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보신탕을 먹은 기억이 없다. 보신탕을 먹기는 해도 그렇게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거나 배가 부른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께서 불교신자였기 때문에 늘 자식들에게 보신탕을 먹지 말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중년이 될 때까지 보신탕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영덕 대진 해수욕장을 가는 중 버스를 갈아타기 전 터미널 인근 식당에 갔다. 보신탕도 있고 다른 메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사 한 분이 수육 한 접시를 먹다가 절반 정도를 남기고 나갔다. 친구 두 명은 좋아라 하고 그 접시를 가져와서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내게도 권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점을 입에 넣었으나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서 뱉어버렸다. 그 이후 보신탕은 먹을 기회도 없었고 먹고 싶지도 않았다.
세월이 많이 지나고 1990년대 말 언론에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개고기를 먹는다고 한국 제품 불매운동을 벌인다는 보도가 났다. 은근히 속이 상했다. 다른 나라 사람들 음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프랑스 사람들도 19세기 말까지 개고기를 먹어 파리에 개 정육점이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달팽이 요리와 거위 간으로 만든 프아 그라(foie gras, 기름진 간)를 즐겨 먹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 음식을 먹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특히, 간을 키우려고 거위 입을 벌려 강제로 콩이나 옥수수를 밀어 넣는다고 한다. 육질이 부드럽게 개를 패는 거나 거위에게 억지로 사료를 먹이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학대다.
바르도의 불매운동 이후 보신탕과 개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개고기는 우리만이 아니고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북아메리카 원주민, 심지어 유럽 일부 지역 사람들도 먹는 모양이다. 우리가 개고기를 먹었던 것은 전통 식문화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큰 수술 후 건강회복 혹은 여름에 기력보강을 위해 먹는 것이 보신탕이었다. 먹거리가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동·식물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지금도 그런 측면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우리 식문화 습성을 본 일부 미국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다 먹는다’고 킬킬거리기도 한다.
우리가 먹는 개는 과거 ‘독구’ ‘워리’ ‘메리’ ‘쫑’으로 불리던 토종개였다. 외국에서 식용으로 들여온 개도 있었다. 애완용/반려견으로 키우는 개는 먹을 것이 없고 먹지도 않는다. 이제 보신탕은 먹고 싶어도 못 먹는다. 보신탕 을 찾는 사람이 드물어 식당이 대부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반려견으로 키우는 개가 엄청나게 많다. 개사랑도 상상을 초월한다. 좋은 옷과 목욕에 털을 깎고 하는 것은 기본이다. 동물병원에도 수시로 데리고 가고 운동도 시키고 맛있는 음식도 해 먹이고 자식 만큼이나 애지중지한다. 주변에는 보신탕을 잘 먹다가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보신탕을 딱 끊어버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제 우리의 먹거리가 풍부해져 보신탕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음식이 차고 넘친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보릿고개’ 때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물로 배를 채우거나 미국에서 원조해 준 옥수수 가루로 만든 빵을 먹기도 했다. 보리밥도 못 먹다가 이제는 쌀밥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쌀 소비량이 급감(急減)한 것이 그런 사정을 잘 말해 준다.
음식 문화도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어르신들은 여전히 밥, 김치, 된장찌개와 얼큰한 국물을 좋아한다. 음식에 관한 한 쉰세대와 신세대 간 격차가 엄청나다. 과거 보신탕이 전통음식 중 하나였지만 서서히 사라지고 새로운 식문화 전통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보신탕과 개고기는 더 이상 찾지 않는 먹거리가 되고 있다. 반려견 문화가 정착되어 가면서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고 진정한 의미에서 ‘개팔자가 상팔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