에서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오지랖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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