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계적인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바둑 대결을 펼쳤고 이세돌 기사는 단 한 번의 승리를 맛봤을 뿐이다. 이후에도 계속된 인간과 알파고의 대결은 계속되었지만, 이세돌 9단이 단 한 번 승리한 것이, 인간이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승리다. 챗GPT가 나오고 딥러닝 기술과 인공지능이 여기저기서 일상이 되고 있다. 아줌마는 새로운 시대를 또 맞이하고 있나 보다. 아줌마가 어렸을 때는 곤로에서 밥하고 집 밖에 화장실이 있고 수도는 집 안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처음에는 마당에 수도가 있다가 나중에는 부엌에 수도가 설치되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동네에 물을 받으러 가는 곳이 있었다. 동네 수도라고 하면 될까?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하고 먹었다. 빨래나 목욕은 용천대(제주도 해안가에 민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하고, 동네 수도는 식수와 관계된 것에만 사용했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집안에 화장실과 수도가 완벽히 구비된 안락한 집에서 생활한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부모님은 1930~40년대에 태어나셨으니 더욱더 느끼셨을 것이다.
이제는 딥러닝 기술과 인공지능이 우리 삶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우리가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더 큰 변화가 올 것 같다는 것이다. 알파고를 만들었던 사람은 온 인류가 힘을 합쳐 인공지능을 제어해야 한다고 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세계가 오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전에 전쟁 드론, 표적 킬러 등 인공지능을 탑재한 전쟁기술들이 악용된다면 세계가 혼란스러워지고…. 물론 어두운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고 사람은 더 이상 불필요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학구적 열의 역시 인공지능 칩을 통해 인간의 뇌를 최대치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육체적으로는 최대의 편의를 제공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삶이 인간의 자주적인 삶인지, 인간이 인공지능의 반려인이 된 것은 아닌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의식주가 해결되고, 신체적, 정신적인 장애로 힘든 삶을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많은 분이 노후에 요양병원에서 삶을 마치는데 지금 상황을 본다면 기적 같은 삶이기도 하다.
엄청난 변화의 시대다.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의 변화와 다를 것이다. 앞으로의 20년은 지난 20년이 아니라 지난 200년의 변화와 같은 격변일 것이다. 지난 200년 중에 가장 큰 변화였던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 경제와 삶이 바뀌었듯이 이번 변화는 전 세계인의 삶을 또 한 번 바꿀 것이다. 산업혁명과 다른 점은 그 변화의 강도와 축이 더욱 강하고 엄청나리라는 것만 예상될 뿐이다. 지난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래도 인간은 인간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다고 믿어본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역사의 흑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지금 인간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이나 딥러닝을 제어하고 발전을 억제해야 한다고, 아줌마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이미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니 인공지능이나 딥러닝을 우리의 삶에서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의 완전 제어가 가능하리라고 보지도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편법을,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개미도, 완벽한 군집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2~30%는 별종이라 엉뚱한 짓을 해서 다른 개미들의 일을 증가시키지 않는가! 기적 같은 삶을 인류에게 베풀어 줄 수 있다. 인류를 반려인으로, 때로는 인류의 종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축복일까, 재앙일까? 과연 ‘우리에게 선택권은 있을까?’ 아줌마는 생각해본다.