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서민들의 꿈이자 가정경제에서 제일 비싼 구매 품목이다. 전세일지라도 신혼집으로 아파트를 장만해야 비로소 결혼 준비가 된 것이고, 자가로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아파트는 좁은 면적에 많은 세대수가 거주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공동주택으로 국토 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합리적인 주거유형이 될 수 있다. 아파트는 건설 분야에서 생산하는 하나의 제품이기는 한데, 자동차와 같은 타 생산품과는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가격이 떨어지는 감가상각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수준으로 매매가격이 지속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파트를 생활공간이 아닌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개발과 재건축은 아파트 중심의 주거유형 확산을 더욱 부추겼다. 재개발은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으로 다양화되어 있는 주거유형을 아파트단지로 획일화하는 데 이바지했고, 재건축은 기존의 낮은 아파트단지 층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분양세대수를 늘려 발생한 수익을 공사비로 충당하는 재건축사업비 구조가 한몫하고 있다. 재건축을 통해 살던 집의 평수도 넓히고, 집값도 올려 자산도 증식시키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 방식은 지속성이 없고 분명한 한계와 문제점이 존재한다. 첫째, 세대수를 늘려 아파트를 재건축하면 각 세대의 토지 지분이 줄어든다. 단독주택이 깔고 앉은 부지는 당연히 해당 주택 1채 소유지만,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는 아파트단지 전체 면적에서 해당 세대의 평형과 면적 비율에 해당하는 토지 지분만을 갖는 구조다. 그렇게 되면 세대수가 많을수록 세대당 지분은 줄어들게 된다. 전쟁, 지진이나 화재와 같은 불의의 사태로 건물이 무너지거나 철거되면, 유형의 자산인 아파트는 사라지고 오로지 땅에 대한 소유권만이 남게 되는데, 아주 작은 면적일 가능성이 높다. 어디까지나 아파트 가격은 그곳에 건물이 서 있을 때의 가치를 반영한다. 둘째, 남의 돈으로 집을 고쳐 짓는 데는 한계가 있다. 5층짜리 아파트를 15층으로 재건축하고, 다시 30층, 50층으로 재건축하다가는 언젠가 한계에 맞닥뜨리게 된다. 노후 아파트를 수선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해 아파트 소유 세대가 공사비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수도권에서는 더 이상 추가 세대수를 늘릴 용적률* 확보가 어려운 아파트단지들이 각 세대가 부담금을 내는 리모델링을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자재비 상승 등으로 인한 건축비용 증가로 용적률을 높이고도 각 세대가 내야 할 부담금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의 몇몇 재건축단지에서는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공사를 중단하기도 하고, 사업성이 맞지 않아 애초에 재건축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건설사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주거환경의 악화가 우려된다. 과거 5층짜리 주공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최근의 아파트들은 너무 빼곡히 건물이 들어서 있다. 지하 주차장도 넓어지고 최신 인테리어에 부대시설도 확충되어 전보다 편리해졌다 할 수 있지만,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세대수를 늘린 탓에 높아진 층수와 대형화된 건물로 인해 햇빛을 보기 어려워졌고,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는 결국 아파트단지의 진정한 가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집은 사고파는 것(trading)이 아닌 사는 곳(living)으로 인식해야 한다. 최근 경주는 미분양주택이 1000세대 이상에 해당되어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관리하는 미분양관리지역 지정이 연장되었다.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음에도 향후 아파트 공급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파트가 필요한 사람은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단독주택이 좋은 사람은 단독주택에 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선택지가 그리 넓지는 않은 것 같다. 살기 좋은 곳에서 편하게 주거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경주시민들의 주거 수요에 맞는 주택 공급 정책도 필요하지만, 시민들도 아파트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판단해 봐야 한다.*용적률: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지하층 제외 층별 면적의 합) 비율로, 용적률이 높을수록 층수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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