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문자 그대로 이름 자체가 문화와 문화재 그 자체이다. 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최상의 형태로 유지·관리하여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여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지금처럼 우리의 후손이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그렇다면 경주는 각종 위험과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을까? 욕심 같으면 경주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비하고 시나리오식으로 훈련되어 있기를 바란다. 특히 최근 들어 문화유산에 대한 위험이 자연재해보다 사람에 더 치우치는 듯해 걱정스럽다. 지난 해 12월, 조선의 최초의 법궁인 경복궁 담장이 이틀 연속 스프레이로 오염되는 ‘낙서 테러’가 일어나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빨강·파랑 스프레이로 훼손한 담장 길이가 44m를 넘으며, 문화재 당국이 긴급 복구작업을 벌이는 와중에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3m의 담장이 낙서로 훼손되었다. 추운 날씨에 훼손된 담장을 복구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고 소요된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당국은 이 복구 비용을 2020년 개정된 법을 적용, 훼손 행위 한 사람에게 청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종교 시설에 등에 대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또는 무지로 인해 생각 없이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것을 반달리즘(Vandalism)이라 한다. 고대 게르만족 일파인 반달족(Vandals)이 5세기 로마를 침공하며 다수의 문화재를 훼손한 것을 빗대어 1794년 프랑스 주교 앙리 그레구아(Henri Grégoire)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그는 프랑스 혁명 당시 군중들이 가톨릭교회의 건축물과 예술품을 파괴한 행위를 반달족의 로마 침략에 비유하면서 ‘반달리즘’이라고 불렀다. 이후 인류 역사에서 반달리즘은 전쟁이나 사회의 급격한 변동이 있을 때마다빈번히 나타났다. 반달리즘은 종교적·민족적 갈등, 침략전쟁, 왕조·정권의 교체, 이념의 충돌 등을 통해 자주 작동되었다. 우리 경주와 관련되어 일어난 대표적인 사례는 탈레반에 의한 파괴된 바미안 석불 사원 파괴 행위다. 바미안의 석굴사원은 6세기에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산맥 절벽을 파서 만들었다. 절벽 양 끝에 거대한 불상이 각각 조성되었는데 서쪽 불상은 높이 55m, 동쪽 불상은 높이 38m로 세워졌다. 신라 스님 혜초가 이 바미안 사원을 그의 명저 왕오천축국전에도 언급했을 정도니 우리와의 인연이 깊다 할 수 있다. 이렇듯 아주 유서 깊은 불교 유산을 종교적 이유로 없애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중세 기독교가 그리스·로마의 문화유산을 대거 파괴한 것이나 대항해시대 서구열강의 침략자들이 종교적 이유로 남아메리카 대륙의 잉카, 마야, 아즈텍문명을 파괴한 것과 유사한 폭력적 문화 파괴행태였다. 최근 러시아의 폭격에 초토화된 우크라이나의 오래된 성당이 파괴되는 것도 반달리즘의 넓은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일부 언론과 방송에서 경복궁 낙서행위를 미술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은 ‘그라피티(graffiti, 건물의 벽 등에 마치 낙서처럼 긁거나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의 왜곡 식으로 보도하는 것을 보며 보도의 무지가 염려스러워졌다. 그라피티는 확고한 예술 장르이자 새롭게 커져 가는 잠재성 큰 예술행위다. 그것을 부분별하고 비이성적인 문화파괴와 견주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이런 무리한 기사가 양산되어 문화재를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만의 하나라도 정당성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화 파괴의 핑계로 쓰일 뿐이다. 문화유산을 넘어 우리의 소중한 자연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상태로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주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것은 ‘문화 테러’다. 그 테러로 망가진 문화유산은 복원하기도 어렵다.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벌백계는 물론 문화재를 테러로부터 방어하는 총체적인 아날로그 & 디지털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시스템 역시 경주가 앞장서서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역사문화도시 경주의 새로운 위상이 될 것이며 다른 도시와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선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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